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296)
던전 견문록-296화(296/319)
# 296
던전 견문록
제 297 화
안젤라가 장담했던 것과는 달리 타락의 여왕이 발견된 것은 원래의 위치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곳에서였다. 그 거리가 꽤나 멀었던지라 김진우는 조금이지만 감탄했다.
과연 생기를 찾아내는 능력에 한해서만큼은 그도 그녀에게 미치지 못함을 인정해야 했다.
탐욕의 권능이 쓸 만하기는 했지만, 원체 편식이 심한 놈이라 제 입맛을 당기는 것이 아니면 좀처럼 이득을 볼 수가 없었다.
다시 타락의 여왕을 찾은 건, 몇 층인지도 모를 지저의 어두운 토굴이었다. 누구의 눈에 띌 새라 구석에 몸을 웅크린 채 몸을 떠는 모습이 과연 그 거만한 백작인지 믿어지지 않을 지경이었다.
“너, 여러모로 손이 많이 가는구나.”
얼마나 호된 꼴을 본 것인지 사지 중 멀쩡한 곳이 없는 그 엉망진창의 모습을 보고도 안젤라의 말은 태연하기만 했다.
과연 주인 외에는 안중에도 없는 그녀다운 태도였다.
“으으…….”
그간의 고생을 보여주듯 안젤라를 발견한 브륜테스가 눈을 하얗게 까뒤집었다. 잇새로 흘러나오는 신음성이 꼭 겁을 먹은 짐승 같아 그대로 내버려 두면 혼절할 듯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대체 여기까지는 어떻게 온 거야. 재주도 좋아.”
신경질적인 음성을 뒤로 하고 김진우는 몸을 낮춰 타락의 여왕과 눈을 마주했다.
“브륜테스.”
안젤라로부터 눈을 떼지 못했던 그녀는 몇 번이나 제 이름이 불리고 나서야 그를 돌아보았다.
“거래를 이행하러 왔다.”
“거, 거래?”
시달리긴 정말 많이도 시달렸던 모양이다, 자신이 무슨 거래를 제안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안전을 보장해 달라는 제안, 받아들이겠다고.”
비록 예상하지 못한 안젤라의 과격함에 몸이 조금 상하기는 했지만 김진우는 그런 사소한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부러진 뼈야 시간이 흐르면 붙을 테고, 찢어진 가죽은 금세 아물게 마련이니까.
“이제 넌 안전하다.”
고통과 공포로 흐리멍덩해졌던 브륜테스의 눈에 빛이 돌아왔다.
“정말, 제 안전을…….”
간신히 잡은 희망을 놓치기는 싫었던 모양인지, 그녀가 필사적으로 그에게 매달렸다. 기듯이 다가와 발등에 입이라도 맞출 것 같은 모습을 보면서도 김진우는 웃어 보였다.
“물론 그 전에 줄 건 주고 줘야겠지?”
하지만 미소와는 달리 그의 음성은 차갑기만 했다.
“여, 여기요.”
끙끙대며 몸을 뒤집은 브륜테스가 제 품에 손을 넣더니, 주먹만 한 돌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얼핏 보기에는 최상급 다운 잼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모습이지만, 이 작은 돌덩이는 평범한 다운 잼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가치 있는 물건입니다.] [이 지저에 다시없을 보물은 온갖 염원과 욕망을 품은 채, 지저를 떠돌다 지상까지 이르렀습니다.] [원래대로라면 가장 순수한 지저의 염원만이 가득했을 위시 스톤은 지상인들의 열망에 오염되고 말았습니다. 과연 그게 좋은 것일지 나쁜 것일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이 천고의 보물의 가치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소원을 이루어주는 염원의 돌, 위시 스톤을 발견했습니다.]그다지 특이할 것도 없는 돌덩이였지만, 김진우는 위시 스톤이 브륜테스의 품을 나온 뒤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탐욕의 권능이 깨어납니다.] [탐욕의 권능은 당장에라도 위시 스톤을 먹어치우고 싶어 합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식탐, 당신의 권능이 제멋대로 날뛰려고 합니다.] [그만큼 위시 스톤이 지닌 에너지는 무지막지합니다.]하지만 멍하니 위시 스톤을 바라보는 것도 잠시였을 뿐이다. 그는 몸속 어딘가에서 피어나기 시작한 열기가 온몸을 불사를 듯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하자 식은땀을 흘렸다.
