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29)
던전 견문록-29화(29/319)
# 29
던전 견문록
제 30 화
#12. 폭풍전야
‘현재 함정 매설에 매달리던 일꾼 중 반을 다시 작업장에 투입했어요. 아직 일이 다 끝난 게 아니지만, 당장 미궁이 업그레이드된다 해도 시설을 증축할 자원이 필요해요. 던전 에너지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마법이 아니니까요.’
나가의 왕좌에 앉은 김진우는 가만히 도미니크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교룡들은 어떻게 하고 있지?”
‘그날 이후로 잠깐 외곽이 소란스러워진다 싶더니 다시 또 잠잠해졌어요. 아마 이쪽의 전력을 분석 중이겠죠.’
아무래도 드라칸을 내세워 의심 많고 엉덩이 무거운 아낙스투스를 다시 주저앉히려던 김진우의 계획이 성공한 모양이다.
하지만 방심할 수 없었다. 미궁의 업그레이드까지 앞으로 2주가 남은 시점, 지금까지는 전력의 비교조차 미안할 정도로 병력 차가 컸다.
미궁이 업그레이드되어 새로운 병력이 충원되기 전까지는 사소한 일에도 주의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됐다.
“릭샤샤를 조금 더 돌리도록 해.”
당장 정찰에 능숙한 인원이라고 해봐야 언더 엘프인 릭샤샤밖에 없었다.
도미니크의 말을 들어보면 나가들 중에도 정찰과 은신에 특화되어 있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도대체 미궁의 등급이 얼마가 되어야 소환할 수 있는지는 감이 잡히지 않았다.
‘맡겨만 두세요. 언더 엘프가 게으름을 피울 시간 따위는 주지 않을 테니까요.’
어쩐지 릭샤샤를 대할 때면 유독 표독스러운 면모를 보이는 도미니크였다.
교룡들이 쫓겨 간 지 벌써 2주란 시간이 흘렀건만 지저는 조용하기만 했다.
당장에라도 터질 것처럼 긴장감이 가득하던 나가의 미궁도 어느새 본래의 모습을 찾았다.
함정 매설에 매달리던 나가 일꾼들도 전원이 다시 곡괭이를 들고 작업장에 투입되었고, 나가 용사들은 빠르게 실전 경험을 쌓으며 강해졌다.
“퀀투스는?”
외곽에서 크리쳐를 잡으며 실전 감각을 익히는 나가 중에서도 특출 나게 눈에 띄는 나가가 있었다. 김진우가 평소 눈여겨보던 나가 용사였다.
도미니크는 그 나가의 이름을 퀀투스라 말했다.
‘퀀투스는 용사들을 이끌고 크리쳐 사냥을 갔어요. 돌아올 때가 거의 다 됐으니 조금 있으면 보실 수 있을 겁니다.’
“그래? 볼 때마다 강해져 있으니 기대가 되네.”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당장 지금만 해도 수문장과 비교해 그리 떨어지지 않아요. 아마 계기만 있다면 영웅급으로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곧 미궁의 업그레이드가 완료되겠지만, 그때까지 나가의 미궁은 전적으로 기존의 병력에 의존해 방어해야 했다.
일전의 전투에서 제법 힘을 발휘한 병력이기도 했지만, 교룡들과의 전투에서 그 한계가 명확히 드러났다.
병력의 질이 낮다.
그게 지금 김진우가 당면한 문제였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나가 용사 하나가 영웅급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보인다고 하니 기대감이 들지 않는 게 도리어 이상한 일이다.
“주인이시여.”
기다리던 퀀투스보다 그를 먼저 찾은 것은 릭샤샤였다. 교룡의 미궁을 정탐하기 위해 보낸 그녀가 돌아온 것이다.
“아, 인사는 짧게. 보고부터.”
그대로 두었다가는 다짜고짜 바닥에 엎드려 주구장창 찬양의 말부터 던질 그녀인지라 김진우가 손을 들어 말렸다.
“교룡들의 수는 총 백마흔둘이며 그중 영웅급 교룡이 둘이었나이다. 심처까지 들어서기에는 지닌 바 능력이 부족해 모든 것을 보고 오지는 못했으니 이 무능한 종을 벌하여 주시옵소서.”
