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274)
던전 견문록-274화(274/319)
# 274
던전 견문록
제 275 화
일주일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발홀의 성문은 여전히 굳게 닫힌 채였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전보다 모아이들의 수가 더욱 늘어났다는 것뿐이었다.
마치 온 지저의 모아이란 모아이는 전부 이곳에 모인 듯한 광경이었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누군가의 육신을 뜯어 먹는 것밖에 모르는 모아이들이 벌써 일주일째 얌전히 무언가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는 것은 꽤나 끔찍한 경험이었다.
아으으으으으.
오직 발홀만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믿기라도 하는 것처럼 맹목적으로 그만을 바라보고 있던 모아이들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또 시작이군.”
누군가가 불평을 했다. 벌써 일주일이나 지켜봐 왔지만, 지척에서 저 흉물스러운 망자들을 보는 것엔 결코 익숙해질 수 없었다.
게다가 이따금씩 단체로 울부짖기라도 하면 이곳이 지저인지 지옥인지까지 분간이 가지 않을 지경이었다.
“배고프다고 지들끼리 뜯어 먹지 않는 것만 해도 감사하게 생각해.”
소환수들은 거의 1년에 걸쳐 지속되었던 모아이들과의 전쟁 속에서 몇 번이나 보았던 끔찍한 광경을 다시 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수만에 달하는 망령이 서로를 물어뜯는 광경은 상상만 해도 구역질이 올라왔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가들의 속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었다.
저들의 목적이 발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언제 돌변해 대미궁을 향해 달려들지 모른다는 긴장감이 여전히 그들을 짓누르고 있었다.
전보다 배는 늘어난 모아이들을 바라보는 나가들은 굳게 잡은 창과 방패를 놓지 않았다.
“후우.”
그 광경을 깊게 가라앉은 시선으로 바라보던 도미니크는 눈을 감고 주인과의 교감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다시 뜨고 말았다. 벌써 몇 번째인지, 그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주인의 존재감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위안으로 삼아야 했다.
“장거리 탐색에 나섰던 순찰자들이 돌아왔나이다.”
그런 그녀에게 릭샤샤가 다가와 탐색의 결과를 보고했다.
“현재까지 파악된 미궁의 수는 모두 해서 마흔일곱 개. 그중 아홉 곳이 공작급으로 파악되었으며, 남은 서른여덟 개의 미궁 모두가 하나같이 백작급 이상으로 추정되나이다.”
2차 복원으로 인한 9층의 판도 변화는 생각보다 더욱 심각했다.
일전에 복원으로 타 지저와 맞닿았을 때도 고작 네 개가 발견되었을 뿐인데 이번에는 그 열 배가 넘는 미궁이 들어선 것이다. 게다가 공작급의 수도 전보다 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주인이 자리를 비운 지금, 한시라도 경계를 늦출 수가 없었다.
“가급적이면 순찰자들을 쉬게 해주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가 않네. 조금 더 고생을 해줘야겠어.”
그녀는 밀도 높은 탐색 작업에 피로가 쌓인 순찰자들을 다시 한 번 미궁 밖으로 내몰았다. 아직 파악된 영역보다 파악하지 못한 곳이 많았으니 언더 엘프들의 사정을 봐줄 여유가 없었다.
지금으로선 주인이 돌아오기 전까지 어떻게든 전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기 위해선 정보가 필수였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도미니크는 홀린 듯이 모아이들을 바라보는 모리건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았다. 입을 꾹 다문 까마귀를 추궁했고, 마침내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아…….”
몇 번이나 무심코 지나쳤던 흉물스러운 망령의 정체가 영광스러운 군주의 보좌였다니,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놀라운 것은 주인이 그토록이나 애타게 찾던 백오를 지척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흐어어어.
성문 가장 가까운 곳, 모리건의 시선이 향한 곳에서 하얀 깃털을 듬성듬성 매단 모아이 하나가 구슬프게 울었다.
다른 것들과 그다지 차이 없는 외양, 한 쌍으로 태어난 모리건이 제 자매를 알아보지 못하는 게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도미니크는 모리건의 설명에 심각한 얼굴을 해 보였다. 모든 상황이 주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발홀을 얻는 데 성공한다면 대미궁에 못지않은 막강한 전력이 생길 것이다.
거기에 더해 저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모아이가 온전히 편입된다면 그것 역시 강대한 힘이 되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더없이 불안하기만 했다.
이곳에서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다. 설령 대가를 치렀다고 해도 방심해선 안 된다. 지저의 신비란 놈은 성격이 고약하기 그지없어 언제 어떻게 뒤통수를 칠지 몰랐다.
게다가 지금 주인에게 집중되는 온갖 행운과 힘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있었던 호의의 배후에 누군가가 있음을 깨달은 이상 이 모든 안배에 목적이 있음을 인정해야 했다.
그리고 그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이제껏 누린 행운만큼이나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 것은 불 보듯 빤한 일이었다.