[탐욕의 권능이 당장 위시 스톤을 먹어 치우라고 아우성을 칩니다.]제멋대로 일어난 권능이 폭주할 것처럼 마구 날뛰어 댔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손을 뻗어 위시 스톤을 잡으려고 했던 그가 필사적으로 팔을 뒤로 뺐다.
[탐욕의 권능이 더욱 더 날뛰어 대기 시작했습니다. 이 탐욕스러운 권능은 당신이 위시 스톤을 섭취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위험합니다. 권능이 통제를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서둘러 스스로를 다스리지 않으면, 당신은 탐욕에 잠식되고 말 것입니다.]“이런 망할…….”
애써 태연한 척 욕설을 퍼부었지만, 그는 지금 죽을 맛이었다. 메시지의 말마따나 위시 스톤을 먹어치우고 싶어 안달이 난 권능을 통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거의 반쯤은 통제를 벗어난 탐욕이 멋대로 일어나 사방으로 검은 기운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크윽.”
김진우는 이를 갈았다.
정체가 뭔지 몰랐던 과거였다면 아마 그는 탐욕에 몸을 맡겼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탐욕의 권능은 지저에서도 가장 끔찍한 괴물, 밤의 현신이나 다름이 없었으니 그는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악의로 점철된 의지는 하이로드들을 말살하고 마침내 지저를 먹어치우고 싶어 안달이 난 게 분명했다.
비록 과거 한 번 격퇴당한 기억이 있어 쉽사리 본성을 보이지 않겠지만, 미리 경계해야 했다.
하지만 쉽지는 않았다. 탐욕의 권능은 이미 그의 본성이 되었고, 권능이 날뛰어 대는 것은 그 스스로의 마음이 동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지금 그는 마치 몇날 며칠을 갈증에 시달리다 오아시스를 발견한 사람처럼 참을 수 없는 해갈의 욕구에 온몸이 타들어가는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마른침을 삼켰다. 눈 딱 감고 탐욕에 몸을 맡기면 끝이다. 위시 스톤은 그가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포만감을 줄 게 분명했다.
그것은 이제껏 자신을 기만했던 배덕의 군주와 다른 이들에게 복수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다.
안 돼. 넘어가서는 안 돼.
저도 모르게 반쯤 손을 뻗었던 김진우는 스스로를 다잡았다.
탐욕스러운 식탐의 주체는 자신이지만 또한 자신이 아니기도 했다. 그것은 밤의 권능이자 본성이었으며, 그 끔찍한 괴수는 이 작고 보잘것없는 그릇이 다 차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언젠가 그 그릇이 가득 찼을 때 밤은 진짜 본성을 드러낼 것이다. 그리고 그는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괴물은 다시 깨어나기를 바라고 있었다. 한 번 패퇴 당했던 어둠이 아닌, 지상과 지저를 동시에 아우를 수 있는 새로운 육신으로 다시 지저를 먹어치우려고 하고 있었다.
밤은 탐욕스러운 놈이었지만 하이로드들의 힘을 잊을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고, 이번에야말로 그들을 말살하기를 원했다.
그 증오와 탐욕에 저항하기에 인간의 육신은 너무나 작고 보잘것없었다. 아무리 하이로드에 올라 육체가 새로 구성되었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는 버텼다.
탐욕은 쉽사리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 하찮은 인간의 육신은 괴수를 몰아냈던 외눈박이 군주의 힘을 계승했고, 수많은 대적자의 권능을 품고 있었다. 그런 육신을 쉽게 포기할 리가 없었다.
게다가 이 몸으로 말미암아 밤은 새로운 세상을 보았다. 그저 어둠뿐이었던 지저를 벗어나 괴수는 지상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볕 따스한 지상은 괴수가 보기에 몹시도 먹음직스러운 먹이였으리라.