“그럼 아낙스투스를 보진 못한 건가?”
“교룡왕의 거처는 미궁에서도 가장 심처에 위치한 곳, 하찮은 언더 엘프가 접근할 수 없는 삼엄함이 있었나이다.”
말끝마다 자기비하에 가까울 정도로 스스로를 낮추는 릭샤샤였지만, 그녀의 공은 결코 적지 않았다.
무려 교룡의 미궁 내부까지 침투해 적의 전력을 분석하고 왔으니 그 능력과 공을 폄하할 수는 없었다.
오죽하면 릭샤샤를 눈엣가시로 생각하는 도미니크마저도 이번만큼은 감탄스러운 얼굴을 해 보일 정도였다.
“일단 드러난 전력만 해도 우리보다 한참 위로군.”
‘영웅급 교룡이라면 드라칸을 이기지는 못해도 발목을 잡는 정도는 할 수 있을 거예요. 보통 드라칸이라면 불가능한 일이지만… 오르테아가가 그다지 미덥지 않은 것도 사실이라서.’
드라칸이라는 이름값에 비해 터무니없이 자존심만 강한 오르테아가가 방금 그녀의 말을 들었다면 길길이 날뛰어댔을 것이다.
하지만 김진우의 평가 역시 도미니크와 다르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저 반편이 드라칸의 존재 때문에 섣불리 나서지 못하는 교룡왕이 불쌍할 지경이다.
“결국 문제는 누가 교룡왕을 상대하고 남은 영웅급 교룡을 상대하느냐 하는 것인데, 수문장으로는 무리겠지?”
‘지금의 병력 중 그들을 상대할 만한 이는 없어요.’
“다시 원점이군. 결국은 미궁의 업그레이드가 먼저란 말이지.”
턱밑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까딱이던 김진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가시는 건가요?’
그대로 남아 있어봐야 할 수 있는 것도 없는지라 그는 손을 한 번 흔드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고는 미궁을 떠났다.
지상으로 돌아온 김진우를 가장 먼저 반긴 것은 미칠 듯이 몸을 떨어대는 휴대폰이었다. 드르륵드르륵 하며 귀에 거슬리는 소음을 토해내는 휴대폰을 본 김진우는 전화를 받아 들었다.
[전화를 엄청 안 받는구먼.]대뜸 핀잔을 해오는 백 선생의 음성에 그가 거두절미하고 용건부터 말하라 대답했다. 혀를 차며 짧게 투덜거린 백 선생이 이내 용건을 꺼내 들었다.
[전에 부탁한다던 얘기 때문인데, 잠깐 들를 수 있나? 전화로 얘기하기는 영 그렇구먼.]“급합니까?”
[급하다면 급하지. 빠를수록 좋아.]백 선생의 말에 김진우는 생각할 것도 없이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어차피 정보도 얻을 겸 해서 감정소를 한 번은 들를 생각이던 차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왔는가? 이쪽으로 앉게.”
감정소를 찾으니 언제나처럼 백 선생은 낡은 책상 뒤에 앉아 그를 반겨주었다.
“자네 혼자서 미궁에 들어갔다며?”
생각지도 못한 말에 김진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비밀이 영원히 유지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이건 빨라도 너무 빨랐다.
“이 바닥에 비밀이 어디 있나. 오가는 눈이 몇 갠데.”
어디서 들은 것인지를 물으니 백 선생이 두리뭉실하게 말을 흐렸다.
“그래, 몇 층까지 갔나?”
“그게 궁금하십니까?”
“일 때문에. 그래, 일 때문에. 어서 말해보게.”
어차피 자신의 레벨을 알고 있는 백 선생에게 숨길 만한 일은 아닌지라 김진우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3층까지 갔습니다.”
“안 간 건가, 아님, 못 간 건가?”
“사정이 있어서 중간에 돌아왔습니다.”
김진우는 인간 사냥꾼을 만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막 지저와의 전쟁이 끝나고 던전 베이비들이 지상으로 돌아왔을 때 인육을 탐하는 사냥꾼 탓에 한동안 던전 베이비들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적이 있었다.
백 선생 역시 인간 사냥꾼이란 말에 대번에 혀를 차며 눈을 부라렸다.
