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317)
던전 견문록-317화(317/319)
# 317
던전 견문록
제 318 화
Epilogue
“분명 내가 봤다고! 그 구덩이는 마치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했다고!”
소문이 처음부터 구체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늘 그렇듯이 허세 떨기 좋아하는 사내의 허풍으로 시작되었다.
만취한 땅꾼의 이야기는 일고의 가치도 없었으며, 사람들은 그리 귀담아듣지 않았다.
“우리는 구멍을 보자마자 도망쳤어. 그 너머에서 흘러나오는 기이한 한기와 음습함이 우릴 소름 끼치게 만들었어. 그래서 우리는 평소 가던 길을 한참이나 돌아 이곳까지 와야 했지.”
평소였다면 그저 그런 술자리의 허풍으로 끝났을 땅꾼의 말이 다시금 사람들의 귀에 들어온 것은 근처를 지나던 여행자들의 입을 통해서였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대륙에 떠도는 괴담에 불과했다.
“구덩이 너머, 땅 밑에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소문이 살을 덧붙여 가기 시작했다.
“땅 밑 세상은 땅 위만큼이나 거대하고 광활했다. 감히 둘러볼 엄두조차 나지 않아 우리는 그 입구를 본 것으로 만족하고 돌아와야 했다.”
“기괴한 괴물이 그 안을 방황하고 있었어. 장담하건대 그 괴물들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놈들일 거야.”
소문은 조금씩 구체적으로 변했고, 어둡고 음습한 동굴 너머로 괴물을 목격했다는 이들의 증언이 쏟아져 나왔다.
“미쳤던 거야. 분명 내가 그날 어떻게 된 게 틀림없어. 그렇지 않고서야 그 끔찍한 곳에 제 발로 들어갔을 리가 없으니까.”
개중에서 제법 용하다고 알려진 약초꾼의 이야기는 천리마보다 빠르게 온 세상으로 퍼져 나갔다.
“제정신이 아니었어. 듣도 보도 못한 온갖 괴물이 배회하는 그곳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어. 하지만 이놈의 길이 어찌나 복잡한지 그만 돌아오기가 쉽지 않더라고.”
약초꾼은 이제까지 그 구덩이의 언저리만을 보았다던 이들과는 다르게 제법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던 모양이다.
“그런데 한참을 헤매다 보니, 엄청난 게 있지 뭐야. 그 황홀한 자태라니!”
약초꾼은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게 빛나던 성을 보았노라 말했다.
“분명 틀림없이 황금이었다고! 그 커다란 성이 전부 황금으로 만들어졌다니! 처음에는 눈을 의심했어. 하지만 아무리 지켜보아도 사라지지 않았고, 난 마침내 현실을 직시하게 됐지. 내 눈앞에 황금으로 만들어진 성이 있었던 거야!”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에 누군가가 딴지를 걸었다.
“그럼 그 황금은 어디 갔수? 간 김에 한 덩이 뜯어오지. 설마 당신 말이 사실이라면 황금으로 만들어진 성을 눈앞에 두고 빈손으로 왔다는 거잖아. 그걸 누가 믿겠어.”
“그러고 싶었지! 그러려고 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고!”
성의 주변을 배회하는 괴물들 때문에 감히 자신은 성에 가까이 접근할 수 없었노라며, 그는 한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런 약초꾼의 이야기를 믿어준 것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사내였다.
“소문은 전부 사실이었다. 땅 밑에 새로운 세상이 존재하고 있고, 그 너머에는 황금으로 만들어진 성이 있다. 그 성은 놀랍도록 날렵하고 용맹한 전사들에 의해 보호받고 있었다.”
사내는 제법 이름이 알려진 보물 사냥꾼이었고, 약초꾼이 말해준 정보를 토대로 구덩이 너머를 탐사하고 돌아와 그렇게 소문이 사실이라 증언했다. 그의 말은 그저 그런 땅꾼과 여행자, 약초꾼의 이야기와는 그 파급력이 달랐다.
“하지만 간과하지 마라. 소문의 황금성이 사실이었던 것처럼, 땅 밑을 배회하는 괴물들 역시 실재한다. 그들에 의해 나는 동료 전부를 잃어야 했다.”
소문은 사실이 되었고, 이야기는 널리 퍼져 이제 온 세상의 사람들이 구덩이와 그 너머의 세상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대번에 사람들이 구덩이를 향해 몰려들었다.
“오오! 소문이 진짜였어!”
“이런 것이 있다니.”
사람들은 구덩이의 실존에 열광했고 그 너머에 있을 황금성의 존재에 벌써부터 군침을 흘렸다. 그들은 희망과 기대를 품고 그 안으로 몸을 던졌으나, 그중 돌아온 이는 소수에 불과했다.
