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38)
던전 견문록-38화(38/319)
# 38
던전 견문록
제 39 화
“혹시 수인(獸人)이라고 들어봤나?”
바로 최근에 고용한 낭인족의 전사 이누가 수인이다. 비록 전투 도중에 전황이 불리해지자 겁을 집어먹고 도망치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전투 초기에는 제 몫을 해준 존재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누가 아니더라도 미궁의 주점에서 버티고 있는 묘인족의 여인도 마찬가지로 수인이다.
“사람도 짐승도 아닌 놈들인데, 그게 또 요즘 뒤 세계에서는 인기일세. 어지간한 최상급 다운 잼만큼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모양이야.”
“그게 무슨 말입니까? 수인이라는 놈들은 물건이 아니지 않습니까?”
도대체 영문을 모를 소리에 백 선생이 음흉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렇지. 물건은 아니지. 아무래도 살아 있는 생명체니까. 근데 말이야, 그놈들이 사람도 아니지 않은가? 사람과 비슷하게 생기긴 했지만 지저의 짐승 같은 놈들에 불과하니까.”
“설마…….”
“맞네. 암시장에서 공공연하게 거래되는 모양이야. 그쪽 여자들이 또 기가 막히게 그 짓을 잘한다고 하더군. 길들이는 게 힘든 모양이지만 그런 걸 길들이는 걸 좋아하는 별난 놈들은 세상에 넘친다네.”
“미친놈들이군요.”
“그치. 미쳤지. 근데 따지고 보면 우리 고객들이 죄다 그런 놈들이란 말일세. 자네도 혹시 오다가다 수인이란 종자를 만나면 어떻게 한번 잡아와 보게. 구매자는 내가 책임지고 연결해 주지.”
인상이 절로 험악해질 수밖에 없었다. 지저 공작의 미궁에서 노예처럼 토굴꾼 노릇을 하던 던전 베이비가 바로 김진우였다.
그런데 인간마저도 똑같은 짓을 하고 있다니 혐오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다른 던전 베이비들이 그 일을 하고 있단 말입니까?”
다른 던전 베이비들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 심정일 거라 생각한 그가 믿기지 않는다는 투로 물으니 백 선생이 대답했다.
“말도 말게. 아예 전문적으로 수인족만 찾아다니는 탐색자도 있는 모양이니까. 송종철이라고 전에 물은 적 있지? 그쪽 팀만 해도 수인족 포획에 꽤나 열을 올리고 있다고 들었네. 상대하기 힘든 크리쳐보다는 그쪽이 돈이 되니 돈 냄새를 맡은 거지. 꽤 사업 수완이 있는 친구야.”
능글맞게 웃어대는 백 선생이 농담조로 수인족 여자 하나면 팔자를 고친다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그는 그 말에 동감할 수 없었다.
가뜩이나 지저에서의 만남 이후 거부감이 있던 송종철이란 인물에게 더욱더 혐오감이 들었다.
“일단 조만간 지저에 들어가 보긴 하겠습니다. 성과야 별개긴 하지만.”
“그래, 내 자네만 믿네. 그리고 아까 말한 수인족 이야기, 잘 생각해 보게.”
끝까지 느물거리는 백 선생의 말에 욕지기가 치밀어 오른 김진우는 인사도 없이 감정소를 나섰다.
감정소를 나선 김진우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지상에 올라선 이후 처음으로 지상의 공기가 갑갑하게 느껴졌다.
마치 지저의 그것처럼 무겁고 음습한 공기에 그는 몇 번이나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
백 선생과의 만남 이후 김진우는 왠지 모르게 지상에 머무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져 당초의 계획보다 일찍 다시 나가의 미궁을 찾았다.
‘주인님 오셨어요?’
도미니크가 언제나처럼 그를 반겨주고는 미궁의 복구 진척도를 보고했다.
