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298)
던전 견문록-298화(298/319)
# 298
던전 견문록
제 299 화
보다 농밀해지는 죽음,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부정한 존재의 태동, 전장을 가득 메우고 있던 사체들이 한데 뭉치더니 이내 거대한 괴물이 되었다.
[통곡의 군주가 소환한 끔찍한 존재, 누더기 괴물이 전장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사자의 육신을 기워 망령의 원과 한으로 불러일으킨 이 공포스러운 괴물은 통곡의 권능이 지닌 정수 그 자체입니다.] [살아 있는 자라면 응당 누려야 할 안식의 권리를 강탈당한 망자들은 산 자를 끝도 없이 증오하게 되었습니다. 수천수만의 망자가 품은 한맺힌 증오가 누더기 괴물을 움직이는 원동력입니다.] [이 농밀한 에너지는 살아 있는 자의 몸을 굳게 만들고 영혼이 얼어붙게 만드는 끔찍한 것입니다.]피와 살점이 뭉친, 비대한 육신이 흉물스럽게 꿈틀거리며 몸집을 키워 나갔다.
[다행스럽게도 발홀을 지키는 에인헤리들은 망령에 가까운 존재들입니다. 그들은 누더기 괴물의 사기에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나가들은 주인에 대한 맹신을 바탕으로 누더기 괴물의 사기를 이겨냈습니다. 괴물의 기세에 눌려 그들의 손발이 굳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입니다.]발홀의 성벽 위를 바삐 오가는 에인헤리들도, 언제든 떨치고 나설 수 있도록 대기 중인 나가들도 누더기 괴물이 뿜어내는 사기에는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안심할 수는 없었다.
그만큼 통곡의 군주가 소환한 괴물의 존재감은 대단했다. 과연 그녀의 권능이 지닌 정수라고 할 만 했다.
그워어어어어.
누더기 군주의 육신에 돋아난 수천 개의 이빨이 아그작거리며 울부짖었다.
발홀의 성벽만큼이나 높게 치솟은 머리통은 언제라도 성벽에 머리를 처박고 턱을 아구아구 댈 것 같았고, 보기 흉하게 늘어진 팔은 당장에라도 성벽 위를 오가는 에인헤리들을 쓸어낼 것처럼 위협적이었다.
“묠니르는 최우선적으로 저 괴물을 타격한다!”
김진우가 사납게 외쳤다. 이제껏 호의적인 태도를 보여 왔던 통곡의 군주가 왜 저들과 함께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삶과 죽음이 오가는 전장에서 피아의 구분은 명료하기만 했고, 그 안에서 캐서린은 절대로 아군이 아니었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타격하라 명령했고, 모리건과 백오는 성실하게 그 지시를 수행했다.
십수 개의 벼락이 거대한 괴물에게 내리꽂혔다. 잠깐이나마 그 육신이 찢겨지고 타들어갔지만 손실된 육체는 눈 깜짝할 사이에 수천의 시체를 기워 붙여 복구되고 말았다.
그제서야 김진우는 왜 하이로드들이 의미 없는 희생을 강행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전장에 가득한 시체들이 누더기 괴물을 지탱하는 근간이었다.
“저건 저도 못 잡아요.”
어지간해서는 놀라는 법이 없는 안젤라마저도 저 짝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흉악한 괴물에게는 질린 모양이다. 창백하게 바랜 얼굴을 한 그녀가 뾰족한 음성으로 그에게 경고했다.
“생기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으니, 제가 지닌 모든 권능이 저 괴물에게는 통하지 않을 거예요.”
사정은 그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 괴물의 근원은 죽음 그 자체였고, 평소 못 먹는 것이 없던 탐욕의 권능조차도 죽음을 먹어치울 수는 없었다.
편식 않는 식탐마저도 통하지 않는 상대를 만난 것이다.
하지만 그는 눈썹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나름대로 저들이 자신을 상대하기 위해 공을 들였다는 것은 알게 되었지만, 그저 그뿐이었다.
먹어치울 수 없다면 부숴 버리면 그만이다.
그렇게 마음먹은 김진우가 막 누더기 괴물을 향해 움직이려 했을 때, 메시지가 다시 한 번 떠올랐다.
