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43)
던전 견문록-43화(43/319)
# 43
던전 견문록
제 44 화
애초부터 언더 엘프는 쉽게 기척을 드러내는 존재가 아니었다. 한번 어둠에 녹아들자 바로 코앞에 있음에도 존재하지 않는 듯 마치 유령 같았다.
카모플라쥬 능력을 활성화시킨 김진우는 더욱더 말할 것도 없었다.
“후. 애먹는군.”
카모플라쥬 상태에서는 빠르게 이동할 수가 없는지라 답답하기는 했지만 영지의 외곽이라고 해봐야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다.
“도착했나이다.”
김진우의 기척을 제대로 잡지 못해 릭샤샤가 엉뚱한 곳을 보며 보고했다.
상황에 맞지 않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지만 그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어둠 너머를 노려보았다.
승마용 교룡의 목을 칭칭 감은 채 장창을 꼬나 쥐고 있는 나가 기수들의 건너편으로 릭샤샤가 말한 군대가 있다.
나가 기수보다 머리가 한참은 아래 있는 서른 남짓한 난쟁이들은 지저와는 어울리지 않는 번쩍이는 칼과 갑주로 무장한 상태였다.
과연 릭샤샤가 군대라는 표현을 쓴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저리 요란하게 완전 무장한 난쟁이들을 군대라 표현하지 않으면 달리 뭐라고 할까.
갑주 틈으로 드러난 녹색 피부를 노려보며 김진우는 조심스럽게 난쟁이들에게 다가갔다.
“끄응. 말이 통하지를 않으니 미치겠군.”
난쟁이 중 유독 눈에 띄는 화려한 갑주의 난쟁이가 탁한 목소리로 불평을 했다.
“야, 이놈들아, 가서 손님이 왔다고 전하라니까 뭘 그리 멀뚱멀뚱 서 있어!”
“쉬익! 쉭!”
난쟁이의 거친 음성에 나가 기수들이 목을 울려대며 위협적으로 창을 들어 올렸다.
“알았다, 알았어. 아쉬운 쪽이 기다려야지. 그놈들 성질 좀 보소.”
“좀 전에 저놈들 중 하나가 뒤쪽으로 급하게 달려가는 걸 봤으니 뭐가 와도 올 겁니다. 그러니 조금 더 기다려 보죠.”
손님을 자처하는 꼴을 보아하니 더 이상 영지의 경계를 침범할 생각은 없는 듯 보였다.
어둠에 숨어 잠시 더 그들이 하는 꼴을 지켜보고 있던 김진우는 한 발 늦게 출발한 퀀투스의 부대가 도착하자 슬며시 합류했다.
“하!”
그의 등장에 나가들이 일제히 바람 소리를 내며 가슴을 두들겼다. 그 서슬 퍼런 기세에 난쟁이들이 해쓱해진 안색으로 무기를 꼬나 쥐었다.
“퀀투스!”
“왕이시여!”
“기별도 없이 찾아온 이들에게 연유를 물어라!”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퀀투스가 거칠게 콧김을 내뿜으며 난쟁이들에게 다가가 외쳤다.
“존귀하신 왕의 땅을 밟은 그대들은 누구인가?”
나가들의 기세에 주춤거리면서도 난쟁이들은 짧은 목을 빼고 어떻게든 김진우의 모습을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나가들은 그런 난쟁이들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의도적으로 벽을 쌓아 그들의 주인을 가렸다.
“망치와 모루의 왕 말락수스의 사절 믈락과 블락이외다!”
말락수스의 사절단이라는 말에 퀀투스가 김진우를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런 그대들이 무슨 볼일이 있어 왕의 땅을 침범했는가?”
“침범이라니, 당치 않은 소리! 우린 그저 9층에서 최초로 귀족의 위에 오른 남작께 인사라도 드릴 겸 해서 왔을 뿐 다른 뜻은 없소이다! 그 증거로 여기 우리 왕의 친서가 있소!”
난쟁이 중 하나가 품에서 재질 불명의 종이를 꺼내 불쑥 내밀었다. 릭샤샤가 어둠 속에서 스르륵 나타나 종이를 낚아챘다.
유령처럼 나타난 그녀를 보고 깜짝 놀란 난쟁이가 ‘억’ 하고 기괴한 소리를 내며 황급히 무리로 도망쳤다.
“미천한 종에게 주인의 눈과 귀가 될 수 있는 영광을 주시옵소서.”
요컨대 문서를 대신 읽어주겠다는 말이다. 김진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릭샤샤가 문서를 읽어주었다.
[망치와 모루의 왕 말락수스의 사절단이 미궁을 방문했습니다.] [말락수스는 탐욕스럽고 흉포한 교룡왕을 물리친 지저 남작 김진우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기를 원합니다.]이건 또 난데없이 무슨 소리인지, 김진우가 눈살을 찌푸리는데 녹색 난쟁이의 탁한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우리에게 그대들의 왕을 뵐 수 있는 영광을 허락해 주기를 간청하는 바요!”