“마나석이 지천에 널려 있다. 그런데 그 마나석을 지키는 괴물이 너무나 많다.”
수많은 이가 돌아오지 못하고 그대로 사라졌지만,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더욱더 흥분했다. 황금성의 존재도 존재지만 귀하디귀한 마나석이 땅 밑에 가득 하다는 말에 눈이 돌아간 것이다.
하기야 갓난아기 엄지손톱만 한 마나석만 있어도 팔자를 고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으니, 탐욕에 눈이 돌아갈 만했다.
더욱더 많은 사람이 구덩이로 몰려들었고, 또 그렇게 사라졌다. 생존자는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몰려든 이들 중에는 제법 이름이 난 모험가와 보물 사냥꾼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 중 몇몇이 마나석을 채취해 오는 데 성공했다.
“저 아래 세상은 어쩌면, 신들의 노여움을 받아 사라졌던 고대의 흔적일지도 모른다.”
모험가들의 말은 제법 설득력이 있었다. 이제 사람들은 구덩이 안쪽의 세상이 잊혀졌던 고대의 도시일 거라 생각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더욱 몰려들었다. 이제는 대규모로 인원을 꾸려 구덩이 너머를 탐색하는 이들마저 생겨날 정도였다.
그들은 다방면의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그만큼 경험이 풍부하고 능력이 출중했다.
당연하게도 생존율이 낮지 않았고 그만큼 많은 마나석들이 세상에 유출되었다.
세상이 발칵 뒤집어진 것도 그 즈음이었다.
“이 구덩이는 우리가 접수하겠다.”
인간들의 천적이라 할 수 있는 마족들이 구덩이 너머의 세상을 자신들의 영역으로 선포한 것이다. 마나석을 얻기 위해 몰려들었던 모험가 대다수가 마족들에게 살해당했고, 그보다 많은 수의 여행자와 보물 사냥꾼이 그 근방에서 쫓겨났다.
“마족들의 목적은 저 땅 밑 세상에서 나온 마나석을 모아 마왕을 소환하려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소환에 성공한 저들은 저 음습한 세상을 자신들의 전초기지로 만들리라.”
이름 높은 현자의 경고에 사람들이 경각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제 구덩이는 그저 마나석이 무진장 쌓여 있는 보물 창고가 아니라 화약고와도 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각국의 군대가 출병했고, 이름 높은 기사와 마법사들이 마족 타도를 외치며 몰려들었다. 그 와중에 전설로 불리던 용사의 일족이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고, 자애롭기로 소문난 성녀가 그 일행이 되었다.
인간들의 사기가 하늘을 찔렀다. 마족들의 힘이 강하긴 하나 그들은 이 거룩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과연 인간들의 저력은 대단했다. 희생이 크기는 했지만 그들은 마족들이 오염시킨 지역 대다수를 정화하는 데 성공했고, 종내에는 구덩이 아래의 세상만이 마족들의 영역으로 남게 되었다.
하지만 진짜 전쟁은 그때부터였다. 어두운 땅 밑 세상은 마족들의 세상이었고, 수도 없이 많은 이름난 기사와 마법사가 어둠 속의 칼날을 피하지 못하고 명을 달리 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마족들은 약삭빠르게 피아를 구분하지 않는 땅 밑 세상의 괴물들을 이용해 인간과 그들을 상잔시켰다.
그간의 승리가 마치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패전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마왕이 강림하면 이 세상은 끝이다.”
마왕에 대한 공포가 그들을 계속해서 움직이게 만들었다.
“포기하지 마라. 지금 흘릴 한 줌 피가 훗날 더 큰 재앙을 막는 초석이 될 것이다.”
용사의 분투에 고무된 인간들은 마지막 힘을 쥐어짰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전투, 인간들은 마족들의 본거지가 생각보다 땅 밑 세상의 외곽에 위치한 것이 의아했지만 함정은 아니라 판단했다.
그래서 최후의 전력을 모아 결전을 준비했다.
“사악한 마족 놈! 네놈들의 헛된 꿈도 이제 끝이다!”
“눈엣가시 같은 놈, 네 놈들의 혈족을 뿌리 뽑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다.”
용사와 마주한 마족들의 지도자는 이를 갈아 붙였다. 하지만 그도 잠시였을 뿐, 이내 히죽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이미 모든 준비는 끝이 났고, 이제 그분께서 깨어나실 것이다.”
용사와 인간들은 경악했다. 하지만 아직 의식이 완료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맹렬하게 공세를 펼쳤다. 마족들은 인간들의 총력을 기울인 공격을 필사적으로 막아냈다.
“이제 이 땅 밑 세상은 그분의 온전한 영토가 될 것이다. 죽음과 마기만이 가득 찬 세상에서 인간들에게 이로운 건 그 무엇 하나 존재하지 않게 되리라.”
