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26)
던전 견문록-26화(26/319)
# 26
던전 견문록
제 27 화
“도미니크.”
‘네, 주인님.’
“지저에서 드라칸 정도라면 어느 정도 위치지?”
김진우의 질문에 도미니크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말을 꺼냈다.
‘드라칸은 쉽게 볼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에요. 다만 이따금씩 전장에 그들이 나타날 때면 지저에 다시 한 번 드라칸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말이 퍼져 나가고는 한답니다.’
아무래도 그의 생각 이상으로 드라칸의 위세가 대단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김진우는 한 가지 계획을 세웠다.
“오르테아가.”
“음?”
대열의 최전방에서 혼자 팔짱을 끼고 거들먹거리고 있던 오르테아가가 고개를 돌렸다.
“내가 시키는 대로 해봐.”
“뭘 말인가?”
“교룡들이 오면 말이야.”
“오면?”
“뒷일 생각하지 말고 일단 휘저어봐.”
그의 말에 도미니크가 기겁했다.
‘주인님! 아직 저희는!’
“네가 대장이라고 생각하고 날뛰어봐. 뒤를 받쳐줄게.”
***
교룡들이 짧은 다리를 뒤뚱거리며 눈알을 뒤룩뒤룩 굴려댔다. 생각도 못한 드라칸의 존재에 놀라기는 했지만 쉽게 물러설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그런 교룡들의 모습을 보며 오르테아가가 눈에서 불을 뿜었다.
“눈알만 굴려대는 꼴을 보니 필시 좋은 일로 온 것은 아닐 터! 내 그대들을 그대로 두고 보지만은 않을 것이야!”
말로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오르테아가는 쿵쾅거리며 교룡들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그에 맞춰 후열의 나가들이 위압적으로 발을 구르듯 꼬리 끝으로 바닥을 치며 뒤를 따랐다. 마치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다. 교룡들이 기세에 밀려 뒷걸음질을 쳤다.
“입이 있으면 변명을 해보아라! 그것이 그대들의 구명줄일지니!”
완전 신났군.
유황불을 내뿜으며 흥분해서 떠들어대는 드라칸의 모습을 보며 김진우는 실소를 흘렸다.
하지만 그도 잠시, 그는 이내 표정을 굳히며 손짓으로 나가들의 대열을 더욱더 밀어 올렸다.
어쩌다 보니 나가들에게 등을 떠밀리는 모양새가 된 오르테아가였지만 아무런 낌새도 눈치 채지 못하고 신이 나서 날뛰어댔다.
급기야 몸이 달았는지 성큼성큼 다가가 가장 앞에 있는 교룡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뻥!
가죽 북 터지는 소리가 들리며 교룡이 비명을 질렀다.
지저에 악명이 자자한 드라칸을 목전에 두고 이미 겁에 질린 교룡은 반격은커녕 짧은 뒷다리를 바삐 놀려대며 뒷걸음질을 쳤다.
오르테아가가 그런 교룡의 꼬리를 잡아 기세 좋게 휘둘렀다.
[교룡과의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언제나처럼 메시지 창이 전투의 시작을 알려왔다.
***
교룡은 격퇴되었다. 호들갑을 떨던 것에 비하면 어이없을 정도로 손쉬운 승리, 오르테아가의 공이 컸다.
하지만 정작 오르테아가는 불만스러운 얼굴로 김진우를 바라보며 무언의 항의를 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해.”
“하지만 나에게 조금만 더 시간을 주었다면 도망친 교룡도 잡을 수 있었다.”
전투 말미에 김진우의 만류로 끝내 잡지 못한 한 마리의 교룡이 못내 아쉬운 모양인지 오르테아가의 얼굴에 불만이 가득했다.
“아니, 하나는 살려 보내야지.”
그래야 이 미궁이 드라칸이 지배하는 미궁이란 소식이 전해질 것이다.
‘아낙스투스는 엉덩이가 끔찍할 정도로 무겁네. 으레 미궁의 주인들이 다 그렇긴 하지만 아낙스투스의 경우에는 그 도가 지나치지. 100퍼센트의 확신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의심이 많고 신중하다네. 교룡들이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그 탓일세.’