[통곡의 군주가 새로운 누더기 괴물들을 소환해냈습니다.] [비록 그 크기가 처음의 것보다 작기는 하지만, 그렇기에 새로운 누더기 괴물들은 상대하기 더욱 까다로울 수 있습니다.] [총 세 마리의 누더기 괴물이 추가적으로 소환되었습니다.]“너무하네.”
이쯤 되면 어지간히 독하게 마음먹은 그라고 해도 인상을 찌푸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가장 처음에 소환되었던 누더기 괴물은 발홀의 성벽을 향해 돌진했고, 나머지는 김진우 쪽으로 달려들었다.
“냄새 한번 고약하군.”
시체 썩는 냄새에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그는 침착하게 누더기 괴물을 막아섰다.
콰직.
잠깐의 충돌, 그들의 육신이 깎이고 부서지고 잘려 나갔다. 하지만 누더기 괴물들은 제 육신이 축나는 것을 전혀 꺼리지 않았다.
박살 난 육신을 복구할 시체가 온 사방에 가득했던 탓이다. 역시나 예상대로 괴물의 육신은 금세 복구가 되었다.
“후우.”
김진우의 표정이 굳었다. 비록 단 한 번의 격돌이었고 그로 인해 작은 이득을 보기는 했어도, 누더기 괴물들의 육신은 생각 이상으로 질겼다. 이대로라면 장기전이 될 게 뻔했다.
그리고 그의 생각대로 전투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몇몇 공작이 제 스스로의 목숨을 끊었고, 누더기 괴물들이 그들의 육신을 흡수했다. 그 이후부터는 지루한 소모전이 되었다.
그러던 사이에 천장거인 군주와 야수왕이 끼어들었다. 천장거인 군주는 일부러 힘을 숨기고 패배했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매섭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보다 까다로운 상대는 따로 있었다.
바로 야수왕이었다. 거대한 늑대로 화한 그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날렵했고, 또 사나웠다.
이빨이 스쳐간 공간이 찢겨지고 발톱이 할퀴고 간 대지가 그대로 쪼개져 나갔다. 조금이라도 틈을 허용했다가는 육신이 갈기갈기 찢겨지고 말 것 같은 위기감이 그를 짓눌렀다.
“그렇게 잘난 척하더니, 꼴좋군.”
자신을 향한 김진우의 일격을 누더기 괴물을 방패 삼아 막아낸 천장거인 군주가 이죽거렸다.
“마음껏 떠들어대라. 지금 난 네놈을 먹어치울까 고민 중이니까.”
상황은 급박했지만 말을 받아칠 여유 정도는 있었다.
무려 하이로드들과 끔찍한 괴물의 협공을 받으면서도 좀처럼 열세를 보이지 않는 그의 저력에 천장거인 군주가 질린 얼굴을 해 보였다.
“헛소리. 우릴 집어삼키면, 네놈도 온전하지는 못할걸.”
천장거인 군주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 스스로도 나가라자의 힘을 불러내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지금도 자신을 풀어달라고 아우성치는 몸 안의 괴물은 저들을 먹어치우는 즉시 본성을 드러내고 그의 육신마저 강탈할 것이다.
김진우는 그런 상황을 바라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본신의 힘만으로 그들을 상대해야 했다.
그리고 가장 강력한 탐욕의 권능이 봉쇄당한 그에게 천장거인 군주와 야수왕은 쉽지 않은 상대였다.
천장거인 군주가 제 주먹을 거대화시켜 철퇴처럼 내려찍었다. 때를 맞춰 야수왕이 이빨을 들이밀었고, 누더기 군주들이 달려들었다.
피하자니 사방이 적이었고, 막아내자니 천장거인 군주의 거력이 부담스러웠다. 그는 누더기 괴물들 중 하나를 짓뭉개며 조금은 손해를 보는 걸 선택했다.
“꼴좋구나.”
야수왕의 송곳니에 등판이 길게 찢겨져 나간 김진우를 본 천장거인 군주가 기고만장해서 입을 놀려댔다.
“쓸데없이 그를 자극하지 마라. 그리해서 좋을 건 없다.”
야수왕의 말에 천장거인 군주가 찔끔한 얼굴을 해 보였다. 혹시라도 그가 이판사판으로 탐욕의 권능을 사용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적절한 충고야. 그렇지 않아도 지금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거든.”
