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276)
던전 견문록-276화(276/319)
# 276
던전 견문록
제 277 화
[가장 강력한 철퇴, 묠니르로 무장한 요새 발홀은 사실 진리의 왕좌를 지키기 위한 관문이었습니다.] [진리의 왕좌가 오랜 시간을 초월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지금, 요새는 다시금 주어진 사명을 다하기 위해 모든 기능을 개방할 것입니다.] [발홀의 모든 방어 시설이 활성화되었습니다.] [묠니르가 진정한 힘을 되찾았습니다. 벼락을 품은 철퇴는 침입자를 흔적도 없이 뭉개버릴 것입니다. 그 상대가 설령 강대한 공작이라고 해도 이 강력한 무기 앞에서는 몸을 사릴 수밖에 없습니다.]에인헤리들 중 태반은 이제 겨우 오염되었던 정신이 회복된 평범한 소환수들이었다. 그런 소환수들이 운용하는 묠니르가 강대한 공작을 상대할 수 있게 되었다니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울부짖는 마창, 궁니르가 진짜 모습을 찾았습니다.] [마창이 가장 깊숙한 곳으로 옮겨져, 최후의 거창을 준비합니다.] [원래대로였다면 발홀이 개방된 지금 궁니르는 묠니르 이상의 강력한 병기가 되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흐르며 과거의 힘을 상실한 마창은 단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는 결전 병기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존재마저 내건 마창의 일격은 이제껏 당신이 본 적 없는 강렬한 것일 게 분명합니다. 사용에 신중을 가해 주십시오.]그저 쓸 만한 창이라 생각했던 궁니르가 발홀과 만나 단 한 번뿐이지만 강력한 위력을 발휘할 결전 병기가 되었다.
[에인헤리들이 발홀과 그 운명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요새를 벗어날 수는 없지만, 과거의 영광을 받아들인 이 전사들은 하나하나가 영웅급 소환수 이상의 힘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근 십만에 달하는 에인헤리들을 쉽사리 넘을 군세는 이 지저에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왕의 위엄에 반하는 자, 그 마음에 삿된 마음을 품은 자, 어느 누구도 허락 없이 요새에 들 수 없습니다.]어마어마한 힘이었다. 하지만 발홀의 진정한 힘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진리의 왕좌가 지닌 권능이었다.
[진리의 왕좌는 지저를 구성하는 신비 중 하나입니다.] [당신은 이 왕좌를 통해 지저의 신비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단, 왕좌의 인정을 받은 당신이라고 해도 지저의 신비를 엿보는 것은 상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일입니다. 보탄은 진리를 엿보기 위해 자신의 눈 하나를 바쳤습니다.] [또한 그렇게 막대한 대가를 지불하고 엿본 진리가 당신이 원하던 것일 거라고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지저의 근간을 이루는 신비에 접근할 수 있는 권능이라니, 생각지도 못했던 힘이었다.
하지만 그 대가가 적지 않았고, 그렇게 대가를 지불하고도 엉뚱한 답을 들을 수 있다니 당장은 써먹을 수 없는 힘이기도 했다.
변덕 심한 지저의 신비란 놈이 궁금하다 한들, 지금은 지닌 모든 것을 온전히 보전하여 앞으로의 일을 준비해야 할 때였다. 쉽사리 결정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굳건한 요새와 강력한 병기, 수많은 병사를 얻었지만 기뻐하기에는 아직 이릅니다.] [당신은 앞으로 이 지저의 신비로 통하는 왕좌를 노리고 달려드는 괴물들과 맞서 싸워야 합니다. 보탄 역시 수없이 많은 괴물로부터 지저의 신비와 진리를 지키기 위해 싸워야 했습니다.] [비록 지금은 고대의 지저처럼 강력한 괴수가 많이 남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그중에서도 당신이 가장 신경 써야 할 괴수는 ‘밤’입니다. 보탄의 창은 이 끔찍한 괴수를 마무리 짓지 못했고 그저 가장 깊은 어둠 속으로 쫓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 밤이 입은 상처는 모두 치유되었고, 지금 괴수는 어딘가에 숨어 발홀의 부활에 침을 흘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역시나 지저에 공짜로 주어지는 것은 없었다. 다시없을 강력한 요새를 얻은 대가로 김진우는 가장 끔찍한 괴수를 적으로 두게 되었다.
“‘밤’이라…….”
