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286)
던전 견문록-286화(286/319)
# 286
던전 견문록
제 287 화
101. 과거로의 회귀
“어떻게 벌써 찾았지?”
빨라도 너무 빨랐다. 지상과 전쟁을 벌이고도 찾지 못했던 보물의 행방을 찾는 데 고작 이 정도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은 지독스러울 정도로 부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김진우는 미미르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고,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저도 얼떨떨할 지경입니다요. 그렇게 찾아 헤매던 지저의 보물이 이렇게 쉽게 모습을 드러낼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미미르는 그의 날 선 추궁에 오히려 자신도 놀랐다며 얼떨떨한 기색을 보였다.
“이건 제가 찾은 게 아니라 스스로 모습을 드러낸 거라고 봐야 할 상황입죠.”
타이밍이 공교로웠지만 나름대로 납득할 수 있는 대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저의 신비가 일을 진행하는 방식이라는 게 늘 이런 식이다 보니 이제는 그러려니 하게 된 탓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해서 미미르를 추궁했다.
“저는 모릅니다. 몰라요. 왜 근래 들어서 이런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인지 저도 알 수가 없습니다요.”
미미르는 모처럼 좋은 소식을 전하러 왔다가 호된 추궁을 당하니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흐음.”
김진우는 뒤늦게 자신이 지나치게 과민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끝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는 없었다.
왜 하필 지금인가. 그토록이나 지저의 귀족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아 헤맸던 지저의 보물이 왜 지금 모습을 드러낸 것일까. 그리고 이제 막 가장 깊은 심층으로 떠나려던 자신의 발목을 붙잡은 미미르의 방문이 마냥 자연스럽지만은 않은 탓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의심을 하거나 말거나 미미르는 재빨리 자신의 정보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지체했다간 괜히 날벼락이라도 맞을까 두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위시 스톤은 기다리면 제 스스로 지저로 돌아올 겁니다.”
점입가경이라는 말이 있다. 지금이 딱 그 짝이었다.
“악몽의 백작, 디나리온이 지금 위시 스톤을 입수하여 지저로 운송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디나리온이라면.”
“맞습니다. 그자야말로 지저와 지상의 전쟁을 부추긴 주역 중 한 명이 틀림없습죠. 어쩌면 그는 위시 스톤을 찾아내기 위해 거짓 투항을 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만약 디나리온의 목적이 정말로 위시 스톤을 되찾는 것뿐이었다면, 굳이 지저와 지상의 위기감을 고조시켜 전쟁의 빌미를 줄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알았지?”
디나리온의 의중이야 차치하고서라도 그 동향을 파악한 경위를 알 수 없어 그렇게 물으니 미미르가 대답했다.
“디나리온은 군주님 덕분에 제 기반을 완전히 잃고 말았습니다요. 덕분에 전이라면 단번에 심층까지 진입했을 그가 지금은 상층부터 훑고 들어와야 할 상황입지요.”
하기야 제 미궁만 멀쩡했다면 디나리온은 단숨에 심층까지 포탈을 통해 진입할 수 있었으리라.
“그리고 그가 지저에 진입할 방법으로 택했던 건, 지저의 누군가를 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건 또 누군가.”
뭔가 꺼림칙한 것이라도 있는지 미미르는 한참을 머뭇거리다 그의 눈초리가 사나워지자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타락의 여왕, 브륜테스가 디나리온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브륜테스라면 대한민국 탐색자 협회를 배후에서 조종할 정도로 남모르게 지상에 이룬 기반이 탄탄한 수완가였다.
또한 그녀는 심층에서 잔뼈가 굵어 교활하기 그지없는 여인으로, 다른 심층의 백작들이 모조리 대미궁이란 허울에 제 기반마저 잃고 말았을 때, 유일하게 핵을 챙겨 달아난 생존자이기도 했다.
“네놈, 설마…….”
김진우는 뒤늦게 미미르의 망설임이 어떤 이유인지를 깨닫고 사납게 눈을 치켜떴다.
