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42)
던전 견문록-42화(42/319)
# 42
던전 견문록
제 43 화
#17. 9층의 주인들
송종철 일행을 따돌린 김진우는 곧바로 카모플라쥬 능력을 비활성화했다. 막무가내로 달리는 호야를 멈춰 세우기 위해서였다.
“멈춰. 여기서부터는 조심해야 해.”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낸 그를 보며 호야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감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녀에게 몇 번이나 앞서 걷지 말라 당부한 그는 조심스럽게 기억을 더듬어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지루한 이동 끝에 김진우와 호야는 마침내 버려진 미궁의 오너 룸에 도착할 수 있었다.
“포탈.”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석실의 한쪽 허공이 쩍 하고 갈라지더니 문이 생겨났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호야가 깜짝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가자.”
의식적으로 미소를 지어 보인 그가 손을 내밀며 말하니 호야가 포탈을 보고 주춤주춤하면서도 다가와 손을 잡았다.
“힉!”
수십의 탐색자를 거침없이 도륙 낼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약한 모습인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김진우는 힘주어 손을 끌어당기며 포탈을 넘었다.
“욱!”
처음으로 포탈 특유의 부유감을 느낀 호야가 헛구역질을 하며 진저리를 쳤다.
‘주인님?’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온 도미니크가 그를 반기다 호야를 발견하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수인족이네요?’
“오다 주웠다.”
설명이랄 것도 없는 성의 없는 대답에 도미니크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퀀투스 불러줄래? 일부러 인적 없는 곳에서 포탈을 열긴 했지만 혹시라도 누가 포탈을 발견하고 넘어오면 골치 아파질 거야. 적당히 병력을 추려서 이 너머로 보내도록 해.”
‘아, 알겠습니다.’
남작이 되며 미궁에 펼쳐진 가호라고 해봐야 지성이 있는 크리쳐나 비스트에게 통하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런 크리쳐들은 최소한 저층에나 존재했다. 포탈이 열린 2층이라면 지성보다는 야성이 강한 크리쳐들이 태반이니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호야.”
어쩐지 기가 죽은 듯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던 호야가 그가 부르는 소리에 냉큼 달려왔다.
“이제부터 이곳이 네가 지낼 곳이다.”
“아…….”
정처 없이 떠돌던 와중에 어렵사리 얻은 보금자리라 그런 것일까. 호야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납작 엎드렸다.
“수인족은 무조건 머리부터 숙이는 게 관습인 모양이군.”
그 모습이 주점에서 본 또 다른 묘인족 여성과 다르지 않아 김진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김진우가 다시 귀환 길에 오른 것은 포탈이 사라지는 24시간이 흐른 뒤였다. 포탈이 사라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그는 버려진 미궁을 벗어났다. 그리고는 곧장 지상으로 향했다.
비록 백 선생에게 받은 의뢰의 성과는 없었지만, 호야라는 강력한 우군을 얻었으니 이번 탐사가 아예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끄응. 알았네. 그래도 이 정도라면 의뢰인도 당분간은 잠잠할 거야. 물론 시간이 지나면 다시 또 나를 들들 볶겠지만.”
“일단은 저도 다시 한 번 들어가 볼 예정이니 그때 다시 이야기하죠.”
길게 이야기할 것도 없는지라 짧게 이야기를 마무리 지은 김진우는 그동안 처분하지 않고 있던 다운 잼 중 몇 개를 꺼내 처분했다.
마침 지저를 들어갔다 온 참이라 백 선생도 출처에 대한 의심은 하지 않고 대금을 치러주었다.
“끄응. 어째 점점 단위가 커지는구만. 여기 3억 정도네. 지난번에 가져간 돈까지 하면 서울에 아파트 하나 살 돈은 되겠어. 역시 레벨 12의 던전 베이비가 대단하긴 대단한가 보이.”
김진우는 대답 대신 인사를 남기고 감정소를 나섰다.
그렇게 감정소를 나선 그는 그간 미뤄둔 일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먼저 이준영을 만나 몇 달 전에 한 저녁 식사 약속을 마무리 지었으며, 탐색자협회와 일반 던전 베이비들의 마찰, 그리고 수인 사냥에 대해 들었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우리는 알잖아요. 수인 걔네들, 우리랑 똑같아요. 똑같이 생각하고 느끼고, 우리랑 다를 게 없다고요. 근데 그걸 팔고 있는 게 우리 던전 베이비들이라니 진짜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다니까요.”
