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36)
던전 견문록-36화(36/319)
# 36
던전 견문록
제 37 화
다급한 교룡왕의 음성을 듣는 순간 김진우는 확신했다. 암상인의 정보는 틀리지 않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미궁의 주인이란 놈이 고작 인간을 보고 저리 놀랄 이유가 없었다.
마음에 확신이 생기자 칼끝이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
“이익!”
교룡왕은 허둥지둥하며 김진우가 내지른 칼을 이리저리 피해내느라 오두방정을 떨었다.
영웅급 교룡보다 두 배는 거대하고 화려한 벼슬, 칼날처럼 돋아난 비늘이 무색한 모습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절대적으로 유리한 것은 아니었다. 이미 고유의 약점 간파 능력까지 발동했지만, 역시나 교룡왕의 몸에 약점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칼질이 계속될수록 교룡왕이 평정을 찾아갔다.
“네놈, 지상의 인간이 아니구나!”
뒤늦게 김진우가 지상의 인간과는 다소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교룡왕이 이를 갈아붙였다.
좋지 않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기는 했지만 교룡왕은 심층의 바로 언저리에 위치한 미궁의 주인이다. 평정을 찾은 교룡왕의 공격은 처음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난폭하고 흉험했다.
“크아아악!”
거칠게 목을 긁어내며 울어댄 교룡왕 아낙스투스가 김진우를 향해 손톱을 세우고 달려들었다.
거대한 덩치에 어울리는 투박한 공격, 하지만 그 여파는 절대 작지 않았다. 허공중의 어둠이 갈라지며 녹색 섬광이 번뜩였다.
김진우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가슴팍이 길게 베어져 있었다.
“죽여주마!”
처음에 보인 자신의 추태를 만회하기 위해서인지 교룡왕은 그야말로 그를 찢어 죽일 듯한 기세로 달려들었다.
캉!
아구아구 하며 달려드는 기다란 주둥이를 칼날로 후려쳐 보았지만, 오히려 손아귀가 찢어질 것만 같은 충격이 김진우를 덮쳤다.
과연 막무가내 육탄 공격을 뒷받침할 만한 맷집이다.
“감히 인간 따위가!”
교룡왕이 이를 까드득 갈아붙이고 김진우의 가슴을 향해 손톱을 휘둘렀다. 보기만 해도 섬뜩한 섬광이 허공을 가르고 그의 살점을 베어냈다.
실로 위태위태한 광경. 만약 던전 오너만의 증폭 효과를 받지 못했다면 그는 단번에 교룡왕의 손톱에 갈기갈기 찢겨져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증폭된 던전 오너의 능력도 한계가 있었다. 작정하고 달려드는 교룡왕의 공격에 상처가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일까. 그래도 9층에 위치한 미궁의 주인인데 약점 하나 손에 쥐었다고 너무 기고만장했던 모양이다.
정작 불꽃을 담은 지상의 무기는 사용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단 한 번의 기회, 실패한다면 경계심이 강해진 교룡왕은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수하들을 이용하여 나가의 미궁을 쑥대밭으로 만들 것이 분명했다.
“엇?”
교룡왕의 공격을 피하며 기회를 노리고 있던 김진우는 갑작스레 발목이 시큰해지는 느낌에 균형을 잃고 말았다.
뒤늦게 발밑을 확인해 보니 거대 교룡의 비늘이 날카롭게 돋아나 정강이를 찌르고 있다.
그 순간 교룡왕의 눈이 파랗게 번뜩였다.
“잡았다.”
잠깐의 틈을 놓치지 않는 교룡왕의 손길에 김진우가 필사적으로 다리를 빼내는데 그 과격한 움직임에 정강이의 살점이 한 움큼 잘려나가고 말았다.
[휴식기에 들어가 있던 기생수가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깨어났습니다. 하지만 지난 전투에서 소모된 기력을 채 회복하지 않은 기생수는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완전하지 않은 마안(魔眼)이 발동합니다.]그 순간 세상이 느려졌다.
날카로운 단검처럼 날을 세운 교룡왕의 손톱이 다가왔다. 흥분과 열기로 더욱 벌어진 아낙스투스의 콧구멍에서 하얀 김이 뿜어져 나온다.
사냥감을 포획한 포식자의 눈빛, 그 희열 가득한 눈동자를 보며 김진우는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상대의 움직임이 느려진 만큼 스스로도 느려져 있었다. 마치 물속에서 발버둥 치듯 느릿느릿한 자신의 사지에 갑갑해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이대로라면 저 흉악한 손톱에 사지가 찢겨지고 말 것이다.
뒤늦게 완전하지 않은 마안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를 깨달은 그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악다물었다.
절체절명의 위기. 전쟁의 승패, 생과 사를 가른 것은 그야말로 찰나였다.
눈앞에 가득 떠오른 메시지 창.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미궁의 업그레이드가 완료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미궁의 업그레이드가 끝났을 때, 김진우는 이제껏 보지 못한 새로운 메시지를 볼 수 있었다.
