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295)
던전 견문록-295화(295/319)
# 295
던전 견문록
제 296 화
104. 지저의 신비
찬탈자의 말이 그 뒤로도 한참이나 이어졌지만, 기이할 정도로 머릿속을 파고드는 지저수의 이름에 김진우는 도통 정신을 집중할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지저수를 보기로 결정했고, 놀랍게도 그녀는 막아서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
항거할 수 없는 압도적인 존재의 격차, 하이로드가 된 이후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경외감이 온몸을 찍어 눌렀다. 지저 전체를 떠받들듯 사방으로 가지를 뻗은 거대한 물푸레나무 앞에서 그는 간신히 두 발을 딛고 서는 것이 고작이었다.
김진우는 지저수를 앞에 두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 이게 지저수.”
자꾸만 휘청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버텼다. 그리고 고개를 든 그의 시선은 거대한 몸통을 훑고 오르다 꼭대기에 채 이르기도 전에 다시금 떨구어진다.
저 거대한 물푸레나무 앞에서 누가 있어 자신의 존재를 내세울까. 지저수의 수많은 가지 중 가장 앙상한 것에 매달린 작은 나뭇잎조차도 누를 자신이 없었다.
지저에 들어선 이후 처음으로 영혼마저 압도되어 의식마저 날아갈 것만 같았다.
[지저수를 발견했습니다.]그나마 번쩍이는 메시지 창이 아니었다면 그는 간신히 부여잡고 있던 의식의 끈을 놓치고 말았을 것이다.
[지저의 그 어느 누구도 지저수가 언제부터 존재해 왔는지 알지 못합니다. 아니, 대다수는 그 존재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다만 소수의 선택받은 몇몇 군주만이 이 거대한 물푸레나무를 직접 보는 것을 허락받았으며 이 거목이야말로 지저의 근간을 이루는 기둥이자, 모든 법칙을 관장하는 신비 그 자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뿐입니다.]김진우는 머릿속에 강제로 주입되는 지저수의 정보를 필사적으로 쫓았다.
[외눈박이 군주, 보탄과 그를 따르는 파수꾼들은 지저목을 지키는 수호자들입니다.] [어쩌면 외눈박이 군주는 당신이 지저수와 대면하여 직접 지저의 신비를 경험하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저수는 지저의 기둥이자 신비이며, 태초부터 지저의 역사를 기록해 온 방대한 보고입니다.] [진리의 왕좌가 가진 막강한 권능은 단지 이 지저수가 품은 시간의 일부를 엿보는 것에 불과합니다.] [외눈박이 군주는 진리의 왕좌를 이미 한 번 사용한 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그 대가로 자신의 눈을 바쳐야만 했다는 것은 군주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비밀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들도 그가 자신의 눈을 바치는 것 외에도 따로 대가를 치러야 했다는 것은 몰랐습니다.] [외눈박이 군주는 진리의 왕좌를 통해 지저수의 신비를 엿보는 대신, 새로운 업을 짊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단 한 번의 선택에 대한 대가로 평생토록 지저수를 수호하는 파수꾼의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외눈박이 군주가 파수꾼의 지배자가 된 경위가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만약 준비되지 않은 자가 지저수의 내부를 들여다본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지저수가 오랜 세월 동안 축적해 온 지혜는 일개 개인이 탐하기에는 너무나 방대하고 농밀합니다. 자격이 없는 자가 지저수의 신비를 탐했다가는, 그 난폭한 격류에 휘말려 존재조차 잃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당신은 아직 지저수와 교감할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지저수와 교감을 시도하시겠습니까?] [최악의 경우, 당신의 영혼은 지저수와 완전히 동화되어 자신을 잃어버릴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당신을 다시 본래대로 되돌려 놓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할 거라 장담합니다.] [그래도 지저수와 교감을 시도하시겠습니까?]굳이 메시지의 섬뜩한 경고가 없었다 해도 그는 지저수와 교감을 시도해 볼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저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이렇듯 현기증이 날 지경인데, 그 내부를 들여다본다면 얼마나 끔찍할까.
