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28)
던전 견문록-28화(28/319)
# 28
던전 견문록
제 29 화
빨갛게 점멸하는 메시지 창을 미처 확인할 새도 없이 김진우는 다시 한 번 몸을 날렸다.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내딛는 발걸음마다 석궁의 화살이 날아들었다.
하다못해 불규칙하게 벽을 박차도 보고 바닥을 굴러도 보았지만 화살은 그림자처럼 그를 뒤를 놓치지 않고 쫓아왔다.
팟팟팟!
땅을 박찬 그의 뒤로 연달아 세 발의 화살이 박혀들었다.
마치 촘촘한 그물에 갇혀 버린 느낌. 김진우는 갑갑함에 몸을 이리저리 빼내며 사냥꾼들을 확인했다.
눈으로 좇기도 힘든 회피운동을 정확하게 찾아내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저들 중 일반 탐색자는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하기야 그들의 사냥감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면 그게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그들은 다른 크리쳐가 아닌 인간을 사냥하는 지저의 괴물이었다.
그런 그들이 다른 던전 베이비와 어울린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미 몇 번이나 손쉽게 동족을 사냥해 이득을 본 그들이 만만한 사냥감을 두고 흉포한 크리쳐들을 상대할 리가 없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런 괴물들의 새로운 사냥감으로 김진우가 지목된 것이다.
“이 새끼, 최소 레벨 8은 되겠는데?”
번번이 화살이 빗나가자 사냥꾼 중 하나가 이를 갈아붙이며 말했다.
“레벨이고 나발이고 그냥 덮쳐! 저 새끼 도망친다!”
아무래도 김진우가 그대로 도주할까 봐 걱정되었는지 사냥꾼 중 하나가 석궁을 내던지며 칼을 빼들고 달려들었다.
“죽여 버려!”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지며 날카롭게 날이 선 칼날이 김진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탓!
화살세례가 완전히 멈췄다. 남은 사냥꾼들도 석궁만으로 그를 잡기에는 어려울 거라 생각했는지 일제히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김진우의 움직임이 돌변했다.
“뭐? 도망쳐?”
목을 긁어내듯 사나운 으르렁거림. 그의 눈에서 푸른 광채가 폭사되었다.
김진우는 지저에서 방심한다는 게 얼마나 멍청한 짓인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잠시 긴장했을 뿐 겁을 집어먹고 꽁무니를 빼려고 한 적은 없었다.
필요하다면 바닥을 구르고 오물을 뒤집어쓰더라도 살아남기 위해 도망치겠지만 최소한 지금은 아니었다.
잠시 힘을 가늠하고 대응책을 생각하는 사이 멋대로 판단하고 겁 없이 달려든 사냥꾼의 모습에 김진우는 시퍼런 귀화를 흘리는 눈으로 노려보았다.
“어, 어?”
갑작스러운 변화에 가장 먼저 달려든 사냥꾼이 내지른 검을 빼낼 생각도 못한 채 ‘어, 어’ 하는 소리만 내뱉었다.
그런 그를 향해 맹금의 발톱처럼 날카롭게 구부러진 김진우의 손이 짓쳐들었다.
“컥!”
순식간에 목덜미를 잡힌 사냥꾼, 김진우는 우악스럽게 목젖을 뜯어버렸다. 바람 빠지는 듯한 기이한 소리가 나며 피가 솟구쳤다. 칼도 내던지고 제 목을 감싸 쥔 채 컥컥거리는 소리만 내는 사냥꾼을 그가 거칠게 잡아 당겼다.
그리고는 곧장 손을 뻗어 피거품을 내뱉는 사냥꾼의 입술을 까뒤집었다.
선홍색 잇몸 사이로 드러난 누런 이가 기이할 정도로 날카로웠다. 인간의 이라기보다는 사나운 짐승의 이빨처럼 삐뚤빼뚤하고 날카로웠다.
“이런 개만도 못한 새끼들.”
사냥꾼의 날카로운 이를 본 김진우의 표정이 더없이 사나워졌다. 그도 그럴 것이, 마치 날을 세운 듯 뾰족한 이빨은 사냥꾼 중에서도 가장 질이 좋지 않은 ‘인간 사냥꾼’들의 징표, 인육을 탐한 이들의 상징이었다.
김진우의 눈에서 흘러내리던 푸른 광망이 더욱 살벌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이런 미친!”
“이 새끼, 보통 놈이 아니다! 한꺼번에 들어가!”