[던전 오너와 핵은 운명을 함께합니다. 미궁의 업그레이드가 완료되며 던전 오너의 등급이 성장했습니다. 6등급 던전 오너가 7등급 오너가 되었습니다.] [핵의 증폭 효과가 대폭 상승했습니다. 40%에 불과하던 강화 효과가 단 번에 80%로 상승했습니다.] [오너의 등급이 오르며 전투에서 소모된 기력과 체력이 회복됩니다. 사지가 절단되지 않은 정도의 부상 역시 바로 회복됩니다.]시큰거리던 발목의 통증이 사라지고 온몸에 활기가 넘쳤다. 갑작스러운 변화를 눈치 챘는지 교룡왕이 더욱 다급하게 손톱을 내밀었다.
“늦었다!”
교룡왕의 손톱이 김진우의 허리에 닿는 순간 휴식기에 잠들어 있던 기생수가 완전히 깨어났다.
[던전 오너의 각성과 함께 기생수가 회복되었습니다. 완전하지 않은 마안의 발동 효과가 완전한 마안의 효과로 대체됩니다.]교룡왕의 공격에 당장에라도 찢겨져 나갈 것 같던 김진우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아…….’
주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앞이 깜깜해진 도미니크가 신음을 내뱉었다. 당장에라도 피를 뿜으며 쓰러질 것만 같은 위태로운 모습, 그런데 갑작스레 주인의 몸이 허상처럼 사라졌다.
‘주인님!’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그녀가 애타게 주인을 부르는데, 사라졌던 김진우가 갑작스레 교룡의 뒤에서 나타났다.
그리고 그 순간 온 미궁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주인님! 미궁이!’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주인의 몸이 찬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새파란 광채가 넘실거리는 눈동자.
당황한 교룡왕의 손발이 어지러워지는 것이 이쪽에서도 확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조금만 버텨!”
“누가 할 소리!”
주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거의 전멸하다시피 한 나가들의 대열에서 퀀투스와 드라칸의 포효가 터져 나왔다.
갈기갈기 찢겨 나가 절명해 버린 수문장의 방패를 대신 주워 든 드라칸이 퀀투스의 곁에 버티고 섰다. 기력이 고갈된 나가 마법사와 사제가 다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
급박하게 돌아가는 전황, 보이는 곳마다 위기가 아닌 곳이 없었다. 하지만 도미니크는 제 바로 앞을 스쳐 가는 교룡들의 공격을 보면서도 김진우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그녀의 눈에 김진우가 교룡왕의 거대한 주둥이를 잡아채는 것이 보였다.
날카롭게 돋아난 톱니와도 같은 이빨에 손가락이라도 잘려 나갈까 덜컥 겁이 나는 광경이었지만 주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피투성이가 된 손아귀로 마침내 교룡왕 아낙스투스의 주둥이를 쩍 하고 열어젖힌 그가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그대로 흉물스러운 교룡의 주둥이에 쑤셔 넣었다.
‘아……!’
지저의 어느 누구보다 더욱 야만스럽고 난폭한 몸짓. 도미니크는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그 순간 교룡왕의 입을 뚫고 불꽃이 솟구쳤다.
***
[전투에서 승리했습니다. 우두머리를 잃은 교룡 대다수가 소멸되었고, 남은 교룡들 역시 겁을 집어먹고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교룡왕 아낙스투스와 그의 군대를 상대로 믿기지 않는 승리를 얻어냈습니다. 비록 운이 많이 따랐다고 하지만 절대적인 열세에서 일궈낸 승리는 어느 누구도 이룰 수 없는 기적적인 업적입니다.] [김진우와 나가의 미궁에 대한 소문이 9층 전체로 널리 퍼져 나갑니다. 용맹 무비한 나가들의 승리와 교룡왕의 패배에 다른 미궁의 주인들은 경악할 것입니다.]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한 김진우는 연이어 떠오른 메시지 창을 보고 나서야 참고 있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주인님! 우리가 이겼어요!’
도미니크의 격앙된 음성에 퀀투스와 오르테아가가 승리의 포효를 내질렀다. 살아남은 이들이라고 해봐야 고작 다섯에 불과했지만 그 우렁찬 함성만큼은 개선장군 못지않았다.
“그래, 이겼지.”
정말로 지독스러울 정도로 힘든 전투였다. 갑작스러운 등급 성장과 그로 인한 각성 효과가 아니었다면 아마 저곳에 누워 있는 것은 교룡왕이 아닌 자신이었을 것이다.
바닥에 주저앉아 고갈된 기력을 보충하고 있는데 다 끝난 줄 알고 있던 메시지 창이 다시 떠올랐다.