퀀투스가 김진우를 멀뚱멀뚱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
난쟁이들과의 만남은 길지 않았다. 믈락이라 자신을 소개한 난쟁이는 김진우가 나가가 아니라는 사실에 다소 놀라기는 했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믈락에게는 지상인과 던전 베이비의 구분이 그다지 없는 듯 그는 아무렇지 않게 김진우를 대했다.
“덕분에 좋은 소식을 우리 왕께 전해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대화였지만 서로가 적대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했는지 믈락과 사절단은 밝은 얼굴로 미궁을 떠나갔다.
그리고 그때부터 각 미궁의 사절단이 나가의 미궁에 연달아 방문했다.
[늪의 왕 고린토스의 사절단이 미궁을 방문했습니다.] [고린토스는 강대한 교룡왕 아낙스투스마저 물리친 지저의 새로운 강자가 자신에게 창끝을 향할까 두려워 전전긍긍하는 모양입니다. 고린토스의 사절단은 불가침의 확답을 듣고 싶어합니다.] [떠돌이들의 왕 헤카림의 사절단이 미궁을 방문했습니다.] [헤카림은 새로운 강자의 영웅담에 굉장한 흥미를 보이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야기의 대가로 무언가를 받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탐식의 왕 우서의 사절단이 미궁을 방문했습니다.] [우서는 지저 귀족의 탄생이 다소 껄끄러운 눈치입니다. 주의하지 않으면 미궁의 정보가 유출될 수도 있습니다.]며칠에 한 번 꼴로 미궁을 찾는 어딘가의 사절단, 목적도 뜻하는 바도 다른 그들을 돌려보내는 것도 일이었다.
나중에는 도미니크와 퀀투스를 내세워 대부분 돌려보내기는 했지만 개중에는 비교적 근거리에 위치한 강대한 미궁의 사절단도 있어 마냥 허투루 대할 수만도 없었다.
망자들의 왕 발리셔스가 바로 그중의 하나였다.
발리셔스의 사절단은 등장부터가 충격 자체였다. 온몸을 누더기처럼 기운 기괴한 짐승으로 늑대의 몸에 머리가 있어야 할 곳에는 사람의 머리가 있었다.
아무리 온갖 기괴하고 흉악한 크리쳐가 넘쳐나는 미궁이라고 해도 좀처럼 보기 힘든 끔찍한 모습에 도미니크는 질겁했다.
“하여 우리 왕께서는 일간 서로 만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나이다.”
게다가 흉악한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아이의 목소리다. 망자들의 왕이라는 작자의 악취미를 알 만했다.
“좋아, 그렇게 하도록 하지.”
피곤한 얼굴로 승낙의 말을 하니 발리셔스의 사절이 덜그럭거리는 몸을 이끌고 미궁을 떠나갔다.
“휴, 어쩐지 저쪽은 상종하고 싶지 않은데 말이야.”
‘그래도 발리셔스의 미궁이라면 교룡왕의 미궁 다음으로 우리 미궁과 가까운 곳에 있는 미궁이에요. 미리 알아둬서 나쁠 건 없을 거예요.’
근래 들어 대폭 보강된 장거리 순찰자들이 영지에서 제법 떨어진 지저를 쏘다니며 인근의 지형을 파악한다고 부산을 떨었다.
그리고 김진우는 기척을 숨기는 데 가장 뛰어난 순찰자들을 뽑아 미궁을 오고가는 사절단의 뒤를 좇아 정확한 미궁의 위치를 파악했다.
망자들의 미궁은 그 와중에 운 좋게 발견한 미궁이다. 마치 하나의 거대한 공동묘지라고 해도 좋을 망자들의 미궁은 김진우의 미궁과 불과 2주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아무것도 없이 휑한 통로에 비석만 잔뜩 늘어선 곳이라 그간 발견하지 못한 것이 그리 이상할 것도 없었다.
“이번에는 릭샤샤를 보내도록 해. 위치야 알고 있지만 혹시 돌아가는 길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영지 외곽까지는 퀀투스와 나가 기수들이 감시하고, 외곽부터는 릭샤샤에게 맡길게요.’
“좋아, 그 정도면 되겠지.”
성장을 하지 않을 줄 알았던 외부의 용병들, 즉 릭샤샤나 오르테아가 같은 이들도 근래 들어서는 더디지만 성장을 보이고 있었다.
그 덕분에 김진우의 부담이 많이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상황이 나아진 만큼 나가의 미궁은 점점 더 다른 이들에게 노출되고 있으니 부담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장거리 순찰자들은 근접전에는 취약하지만 적을 찾아내고 행군을 방해하는 데는 이골이 난 이들이에요. 그들이 있다면 불시에 공격당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하긴 그러라고 나가 기수들의 보강도 포기하고 순찰자들을 늘린 거니까.”
다시는 교룡왕과의 전투처럼 기습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김진우는 경계에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아무리 경계에 열을 올린다고 해도 모든 침입자를 다 걸러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나마 운이 좋았다면 김진우가 가장 먼저 조짐을 발견한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던 그는 천장에 들러붙어 있는 작은 점액질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 순간 마안이 발동되었다.