“죄, 죄송합니다! 타락의 여왕이라면 차후에 요긴하게 쓸 곳이 있을 거라 생각해서…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요!”
역시나 예상대로 그녀가 어디로 도망쳤나 했더니 미미르가 도움을 주었던 모양이다. 아니, 어쩌면 자신이 11층을 정리하기 위해 나섰을 때 이 교활한 임프가 미리 정보를 주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후우, 지겹군. 꿍꿍이를 숨긴 네놈의 만행도. 또 그런 네놈을 이제껏 살려둔 나도.”
그는 매번 뒤에서 무언가를 꾸미느라 여념이 없으면서도, 항상 그 사실을 제 입으로 털어놓고야 마는 미미르의 태도가 차라리 황당할 지경이었다.
“아마도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건 뭔가 네놈도 나도 얻는 것이 있어서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밉살맞은 임프를 일격에 때려죽이는 대신, 이번에도 처벌을 보류했다.
“맞습니다요. 타락의 여왕은 디나리온을 속여 위시 스톤을 받아낼 생각인 듯합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군주님께 협상을 시도할 생각이겠지요.”
아무래도 타락의 여왕은 위시 스톤을 그에게 바치고 제 목숨을 구제받아, 다시 한 번 지저에 기반을 마련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후우.”
하찮은 백작을 살려주고 지저의 한 귀퉁이를 내주는 대신 위시 스톤을 얻을 수 있다면 엄청난 이득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이득을 볼지언정 번번이 자신의 뒤통수를 치는 임프의 행동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내일 당장 창고를 이전하겠다.”
“끄응…….”
그는 보물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창고지기를 털어내는 것으로 소소한 복수를 마쳤다. 그러고도 남은 여죄는 위시 스톤을 얻는 그날 다시 벌하기로 다짐했다.
그런 속도 모르고 미미르는 당장의 위기를 넘겼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으니, 훗날이 고달플 게 빤히 보였다.
***
“아무래도 때가 임박한 모양이다.”
근래 들어 벌어진 모든 일이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과거로의 회귀.
오랜 시간 명맥이 끊겨 있던 하이로드들이 지금에 와서 부활한 것도, 때를 맞춰 일어난 복원과 위시 스톤의 등장까지 무엇 하나 지저의 완벽한 회귀와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김진우는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고, 더불어 자신이야말로 이 모든 과정을 완벽하게 성사시키거나 뒤집을 수 있는 열쇠라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다.
“모든 일이 가속화될 거다. 배덕의 군주와 지저의 신비라는 괴물은 무르익은 때를 놓치지 않을 테니까.”
그렇기에 그는 다시 한 번 지저에 크나큰 지진이 찾아왔음에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쿠오오오오오.
세 번째로 지저에 찾아온 지진은 전에 없이 강렬했다. 하지만 그만큼 짧기도 했다. 불과 몇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완전히 멈추어 버린 것이다.
“피해 상황을 보고해라!”
김진우는 소리 높여 외쳤고, 도미니크를 비롯한 미궁의 수뇌부들이 잇따라 상황을 알려왔다.
“아슬아슬하게 버텨냈습니다!”
“창고가 경미하게 파손되었을 뿐, 별다른 피해는 보이지 않습니다.”
“나가들과 이종족들 역시 피해자 전무! 전원 무사합니다!”
진동이 짧았기 때문인지 미궁의 피해는 전무했다. 발홀 역시 그 끔찍한 지진에도 굳건히 버텨냈고, 높게 솟은 첨탑과 성벽은 조금의 균열도 발생하지 않았다.
“다행이군. 만약 또 한 번 전과 같은 재앙이 찾아왔다면, 꽤나 애먹을 뻔했다.”
“일단은 또 뭐가 변했을지 모르니 순찰자들을 내보내도록 할게요.”
그의 말에 도미니크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재빨리 언더 엘프들을 내보내 바깥의 상황을 살폈다.