김진우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지저수로부터 한참이나 거리를 벌렸다.
“후우.”
그렇게 물러나다 보니 어느 순간이 되자 거짓말처럼 압박감이 사라졌다. 거대한 물푸레나무가 마법처럼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과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내가 말하지 않았니. 너는 아직 지저수와 마주할 준비가 되지 않았단다.”
이때만큼은 그도 찬탈자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만약 외눈박이 군주가 남긴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위시 스톤을 갖고 돌아오렴. 그것이라면 지저수의 신성(神性)으로부터 너를 지켜줄 거야.”
짐짓 염려가 담긴 듯 은근한 그녀의 음성에 김진우는 순간적으로 고민했다. 어쩌면 처음부터 다른 것은 아무래도 좋았던 것이 아닐까.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위시 스톤을 들고 지저수와 대면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이해가 안 가.”
그는 스스로의 의심이 제법 합리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몇 가지 말로 그녀를 떠보기로 했다.
“외눈박이 군주가 정말로 지저수의 수호자였다면, 왜 일을 이렇게 번거롭게 하는 거지? 그는 정말로 지저수가 나에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던 걸까?”
배덕의 군주는 외눈박이 군주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자신은 알 수 없노라 대꾸했다. 그 역시 딱히 해답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녀와 외눈박이 군주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불협화음을 알아챘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었다.
만약 외눈박이 군주와 그녀가 진실로 협력 관계라면 백오가 이리 두루뭉술하게 전언을 전했을 리가 없다.
그럼 결국 남은 하나의 가능성은 외눈박이 군주가 진리의 왕좌를 통해 무언가를 보았다는 것이었다.
다만 지금으로써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없으니, 그는 찬탈자와의 재회를 뒤로 하고 다시 대미궁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굳이 그를 붙잡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다시 돌아올 것을 확신하는 눈치였다.
그 역시 그녀와 채 풀지 못한 여러 가지 문제가 여전했던지라, 다시 돌아오리라 다짐했던 참이었다.
“주인님!”
언제나와 같이 도미니크가 그를 반겨주었는데 그 얼굴이 여간 상한 것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그의 이번 외유에 대해서 걱정이 지대했던 모양이었다.
“생각보다 일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것 같다.”
김진우는 이미 나가 여왕 특유의 능력을 통해 그녀가 자신의 사고를 엿보았음을 알고 있었지만, 다시 한 번 정리하는 차원에서 그간의 일들을 설명해 주었다. 그녀 역시 그 의도를 알고 있었는지 가만히 듣기만 했다.
“결국 방랑은 밤에게 잡아먹혔고, 이 밤이라는 깜찍한 놈은 자신이 삼킨 방랑의 기억을 통해 나를 속이려고 했던 모양이다. 홀리드스ㅤㅋㅑㄹ프가 보여준 것은 모두가 진실이었지만, 또한 정제되지 않은 단편적인 것이기도 했지.”
“역시 밤이 바라던 것은 주인님이 모든 하이로드의 권능을 삼키는 것이었겠죠.”
“그렇겠지. 이쪽은 차라리 너무 노골적이어서 이해하기가 편한데, 문제는 배덕의 군주와 하이로드들 쪽이다.”
“외눈박이 군주는 어쩌면 새로운 수호자를 찾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제법 그럴싸한 가정이었다. 그녀의 추측이 사실이라면 외눈박이 군주는 백오를 통해 그를 옭아매려고 한 것일지도 몰랐다.
“결국 이놈이나 저놈이나 대의를 위한답시고 제 꿍꿍이를 챙기는 걸 보면 징그러울 지경이군.”
지금까지 그가 파악한 것이라고는 찬탈자가 바라는 게 지저와 지상의 통합이며, 그 열쇠가 되는 것이 위시 스톤이라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 열쇠를 쓸 곳이 있다면, 그건 분명 지저수가 있는 곳에서겠지.”