“내가 주인님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있을 거야.”
이제는 예상을 넘어 차라리 확신에 가까운 심정, 주인이 자리를 비운 지금, 그녀는 궁리하고 또 궁리했다.
고오오오!
그렇게 도미니크가 생각에 잠긴 그때, 갑작스럽게 변화가 시작되었다.
꺄아아아아아아!
발홀이 울부짖었다. 끔찍하다 여겼던 모아이들의 흐느낌조차 이 비명에 비하면 차라리 흥겨운 가락에 불과했다.
일주일간 귀곡성을 들으면서도 꿋꿋하게 버텼던 나가들의 전의가 꺾이고 대열이 무너졌다.
“아악!”
도미니크를 비롯한 소환수들은 귀청을 파고드는 소음에 비명을 내지르며 비틀거렸다. 듣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아득해지는 귀곡성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모, 모두 물러나!”
조금이라도 이 끔찍한 소음으로부터 멀어져야 한다는 본능적인 판단, 그녀가 새된 목소리로 외쳤다.
어떻게든 제자리를 지키려고 필사적으로 애를 쓰고 있었던 나가들이 그 말에 비틀거리며 발홀로부터 거리를 벌렸다.
그렇게 얼마나 물러났을까. 한참을 물러나다 보니 대미궁의 경계에 도달했다. 냉기 가득한 그곳의 기운을 느끼니 그제야 겨우 혼미했던 정신이 돌아왔다.
도미니크의 눈에 방금 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한 발홀이 보였다.
화려하지만 세월의 힘을 이겨내지 못해 빛이 바랬던 금빛 성벽은 완전히 새것이 되었고, 여기저기 허물어져 있던 첨탑들이 층의 천장을 꿰뚫는 창이라도 된 것마냥 높게 몸을 세우고 있었다.
“드디어!”
발홀의 본래 모습을 아는 고대의 소환수들이 환희에 찬 함성을 지르며 열광했다.
하지만 도미니크는 되살아난 고대 요새의 위용을 감상할 틈이 없었다. 발홀이 활동을 시작하며 단절되었던 주인과의 교감이 다시 회복된 것이다.
“아아…….”
그런데 그렇게 다시 연결된 교감을 통해 밀려든 것은 기대했던 것과는 한참은 달랐다. 해일처럼 포악하게 달려드는 감정의 편린들은 하나같이 악의적이었다.
분노. 비탄. 슬픔. 절망.
심장이 옥죄어 오고 숨이 막힌다. 온갖 부정적인 감정의 소용돌이가 그녀를 마구잡이로 흔들어댔다. 결국,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끼이이이익.
그녀가 그렇게 자신을 덮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는 사이, 굳게 닫혀 있던 발홀의 성문이 열렸다.
끄어어어어어.
모아이들이 비명과도 같은 환호를 내지르며 그렇게 열린 성문 안쪽으로 달려들었다. 꾸역꾸역, 그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마치 이 땅을 떠돌던 지옥의 망령들이 다시 지옥으로 돌아가는 듯한 광경이었다.
“끔찍하군.”
어지간해서는 투지를 잃는 법이 없던 우직한 전사 퀀투스마저도 이때만큼은 치를 떨 정도였다.
끄으으으.
지저를 가득 메우고 있던 모아이들의 수가 눈에 부쩍 띌 정도로 줄어들었다. 남은 것들마저 입을 쩍 벌린 금빛 성을 향해 사라지고, 끝이 없을 것 같았던 행렬도 어느새 끝이 났다.
귀에 거슬리던 모아이들의 귀곡성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고, 영혼이 찢겨져 나갈 듯한 발홀도 비명을 멈추었다. 지저에 다시 적막이 찾아왔다.
남은 것이라곤 수많은 모아이를 집어삼키고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의뭉을 떠는 발홀뿐이었다.
“도미니크!”
“여왕이시여!”
홀린 듯이 발홀과 모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던 소환수들이 뒤늦게 창백하게 질린 도미니크를 발견하고는 경악했다.
“대체 무슨 일이…….”
도미니크는 우려 섞인 소환수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인지, 초점 없는 눈동자로 말했다.
“내가 직접 저 안을 살펴보고 오도록 하겠어.”
가만히 그녀를 지켜보던 모리건이 그렇게 말하더니 이내 말릴 틈도 없이 쩍 하니 입을 연 금빛 성을 향해 사라졌다. 잠깐 망설이던 헤임달과 고대의 소환수들이 전부 뒤를 따랐다.
쾅!
그렇게 고대의 소환수들마저 발홀로 사라지고, 활짝 열려 있던 성문이 닫혔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도미니크가 신음을 내뱉었다.
연결된 사고의 저편에서 전해져 오는 것은 온갖 마이너스적인 감정들뿐,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까지는 알 수가 없었다.
“아, 안되겠어. 주인님께 가봐야겠어.”