탐욕의 권능을 사용하면 전투는 대개 단순하게 끝이 나게 마련이다.
이제까지 모두 그런 식으로 강적들을 상대해 왔던 그는 스스로의 감각이 무디어진 것을 실감하고 있었다. 가장 강력한 무기를 잃자 그런 사실이 더욱 뼈저리게 느껴져 왔다.
하지만 좌절하진 않았다. 몸의 이곳저곳에 놓인 상처에서 느껴지는 화끈한 고통이, 또 하이로드들과 누더기 괴물들이 뿜어내는 압박감이 오히려 그를 생생하게 만들었다.
그래. 이래야 지저지.
그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긴장감에 차라리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고, 그 모습을 보고 배알이 뒤틀린 천장거인 군주가 다시금 달려들었다.
– 주인님, 도와드릴게요.
– 아니, 너는 상황을 더 지켜보도록 해. 이들이 준비한 게 과연 이걸로 끝일까. 너는 만약을 준비해.
그의 전투를 두고 보기 힘들었는지 안젤라가 합류의 의사를 전해왔다. 하지만 그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세 하이로드가 준비한 수가 이것으로 끝이란 생각을 할 수 없었던 탓이다.
누더기 괴물, 충분히 위협적이고 강력한 적이다. 두 하이로드의 합공 역시 상대하기 쉬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아직까지 여유가 있었고, 그래서 오히려 불안해졌다.
이제까지 철저하게 자신을 기만해 왔던 캐서린은 신중하고 교활한 여자였다. 그런 그녀는 어지간한 확신이 있지 않고서야 본색을 드러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안젤라만큼은 만약을 대비해 남겨두고 싶었다.
– 위시 스톤을 지켜. 너라면 저 안쪽에서도 상황을 지켜볼 수 있겠지.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
머리로는 안젤라에게 지시를 내리며, 입으로는 천장거인 군주에게 물었다.
“그렇게 위시 스톤이 필요했다면, 네놈들이 직접 나서서 구했다면 되지 않았나? 사실 나는 그것에 대해 그다지 흥미가 있진 않았거든.”
맹렬한 합공 속에서도 입을 놀려대는 그에게 질렸는지, 슬며시 물러나 틈을 보고 있던 야수왕과 천장거인 군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들을 대신한 것은 낮게 가라앉은 여인의 음성이었다.
“그 생각이 아직까지 변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까울 뿐이야.”
“캐서린.”
누더기 괴물들만을 내세운 채 후방으로 물러나 있던 통곡의 군주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왜 생각이 변한 거지? 너는 지저와 지상의 통합을 막자는 입장이었잖아.”
캐서린은 진정으로 안타깝다는 얼굴이었다.
“내가 아닌 누가 멋대로 열쇠를 사용하는 걸 원하지 않았으니까.”
그녀의 등장과 동시에 뒤로 물러난 누더기 괴물들이 슬금슬금 몸을 돌려 발홀을 향해 접근했다. 그 너머로 이제껏 몸을 사리고 있던 거인과 짐승들의 대군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단지 그것 때문이야?”
캐서린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그는 전장을 살펴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조금씩 힘이 달려가기 시작한다. 누더기 괴물들에 이어 하이로드들의 본대마저 전투에 참전하면 아무리 발홀이라고 해도 버텨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지나친 혹사로 묠니르마저 재충전의 빈도가 잦아지고 있으니, 이제는 에인헤리들마저 나서서 성벽에서 악을 써댈 지경이었다.
그나마 어느 순간부터 대미궁을 향해서만큼은 적들이 접근하지 않게 되었다는 게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그 다시없을 보물을 손에 움켜쥐고 놓지 않는 이유가, 단지 그뿐이라고?”
캐서린 역시 전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아는 것인지 느긋한 얼굴로 물었다. 다른 하이로드들도 그녀의 합류로 한결 여유가 생긴 모습이었다.
“나야말로 궁금하군.”
그런 그들을 보며 김진우가 물었다.
“대체 위시 스톤이 필요한 이유가 뭐지? 설마 너희들도 사실은 지저와 지상의 통합을 바랐다는 건가?”
그의 질문에 캐서린이 대뜸 깔깔대며 웃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