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34)
던전 견문록-34화(34/319)
# 34
던전 견문록
제 35 화
#14. 미궁전
나가의 미궁은 완전히 임전 태세를 마친 상태였다. 나가 일꾼이고 용사고 할 것 없이 모든 병력이 게이트에 집결해 있고, 그동안 힘들게 준비한 함정이 모두 발동되어 교룡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할 수 있는 한 모든 준비를 마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진우는 여전히 초조해 보이기만 했다.
[4등급 나가의 미궁이 5등급으로 업그레이드 중입니다. 현재 업그레이드 완료까지 02:14:59초 남았습니다.]이제 겨우 두 시간만 더 버티면 새로운 병력이 충원되는 시점, 그야말로 피가 마르는 시간이다.
김진우는 더없이 간절하게 교룡들이 늦게 도착하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시간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콰앙!
꽤나 먼 거리에서 들려온 폭음, 누군가가 함정을 건드렸다. 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서 함정을 건드릴 존재는 하나밖에 없었다.
교룡, 교룡이 미궁의 외곽까지 도착한 것이다.
“온다! 전투 준비!”
미궁으로 들어오는 통로마다 얼마 안 되는 폭약과 온갖 자원을 망라하여 만든 함정으로 도배했다.
하지만 함정 매설을 지시한 김진우도, 매설 작업을 지휘한 도미니크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준비한 함정이 교룡을 어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거란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탓이다.
아니나 다를까, 쿵쾅거리는 발소리가 멀리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파충류 특유의 비릿한 악취가 벌써부터 넘실거리며 게이트를 넘어오고 있었다.
“사격 준비!”
김진우의 지시에 나가 일꾼들이 일제히 산탄총을 들어 올렸다. 그간 꾸준히 훈련을 해온 터라 처음 산탄총을 잡았을 때와는 달리 제법 능숙해진 모습이다.
“도미니크, 뒤로 물러나 있어.”
‘저도 싸울 수 있어요!’
그런 나가 일꾼들 사이에 자리를 잡은 도미니크가 언제 꺼내 들었는지 모를 산탄총을 꽉 부여잡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어차피 미궁이 뚫리면 저는 소멸돼요. 앉아서 기다리느니 차라리 싸우는 걸 택하겠어요.’
듣고 보니 김진우 역시 사정이 그리 다르지 않았다. 어차피 미궁의 핵이 파괴되면 자신도 무사할 수는 없으니 결사 항전 외에는 따로 방법이 없었다.
결국 그녀를 말리는 것을 포기한 그는 퀀투스와 오르테아가를 바라보았다.
“왕이시여, 장담컨대 간악한 교룡 중 어느 누구도 이곳을 넘지 못할 것입니다.”
퀀투스가 가슴을 쳐 보이며 호언장담을 했다.
“흥! 그깟 교룡들 따위, 내 눈빛만 봐도 도망치고 말걸!”
오르테아가는 여전히 근거 없는 자신감을 내보였다.
“부디 그러길 바라지.”
그 변함없는 모습에 왠지 마음이 한결 가라앉은 김진우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그도 잠시, 조금씩 가까워지는 교룡들의 발소리에 그의 표정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뿌우! 뿌우우!
멀리서 뿔 나팔 소리가 이어진다 싶더니 바로 심장을 두들기듯 강렬한 북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후우, 후우.”
나가들의 낮은 숨소리가 귓가 가득 들려왔다. 용맹하고 후퇴를 모르는 저 나가 용사들마저도 교룡들의 진군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뿌우우우우우!
방금 전보다 한층 더 길어진 뿔 나팔 소리, 뒤이어 발소리와 북소리가 뒤섞여 들려왔다.
“후! 하!”
퀀투스가 기세를 북돋으려는지 짧게 바람 소리를 냈다. 나가들이 그 소리에 맞춰 방패로 바닥을 찍거나 거칠게 숨을 내뱉었다.
하지만 아직은 부족하다.
당장에라도 모습을 드러낼 것처럼 들려오는 나팔 소리와 북소리를 이겨내기에는 기세가 부족했다.
그래서 김진우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교룡들만! 교룡들만 막아다오! 교룡왕은 내가 반드시 거꾸러뜨릴 테니!”
이미 아낙스투스의 약점이 무엇인지도 들어 알고 있다.
드라칸과 나가들이 교룡의 선발대만 막아주면 어떻게든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몇 번이고 나가들을 다독였다.
[던전 오너의 참전은 나가들에게 더없는 영광입니다. 강대한 적을 맞아 승리를 부르짖는 오너의 외침에 나가들의 투쟁심이 증폭됩니다.] [일시적으로 나가들이 공포에 둔감해집니다. 공포를 잊은 나가들은 지저의 어떤 존재보다 용맹하게 싸울 것입니다.]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 창을 보며 김진우는 반색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조금은 숨통이 트이는 듯한 기분이다.
그 순간 교룡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교룡왕의 선발대는 전에 본 교룡들과는 확연하게 분위기가 달랐다. 전체적으로 덩치가 더 작은 대신에 다리가 조금 더 길고 꼬리가 뾰족한 것이 제법 민첩해 보였다.