그사이에 주위를 둘러싼 사냥꾼들이 잠깐 사이에 목덜미를 찢긴 동료를 보고 기겁하며 일시에 달려들었다.
“죽어!”
인중과 목, 가슴과 낭심을 노려오는 공격. 하나같이 급소가 아닌 곳을 향하는 공격이 없을 정도로 흉악한 협공이었다.
게다가 정확하게 퇴로를 차단하는 시퍼런 칼날들까지, 어지간한 던전 베이비라면 이 한 번의 공격만으로 온몸이 찢겨나가고 말았을 것이다.
인간 사냥꾼들은 그야말로 던전 베이비 사냥에 최적화된 천적과도 같은 존재였다.
일반적인 던전 베이비들이 크리쳐를 사냥하며 괴수를 상대하는 데 특화되는 동안, 동족을 사냥하며 연마해 온 인간 사냥꾼 특유의 음험함이 온 사방에 가득했다.
하지만 김진우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가 걸어온 지옥 같은 여정 중에 상대한 괴물들은 크리쳐뿐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그 모든 험난함을 이겨내고 마침내 지상에 오른 강자였다.
김진우가 자신의 한 손에 멱살을 잡힌 채 경련하고 있는 사냥꾼을 내밀었다.
“끄어어억!”
그때까지만 해도 김진우의 손에 붙들려 간간이 신음을 내뱉던 사냥꾼이 순식간에 몇 번이나 칼침을 맞고 비명을 질러댔다.
순식간에 고깃덩어리가 되어 축 늘어진 사냥꾼, 하지만 남은 사냥꾼들은 동료의 죽음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거칠게 손을 휘젓는 그들의 칼질에 피투성이 육신이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이런 병신들아! 멈춰!”
피가 솟아오르며 순식간에 자욱하게 붉은 안개가 생겼다. 시야가 가려지자 낭패한 사냥꾼 중 하나가 욕설을 내뱉었다.
그 순간 피 안개 뒤에 웅크리고 있던 김진우가 칼을 내질렀다. 눈에 피가 들어가거나 붉은 안개에 앞이 가려 있던 사냥꾼 몇이 순식간에 김진우의 공격에 눈이 뜯겨나가고 목덜미가 찢어졌다.
“이런 씨발! 이 새끼, 심층에서 태어난 새끼다!”
잠깐 사이에 열다섯의 사냥꾼 중 네 명이 피를 쏟으며 바닥에 자빠졌다. 당연하게도 사냥꾼들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미 기호지세, 발을 빼기에는 서로 간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그리고 김진우는 이 지저의 괴물들을 살려둘 생각이 전혀 없었다.
“끄아아악!”
“악! 내 눈!”
눈 몇 번 깜짝할 사이에 또다시 사냥꾼 다섯이 쓰러졌다. 이제 남은 사냥꾼이라고 해봐야 고작 여섯. 겁에 질린 사내들이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악!”
또 한 번의 비명이 터져 나오고, 틈을 보고 있던 사냥꾼들이 순식간에 흩어져 줄행랑을 쳤다.
온 길을 되짚어 도망친 사냥꾼이 셋, 그를 지나쳐 꽁무니를 뺀 사냥꾼이 둘이다. 잠시 고민하던 김진우가 입술을 달싹였다.
***
“헉헉!”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사냥꾼들은 멈추지 않았다. 발을 멈췄다가는 시퍼런 눈의 괴물에게 목덜미를 뜯어 먹힐 것만 같은 탓이다.
“야, 다른 새끼들 따라갔나 봐! 안 보여!”
“뭐? 진즉 말하지! 괜히 뺑이 쳤잖아!”
방향이 맞아떨어진 동료의 말에 사냥꾼이 발을 멈췄다. 그는 잠시 뒤를 돌아본다 싶더니 아무런 기척이 없자 그제야 가쁜 숨을 내뱉으며 안도하는 얼굴이 되었다.
“제길!”
하필이면 만나도 심층의 던전 베이비를 만나다니 재수가 없어도 더럽게 없었다.
“시바, 다 죽었겠지?”
“말이라고 하냐? 아까 그 새끼 얼굴 못 봤어? 완전 괴물이더만.”
“끄응, 재수도 오지게 없지. 그 새끼 최소 10레벨은 되겠더라.”
그래도 자신들에게 따라붙지 않은 건 다행이라고 킬킬거리는 두 명의 사냥꾼이었다.
