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265)
던전 견문록-265화(265/319)
# 265
던전 견문록
제 266 화
93. 오리무중
“전보다 훨씬 좋아 보이네.”
오랜만에 만난 캐서린은 낯빛이 좋지 않았다. 격 높은 존재감이야 여전했지만, 김진우는 어쩐지 그녀가 지쳐 보인다고 생각했다.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느라 바쁘다고 들었는데, 일이 해결된 모양이군.”
그는 예상치 못했던 그녀의 방문에 조금은 불편함을 느꼈다. 자신감에 차 있던 그녀가 보이는 피로감과 묘하게 조급한 기색이 영 마음에 걸렸던 탓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것 때문에 왔어.”
캐서린은 말을 돌리지 않고 곧장 용건을 꺼내 들었다.
“너에게 듣고 싶은 게 있어.”
“그렇지 않아도 나도 묻고 싶은 게 있었다. 공평하게 서로 묻고 답하도록 하지.”
위시 스톤에 관한 정보, 그리고 복원에 얽힌 숨겨진 이야기까지. 듣고 싶은 이야기가 한 가득이었다.
캐서린은 뒤늦게 그가 갑작스러운 방문에도 꽤나 태연하다는 사실을 알아챘는지, 눈에 이채를 띄었다.
“전이랑 많이 달라졌네. 여유가 있어. 그리고 훨씬 더 강해진 것 같기도 하고.”
“이쪽도 여러 가지 일이 있었던지라.”
그는 대수롭지 않게 캐서린의 감탄을 받아 넘겼다.
처음 블랙 머천트의 경매장에서 그녀를 보았을 때만 해도 그는 풋내기였다. 육신은 강했지만 정신은 나약했고, 권능의 사용은 미숙하기만 했다.
그랬기에 그녀가 기세를 드러냈을 때 위기감을 느꼈고 위축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그녀를 상대로 더는 위협을 느끼지 않았다.
마창의 기억과 마주한 일, 9층의 공작 전부를 먹어치운 일, 나가의 성장과 대미궁의 강화, 모든 일이 그를 강하게 만들었다.
통곡의 군주는 더 이상 탐욕의 군주보다 위에 있지 않았다.
“그랬던 모양이네. 미궁의 기운도, 네 기세도 전과는 완전히 달라.”
캐서린은 진심으로 감탄했지만, 용건을 잊지는 않았다.
“일단 내 질문에 먼저 답해줘. 그 뒤 내가 알고 있는 거라면 뭐든 대답해 줄 테니까.”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좋아, 그렇게 하도록 하지.”
그가 제안을 수락하자 캐서린이 곧장 입을 열었다.
“소희. 소희에 대해 듣고 싶어.”
이건 또 무슨 말인지, 뜬금없이 튀어나온 소희의 이름에 김진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누나에 관한 거라면 오히려 네가 더 잘 알고 있지 않나? 최근까지 누나와 같이 있었던 것은 그쪽이니까.”
소희가 살아 있다는 사실 역시 그녀를 통해 알게 되었다. 당연히 자신보다 그녀가 소희에 대한 것이라면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거야 그렇긴 하지만 내가 듣고 싶은 건, 나를 만나기 전의 소희가 어떻게 너를 만났고, 어떻게 살았는지야.”
“그 정도라면 말해주는 게 어렵지는 않아. 하지만 너도 대충은 들어서 알고 있을 텐데?”
김진우는 굳이 그녀가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되짚어보려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렇게 물었더니 대번에 그녀의 눈빛이 깊어졌다.
“네 입에서 직접 듣고 싶어. 내가 들은 이야기는 전부 소희를 통해서 들은 것이니까.”
어딘지 모르게 모호한 어투, 그는 날카롭게 눈을 치켜떴다.
“그게 무슨 말이지?”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어, 말 그대로니까. 나는 네가 말하는 소희에 대해 알고 싶을 뿐이야.”
이유를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지?”
“거짓 없는 진실을 알고 싶어.”
상황에 맞지 않는 대답, 가슴 한구석이 차갑게 식어버렸다.
“소희가 말했던 과거 일 따위,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되어버렸거든.”
캐서린의 음성은 낮고도 기묘한 울림이 있었다.
“그래서 널 찾아왔어. 너라면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아서.”