한참이나 투덜거리던 그녀는 다시 이런저런 정보를 풀어놓았다.
탐색자협회는 말 그대로 탐색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협회였다.
다만 그 방식이라는 게 돈벌이에 치중되어 있는지라 기존의 상위 던전 베이비들과 여러 가지로 마찰이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저층도 못 되는 곳에서 태어나 돈벌이 수단이 마땅치 않아 일반 탐색자들과 섞여 지내던 저 레벨의 던전 베이비들에게는 나름대로 호응을 받는 모양이었다.
“미친 거죠. 지저가 어떤 곳인데 지저에서 살던 놈들을 자꾸 꺼내와 지상에 내놓는 건지. 수인뿐 아니라 이제는 좀 덩치가 작은 크리쳐나 비스트들까지 죄다 잡아와서 암시장에 내놓고 있어요. 그러다 나중에 큰일 한 번 터지면 다 같이 뒤집어쓸 텐데 다들 당장의 이익에 눈이 멀어 있으니…….”
결국 다시 원성 섞인 푸념으로 끝이 나기는 했지만, 김진우는 나름대로 쓸 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이준영을 돌려보낸 그는 곧장 미궁으로 향했다.
‘주인님, 대장간에 맡겨둔 혈표의 심장이 마무리되었어요.’
그렇게 그녀가 내민 혈표의 심장은 나가 마법사들이 건네주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전의 것이 원형 그대로의 모습이라면 대장간에서 가져온 혈표의 심장은 연마된 보석 그 자체였다.
[혈표의 심장(최상급 다운 잼), 수많은 크리쳐들을 사냥하며 축적해 온 이 최상급 다운 잼에는 혈표의 힘이 깃들어 있습니다. 실력은 뛰어나지 않지만 열정적인 초급 나가 대장장이들이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혈표의 심장에는 혈표가 살아생전 부리던 힘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혈표는 한번 사냥감으로 정한 목표는 끝까지 추적하여 잡아내는 추적자였습니다. 나가 대장장이들에 의해 연마된 혈표의 심장에는 혈표가 살아생전 보인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끈기와 집요함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장비에 장착할 시 혈표의 특수 능력 ‘끈질긴 사냥꾼의 감각’을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나가 마법사들에 의해 완성된 혈표의 심장과는 다르게 원석 그 자체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부착해야 하는 모양이었다.
“끄응. 이건 일단 보관해 둬야겠군.”
당장 쓰임새가 마땅치 않아 김진우는 혈표의 심장을 도미니크에게 맡겨두었다.
자신에게 귀물을 맡겼다는 사실에 감동했는지 도미니크는 다소 상기된 얼굴로 김진우를 미궁 구석구석으로 안내했다.
등급이 오른 대장간은 전보다 한층 더 뜨거운 화로가 꺼지지를 않았고, 그사이에 제법 일을 손에 익힌 초급 대장장이들이 부지런히 나가들이 쓸 새로운 무기를 만들고 있었다.
그간은 소환 당시에 들고 있던 무기를 그대로 써온지라 그동안의 전투로 넝마가 된 방패와 창 따위를 우선적으로 만들고 있었다.
‘저 무기들이 다 만들어지고 나면 우리 미궁의 전력은 더 강화될 거예요. 그렇게만 되면 이제는 정말 어느 누구도 우리를 무시할 수 없을 겁니다.’
들뜬 얼굴로 도미니크가 자랑이라도 하듯 설명했다.
업그레이드된 건 대장간뿐만이 아니었다. 연구실과 나가의 둥지, 사육장까지 모두 하나같이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변화해 있었다.
그렇게 미궁을 둘러보던 김진우는 어마어마하게 커진 사육장에서 코를 푸르릉대는 교룡들을 보며 감탄했다.
‘나가 기수들이라고 늘 교룡과 붙어 있는 건 아니라 평소에는 저렇게 사육장에서 지내고 있답니다.’
교룡왕 아낙스투스를 따르던 놈들과는 다르게 다리가 길게 쭉 뻗은 교룡들의 모습이 날렵해 보인다.
“근데 관리하는 사람이…….”
‘마침 주인님께서 부탁하신 묘인족이 교룡을 다루는 데 제법 소질이 있어서 이쪽에서 일을 시키고 있어요.’