“아오. 한동안은 죽어 지내야겠네.”
“방법 있냐. 잠깐 몸 사리다가 나중에 다시 또 팀 찾아보자고. 운 좋아서 어리바리한 놈들 만나면 우리가 다 먹어치울 수도 있겠지.”
한동안은 재미를 못 보게 됐다며 욕지거리를 내뱉는 사냥꾼들의 모습이 인면수심 그 자체였다.
“근데 여긴 어디냐?”
“몰라. 뒤도 안 보고 달렸더니 어딘지도 모르겠네.”
하지만 그들은 이내 차가운 현실을 깨닫고는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야, 우리 엿 됐어.”
“뭐, 인마? 그럼 우리가 지금 엿 됐지 대박 났겠냐.”
“그게 아니라…….”
동료의 핀잔에 인상을 찡그린 사냥꾼이 말했다.
“여기 아무래도 미궁 같은데?”
그제야 이상하게 반들거리는 통로를 발견한 사냥꾼이 하얗게 질렸다.
“이 새끼야, 그럼 당장 나가야지 여기서 뭘…….”
겁에 질린 사냥꾼이 기겁하는데 갑작스레 휙 하고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 해? 나가자며!”
동료가 갑작스레 말을 멈추고 굳어버리자 사냥꾼이 욕설을 내뱉었다.
신경질적으로 동료의 어깨를 치며 길을 되돌아가려는데 툭 하고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며 뜨거운 액체가 등 뒤로 쏟아졌다.
“어?”
어쩐지 돌아봐서는 안 될 것 같은 기분에 사냥꾼이 식은땀을 흘리며 삐걱거리는 고갯짓으로 뒤를 돌아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렇게 굳어버린 사냥꾼의 목덜미를 새파란 섬광이 스치고 지나갔다.
“끄으으윽.”
피가래가 끓는 소리를 내뱉으며 목을 부여잡은 그는 이내 고꾸라지고 말았다.
***
“전부 처리했나이다, 주인이시여.”
그리 오래 지난 것도 아닌데 벌써 돌아와 납작 엎드린 릭샤샤의 몸에서 짙은 피 냄새가 풍겼다.
과연 타고난 암살자이자 척후병이라고 하더니 도미니크의 말이 과장이 아니었다. 얼핏 보아도 레벨 5는 넘어 보이는 사냥꾼 둘을 이리 빨리 처리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다.
“수고했어.”
꽤나 놀란 김진우였지만 굳이 내색하지 않았다. 그는 바닥에 나자빠진 사냥꾼들의 시체를 일일이 확인했다.
하나같이 이가 날카로운 인간 사냥꾼들, 일말의 찝찝함이나마 어려 있던 그의 얼굴이 완전히 차갑게 식어버렸다.
지상까지 올라오며 같은 인간의 피라고 손에 묻히지 않았을까. 이제 와서 흔들릴 이유가 전혀 없었다.
하물며 상대는 웃는 얼굴로 다가와 잠든 사이에 목을 잘라내는 지저의 흉악한 괴물들이다. 인육에 중독된 그들을 같은 인간이라고 할 수나 있을지 의문이 들 지경이다.
‘주인님, 전부 수거했습니다.’
생각에 잠긴 사이 어느새 다가왔는지 도미니크가 양손을 공손히 내밀었다. 그녀의 손바닥 위로 스물 남짓한 다운 잼이 반짝거리며 빛을 발하고 있다.
“많이도 모았군.”
사냥꾼들이 지니고 있는 다운 잼이 많다는 건 그간 희생된 탐색자들의 수가 적지 않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기분 탓인지 다운 잼의 영롱한 붉은 빛마저도 섬뜩하게 보일 지경이다.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린 그가 짧게 말했다.
“돌아가자.”
어차피 포탈이 열린 마당에 더 이상 지저에서 꾸물거리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포탈을 향해 걸음을 내딛는 그를 향해 도미니크가 물었다.
‘시체는 어떻게 할까요?’
잠시 뒤를 돌아본 김진우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내버려 둬. 어차피 크리쳐든 비스트든 와서 남김없이 먹어치울 테니 흔적 따위는 남지 않겠지.”
사냥꾼들이 그러한 것처럼 지저의 어둠이 그들의 사체를 처리할 것이다. 그것이 무엇 하나 남기지 않고 닥치는 대로 집어삼키는 지저의 율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