백 선생이 준 정보를 떠올린 그는 나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실상을 들춰보면 오르테아가는 이름값도 제대로 못하는 반편이 드라칸이었지만, 교룡들이 그런 내막까지 알 수는 없을 것이다.
교룡은 자신이 본 오르테아가의 부풀려진 위세를 그대로 자신의 주인에게 고할 테고 아낙스투스는 고민에 빠지고 말리라.
승산을 떠나 존재 자체로 부담스러운 드라칸이 껄끄러워 쉽사리 움직이지 못할 게 분명했다.
‘주인님, 굳이 드라칸을 내세우면서까지… 이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잠깐의 승리가 대체 어떤 의미인지 도통 모르겠다는 얼굴로 도미니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간을 벌 수 있지.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시간이니까.”
‘그래도 언제고 들통이 날 거예요. 그리고 그때는 지금처럼 교룡 몇 마리가 아니라 교룡의 군대가 찾아올 거라고요.’
“그 정도면 돼. 그 정도면.”
그렇게 말한 김진우가 도미니크에게 지시했다.
“당분간 오르테아가는 잘 보이는 곳에 두고 경비를 세우도록 해. 기왕이면 게이트 근처에 거처를 마련해 주는 것도 좋겠지.”
그래야 오르테아가를 미궁의 주인이라 착각한 아낙스투스가 진짜 오너의 부재를 알아차리지 못할 테니까.
“당분간 자리를 비울 거야. 무슨 일이 생기면 돌아올 테니까 그때까지 미궁을 잘 부탁해.”
미궁의 업그레이드가 끝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당장 미궁이 업그레이드가 되어도 그 미궁을 지킬 소환수를 불러낼 다운 잼이 부족했다.
당장 4등급 미궁에서 소환할 수 있는 수문장만 해도 필요 비용이 어마어마한데 5등급 미궁에서 나올 소환수는 대체 얼마나 다운 잼을 쏟아 부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김진우는 그 다운 잼을 충당할 곳을 알고 있었다.
***
“진짜 혼자 가게요?”
오랜만에 만난 이준영이 몇 번이나 물어왔다.
“아무리 진우 씨가 레벨 12의 던전 베이비라고 해도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괜찮습니다. 그리 깊이 들어갈 생각은 없거든요.”
어지간하면 무시하련만 말 한 마디마다 저리 진심 어린 걱정이 느껴지니 김진우도 계속해서 모르쇠로 일관할 수는 없었다.
“그런 사람이 무슨 맵을 6층까지 요구해요?”
“혹시 모르니까요.”
천연덕스럽게 지껄여 대는 얼굴이 기가 찬지 이준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대체 뭘 하고 다니는 거예요? 저번에 무기들도 그렇더니 대체 뭘 어쩌려고. 혼자서 지저와 전쟁이라도 할 참이에요?”
김진우는 이번엔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애초부터 거짓말에 능숙하지도 않거니와 굳이 자신에게 호감이 있는 사람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은 탓이다.
그런 그를 보며 그녀가 답답하다는 얼굴을 해 보였지만 더는 만류하지 않았다.
“미안해요. 내가 너무 참견한 건 아니죠? 그냥 난 단지 진우 씨가 잘못되기를 바라지 않기에…….”
아무래도 자신이 주제넘게 참견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끝까지 조심하라는 당부를 잊지 않는 그녀였다.
“조심해요. 혼자 돌기에는 지저는 너무 위험하니까요.”
그 말에 김진우가 피식 웃었다.
“왜요?”
“아뇨. 12층에서도 혼자 기어 올라왔는데… 새삼스러워서요.”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도 모르게 무안을 준 모양새다. 입을 꾹 다문 그녀에게 그가 부드럽게 말했다.
“다녀오면 연락할게요.”
그 말에 이준영이 필요 이상으로 밝은 얼굴을 해 보였다.
***
준비를 마친 김진우는 언제나처럼 북적거리는 파주 게이트 앞에 섰다.
“일행까지 해서 총 몇 분이십니까?”