저보다 몇 배는 커다란 교룡들에게 겁도 없이 다가가 죽은 비늘을 떼어주는 묘인족 여인을 보며 도미니크가 설명했다.
“그렇군. 그래도 쓸 곳이 있던 모양이야.”
그 모습이 주점에서 보았을 때와는 달리 제법 안정되어 보여 김진우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를 보며 도미니크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설명했다.
‘교룡들이 원체 사나워서 자기 기수가 아니면 가까이 다가서지도 못하는데 어쩐 일인지 그녀에게만큼은 순종적이더군요. 그래서 요즘에는 기수들도 제법 그녀를 챙겨주는 모양이에요.’
전에는 자신의 명령이 없으면 돌아가지 않던 미궁이 이제는 하나의 생명을 갖고 혼자서 움직이고 있었다.
작업이 끝난 나가 일꾼들은 주점에 모여 정체불명의 액체를 마시며 시끄럽게 떠들어댔고, 나가 용사들과 투사들은 그에 질세라 더욱더 소리 높여 떠들어댔다.
나가 마법사들은 연구실에 틀어박혀 두문불출하며 무언가를 하고 있었으며, 대장장이들은 하루 종일 모루와 화로에 매달려 뭔가를 뚝딱거렸다.
이전에는 느끼지 못한 거대한 생명력이 느껴질 지경이다.
왠지 모르게 심장이 조이는 묘한 느낌에 김진우는 어정쩡한 얼굴로 도미니크를 바라보았다.
‘지저의 작은 세상, 그게 바로 진짜 미궁이에요. 그리고 이곳이 주인님의 영지랍니다.’
도미니크가 그런 그의 내심을 짐작이라도 했는지 자랑스러운 얼굴로 이야기했다.
“그래, 이게 진짜 미궁이고 내 영지지.”
그녀의 말이 왠지 가슴에 와 닿은 김진우는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되뇌었다.
***
나가의 미궁은 눈부시게 발전을 거듭했다.
교룡왕 아낙스투스와의 전쟁이 끝난 지 그리 오래 지난 것도 아닌데 나가의 미궁은 전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제법 격조 높은 장식물들이 미궁의 입구에 놓였고, 온갖 시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증축에 증축을 거듭하고 있었다.
가장 애를 먹은 미궁의 방비 역시 9층의 어느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해졌다.
외곽으로는 나가 기수들이 장거리 순찰자들과 함께 수시로 순찰을 돌며 경계를 공고히 하고 있었고, 내부적으로는 퀀투스와 오르테아가를 비롯한 강력한 존재들이 철통같이 게이트를 지키고 있었다.
전처럼 타 미궁의 침입에 전전긍긍하며 마음을 졸일 일이 전혀 없었다.
‘이제는 교룡왕이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우리 미궁을 넘볼 수 없을 거예요.’
도미니크의 자부심 가득한 말에 김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퀀투스와 오르테아가가 이끄는 용사와 투사들로 이루어진 부대만 해도 전원이 정예 등급에 오른 나가들로 대장간에서 공들여 만든 무구와 방어구를 장착한 정예 중의 정예 병력이었다.
게다가 릭샤샤 역시 장거리 순찰자들을 이끌고 기대 이상의 역량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녀는 요소요소마다 함정을 설치하고 떠돌이 크리쳐들의 접근을 원천 차단하고 있었다.
그녀의 활약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의 도미니크도 그 공적만큼은 인정할 정도였다.
“이대로 쭉 평화가 지속되었으면 좋겠군.”
비록 교룡왕과의 전쟁에서 얻은 과실처럼 극단적인 성장을 이룰 수는 없겠지만, 꾸준히 힘을 모으다 보면 안정적인 성장세를 보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지저는 언제나 예상치 못한 일이 왕왕 벌어지고는 한다. 그리고 그게 김진우의 경우에는 유독 심했다.
“주인이시여!”
원거리 순찰 임무에 한창이었어야 할 릭샤샤의 갑작스러운 귀환에 김진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지난 교룡과 있던 전쟁의 시작을 알린 것이 그녀인지라 이렇듯 급하게 달려올 때면 심장이 조이는 듯한 기분이다.
“말해.”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내며 말하니 릭샤샤가 다급하게 외쳤다.
“영지의 외곽에 군대가 나타났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