***
“그렇게 해서 난 누나와 헤어졌고, 당연히 누나가 살아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어. 당시의 우리는 먹이사슬의 가장 아래에 위치한 존재였으니까. 그 뒤로는 뭐, 알다시피 네 덕분에 누나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 내가 알고 있는 건 이게 전부다.”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과거의 일을 내뱉는 김진우의 음성은 덤덤했다.
그것이 오랜 시간이 지나 더 이상 과거의 음울했던 기억이 아무런 감흥조차 주지 못했던 탓인지, 그도 아니면 암울했던 기억 속에서 유일하게 따뜻한 온기가 되었던 소희에 대한 이야기라서 그랬던 것인지는 그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소희에게 들은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네.”
캐서린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금세 그런 기색을 털어버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너는 소희에게 굉장히 감사하고 있겠네. 따지자면 네게는 보호자였고 유일한 친구였을 테니까.”
“틀리지 않아. 나는 누나가 없었으면 지상까지 살아 올라가지 못했을 거야. 아니, 그 이전에 평생을 흙만 퍼 나르다 좁은 굴 속 어딘가에서 죽어버렸을지도 모르지.”
어른들이 전부 죽어버렸을 때 그는 비탄에 잠겨 있었고, 모든 의욕을 상실했었다.
죽음은 어린 그에게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고, 홀로 남겨진 그는 너무나 큰 상실감에 시달렸다. 그런 그를 일으켜준 것이 소희였다.
그녀는 상처투성이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었고, 말을 잃은 그가 다시 말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차갑고 축축한 지저의 공기가 그녀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따뜻하게 느껴졌었다.
“네가 원하는 이야기를 해주었으니, 이제는 내가 질문을 할 차롄가.”
생각에 잠겨 있는 캐서린을 보며 그는 질문을 골랐다.
“원래는 다른 질문을 하려고 했지만, 먼저 묻지 않을 수가 없겠어. 누나를 믿을 수 없게 됐다는 게 무슨 뜻이지?”
“잠깐 기다려봐. 약속과 조금 다르게 됐지만, 한 가지만 더 질문할게. 그 뒤라면 네 질문에 얼마든지 대답해줄 수 있어.”
그녀는 대답대신 양해를 구했다. 그는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그녀의 제안을 수락했고, 그녀가 다시 질문을 했다.
“너는 소희를 믿어? 아니, 그 이전에 내 말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지?”
모래알이라도 삼킨 듯 입안이 껄끄러워지는 느낌이었다. 그는 자꾸만 강해지는 불길한 예감에 섣불리 대답할 수 없었다.
“난 지금 판단을 내릴 수가 없어, 과연 너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는 게 맞는지. 어쩌면 서로 불편한 사이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거든.”
어쩐지 망설이며 뜸을 들이는 그녀의 태도가 석연치 않아 그는 애써 불길한 기분을 억누르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애초에 우리가 편한 사이였던 적이 있었던가.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군.”
“서로 상대해야 할 적이 같으니 그래도 동맹정도는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뭐, 좋아. 그렇게 말하니 차라리 마음이 편해졌어.”
그녀는 이제 완전히 평정을 되찾은 듯했다.
“너, 소희를 다시 만난다면 어떻게 할 거야?”
“대답은 않고 자꾸 질문만 하는군.”
“이게 마지막 질문이야. 그러니 대답해줘.”
캐서린은 말간 눈을 하고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혹시 소희와 적으로 만나게 된다면 어떻게 할 거지?”
***
“주인님?”
왕좌에 앉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던 김진우는 도미니크의 음성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아, 도미니크.”
“피곤해 보이시는데, 오랜만에 지상이라도 다녀오시는 건 어떠세요? 일단 당장은 미궁을 위협할 적도 없고, 순찰자들이 돌아오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있을 텐데.”
도미니크는 염려가 가득한 음성으로 휴식을 권했다.
“아니, 그럴 것 까지는 없어. 그리고 쉰다면 이쪽이 더 마음이 편해.”
하이로드에 오른 그날 이후로 지저의 텁텁한 공기가 오히려 더욱 편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는 굳이 지상에 올라갈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머릿속을 정리할 필요는 있겠군.”
그는 방금 전에 나누었던 캐서린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그게 무슨 뜻이지? 누나를 적으로 만난다니?”