욕망을 채우기 전까지 밤은 이 육신이 망가지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의 강력했던 열 군주조차 애를 먹어야 했던 괴수의 의지를 거스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저 이 열기가 육신을 완전히 불태우지 않는다는 게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아직, 아직은 네놈이 날뛸 때가 아니다.”
김진우는 으스러져라 이를 깨물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는 열기와 갈증이 서서히 가시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어느 순간이 되자 타는 듯했던 해갈의 욕구는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탐욕의 권능이 가라앉았습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릅니다. 탐욕은 여전히 안달이 난 상태이며, 언제든 기회가 난다면 위시 스톤을 먹어치우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게 지금 당장은 아닙니다.]메시지를 본 김진우가 뒤늦게 숨을 길게 내뱉었다.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니 활활 타오르던 배 속이 겨우 식어가는 느낌이었다.
[끔찍한 식탐과 탐욕을 이겨낸 당신의 의지력에 지저의 신비가 경의를 표합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지저의 신비는 당신에게 마땅한 보상을 치르기로 마음먹은 듯합니다.] [그 보상이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만약 알고 싶다면, 위시 스톤을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아야 합니다.] [지저의 보물의 되찾아 원래의 자리로 복구시킨다면, 어마어마한 보상이 주어질 것입니다.]끔찍한 탈력감 속에서도 그는 웃었다.
“누구 좋으라고.”
김진우가 다시 평정을 되찾았을 때, 이미 브륜테스는 사라지고 없었다.
“주인님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나와서 그녀를 집어삼켰어요.”
안젤라의 말을 듣고 나서야 상황 파악을 한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위시 스톤에만 신경을 쓰느라 브륜테스를 생각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 무심함의 대가는 그녀의 소멸이었다.
“물어볼 것이 많았는데.”
그는 쓰게 웃었다. 약속했던 안전은커녕 대가로 죽음을 맞아야 했던 브륜테스에 대한 애도보다는 아쉬움만이 남았다.
“그럼 돌아가자.”
“저건?”
옷자락조차도 남기지 못한 브륜테스가 사라진 자리에 덩그러니 놓인 위시 스톤, 김진우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당장은 네가 들고 있는 것이 낫겠어.”
겨우 한 고비 넘겼지만 밤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당분간 위시 스톤에 손을 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상황을 설명한 것은 아니었지만 안젤라 역시 타인의 에너지를 갈취하고 살아가는 존재였다. 생기에 대한 집착은 그녀 역시 질리도록 겪어온 일이라 금세 상황을 이해한 모양이다.
“그럼 정말로 돌아가지.”
김진우의 말에 안젤라가 위시 스톤을 챙겨 들었다.
다시 대미궁으로 돌아오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비록 지형이 변해 버려 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길 찾는 데 이골이 난 그였던지라 길을 잃지는 않았다.
게다가 앞을 막는 건 귀족이고 미궁이고 전부 박살을 냈으니, 빙 둘러 가는 법이 없었다. 당연하게도 그의 귀환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럼 브륜테스가 그 몸으로 왜 그렇게 멀리까지 필사적으로 도망쳐야 했는지는 영영 알 수 없게 되었네요.”
그간의 일을 전부 들은 도미니크가 아쉬운 얼굴을 해 보였다.
“짐작 가는 게 없는 건 아니야.”
“저도 짐작 가는 게 있긴 해요.”
김진우의 말을 받는 그녀의 시선이 위시 스톤을 향했다.
“아마도 위시 스톤을 노리는 이가 있었겠죠.”
그렇지 않고서야 이미 전향을 마음먹은 브륜테스가 그를 기다리지 않고 도망쳤을 리가 없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범인은 한정되어 있었다.
“다른 군주들이 의심스럽다.”
브륜테스가 어떻게 몸을 숨긴 것인지 그 방법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건 당장 중요한 게 아니었다. 요컨대 지금은 그녀를, 위시 스톤을 노리는 이가 누구인지가 중요했다.
그리고 그게 누구였는지는 금세 밝혀졌다.
“왕이시여! 적이 이쪽을 향해 오고 있나이다!”
어둠 속에서 불쑥 모습을 드러낸 릭샤샤의 보고에 김진우가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