하지만 마치 악어의 그것처럼 위협적으로 길게 빠진 주둥이와 톱니처럼 빼곡하게 박힌 이빨만큼은 전의 교룡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뿌우! 뿌우! 뿌우우!
나팔 소리의 호흡도, 북소리의 간격도 이제는 숨이 넘어갈 듯 짧아져 있다. 교룡들은 게이트에 집결한 나가들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 모습이 실로 위풍당당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그렇게 쿵쾅거리며 다가오던 교룡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이 되자 나팔 소리와 북소리마저 끊기고 말았다.
“발사!”
그 순간 김진우가 나가 일꾼들에게 외쳤다.
타타타탕!
귀가 아플 정도로 둔탁한 총성이 울려 퍼지더니 매캐한 화약 냄새가 온 사방을 가득 채웠다.
[교룡왕 아낙스투스가 보낸 선발대와의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나가의 미궁이 처음으로 치르는 미궁전입니다. 승리에는 막대한 보상이, 패배에는 가혹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행운을 빕니다.]급박한 상황을 알리듯 빨갛게 점멸하는 메시지.
그렇게 나가들과 교룡들의 전투는 총성과 화약 냄새로 시작되었다.
***
“다시 발사!”
김진우의 명령에 맞춰 나가 일꾼들이 탄창에 남아 있는 마지막 탄알을 소진하고는 일제히 뒤로 물러섰다.
“퀀투스! 오르테아가!”
“왕의 뜻대로!”
“맡겨만 달라고!”
그런 그들의 뒤를 이어 퀀투스와 오르테아가를 따르는 나가들이 전면으로 나섰다.
교룡들은 수백 발의 슬러그탄 세례에도 불구하고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역시나 지난번의 전투가 다소 이례적이었을 뿐, 지상의 무기는 지저에서 사용하기에는 턱없이 위력이 약했다.
크아아아악!
교룡들이 포악하게 목을 울려댔다. 성인 남성이 달리는 것보다 느린 돌격이었지만 그 기세만큼은 남달랐다.
그중에서도 발군의 기세를 뿜어대며 달려오는 두 마리의 교룡, 빨갛고 파란 벼슬을 흉악하게 부풀린 영웅급 교룡을 가리키며 김진우가 외쳤다.
“퀀투스! 오르테아가! 영웅급 교룡을 맡아!”
이미 사전에 이야기가 되어 있었는지라 퀀투스와 오르테아가는 그의 지시가 떨어지기도 전에 각자의 상대를 찾아 나선 참이다.
가장 먼저 교룡들과 맞붙은 것은 성질 급한 오르테아가였다.
애초에 자신의 단단한 몸을 믿는 것인지 다짜고짜 푸른 벼슬의 교룡에게 달라붙은 오르테아가가 길게 빠진 교룡의 주둥이를 후려쳤다.
크아아악!
그 바람에 영웅급 교룡이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을 치고, 뒤이어 달려오던 교룡들과 엉키고 말았다.
“용의 피라고는 한 줌밖에 되지 않는 잡종 놈이 어디서 건방지게!”
일격을 성공하고 기고만장해서 외쳐대는 오르테아가의 모습이 위풍당당하다.
하지만 이 성질 급하고 멍청한 드라칸은 자신이 전장의 한가운데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잊은 모양이다.
퀀투스가 상대하기로 한 붉은 벼슬의 영웅급 교룡이 오르테아가의 머리통을 꼬리로 후려쳐 버렸다.
“크악!”
오르테아가가 비명을 지르며 휘청거렸다. 정신이 없는지 고개를 흔드는 그 모습이 그렇게 한심해 보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타고난 거력이 어디 가는 건 아닌지 오르테아가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제 상대를 찾아 날뛰어대기 시작했다.
그 뒤를 퀀투스와 나가 용사들이 받쳐주었다.
“퀀투스 쪽은 열세, 오르테아가는 우세인가.”
좁은 통로 탓에 선두의 병력을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칼 한 번 휘두르지 못한 이들이 태반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투는 흉험하기만 했다.
피가 튀고 살점이 솟구쳐 올랐다. 교룡들과 나가들의 포효가 비좁은 통로를 마구 울려댔다.
“크아아악!”
이제 막 영웅급에 오른 퀀투스가 막아내기에는 영웅급 교룡이 너무도 강한 모양인지 퀀투스는 전투가 시작된 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음에도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처음의 호언장담처럼 단 한 걸음도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연신 뒷걸음질을 치는 건 오르테아가 쪽이었다. 아무래도 역린이 있는 배후를 신경 쓰다 보니 조금이라도 돌출되는 것을 꺼리는 기색이다.
그 바람에 어느 순간이 되자 퀀투스가 홀로 전방에 남아 교룡들을 상대하는 꼴이 되었다.
“이런 멍청한!”
좁은 통로에 다닥다닥 몰려 있는 나가들과 교룡들 탓에 시야도 좋지 않았고 워낙에 자연스럽게 상황이 변한지라 김진우가 그 사실을 눈치 챘을 때는 이미 늦고 난 후였다.