마족의 말에 용사와 몇몇이 목숨을 건 돌격을 감행했다. 수많은 이가 끝에 이르기도 전에 죽거나 다쳤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마침내 의식의 중심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런…….”
하지만 그들이 도달했을 때는 이미 늦고 난 후였다. 언제부터인가 강렬하게 빛나기 시작한 마법진이 음울한 오라를 토해냈던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마침 이곳의 마나가 우리와 제법 잘 맞더군. 덕분에 모자란 것은 의식을 진행하며 자체적으로 조달할 수 있었다.”
마법진은 끊임없이 주변의 지기와 생기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 끔찍한 오라에 휘말린 마수들과 인간들이 덧없이 죽어가고, 그럴수록 마법진의 빛은 강렬해졌다.
“제가 시간을 벌겠어요! 그 사이에 부디!”
그때 성녀가 나섰다.
성녀는 무릎을 꿇고 더없이 경건한 태도로 기도를 올렸다. 세상에 다시없을 신성한 기운이 그녀의 몸에 강림했고, 그 기운이 퍼져 나가 마법진의 빛을 억눌렀다.
“이 틈에 어서!”
동료들의 희생을 발판으로 마침내 마족 앞에 도달한 용사는 신검을 휘두르며 그들을 몰아붙였다. 하지만 과연 마족 중의 마족답게 상대는 쉽게 쓰러지지 않았고, 용사는 더욱더 초조해졌다.
성녀의 신성력이 조금씩 약해진다. 신의 사랑을 받는 여인이지만 인간의 몸으로 너무 많은 신성력을 사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 힘으로 억제했던 마법진의 기운도 서서히 다시 강해지기 시작했다.
다시 지기가 빨려들어 마법진이 강해지고, 그만큼 신성력이 밀려났다.
“크큭. 이제 곧이다. 그분께서 곧 깨어나 그대들의 오만과 위선을 잘게 바수어주시리라!”
속이 빤히 보이는 도발이었지만, 용사는 속수무책이었다. 조급한 마음에 손발이 어지러워지니 급기야 크나큰 부상마저 입고 말았다.
결국, 용사는 마왕의 강림을 막을 수 없었고, 의식은 막바지에 이르렀다.
“좋구나. 벌써부터 그분의 향기가 느껴진다.”
마족은 지기가 고갈되어 황폐하게 변해 버린 주변을 둘러보며 기고만장해 외쳤다.
신성력이 고갈된 성녀가 끝내 피를 토하며 의식을 잃고 말았다. 신성력에 의해 조금이나마 억제되던 마법진이 더욱더 가열차게 빛나기 시작했다.
“이놈!”
용사는 절망했다. 뒤를 받쳐 주던 동료들마저 마족들에게 둘러싸여 하나둘 쓰러져 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마법진의 마기가 강해지며 움직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그는 분노했고, 좌절했다.
“이제 이곳은 죽음만이 오직 유일한 법칙인 세상이 될지니, 그분께서 강림하사 온 세상을 이와 같이 만들리라!”
거만하게 떠들어대는 마족의 말조차도 그는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대신 나서서 마족의 말을 막은 이가 있었다.
“그건 좀 문제가 있겠는데?”
“네놈도 용사의 동료인가!”
갑작스레 난입한 음성에 마족이 깜짝 놀라 외쳤다가 이내 표정을 가다듬고 이죽거렸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 봐야 늦었다. 이미 그분께서 스스로의 의지로 이곳에 오시기로 마음먹으셨으니, 이를 막을 수 있는 자,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리라.”
그 말에, 검은 머리에 노란 피부가 다소 이질적인 사내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런, 내가 너무 늦장을 부렸나.”
사내의 시선이 마법진을 향해 있는 것을 본 마족이 더욱더 신이 나 떠들어댔다.
“그분께서 오시면 이 땅을 왕국의 기초로 삼아, 세상을 지배할 것이매 그대들의 죽음은 그 거룩한 시작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이거 아주 웃기는 놈이네.”
점점 더 기세를 더해가는 마법진, 음산하게 떠들어대는 마족, 그 어느 하나 위험스러워 보이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사내의 말투는 마치 어디서 개가 짖나 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엄연히 땅 주인이 있는데, 엉뚱한 놈이 와서 내 땅입네 뭐네 하고 떠들어대고 있는 게 아주 웃기지도 않아.”
“뭐?”
그제야 사내가 마법진의 마기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마족이 굳은 얼굴을 해 보였다.
“외곽에서 알짱대는 게 제 분수를 아는 것 같아 그대로 뒀더니, 하는 꼴이 가관도 아니네.”
“그게 무슨…….”
상황을 채 파악하지 못해 얼이 빠진 마족의 얼굴을 보며, 사내, 김진우가 못마땅한 얼굴로 말했다.
“여기 내 땅이라고, 이 새끼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