홀로 게이트를 통과하는 그가 이상해 보였는지 게이트를 지키고 서 있던 경비병이 그를 붙잡았다.
“아, 혼잡니다.”
김진우의 대답에 병사가 그를 미친놈 보듯 했다.
“요 입구 근처만 돌 겁니다.”
“음. 잠깐만 기다리시겠습니까?”
아무래도 혼자 미궁에 들어선다고 하니 수상쩍은 모양이다. 지금에야 그렇지 않다지만 한때는 범죄자들이나 빚쟁이에게 쫓긴 채무자들이 미궁에 몰래 숨어들기도 했다. 아마도 김진우 역시 그런 부류가 아닌지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미궁에 혼자 들어갈 일이 없었다. 어지간한 베테랑 탐색자와 던전 베이비도 최소 다섯 이상으로 팀을 꾸리지 않고서는 지저에 들어서지 않았다.
굳이 소란을 피우고 싶지는 않았지만 일이 꼬여 버리고 말았다. 달리 방법이 없어 기다리고 있던 김진우는 곧 다가온 부사관을 향해 말없이 무언가를 내밀었다.
“혹시 뭐 나쁜 생각 하고 들어가려는 건 아니……”
간단하게 보고를 들었는지 대뜸 물어오던 부사관은 그가 건네준 카드를 보고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덜덜 떨리는 음성으로 부사관이 간신히 한마디를 쥐어짜 냈다.
“레, 레벨이…….”
“소란 떨고 싶지 않습니다.”
떡하니 레벨 12라고 각인이 된 탐색자 라이센스를 본 부사관은 혼비백산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껏 한 번도 보지 못한 심층의 던전 베이비, 그것도 대한민국 최고 레벨의 던전 베이비를 보았으니 놀라지 않는 게 도리어 이상했다.
하물며 같은 던전 베이비들 사이에서도 이미 죽었다고 알려질 정도로 베일에 가려져 있던 김진우가 아닌가. 모르긴 몰라도 오늘 이후로 이상한 소문이 꽤나 자신을 따라다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가도 되겠습니까?”
“네, 아무런 문제 없습니다!”
부사관이 얼이 빠져 경례까지 해 보이니 근처에 있던 탐색자들이 금세 주목하기 시작했다. 후드를 깊게 눌러쓴 그가 이내 게이트를 통과했다.
“야! 애들 빨리 모아! 딱 1주일 안으로 2층 끊고 다시 올라온다! 오케이?”
“오케이!”
게이트에서 멀지 않은 곳은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했다. 아무래도 오늘 단체로 사냥을 들어가는 팀이 꽤나 많은 모양이다.
적게는 다섯에서 많게는 서른 명 가까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탐색자들을 보며 김진우는 걸음을 서둘렀다.
“음. 저 사람, 일행을 잃어버린 모양인데?”
“미친. 탐색자가 미아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이따금씩 홀로 움직이는 그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탐색자들도 있었지만, 일행에서 따로 떨어져 나온 것이겠거니 하고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몰라 후드를 더욱더 깊게 눌러쓴 김진우는 뛰듯이 미궁의 통로를 통과했다.
그렇게 가기를 한참, 그는 어느새 2층으로 향하는 입구에 서 있었다. 잠시 깊게 파인 구덩이 너머를 바라보던 그는 품에서 지도를 꺼내 들었다.
이준영이 건네준 지도에는 꼭 피해야 할 위험 요소와 버려진 미궁의 위치가 빼곡하게 체크되어 있었다.
잠시 방향을 가늠하던 그는 구덩이를 너머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방향이 하필이면 지도에 체크되어 있는 꼭 피해야 할, 버려진 미궁이 있는 곳이었다.
그리 얼마 가지 않아 김진우는 이제는 다 지워져 버린 던전 엠블럼이 새겨진 벽을 찾을 수 있었다.
지저에서도 유독 짙은 어둠이 깔린 미궁 너머를 바라보던 그가 미간을 찌푸렸다.
어쩐지 벌써부터 손등이 따끔거리고 눈가가 시큰거리는 듯한 느낌이다. 그리고 그게 그저 기분 탓이 아닌지 이내 세상이 흑백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기생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