[기생수의 감각이 은신한 적을 찾아냈습니다. 전투 상황이 아니므로 불완전한 마안(魔眼)이 발동합니다.] [기생수의 특수 능력 ‘분석’이 활성화되었습니다.]혈표의 심장을 흡수한 기생수는 한층 더 성장해 있었다. 전이라면 적을 발견한 것만으로 끝났을 기생수가 정체불명의 무언가를 분석하여 알려주었다.
[탐식의 덩어리, 그 자체로는 아무런 해도 끼칠 수 없는 존재이지만 숙주에게 시야를 공유하는 께름칙한 존재입니다. 탐식의 왕 우서가 미궁을 훔쳐보고 있었습니다.]메시지가 끝나는 순간 이미 김진우는 몸을 날려 점액질의 덩어리를 뜯어내고 있었다.
키에에엑!
꼼짝없이 그의 손아귀에 붙들린 점액질이 요동치며 벗어나려고 했지만 그는 절대 놓아주지 않았다.
“탐식자의 왕 우서라…….”
필시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음흉한 존재를 향해 김진우가 짧게 말했다.
“전쟁을 원하는가?”
섬뜩한 한마디에 발버둥을 치던 점액질 덩어리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이미 탐식의 미궁에 대한 분석이라면 전부 끝난 상태이다.
미궁의 내부까지 들여다본 것은 아니지만, 단순히 드러난 전력만 보았을 때도 우서의 미궁은 교룡왕보다 열세였다. 거리낄 것이 없었다.
“원한다면 해주지.”
만약 상대가 불순한 마음을 먹었다면 미리 제거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전쟁을 먼저 일으킬 생각은 없었지만, 한번 얕보이기 시작하면 뼈도 남기지 않고 물어뜯는 곳이 지저였다.
그의 한마디에 점액질 덩어리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쩌면 이 흉물스러운 덩어리의 의식 저편에서 이쪽을 살펴보고 있을 탐식의 왕 우서 역시 똑같이 몸을 떨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만큼 김진우의 눈빛은 사나웠다.
김진우는 그 뒤로 미궁을 돌아다니며 천장의 곳곳에 들러붙은 점액질 덩어리를 전부 제거했다.
릭샤샤가 있었다면 도움이 되었을 텐데 하필이면 그녀는 망자들의 왕 발리셔스의 사절단을 추적 중이다.
“드럽게 많이도 붙여놨군.”
칼 따위로는 쉽게 제거되지 않는 점액질 덩어리를 나가 마법사의 냉기로 잘게 부숴 버린 김진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주인님, 진짜 전쟁이라도 하실 작정인가요?’
“저쪽에서 먼저 이렇게 딴마음을 품고 나오면 언제 어떻게 뒤통수를 칠지 모르니까 미리 본보기를 보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맞아요. 예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전력이라면 탐식자들의 미궁 따위는 주인님 없이도 본때를 보여줄 수 있답니다.’
우려를 표할 줄 알았던 도미니크가 오히려 그를 부추겼다.
“말리지 않아?”
‘네? 어째서요? 강자의 것을 탐낸 약자는 당연히 강자에게 그 대가를 치러야지요. 탐식자들의 왕은 약자, 주인님은 강자예요. 이제 와서 눈치 볼 이유가 있나요?’
진정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반문해 오는 그녀를 보며 김진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지저는 힘이 지배하는 세계, 도미니크도 그 일원이었다. 그는 새삼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깨달았다.
“굳이 전면전이 아니더라도 한 번은 흔들어줄 필요가 있겠지. 좋아, 퀀투스가 돌아오는 대로 병력을 모아 출진한다!”
‘네, 주인님.’
[지저의 존귀한 남작이 다스리는 나가의 미궁이 탐식자들의 왕 우서에게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9층의 모든 존재가 이목을 집중합니다.]도대체 원리를 알 수 없는 지저의 소문, 김진우는 메시지 창을 보며 이미 기호지세라며 전쟁 준비를 서둘렀다.
정예 등급에 올라 대장간에서 만든 새로운 무구로 무장한 용사와 투사의 수가 오십, 뒤를 받쳐줄 사제와 주술사, 마법사가 합쳐서 열다섯이다. 교룡왕과 전쟁을 할 당시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막강한 전력에 흥분한 나가들이 날카롭게 기세를 북돋우며 출진의 날을 기다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가들은 출진의 기회를 얻지 못했다. 탐식자들의 왕 우서가 보낸 사자가 그들의 출진보다 먼저 도착한 것이다.
얼마나 급하게 달려온 것인지 흐물흐물한 몸이 뭉쳐 흘러내릴 정도로 엉망진창의 꼴을 한 우서의 사자는 영지의 외곽에서 발견되어 나가 기수에게 붙들려 왔다.
“존귀한 지저의 귀족이자 나가들의 왕이시여!”
나가 기수의 창끝에 휘감겨 있다가 패대기쳐진 사자는 제 몸을 돌볼 새도 없이 꿀렁거리며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