가장 강력했던 군주들이 힘을 합치고도 숨통을 끊어놓지 못했던 괴수가 요새를 노리고 있다는 말에 그는 어깨가 무거웠다.
하지만 그럴수록 표정은 냉철해졌다.
과거 따위야 어떻든 간에 이게 현실이다. 싸우지 않으면 먹히고 지워진다. 그게 지저였고 자신의 삶이었다.
당장 눈앞에 물어뜯어야 할 적이 있을 때, 상처 입은 들개는 제 몸을 돌아보는 대신 적을 물고 뜯는 데 집중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과거의 자신이 어땠는지 몰라도 지금의 그를 이 자리에 있게 해준 것은 그런 들개와도 같은 마음가짐이었다.
위기감을 통해 고조되는 현실감, 이제야 비로소 기나긴 악몽에서 깨어난 듯한 기분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전부 들어 엎고 난장을 피우고 말리라.
***
냉정을 되찾은 그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새롭게 얻은 요새를 둘러보는 일 따위가 아니었다. 그는 가장 먼저 미미르를 찾았다.
영원의 창고가 개방되었다는 소식도 소식이었지만, 미미르와는 미처 끝내지 못한 대화가 있었던 탓이다.
“그 교활한 놈이 내빼는 것을 대미궁이 그대로 두진 않았겠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마음 같아서는 붉은 성을 이용하고 싶었지만, 지금의 안젤라는 상태가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끔찍한 공포 앞에서 제 주인을 나 몰라라 했던 것이 상처가 되었던 모양이다.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경멸로 어두운 얼굴을 한 그녀가 이따금씩 나가들과 도미니크를 보는 시선은 묘했다. 박탈감과 자책 뒤에 웅크린 묘한 경쟁심이 그녀의 얼굴을 비틀리게 만들었다.
“안젤라.”
삐뚤어진 질투심이 드러난 얼굴을 보며 김진우는 안젤라의 이름을 불렀다.
“네? 네!”
필요 이상으로 놀라 허둥지둥 대는 그녀의 얼굴에서 질투심이 사라지고 수치심과 자책만이 떠올랐다.
“나는 아직 그대의 주인인가?”
“다, 당연한…….”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그녀는 하얗게 질려 제 입을 막고 말았다. 아무래도 이제 와서 그의 질문에 대답하기에는 스스로가 뻔뻔스럽게 느껴졌으리라.
“그대는 나의 것이다. 설령 그대가 그 사실을 거부한다 한들, 나는 놓아줄 생각이 없다.”
독립심 강하고 제멋대로인 듯 보이지만 사실 이 흡혈귀는 지독스러울 정도로 의존적이고 어리광쟁이였다.
그런 안젤라라면 이런 강압적인 말이 지금 같은 상황에서 더욱더 효과적일 것이다.
“아…….”
과연 생각대로 그녀는 그의 말에 차라리 안심한 표정이 되었다. 아직 의기소침하긴 하지만 내면의 어둠에 집어삼켜질 것만 같았던 그녀의 얼굴에서 그늘이 사라졌다.
“미미르가 있는 곳으로 나를 인도하라.”
겨우 기운을 되찾은 안젤라가 그 말에 이면에 존재한 붉은 성의 문을 열었다.
“그럼 대미궁에서 기다리마.”
“곧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어쩌다 보니 발홀로 전원이 소환되었던 나가들이 그를 배웅해 주었다.
***
“제길, 안 좋은 예감은 빗나가는 법이 없군.”
미미르를 감금해 두었던 대미궁에 도착한 김진우는 종적도 없이 사라진 임프를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실망하기에는 일렀다. 미미르는 간교한 전령이기 이전에 영원의 창고지기. 음흉한 임프가 향할 곳은 뻔했다.
“나는 미미르를 만나보고 오겠다.”
“주인님! 잠깐만요!”
미미르가 전해준 포탈 주문서를 찢어내려던 김진우가 손을 멈췄다.
“대체 안에서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거죠?”
이제 겨우 스스로에 대한 자책감을 털어놓고 나니, 저 안에서 있었던 일이 궁금해진 모양이다.
“그대 역시 진혈의 이름을 계승했으니, 이 모든 것과 무관하다 말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지금은 미미르를 찾는 것이 먼저다. 이야기는 돌아와서 하지.”
그 말을 끝으로 그는 주문서를 찢고 영원의 창고로 향했다.
***
“기껏 도망친 곳이 겨우 여기인가.”
