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315)
던전 견문록-315화(315/319)
# 315
던전 견문록
제 316 화
권유라기보다는 숫제 협박에 가까운 메시지였다.
[위시 스톤이 지닌 가능성은 그 어떤 권능보다 가치 있고 대단합니다.] [지저의 신비는 절대로 당신의 수고와 결단을 허투루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지저 역사상 최초로 당신을 유일무이한 지배자로 인정해 줄지도 모릅니다.] [찬탈자가 오랜 시간 지배자로 군림해 왔고, 당신 역시 폭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왕과 같은 위엄을 얻었으나 그 위엄과 권위는 압도적인 폭력으로 이룬 반쪽짜리에 불과합니다.] [지저의 신비와 지저수의 인정을 받는다면, 당신은 그 나머지 반쪽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위시 스톤을 본래의 자리로 돌려놓고 지저수의 보상을 받으시겠습니까?]그 어떤 결정도 내리지 않은 채 빤히 보고 있자니 다시 메시지가 떠올랐다.
[지저의 진정한 왕이 된다는 것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대단한 일입니다. 수많은 존재가 당신의 눈치를 살필 것이며, 지저에 존재하는 모든 미궁과 그 주민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일족의 탄생에 관여할 수 있습니다.] [당신을 적대하는 이에게 끝도 없는 불운을 선사하여 제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걷도록 할 수 있습니다.] [지저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 누구도 당신의 의견에 반대하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만 결단을 내린다면 지저의 신비는 기꺼이 당신을 지저의 유일한 왕으로 인정해 줄 것입니다.] [위시 스톤을 제자리로 돌려놓으시겠습니까?]기분 탓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김진우는 어쩐지 메시지가 조바심을 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껏 다소 방관자적인 입장을 취해 왔던 뉘앙스와는 다르게 적극적으로 위시 스톤을 본래의 자리로 돌려놓을 것을 강요하고 있었다.
그 대단하다고 내세운 온전한 지저왕의 권위조차도 되지도 않을 행사의 싸구려 증정품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지저의 왕으로 군림한다는 것은 더는 생존의 위협이나 그 어떤 위험도 없이 지저를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지저의 신비가 존재하는 한 이 절대적인 권위와 영향력은 사라지지 않습니다.]그때까지만 해도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하던 김진우의 얼굴이 묘하게 바뀌었다.
“지저의 신비가 존재하는 한 권위를 보장 받는다라…….”
[지저수의 뿌리는 절대로 썩지 않고, 가지는 부러지지 않습니다. 그 끝에 매달린 가장 작은 나뭇잎조차도 색 바래지 않고 영원할 것이니, 지저수는 영원불멸의 존재나 마찬가지입니다.] [지저의 신비 역시 지저에 어둠이 없어지고 볕이 들지 않는 한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그의 혼잣말이 마치 지저수나 지저의 신비가 사라지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라도 하는 것처럼 들렸던 모양인지, 화답이라도 하듯 대뜸 메시지가 떠올랐다.
“좋아. 결정했다.”
이때만큼은 시장통의 약장수처럼 시끄럽게 떠들어대던 메시지도 그가 말을 잇기만을 기다렸다. 그 침묵이 왠지 모르게 우습게 느껴져 피식 웃고 말았다.
“안내해. 그 원래의 자리라는 곳이 어디인지.”
[탁월한 선택입니다. 지저수와 지저의 신비는 작은 탐욕을 이겨낸 당신의 인내심에 경탄했습니다. 또한 지저를 위하는 그 헌신과 노력을 기꺼이 여기고 그에 합당한 보상을 내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메시지가 끝나기가 무섭게 바닥을 가득 채우고 있던 작은 뿌리와 풀잎들이 한 방향으로 몸을 눕혔다.
“이걸 따라가면 되는 건가?”
[위시 스톤이 본래 있어야 할 곳은 바로 지저수의 가장 높은 곳에 돋아난 가지입니다. 원래대로라면 어느 누구도 손댈 수 없었던 것이지만, 지저를 송두리째 바꿔 버렸던 끔찍한 전쟁은 고정되어 있던 위시 스톤마저 굴러떨어지게 만들었습니다.] [당신은 지저 최초로 지저수의 줄기와 가지를 밟고 올라설 수 있는 영광을 얻었습니다.]“그것 참, 대단한 영광이네.”
거창하게 떠들어대는 메시지가 무색하게 그는 시큰둥하게 감상을 표하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럼 다녀오도록 하지.”
“다시 돌아오실 때는 진정한 왕이 되어 계시겠군요.”
이제까지 위시 스톤을 보관해 온 덕에 안젤라는 그것이 제시한 보상에 대해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녀는 그가 앞으로 얻을 것을 마치 자기 일인 양 기뻐했다.
“왕의 뜻대로 모든 일이 풀리기를.”
“왕께서 얻고자 하는 모든 것을 이루소서.”
퀀투스와 릭샤샤를 비롯한 소환수들 역시 축하의 말을 건네며 조용히 그를 배웅했다. 그는 그 모든 인사와 배웅을 귀 기울여 듣고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주인님.”