이미 악룡이 되어 큰일을 치를 뻔했던 주인이다. 연유를 알 수 없는 비탄의 이유를 알아내겠다고 혼자 끙끙대느니 차라리 직접 만나 일의 전모를 확인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안젤라! 지금이라면 저 안에 들어갈 수도 있…….”
위험하지만 이면 층의 주인인 안젤라와 함께라면 저 성벽을 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를 찾았다.
“안젤라?”
그런데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바로 곁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안젤라의 모습이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라면 방금 전에 사라졌나이다.”
릭샤샤의 보고에 도미니크가 눈살을 찌푸렸다.
***
“크흐흐흐흑.”
황금 물푸레나무의 왕좌에 앉은 김진우는 고개를 숙인 채, 어깨를 들썩였다. 이따금씩 흘러나오는 기괴한 소리가 웃는 것인지 흐느끼는 것인지 도무지 분간이 가지를 않았다.
[비록 그 과정이 순탄한 것은 아니었으나 당신은 온전히 홀리드스ㅤㅋㅑㄹ프의 시험을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홀리드스ㅤㅋㅑㄹ프가 당신을 주인으로 인정했습니다.]메시지가 떠올랐지만 그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은 채 괴상한 소리만을 내뱉고 있었다.
[에인헤리들의 요새, 외눈박이 군주의 성, 발홀이 깨어납니다.] [위대한 군주의 성 발홀은 지저에 다시없을 견고한 요새입니다. 가장 사나운 괴수, ‘밤’조차도 허물 수 없었던 이 강력한 요새는 지저의 신비로도 설명할 수 없는 권능 그 자체입니다.] [활동을 재개한 발홀의 핵, 보탄의 눈이 요새의 이곳저곳을 살피기 시작합니다.] [오랜 세월로 파손된 첨탑과 성벽을 발견했습니다.] [다시 활동을 시작한 발홀이 복구를 시작했습니다.] [손상되었던 첨탑이 눈 깜빡할 사이에 복구되고 성벽이 다시 찬란한 금빛을 되찾았습니다.]고요하게 새로운 주인을 바라보던 보탄의 눈이 바쁘게 눈알을 굴려대기 시작했다.
[거인을 부수는 철퇴, 묠니르가 복구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운용할 에인헤리들은 모두 떠나가고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실망은 이릅니다. 다행스럽게도 근처에 에인헤리가 될 자격이 충분한 이들이 넘쳐 납니다.] [모아이들을 발홀의 주민으로 받아들이시겠습니까?]잇따라 떠오른 메시지, 고개 숙이고 있던 김진우가 마침내 고개를 쳐들었다.
“받아들이지. 받아들이고말고!”
핏발 선 눈동자, 눈물과 침으로 범벅된 뺨과 턱은 잔뜩 일그러져 마치 악귀의 그것과도 같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그게 누나가 원하던 것이건 뭐건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어.”
언제나 그녀를 말할 때면 따뜻하게 젖어들었던 음성은 더 이상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끔찍할 정도의 적의와 증오였다.
홀리드스ㅤㅋㅑㄹ프의 시험은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평이했다. 그저 그의 과거를 저울에 달았을 뿐이다. 하지만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까지 평이하지는 않았다.
그는 홀리드스ㅤㅋㅑㄹ프가 들춰낸 과거 속에서 비로소 진실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마주한 진실은 끔찍할 정도로 잔인했고, 비틀려 있었다.
“나 역시 과거의 망령에 불과하지 않은가.”
시간이 흘러 아름답게 채색되었던 과거의 기억은, 사실 붉고 탁한 악몽을 누군가가 멋대로 덧씌운 엉망진창의 그림이었다.
[모아이들이 발홀에 들어섰습니다. 그들은 기꺼이 당신의 병사가 되기를 선택했고, 잃었던 권능과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모아이들이 에인헤리가 되었습니다.] [묠니르가 활성화되었습니다. 가장 강력한 거인족들마저도 두려워 바라볼 수조차 없었던 결전 병기가 다시 지저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고대의 요새가 완전히 부활했다는 소식이 지저에 멀리 퍼져 나갑니다.] [공작들이 두려움에 떨고, 지저의 모든 존재가 이 순간 숨을 죽입니다.]그의 절망을 비웃기라도 하듯 메시지가 계속해서 떠올랐다.
[당신이 추가로 치러야 할 대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이미 헤아릴 수도 없는 오래전 그때, 가장 끔찍한 실패를 겪었습니다. 가장 찬란했던 영광의 시기를 처참하게 망가트린 당신의 좌절은 발홀의 저울로도 감히 무게를 잴 수 없었습니다.] [보탄의 눈, 홀리드스ㅤㅋㅑㄹ프에 이어 발홀이 완전히 당신을 주인으로 인정했습니다.] [당신은 외눈박이 군주의 모든 권능과 유산을 잇는 데 성공했습니다.] [영원의 창고를 개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