‘망가진 함정은 다시 매설하거나 폐기했고, 무너진 통로도 상당 부분 복구했어요. 일꾼들이 전보다 두 배는 많아진 터라 덕분에 일의 진척이 꽤 빨랐답니다. 다만 거대 교룡이 무너뜨린 게이트 바로 안쪽의 공터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요. 아무래도 나름대로의 용도를 찾아야 할 것 같아요.’
그녀의 보고를 들으며 김진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무리도 아니었다. 통로를 가득 메울 정도로 거대한 교룡이 작정하고 날뛰어댔으니 복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말대로 다시 통로를 좁히느니 새로운 용도를 찾는 게 합리적이었다.
‘일단은 미궁의 등급이 오른 덕분에 미궁의 크기가 넓어졌어요. 새롭게 생긴 공터가 예전에야 게이트 바로 안쪽이었지만 지금은 꽤나 안쪽에 있으니 큰 문제는 없을 거라 생각해요.’
그러고 보니 5등급에 오르며 나가의 미궁은 많은 변화를 이루었다. 가장 먼저 지금 김진우가 있는 오너 룸이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게 변했으며, 전체적으로 미궁의 사이즈가 큼직큼직해진 느낌이다.
그리고 가장 큰 변화는 용사가 주축이던 방어 전력에 새로운 나가들이 추가된 것이다.
□나가 마법사(중급) (40)
*지저의 신비를 탐구하는 이들입니다. 현명한 나가 마법사들은 전투에서 강력한 마법으로 적을 압도합니다. 중급 나가 마법사는 하급 나가 마법사보다 더욱 강력한 주문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나가 사제(중급) (37)
*최초의 뱀을 모시는 사제들입니다. 땅속의 현자이자 의사인 나가 사제들은 부상당한 나가들을 치유합니다. 중급 나가 사제는 하급 나가 사제가 치료할 수 없는 치명적인 부상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나가 투사(25)
*나가 용사가 지키고 방어에 주력하는 전사들이라면 나가 투사는 적진을 분쇄하고 공격하는 역할을 합니다. 타고난 신력과 투지는 그 어떤 나가도 따라올 수 없는 나가 투사만의 고유한 힘입니다.
□나가 장거리 순찰자(20)
*나가 장거리 순찰자들은 유능한 길잡이이자 사냥꾼입니다. 그들은 지저에서도 가장 빠른 길을 찾아내어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습니다. 근접전에 다소 취약한 그들은 치밀한 함정으로 적을 끌어들여 싸우는 것을 선호합니다.
□나가 주술사(하급) (35)
*땅 밑 깊은 곳의 어둠을 부리는 주술사들입니다. 주술사들은 전투의 전면에 나서는 것보다 아군의 힘을 증폭시키고 적의 힘을 감소시키는 쪽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전에는 하급밖에 소환할 수 없던 마법사와 사제를 이제는 처음부터 중급의 상태로 소환할 수 있게 되었다.
거기에 더해 새롭게 소환수인 나가 투사와 장거리 순찰자, 주술사는 부족하던 병력의 질을 끌어올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아마 이 정도의 전력이라면 다시 교룡왕과 전쟁을 하라고 해도 전처럼 밀리지는 않을 거예요.’
도미니크의 말에 김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4등급 미궁과 5등급 미궁의 힘의 격차는 어마어마했다.
“이제는 안심하고 미궁을 비울 수 있겠어.”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그를 보며 도미니크가 풀이 죽은 얼굴을 해 보였다. 아무래도 주인이 또다시 자리를 비운다는 게 섭섭한 모양이다.
‘오래 걸리시나요?’
“일단은 한 달 정도 자리를 비울 예정이지만, 중간 중간 들를 생각이니 너무 그런 얼굴 하지 마.”
전쟁을 통해 한층 더 확고해진 신뢰, 도미니크가 금세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보다 혈표의 심장은 어떻게 됐지? 가기 전에 확인해 보고 싶은데.”
그의 말에 도미니크가 마침 그렇지 않아도 보고할 참이었다며 말을 이어갔다.