“말 그대로야. 그녀와 적으로 만날 경우 네가 어떻게 할지를 물은 거야.”
“밑도 끝도 없군. 제대로 설명을 해.”
“내가 오랫동안 자리를 비운 건 알고 있지? 소희와 연락이 완전히 두절되는 바람에 그녀를 찾느라 잠깐 지저를 헤맸지. 그런데 말이야. 그녀를 찾다가 뜻밖의 존재를 만나게 됐어. 그게 누군지 알아?”
“쓸데없는 질문으로 시간 낭비하지 말고, 마저 이야기나 하시지.”
“매정하기는. 뭐, 좋아. 어차피 말하기로 작정했으니 요점부터 말해주지. 전에 얘기했었던, 먼저 각성한 하이로드 중 두 번째 각성한 하이로드를 만났어.”
여기까지였다면 그렇게 골머리를 싸매고 있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역시 소희를 찾고 있더군.”
“뭐?”
“웃기지 않아? 그는 어떻게 소희를 알고 있을까? 놀라지 마. 그가 말하기를 그 역시 자신이 토굴꾼이던 시절에 소희와 함께 자랐노라 말했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지. 단지 믿기 힘든 일일 뿐이야.”
“누나는 나와 함께 자랐어. 잘 때도, 흙을 퍼 나를 때도, 갑작스레 토굴이 연결돼 통로가 전장이 되었을 때도, 그녀는 늘 나와 함께했어.”
“그쪽도 그리 말하더군. 혹시 동명이인일까 확인도 해보았지만, 인상착의와 모든 행동이 소희와 일치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부정도 해보았지만, 캐서린이 거짓을 말할 이유가 없었다. 실제로 그녀 역시 그 말을 할 때는 혼란스러운 기색이 엿보였었다.
“알겠어? 소희는 평범한 던전 베이비가 아니야. 그녀는 뭔가를 숨기고 있어.”
“숨기고 있다니, 대체 뭘?”
“나도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작은 일은 아닐 거야. 최소한 그녀가 하이로드들과 뭔가 연관이 있는 건 확실해.”
“멋대로 지껄여 대는군.”
“각성한 네 명의 하이로드 중, 무려 셋이 소희를 알고 있는 거라고. 이건 절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야.”
캐서린은 남은 하이로드, 가장 먼저 각성했던 첫 번째 하이로드를 찾아가기 전에 확인차 들렸노라 말했다.
“주인님, 그 소희라는 분이 주인님께 많이 소중한 분이었나 봐요.”
다시 한 번 그는 도미니크의 음성에 상념 속에서 깨어났다.
그녀는 현명하게도 어지간해선 교감 능력으로 얻은 정보를 표내지 않으려 했지만, 이번만큼은 그의 사념이 너무도 강렬해 모른 척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통곡의 군주가 말한 대로라면, 그녀는 어쩌면…….”
“거기까지다, 도미니크. 더 이상은 말하지 마. 아직은 확실한 게 아무 것도 없다.”
김진우는 도미니크가 차마 끝맺지 못한 뒷말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애써 머릿속에서 울려대는 그 말을 털어냈다.
“아직은 확실하지 않아. 아직은…….”
의문을 풀려다 더 큰 의문만 쌓인 김진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
불편한 수수께끼를 떠안게 되었지만, 캐서린을 통해 얻은 정보는 적지 않았다. 그녀는 먼저 각성한 하이로드가 수인들의 지배자라는 사실을 알려주었고 또 다른 하이로드의 정체 역시 알려주었다.
거인과 수인, 그보다 먼저 각성한 두 하이로드가 계승한 자리였다.
그녀는 그의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해 주었지만, 안타깝게도 위시 스톤에 관한 것만큼은 알지 못했다.
그녀는 짤막한 경고를 남겼다.
“파수꾼을 지배하는 게 꼭 배덕일 거라고 단정 짓지는 마.”
알면 알수록 더욱 더 깊은 안개에 빠져드는 느낌, 김진우는 혼란스러움을 애써 털어버렸다.
“주인님! 순찰자들이 돌아왔어요.”
마침 집중할 일이 생겼다. 순찰자들은 백작들의 영지가 완전히 대미궁의 모조품과 하나가 되었노라 보고했고 그는 단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백작들의 미궁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