퀀투스가 교룡들에게 둘러싸여 온몸을 난도질당하는 것이 보였다.
“크악! 놔라!”
오르테아가가 뒤늦게 자신의 실책을 눈치 채고는 안간힘을 다해 교룡을 밀어내려고 했지만, 푸른 벼슬의 영웅급 교룡은 너무도 능숙하게 오르테아가의 발목을 차단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김진우가 자리를 박차고 내달렸다.
원래대로라면 아낙스투스를 만나기 전까지는 움직일 생각이 없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퀀투스를 지금 잃어서는 앞으로의 전투가 힘들어지고 만다.
푸른 광망을 흘리며 내달린 김진우가 나가들의 어깨를 박차고는 그대로 교룡들을 뛰어넘었다.
“퀀투스!”
“왕이시여!”
잠깐 사이에 한쪽 귀가 잘려나가고 온몸을 피로 도배한 퀀투스가 용케도 교룡들을 뿌리치며 대답해 왔다.
“여긴 내가 맡을 테니 물러서!”
대답 따위는 필요 없었다. 말이 끝나는 순간 김진우는 퀀투스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던 붉은 벼슬의 교룡을 향해 짓쳐들고 있었다.
그 순간 김진우의 고유 능력 약점 간파가 발동되었다.
“합!”
암상인의 정보를 토대로 이미 교룡들의 약점이 턱 밑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라 약점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찾아낸 약점이 턱없이 작았다.
말 그대로 새끼손톱만 한 점에 불과한지라 알면서도 공격을 성공시키기란 쉽지 않았다.
몇 번인가 칼을 휘둘러 보았지만 교룡은 턱을 이리저리 비틀며 거센 공격을 죄다 단단한 비늘로 튕겨냈다.
“제길!”
공격이 전부 실패로 돌아갔지만 김진우는 실망하지 않았다. 어차피 처음부터 쉽게 영웅급 교룡을 잡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적은 없었다.
퀀투스가 뒤로 물러나는 것을 본 그가 빠르게 몸을 빼냈다.
“저의 불찰입니다!”
나가 사제의 주문에 몸을 맡긴 퀀투스가 분한 듯이 외쳤다. 김진우가 고개를 저었다.
잘못이 있다면 겁 많은 오르테아가의 잘못이지 퀀투스의 잘못은 아니었다. 그는 실력 이상의 상대를 맞아 믿을 수 없을 만큼 분전했다.
“이놈들이!”
잠시 퀀투스를 빼내는 사이 전황이 다시 변하기 시작했다. 다소 팽팽하던 전선이 일방적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퀀투스의 보조가 사라지자 영웅급 교룡 두 마리가 집요하게 오르테아가를 공격한 것이다.
결국 처음의 분전이 무색하게 나가들은 연신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제길.”
‘주인님, 차라리 게이트 안쪽으로 끌어들여서 싸우는 게 나을 거 같아요!’
후방에서 대기 중이던 도미니크의 외침에 김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러선다!”
고작 선발대에 불과한 적에게 미궁을 허락한다는 것이 분하기는 했지만, 게이트 안쪽이라면 승산이 있었다.
게이트 안쪽은 온전한 미궁의 영역, 던전 베이비 김진우가 아닌 던전 오너 김진우의 힘이 발휘되는 곳이니까.
***
[던전 오너 김진우의 능력이 강화됩니다. 미궁의 핵이 영향을 미치는 범위 안에서라면 어떤 적을 맞아서라도 쉽사리 지지 않을 것입니다.] [던전 오너 김진우의 근력과 민첩, 체력이 40% 향상되었습니다.] [나가의 미궁(4등급)의 권능, 탁월한 재생력이 발동되었습니다. 어지간한 상처는 자연적으로 재생될 것입니다.]이미 미궁 안에서라면 능력이 증폭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김진우였지만 이렇게까지 자세한 변화를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전투 중이라는 특수한 상황 탓에 강화가 대폭 일어난 듯했다.
온몸에 차오르는 활력을 느낀 김진우가 대열의 선두로 나섰다.
“진즉 안쪽에서 싸울 걸 그랬군.”
말로는 그리 하면서도 김진우는 더 이상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규모가 크지 않은 나가의 미궁은 이곳만 통과하면 곧장 미궁의 핵이 위치한 오너 룸까지 연결되고 만다.
아무리 효율을 위한다지만 그런 위험을 쉽게 감수할 수는 없었다.
뿌우!
발걸음이 느린 교룡들이 전열을 가다듬고 다시 전진하기 시작했다. 분명 선발대에 불과한 그들이었지만, 본대를 기다릴 것도 없이 단숨에 미궁을 차지할 요량인 것 같았다.
“단단히 얕보였군.”
김진우는 쓰게 한마디를 내뱉고는 칼을 고쳐 잡았다.
[4등급 나가의 미궁이 5등급으로 업그레이드 중입니다. 현재 업그레이드 완료까지 01:01:38초 남았습니다.]이제 한 시간만 버티면 미궁의 업그레이드가 완료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야말로 진짜 전투가 시작되리라.
“와라!”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드는 교룡을 보며 김진우가 자세를 낮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