‘지난번의 전투에서 손상된 연구실과 대장간을 복구하는 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그 때문에 인력을 다시 배치하고 정상적인 기능을 하는 데 애를 먹었답니다. 그래도 새롭게 추가된 마법사들의 실력이 좋아 상당 부분 진척이 있었어요. 다만 대장간은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해요.’
도미니크의 보고에 스테이터스 창의 혈표의 심장 연구와 연마 진척도를 확인한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대로 대장간에 맡긴 혈표의 심장은 이제 겨우 70% 정도 작업이 진행되었다.
“연구실로 가지. 그쪽은 슬슬 끝나갈 때가 되었으니까.”
스테이터스 창에 떠오른 연구 완료 메시지를 본 김진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
나가 마법사의 공손히 모은 두 손바닥 위에 올려 있는 혈표의 심장은 전과 다름없이 섬뜩한 붉은 빛을 흘리고 있었다.
[혈표의 심장(최상급 다운 잼), 수많은 크리쳐를 사냥하며 축적해 온 이 최상급 다운 잼에는 혈표의 힘이 깃들어 있습니다. 실력 좋은 나가 마법사들에 의해 연구되어 혈표의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생각할 것도 없었다. 김진우는 곧장 혈표의 심장이 가진 힘을 확인해 보았다.
[지저의 포식자이자 가장 은밀한 사냥꾼인 혈표는 작정하고 은신하면 그 기척조차 찾기가 쉽지 않은 타고난 암살자였습니다. 혈표의 심장에는 혈표가 생전에 보인 은밀함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습니다.] [혈표의 특수 능력 카모플라쥬(위장)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역시나 짐작대로 혈표의 심장이 가진 특별한 힘은 은신과 관련되어 있었다.
‘길을 떠나실 거라면 지금 혈표의 심장을 취하는 게 좋을 거예요. 주인님은 강하지만 지저에는 주인님만큼 강한 적이 많으니까요.’
도미니크의 조언에 김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정작 어떤 방식으로 혈표의 심장이 가진 특수 능력을 취해야 하는지를 알 수 없었다.
크리쳐들이야 다운 잼을 통째로 삼키는 방식으로 힘을 얻을 수 있다지만, 어디까지나 인간에 불과한 그에게는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해결책은 언제나 그래왔듯이 엉뚱한 곳에 있었다. 그의 오른손에 잠들어 있던 기생수가 깨어나 혈표의 심장을 먹어치운 것이다.
[기생수가 혈표의 심장(최상급 다운 잼)을 섭취했습니다. 혈표의 특수 능력 ‘카모플라쥬(위장)’를 얻었습니다.] [기생수가 혈표의 심장에 담긴 에너지를 남김없이 먹어치웠습니다. 덕분에 최상급 다운 잼은 평범한 돌덩이가 되었습니다.] [기생수가 성장을 위해 변태에 들어갑니다. 기생수의 성장이 끝날 때까지는 기생수의 특수 능력 ‘탐색’과 ‘마안’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이건 또 무슨 소리인지, 빛을 완전히 잃어버린 혈표의 심장을 보며 김진우가 멍한 얼굴을 해 보였다.
‘아…….’
도미니크 역시 깜짝 놀랐는지 신음을 내뱉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린 김진우가 상황을 설명해 주자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축하를 건넸다.
‘주인님, 기생수마다 성장에 필요한 것이 다르답니다. 아마 주인님의 기생수는 질이 좋은 다운 잼을 먹고 성장하는 모양이에요.’
“허탈하군. 어렵게 얻은 녀석인데.”
빛을 잃고 푸석푸석하게 변해 버린 혈표의 심장을 본 김진우의 솔직한 말에 도미니크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오히려 운이 좋아요. 기생수 중에는 크리쳐의 피를 빨거나 숙주의 생명력을 원천으로 성장하는 녀석들도 있으니까요. 이 정도면 양호한 편이랍니다.’