생각대로 미미르는 영원의 창고에 있었다.
“모양새가 우습게 됐지만, 도망친 것은 아닙니다. 그저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을 뿐입지요.”
놀랍게도 미미르는 겁에 질리지도, 초조해 하지도 않았다. 자신의 말대로 그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왔다는 태도였다.
“체념한 건가?”
미미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렇게 이곳에 오신 건 진짜 자격을 얻으셨다는 뜻이겠지요.”
“영원의 창고에 대한 것이라면 그렇다고 해두지. 발홀은 나를 온전한 창고의 주인으로 인정해 주었으니까.”
그의 말에 미미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군주님은 놀라운 분이십니다. 아무도 군주님께서 이렇게까지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나를 비웃는 건가?”
겨우 봉인해 두었던 증오와 분노의 편린이 삐져나왔다. 그것만으로도 미미르는 하얗게 질려 목을 잡고 캑캑거려댔다.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저 솔직한 심정을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작은 주둥이는 진실을 말할 때보다 거짓을 말할 때가 많았지만, 진리의 왕좌를 얻은 그 앞에서 거짓을 말할 정도로 멍청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던 그는 풀어두었던 증오를 다시 갈무리했고, 미미르가 마른기침을 토하는 것을 냉담한 눈으로 지켜보았다.
“아마 제게 물으실 것이 많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아는 것이 그다지 많지 않답니다. 그분은 제게 많은 것을 알려주지 않았고, 저 역시 깊게 관여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호기심이 명을 단축하는 법이니까요.”
체념한 듯 평온해 보이는 임프의 눈동자가 삶에 대한 집착으로 무섭게 번뜩이고 있었고, 그 맹목적인 집착만큼이나 미미르의 말은 진실에 가까웠다.
“제가 아는 것을 전부 알려드릴 테니, 저를 살려주시겠습니까?”
미미르는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목숨을 두고 거래를 제안하고 있었다.
“거래를 하자는 것이면 거부하겠다. 지금 그대가 해야 할 것은 거래가 아닌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노련한 장사꾼의 세 치 혀로도 이번 위기는 헤쳐 나갈 수 없었고, 선택권은 주어지지 않았다.
미미르는 교수대 앞의 죄수였고, 김진우는 재판관이자 사형집행자였다. 명백한 힘의 우열이 드러난 상황에서 미미르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은 무가치했다.
지금은 그저 자신이 가진 밑천을 전부 털어 보이고 용서를 구하는 게 상책이었다.
미미르 역시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더는 거래를 제안하지 않았다.
“저 역시 그분이 배덕의 이름을 계승한 옛 군주라는 사실을 안 것은 최근에 불과합니다.”
가혹한 진실 속에서 마주하고도 한동안 인정할 수 없었던 그녀의 정체가 미미르의 입을 통해 다시 한 번 흘러나왔다.
“맞습니다. 군주님을 부탁했던 그분이 바로 찬탈자입니다. 지저의 복원을 누구보다 원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찬탈자가 사실은 이 모든 복원 과정의 배후에 있었던 겁니다.”
홀리드스ㅤㅋㅑㄹ프의 시험과 마주하여 알게 되었던 사실이지만 다시 한 번 확인받자 그는 가슴 한 켠이 쌔하게 식어버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저는 군주님이 찬탈자가 뿌린 수많은 씨앗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씨앗?”
“찬탈자가 뿌린 씨앗은 군주님 하나가 아닙니다. 그중 대부분은 채 발아하지 못하고 묻혀 버렸고, 살아남은 씨앗 중 대부분은 지저인이라는 이름으로 지상으로 흘러들었지요. 그리고 그중에서 지저로 돌아온 이 몇이 마침내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었습니다.”
미미르는 무겁디 무거운 진실의 무게에 비해 너무나도 여상스럽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들이 바로 군주님을 비롯한 새롭게 각성한 하이로드들입니다.”
김진우 역시 짐작하고 있었던 사실이었기에 가만히 대화가 더 진전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군주님만은 특별했던 모양입니다. 그저 수많은 씨앗 중 다만 한 개라도 싹을 틔우기 바랐던 찬탈자가 유달리 군주님만은 신경 쓰더군요. 저는 그 이유를 이해할 수가…….”
“나는 그들과 다르니까.”
김진우는 미미르의 설명이 의문으로 끝이 나지 않기를 바랐고, 그랬기에 스스로의 상처를 후벼 파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나는 방랑의 파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