마지막 순간까지 나서지 않고 있던 도미니크가 성큼 앞으로 내디디며 그를 불렀다.
그런데 유독 그녀만이 승리에 들뜬 다른 소환수들과는 다르게 초조하고 불안한 기색이었다.
“조심하세요.”
입 열어 조심스레 꺼낸 그 말조차 그의 무사귀환을 바라고 있었으니, 한창 옆에서 들뜬 얼굴로 지저수와 주인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던 안젤라가 의아한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아무리 나가들이 무저갱 출신이고 주인님이 밤의 권능을 이었다지만, 괴물을 봉인하고 위시 스톤을 찾은 공은 절대로 작지 않아요. 이 정도 공이면 무저갱이 아니라 지옥의 죄수라고 해도 지저의 신비가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을걸요.”
그녀의 말도 나름 일리가 있었다. 외눈박이 군주가 제 눈 하나를 바치고 보았던 미래, 지저의 멸망은 밤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런 멸망의 괴수를 제 오른손에 봉인한 구원자였으며 찬탈자가 유출시켰던 위시 스톤마저 손에 쥐고 있었다.
그런 그의 공이 있었으니, 메시지 또한 지저의 정당한 왕좌를 보상으로 언급하지 않았겠는가.
“꼭 무사히 돌아오세요.”
하지만 도미니크는 여전히 걱정에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 역시 막대한 보상을 약속받은 이답지 않게 표정이 어딘지 모르게 굳은 채였다.
그 모습이 꼭 절체절명의 싸움을 앞둔 것처럼 보여 안젤라는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을 해 보였다.
하지만 김진우와 도미니크 어느 누구도 입을 열어 그녀를 납득시켜 주지 않았다.
“그럼 정말 다녀오도록 하지.”
짧게 한마디를 남긴 그가 몸을 돌렸다. 그런 그의 앞으로 경배하듯 고개 숙인 숲이 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
“지금은… 지금은 아무것도 묻지 말고, 그냥 조용히 주인님이 돌아오시기만 기도해 줘.”
등 뒤로 도미니크가 안젤라를 토닥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진우는 다시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안내를 따라 지저수를 향해 걸었을 뿐이었다.
지저수는 거대했다. 대체 언제부터 존재해 왔는지 모를 거대한 몸통은 한눈에 채 담기지 않을 정도였고, 고개를 아무리 높게 쳐들어도 가장 높은 가지가 어디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크긴 정말 크군.”
그 무지막지한 크기에 김진우는 새삼 감탄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표정 어디에도 지저수의 압도적인 신성과 위엄에 짓눌린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지저의 신비가 그를 인도하는 탓이었는지, 그도 아니면 그가 꽉 움켜잡은 위시 스톤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지저수는 지저가 가장 작은 임프 하나 간신히 몸을 눕힐 정도로 좁고 작았을 때부터 존재해 왔습니다. 지저가 커져 가면서 지저수 역시 성장했고, 지금에 와서는 지저 어디에서나 눈에 들어올 정도로 거대해졌습니다.]언제부터인가 메시지는 직접적으로 그에게 말을 걸고 대답해 주었다. 덕분에 그는 이 정체불명의 메시지가 지저의 신비 그 자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제는 그다지 놀라울 것도 없었다. 지저의 신비는 아마도 이제까지 이런 식으로 지저를 운영해 왔을 것이다. 직접적으로 나서는 대신 적당한 보상과 페널티를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미궁의 주인과 소환수는 지저수의 의도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 역시 지금까지 메시지의 정보를 토대로 내린 결정이 적지 않았고, 모르긴 몰라도 그의 결단 중 많은 부분이 지저수의 의사와 부합되는 면이 있었으리라.
생각에 잠긴 사이 언제 생겨났을지 모를 계단이 눈앞에 나타났다. 굵은 줄기와 이파리로 만들어진 계단은 지저수의 몸통을 뱅뱅 돌아 끝도 없이 이어졌다.
“올라가는 것만 해도 한참이겠어.”
[이제까지 지저수를 오른 이는 지저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가장 작고 보잘것없는 줄기에 발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당신의 이름은 지저에 기억될 것입니다.] [더없는 영광에 경의를 표하고, 스스로의 마음을 경건히 하십시오.]그의 경솔한 언사를 꾸짖기라도 하듯 메시지가 떠올랐다.
“어련하시겠어.”
하지만 그는 여전히 시큰둥하기만 했다.
[삿된 마음가짐으로 지저수에 오르는 것은 그다지 권장하고 싶지 않습니다. 지저의 신비는 지저에 다시없을 축복과 보상을 내려줄 수도 있지만, 반대로 상상하지 못했던 끔찍한 저주를 내릴 수도 있습니다.]이번에는 제법 강하게 나오는 메시지, 하지만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은 김진우였다.
“이거 원하지 않아?”
그 가치에 비해 너무나도 볼품없이 생긴 돌덩이, 위시 스톤을 쥐고 흔드는 그의 손길이 금방이라도 저 아래로 집어던질 것처럼 위태로웠다.