많은 것이 밝혀졌지만 여전히 미래는 혼란스럽기만 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는 이 모든 사태를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일단 그들이 바라는 게 뭐든 간에 결국 중요한 건 하나뿐.”
“열쇠를 손에 넣는 것, 이겠죠.”
도미니크가 그의 말을 받았고, 다시 그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내 손에 굳이 열쇠를 쥐어준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줘야겠군.”
안젤라는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김진우가 대미궁을 나서 심층에 향하기까지 제법 오래 시일이 소요되었고 다시 돌아오기까지 또 꽤나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녀의 귀환은 늦어도 너무 늦었다.
하물며 그녀는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눈 깜짝할 사이에 도달할 수 있는 이면 세계의 지배자, 이리 시간이 지체되는 건 결코 정상적인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안젤라를 믿었다. 그녀라면 설령 어떠한 상황이 와도 몸을 빼낼 능력이 있을 거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안젤라는 무사히 귀환했다.
“주인님!”
다만 예상과 다른 것이 있다면 그녀가 혼자라는 사실이었다.
“물건은?”
빠르게 그녀의 몸을 훑어본 김진우는 안젤라의 신변에 별 이상이 없어 보이자, 곧장 위시 스톤의 행방을 물었다.
“제가 얼마나 고생했다고요!”
그녀는 브륜테스가 얼마나 길을 조심하는지 그 행방을 찾는 데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노라며, 공치사를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 반해 손에 들려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니, 그는 의아할 뿐이었다.
“어쩔 수 없었어요. 그 위시 스톤이라는 거, 생각보다 골치 아픈 물건이었거든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그간의 사정을 설명해 주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위시 스톤은 이면 층을 통과할 수 없었어요.”
안젤라의 설명에 따르면 브륜테스를 통해 찾는 데는 성공했으나, 위시 스톤을 운반하는 데는 실패했다 말했다.
“그래서 저는 일단 브륜테스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적당히 조치를 취해놓고, 주인님을 모시고 가기 위해 돌아와야 했답니다.”
그녀의 말을 전부 들은 김진우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국 직접 가보는 수밖에 없겠군.”
진혈의 군주가 지닌 권능이 통하지 않는 물건이라면 직접 물건을 옮기는 수밖에 없었다.
“좋아. 안내해라.”
안젤라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를 붉은 성으로 이끌었고, 다시 지저 어딘가로 안내했다.
“어라?”
그런데 그렇게 이면 세계를 빠져나온 그녀가 얼빠진 소리를 내뱉었다.
“분명 여기 있었는데?”
“근방에 느껴지는 기척은 없어. 위치를 착각한 게 아니야?”
잠깐 사이에 주변의 기척을 탐색해 본 김진우가 그녀에게 다시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안젤라는 고개를 저었다.
“분명 여기예요. 붉은 성의 문은 제 기억을 토대로 연결된다고요. 마지막으로 헤어졌던 곳이니, 여기가 틀림이 없어요.”
그녀의 말과는 달리 주변은 여전히 조용할 뿐이었다.
“그럼 브륜테스가 도망쳤을 가능성는?”
“없어요. 사지를 절단 냈는데, 도망칠 수 있을 리가요.”
그녀가 말한 나름의 조치라는 게 생각보다 과격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김진우는 잔뜩 눈살을 찌푸린 채 다시 한 번 그녀를 채근했다.
“게다가 브륜테스는 굳이 제가 나서지 않았다고 해도 주인님을 찾아갔을 거예요. 이제 와서 새삼 도망칠 이유가 없어요.”
그녀의 말은 제법 설득력이 있었다. 그는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는 인상을 굳혔다.
“아!”
그렇게 그가 생각에 잠긴 사이, 안젤라가 갑자기 탄성을 뱉더니 호들갑을 떨었다.
“찾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