“아직도 남은 놈들이 있다니……. 협회에서 나서서 청소를 해야 하는데 무조건 끼고도니 아직도 그런 놈들이 남아 있는 게지.”
“협회가 관련된 겁니까?”
던전 베이비들의 죽음을 조롱하던 송종철의 얼굴이 떠올라 김진우의 표정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차갑게 식어버렸다.
“아니. 딱히 그건 아닌데, 무조건적으로 탐색자들 편을 드니 관리사무소에서도 머리가 아픈 모양이야. 에잉, 재수 없는 놈들. 어디 먹을 게 없어서.”
하지만 이렇다 할 관계가 있는 건 아니었는지 더는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한참을 투덜거리던 백 선생이 다시 본론을 꺼내 들었다.
“그보다 자네, 몇 층까지 가능하겠나?”
“무슨 의미인지…….”
도통 저의를 파악하기 힘든 질문에 김진우가 슬쩍 말을 흐렸다.
“말 그대로야. 혼자서 몇 층까지 돌 수 있겠냐고.”
아무래도 부탁이란 것과 연관이 있는 모양인지 백 선생의 질문은 집요했다.
“더 가봐야 알겠지만 6층까지는 혼자서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 이상은 무리고요.”
그의 말에 백 선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감탄했다.
“레벨 12가 대단하긴 대단한가 보구만. 레벨 8 정도 탐색자들도 팀으로 꾸리지 않으면 6층은커녕 5층도 못 돌 텐데.”
하기야 따지고 보면 대다수의 던전 베이비들은 자유를 얻어 지상에 오를 때도 미궁 별로 인원을 꾸려 길을 나섰다. 김진우처럼 생존률이 희박한 심층의 던전 베이비들이 아닌 이상 혼자서 지저를 헤맬 이유가 없었다.
“6층이라… 6층…….”
백 선생이 있지도 않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대체 뭘 부탁하시려는 겁니까?”
한참을 기다려도 좀처럼 말문을 트지 않는 백 선생을 보며 김진우가 물었다.
“다른 건 아니고 뭘 좀 확인해 줘야겠는데 이게 좀 깊은 데 있는 거라서.”
“그게 뭐길래 이렇게 뜸을 들이십니까?”
“끄응. 알았어, 알았어. 내 다 말할 테니까 그 가벼운 엉덩이부터 다시 붙여 앉게.”
아닌 게 아니라 이대로 가다가는 본론도 못 듣고 언저리만 맴돌다 끝날 판이라 김진우의 엉덩이가 반쯤 들렸다.
“자네 혹시 버려진 미궁에 대해서 들어봤나?”
“지저에 깔린 게 버려진 미궁입니다. 우리나라에만 수백 개가 넘는다고요.”
“아니, 아니, 그런 거 말고.”
잠시 뜸을 들인 백 선생이 목소리를 한껏 낮추고 이야기했다.
“주인이 버린 미궁 말고 주인 없는 미궁 말이야.”
듣기에 따라서는 말장난처럼 들리는 한마디, 의미를 알 수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김진우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필사적으로 표정을 관리해야 했다.
“이게 지저에 주인 없는 미궁이 있는 모양이야. 핵이 파괴되지 않은, 말 그대로 멀쩡한 미궁이 있단 거지.”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김진우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버려진 미궁이면 미궁이지 멀쩡한 미궁은 또 뭡니까?”
애써 태연함을 가장하며 김진우는 일부러 엉뚱한 소리를 했다. 그런 그를 보며 백 선생이 혀를 차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게 아니니까 하는 말이지. 아, 글쎄, 미궁에 주인 없는 미궁이 있다니까.”
“무슨…….”
더 이상은 김진우도 표정 관리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백 선생은 그의 표정이 굳어진 걸 자신의 정보에 놀란 탓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평소와는 다르게 다소 호들갑스러운 백 선생의 얼굴이 마치 대단한 사실을 풀어놓듯 으스대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게 하도 소문이 많아서 나도 긴가민가했는데, 얼마 전에 확실한 정보를 얻었네.”
아무래도 그냥 하는 말은 아닌지 확신 가득한 말에 김진우는 가슴이 차갑게 식는 듯한 기분이다.
“지저에 주인을 기다리는 미궁이 있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