“시간이 좀 걸릴 듯하니, 먼저 밀린 일부터 처리하도록 하지.”
김진우는 이제껏 미루어 두었던 창고의 이전을 처리할 요량으로 다이달로스를 불렀다.
“준비는 진즉에 완료되었습니다. 애초에 영원의 창고라는 게 입구를 제외한 모든 것이 독립적인 공간인지라 그다지 손을 많이 댈 필요도 없었습니다.”
다이달로스는 방어에 용이한 대미궁의 심처에 창고를 이전할 자리를 몇 군데 마련해 두었다며, 그를 안내해 주었다.
“사실 이곳까지 적이 들어온다는 건 그 어떤 함정으로도 요격할 수 없는 강적이 등장했다는 말이라 잡스러운 함정은 일체 배제하고 유사시에는 공간 자체를 폐쇄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딴에는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대미궁의 심처라고 할 수 있는 이곳까지 적이 진입했다는 건 패색이 짙다는 의미와 상통하는 바가 있었으니, 뒤늦게 방비를 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말이었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야. 그런 상황이라면 한낱 창고가 아닌 미궁을 지키는 게 마땅하겠지.”
다만 그건 영원의 창고가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창고와 같을 경우에 한해서였다.
“영원의 창고는 그저 보안이 확실한 금고가 아니다. 제 스스로 생각하여 유혹하고, 끝내는 침입자를 집어삼키는 탐욕스러운 괴물이다. 우리가 굳이 방비를 신경 써줄 필요는 없으리라.”
그는 다이달로스가 마련해 두었던 공간 중에서도 가장 오너 룸에 가까우면서 노출이 잘 되는 곳으로 이전 장소를 결정했다.
“시간을 길게 끌 것도 없겠지. 바로 지금 이전을 시작한다.”
[영원의 창고를 이전할 장소를 결정했습니다.] [발홀이 아닌 탐욕의 대미궁에 영원의 창고를 이전하는 것은 다소 비효율적입니다. 대미궁의 방비가 아무리 강력하다고 한들 발홀의 방어력에는 미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영원의 창고를 이곳으로 이전하시겠습니까?]작고 허술한 나가의 둥지로 시작하여, 나가의 요새를 거쳐, 다시 대미궁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은 그가 이제껏 지저에서 걸어온 길 자체였다.
이제 와서 조그만 이점에 기대어 본진을 옮길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메시지의 폄하와는 달리 대미궁이 지닌 탐욕의 권능이 발홀에 비해 터무니없을 정도로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이곳으로 결정하겠다.”
[신중하게 결정해 주십시오. 한 번 이전한 창고를 다시 이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곳에 영원의 창고를 이전하시겠습니까?]몇 번이나 거듭된 메시지는 그가 짜증스럽게 손을 휘젓고 나서야 사라졌다.
[영원의 창고가 이전됩니다.] [창고가 보관 중인 모든 물품 역시 함께 이전됩니다.] [영원의 창고가 완전히 활성화되기까지 다소 시간이 필요합니다.] [완전히 활성화되기 전에는 창고 안의 물건을 꺼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물품을 넣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창고의 활성화까지 앞으로 71시간 49분 47초 남았습니다.]작은 빛무리가 이리저리 춤을 추는 것을 보고 있자니 추가 메시지가 떠올랐다.
[영원의 창고가 이전되었습니다.] [창고가 원래 있었던 공간은 완전히 세상에서 지워집니다.] [안타깝게도 기존에 영원의 창고가 지닌 권능에 기대어 만들어졌던 블랙 머천트의 본거지가 사라졌습니다. 약삭빠른 미미르가 대부분의 물품과 시설을 빼낸 것 같지만, 블랙 머천트는 더 이상 과거의 은밀한 행사를 보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새롭게 이전된 블랙 머천트의 본거지에 대한 소문이 지저에 퍼져 나갑니다.] [그간 수많은 은원 관계를 맺어온 블랙 머천트이니만큼, 앞으로 꽤나 곤란한 일이 벌어질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