메시지는 다시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래도 주도권을 누가 쥐고 있는 것인지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김진우는 그제야 만족스러운 얼굴을 해 보이고서는 지저수가 만들어낸 천연의 계단에 발을 올렸다.
그렇게 얼마나 올랐을까. 이제는 가장 거대한 나가와 에인헤리조차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은 곳에 다다랐다. 하지만 그래 봐야 이제 절반이나 올랐을까, 지저수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가지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 진짜 지저가 하나가 됐군.”
높은 곳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니 변해 버린 지저의 지형이 한눈에 들어왔다. 물론 어둠이 깊게 낀 저 너머의 지저는 보이지 않았지만, 더 이상 층의 구분도 없이 끝없이 펼쳐진 지저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 광활함이 느껴졌다.
그는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지저를 내려 보았다.
[저 넓은 지저를 통치하고 운영한다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무수히 많은 미궁과 또 그보다 많은 크리쳐는 하나하나가 개별적인 의사를 갖고 살아가는 존재들이며, 그런 이들을 지배한다는 것은 엄청난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만약 당신 스스로 그 모든 것을 이루고자 한다면 지저의 완전한 지배란 요원하기만 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저의 신비는 그런 당신을 도울 수 있습니다. 지저의 신비가 가호를 내린다면 그 어느 누구도 당신의 눈을 피할 수 없고, 당신의 의사에 반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대체 얼마만큼이나 넓게 확장되었을지 모를 지저를 홀로 지배한다는 건 차라리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수많은 미궁과 그 미궁을 지배하는 주인은 하나하나가 지독스러운 욕심쟁이였으며, 야망가였다.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귀를 쫑긋 세워도 보이지 않는 부분, 들리지 않는 것이 있게 마련이었다.
옛 군주들이 그렇게 어둠의 사각에서 자라난 야망에 희생되었고, 그 영광스러운 이름마저도 훼손되고 말았다. 자신이라고 같은 전철을 밟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서둘러야 합니다. 아직 갈 길이 멀기만 합니다. 이런 곳에서 지체하다간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정상에 도달할 수 없을 것입니다.]생각에 잠겨 있던 김진우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제는 하다하다 독촉까지 하는 메시지를 보니, 지저의 신비가 애달긴 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 역시 이런 곳에서 마냥 시간을 허비하고 있을 생각은 없었기에 잠시 멈췄던 걸음을 다시 서둘렀다.
그리고 그렇게 올라왔던 시간의 몇 배를 더 걷고 나서야 그는 지저수의 가장 높은 가지가 위치한 곳에 도달할 수 있었다.
[마침내 당신의 여정도 끝을 보입니다. 위시 스톤을 저 앞의 가지 위에 올려놓으면 모든 임무는 끝이 납니다.]작은 열매를 품은 듯, 끝을 오므린 가지 끝에 도달한 김진우는 위시 스톤을 꽉 움켜쥐었다.
[손을 뻗어 위시 스톤을 올려두기만 하면, 창대한 영광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어딘지 모르게 들뜬 기색마저 느껴지는 메시지에 김진우가 피식 웃었다.
“근데 정말로 왕의 권위는 영원한가?”
[지저의 신비가 사라지지 않는 한, 그 권위는 영원합니다. 그 어느 누구도 지저의 신비가 인정한 권위와 위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그래?”
그는 당장에라도 내려놓을 듯 내밀었던 손을 되돌렸다.
“그럼 지저의 신비는 어떻지?”
순간적으로 그의 질문을 알아듣지 못한 것인지, 이제껏 잘도 떠들어대던 메시지가 이번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지저의 신비는 그 왕의 권위를 부정할 수 있는 건가?”
[진정한 왕의 위엄과 권위는 분명 대단하지만, 지저의 신비는 그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습니다. 지저의 신비는 지저 그 자체이며, 이 어두컴컴한 세상을 지탱하는 근간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왕의 권위와 위엄이 훼손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저는 스스로 나서 지배하고 통치하지 않으며, 지저를 살아가는 수많은 이는 직접적으로 당신의 지배만을 받게 될 것입니다. 당연하게 어느 누구도 당신의 위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이러니저러니 떠들어대도 결국은 지저의 신비보다 높은 격을 지닌 것은 없고, 그건 지저의 왕이라고 해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 말은 지저의 신비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그 왕좌를 빼앗을 수 있다는 말과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이 거대한 물푸레나무를 오르기 전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까지 온 것은 따로 생각하는 바가 있었던 탓이다.
“난 말이야.”
김진우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평생 동안 이용만 당하고 살아왔어. 처음부터 끝까지 내 인생에 다른 놈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적이 없었거든.”
그렇게 말하는 그가 손을 들어 위시 스톤을 흔들어 보였다.
“그런 나한테 꼭두각시 왕 자리를 줄 테니까, 감지덕지 받아들이라고 지껄여대면 내 심정이 어떨까.”
[지저의 신비는…….]“지저의 신비, 신비, 신비. 아주 진절머리가 나.”
어느새 검게 변색된 손이 위시 스톤을 움켜잡을 듯했다.
“그러니 이제 그만 내 인생에서 꺼져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