“그런 걸 잘도 나한테 권했네.”
‘그때의 주인님은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약했으니까요. 그때는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었어요. 기생수를 얻지 못했다면 주인님과 우리 미궁은 이미…….’
그녀의 말은 구구절절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실제로 기생수의 탐색 능력 덕에 모은 다운 잼이 아니었다면 미궁을 업그레이드할 던전 에너지를 모으는 것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4등급에 머문 미궁은 교룡왕의 공격을 이겨내지 못했을 게 분명했다.
“끄응. 그래도 아까운 건 아까운 거지.”
그간 미궁을 위협하는 존재들로 인해 압박을 받아오던 김진우가 오랜만에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자 도미니크가 배시시 웃었다. 보랏빛이 선명한 눈매를 곱게 휘어 올린 그녀가 그를 위로했다.
‘기생수는 혈표의 심장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가치가 있어요. 부디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아직 혈표의 심장은 하나가 더 남았잖아요?’
김진우는 도미니크의 거듭된 위로를 듣고 나서야 겨우 얼굴을 풀 수 있었다.
***
기생수의 돌발적인 변화 덕분에 김진우의 지저 탐색 일정은 자연스럽게 늦춰지고 말았다.
오고 가는 길마다 널린 것이 버려진 미궁이라 기생수의 탐색 능력이 아쉬워 일정을 늦춘 것이다.
그 덕분에 김진우는 마법사들과 대장장이들이 달라붙어 한창 난리를 피워대던 교룡의 미궁에서 새롭게 가져온 핵이 설치되는 모습까지 볼 수 있었다.
‘지저의 어느 누구도 핵을 두 개 설치한 적은 없었어요. 귀족들도 자신의 핵을 강화하거나 아니면 충성스러운 부하에게 새로운 핵을 수여해 힘을 키우는 방식을 선호해 왔으니까요.’
도미니크는 앞으로 일어날 변화에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복잡한 표정이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김진우가 말했다.
“하나일 때보다 두 개일 때가 더욱 좋은 건 당연한 것 아닌가.”
그 단순하기 그지없는 대답에 그녀가 황당하다는 얼굴을 했지만 이내 납득한 얼굴을 해보였다.
‘뭐, 잘못되어도 기존의 핵이 새로운 핵을 흡수하거나 하는 정도로 끝나겠죠. 최악의 경우 교룡의 미궁에서 가져온 핵이 전에 있던 핵을 흡수할 수도 있겠지만, 어느 쪽이든 나쁘지는 않을 거예요.’
잠깐 사이에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한 그녀의 말에 김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 미궁에 두 개의 핵을 설치한다는 생각은 어쩌면 그가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발상일지도 몰랐다. 지상에서는 흔히 하드웨어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이런 방법을 쓰고는 했으니까.
‘주인님, 준비가 완료됐어요.’
생각에 잠긴 사이에 준비가 끝났는지 제단을 오르내리던 일꾼들이 어느새 저만치 물러서 있다.
‘이제 주인님께서 나설 차례예요.’
그녀의 말에 김진우가 제단 위에 올랐다. 기존의 핵 바로 곁에 세워진 새로운 미궁의 핵, 그가 기대하는 얼굴로 손을 올렸다.
[교룡왕의 사후 버려져 있던 미궁의 핵이 새로운 주인을 각인하려 합니다. 각인 작업에 동의하십니까?]“동의하지.”
[각인이 완료되었습니다. 한때는 교룡왕 아낙스투스의 심장과도 같던 핵이 새로운 주인을 맞았습니다.]메시지 창이 떠오르는 순간 제단 가득 섬광이 터져 나왔다.
[새로운 핵을 활성화시키시겠습니까? 하나의 미궁에 두 개의 핵이 존재하는 경우는 이제껏 전례가 없던 일입니다.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래도 새로운 핵의 활성화에 동의하십니까?]“동의한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온 미궁이 진동을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