[교룡왕 아낙스투스의 미궁은 주인을 잃고 제 기능을 상실했습니다. 주인을 잃은 미궁을 노리는 적이 생길지 모릅니다. 누군가가 미궁의 핵을 활성화시키기 전에 서둘러서 교룡왕의 미궁을 차지해야 합니다.]교룡왕의 미궁이고 뭐고 당장은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어렵사리 얻은 승리, 그리고 두 번은 오지 않을 우연과 운이 따라 만들어진 승리였다. 얻을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얻어내어 힘을 키워야 했다.
“퀀투스, 새로운 병력을 줄 테니 가서 교룡왕의 미궁을 점령해라! 그리고 내가 도착할 때까지 반드시 그곳을 지켜내라!”
충성스러운 나가 용사가 힘들다는 투정도 하지 않고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력을 보충 중이던 김진우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제단이 있는 오너 룸으로 향했다. 아니, 향하려 했다.
“누구냐!”
퀀투스의 포효에 김진우가 몸을 돌렸다. 완전히 무너져 버려 널따란 공터가 되어버린 게이트 너머에서 한 떼의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제길! 또 다른 적인가?”
오르테아가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콧김을 내뿜으며 적을 맞을 준비를 했다.
“잠깐.”
그런 그들을 김진우가 제지했다.
“적이 아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밉살맞은 음성이 들려왔다.
“승리를 축하드립니다, 나가들의 왕이시여!”
후드를 머리끝까지 둘러쓴 그림자들을 거느리고 다가온 것은 블랙 머천트의 암상인이었다.
“자, 자, 긴장들 푸십시오. 저희는 그저 한낱 보따리장수에 불과하답니다. 그렇게 경계하지 않으셔도 되니 걱정들 마십시오.”
“그런 것치고는 타이밍이 너무 공교롭지 않아? 이래서야 마치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다고 하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데.”
나가들을 정비하여 앞에 선 김진우가 암상인을 향해 차갑게 말했다.
“아이고, 무슨 그런 무서운 말씀을 다 하십니까! 그래도 그간 신뢰를 쌓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또 이러시니 섭섭하고 당황스러울 뿐입니다요!”
호들갑스러운 음성과는 달리 암상인의 눈빛은 날카로웠다.
전장에 가득 널린 교룡들과 나가들의 시체를 살펴보던 암상인이 교룡왕의 시체를 발견하곤 눈을 빛냈다.
“용건만 간단히 말해라. 지금은 그대를 상대할 시간이 없다.”
김진우의 말에 암상인이 양손을 비비적거리며 비굴하게 말했다.
“전쟁이 있으면 승자가 있고 승자가 있으면 전리품이 있습죠. 저희 블랙 머천트는 그 전리품을 비싼 값을 치르고 살 용의가 있습니다.”
그렇게 말한 암상인의 눈빛이 교룡왕의 사체를 향했다.
“교룡왕의 시체 같은 것 말입죠.”
끔찍한 소리를 태연하게 늘어놓는 암상인을 보며 김진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런 식으로 그동안 밑천을 잡아온 모양이군.”
“뭐, 부정은 하지 않겠습니다.”
암상인의 뻔뻔한 태도에 그가 말했다.
“좋아, 팔도록 하지.”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단!”
금세 좋다고 헤벌쭉 웃어 보이던 암상인이 멈칫 입을 다물었다.
“대가는 제대로 치러야 할 거야.”
아무것도 아닌 말을 살벌하게 한다며 투덜거리는 암상인의 얼굴에 화색이 만연해 있다.
“아참, 또 한 가지 용건이 있습죠.”
“말하라.”
대체 무슨 용건인지 이제껏 잘도 떠들어대던 암상인이 뜸을 들였다.
“이번에는 아마 주인께서도 몹시 흡족해하실 겁니다.”
“용건만 간단히. 그대는 눈치가 별로 없군.”
가뜩이나 전투의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아 날카로워진 신경에 타박만 당한 암상인이 이내 표정을 바로 했다.
“이걸 전해 드리려고 왔습니다.”
“이게 뭐지?”
암상인이 내민 목함을 본 김진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실 이게 주목적이고 교룡왕의 시체는 겸사겸사 온 김에 푼돈이나 벌어보려는 장사꾼의 얄팍한 마음입죠.”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도미니크가 냉큼 달려와 목함을 건네받아 뚜껑을 열었다.
‘이건…….’
경악한 도미니크의 음성에 다시 그가 의아한 얼굴을 해 보이는데, 암상인이 도미니크를 재촉했다.
“그대도 지저의 존재라면 그게 뭔지는 알겠지? 어서 주인께 전해 드리시게!”
어쩐지 거들먹거리는 음성에 도미니크가 반박도 못하고 주춤주춤 다가와 목함을 내밀었다. 화려하게 장식된 목함 안에는 재질을 알 수 없는 보석이 박힌 반지 하나가 들어 있었다.
[지저 남작의 인장을 받았습니다. 심층이 아닌 미궁의 주인에게는 처음으로 수여되는 남작의 인장입니다.] [남작 위를 계승할 경우 강력한 나가 기사들로 이루어진 기사단을 결성할 자격을 얻습니다.] [지저 남작의 지위를 계승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