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51)
던전 견문록-51화(51/319)
# 51
던전 견문록
제 52 화
“그리고?”
“그리고 주인님이 어디 있든지 간에 찾을 수 있다는 것.”
안젤라는 모처럼 만에 김진우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자 무척 기뻐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것도 가능하고.”
눈앞에서 불쑥 꺼진 그녀가 갑작스레 그의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왔다.
[이런 것도 가능하고요.]육성이 아닌 텔레파시와도 같은 음성, 김진우는 새삼 안젤라의 능력에 놀랐다.
“주인님의 피를 원천으로 삼는다는 건 단순히 제가 주인님께 ‘기생’하고 있다는 게 아니랍니다. 주인님과 저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어요. 물론 이 모든 건 주인님께서 거부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누릴 수 있는 것들이지만요.”
그녀의 말에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에 잠겼다.
***
장거리 순찰자 간의 연락망이라는 게 어떤 방식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김진우가 귀환 명령을 내리고도 거의 3일이 지나서야 윤희와 릭샤샤를 비롯한 순찰대가 돌아왔다.
“주인이시여, 명을 받고 달려왔으나 걸음이 느려 이제야 왔나이다. 미천한 종을 벌하여 주시옵소서.”
언제나 같은 릭샤샤의 태도를 무시하고 김진우는 윤희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초점이 흐린 눈동자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근방의 지형과 지물을 탐사하였습니다.] [던전 베이비 윤희의 ‘길잡이’ 능력이 공유되어 지도가 형성되었습니다.]메시지와 함께 눈앞에 나가의 미궁을 중심으로 한 지도 한 장이 펼쳐졌다.
“아…….”
순찰대의 탐색 경로를 보여주듯 환상처럼 떠오른 지도는 순찰대가 탐색 도중에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려주듯 간신히 미궁의 근방만을 표시하고 있었다.
“잘했어. 수고했어.”
흡족한 얼굴로 윤희를 칭찬하니 그녀가 흠칫 놀라 몸을 떨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난생처음으로 누군가의 칭찬을 받았을 테니 그녀는 지금 꽤나 혼란스러울 게 분명했다.
그녀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건 간에 김진우는 허공에 떠오른 반투명한 지도를 보며 연신 만족스러운 얼굴을 해 보였다. 시간만 있다면 윤희의 능력을 통해 9층의 지도를 전부 그리고 싶을 지경이다.
하지만 지금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일단은 돌아가서 쉬고 있어. 조만간 멀리 나가야 할 것 같으니 체력을 보충해 둬.”
“그렇게 하겠나이다.”
반문하는 법을 모르는 릭샤샤와 윤희가 고개를 끄덕이고 오너 룸을 빠져나갔다.
홀로 남은 김진우는 머릿속으로 추린 탐사팀의 목록에 마지막으로 안젤라를 추가하고 곧장 우서의 미궁으로 향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왕좌에 앉아 거들먹거리다 김진우를 보고 깜짝 놀란 우서가 냉큼 엎드렸다.
“와, 왕이시여! 오늘은 또 어쩐 일로…….”
첫 단추를 잘못 끼운 탓인지 그를 볼 때마다 매번 필요 이상으로 움츠려드는 우서를 보며 그가 말했다.
“8층으로 향하는 통로를 알고 있어?”
“8, 8층이라면?”
“위로, 위로 올라가는 통로 말이야.”
겁이 많은 만큼 우서는 9층의 정세에 대해 밝을 게 분명했다.
전쟁의 빌미가 된 탐식의 덩어리만 떠올려 보아도 정탐 활동이 활발했을 건 자명했다. 역시나 우서는 그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알고는 있습니다만, 그건 갑자기 왜?”
“알아? 잘됐네.”
우서의 질문을 그대로 무시한 김진우가 씨익 웃어 보였다.
“같이 좀 가야겠다.”
울상을 한 우서였지만 애초부터 그에게는 선택권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틀 뒤 다시 올 테니까 할 일이 있으면 미리 끝내두도록.”
그렇게 우서 역시 탐사팀의 멤버로 추가되었다.
***
당일이 되자 모든 준비를 마친 김진우는 탐식의 땅으로 향하는 포탈을 열었다. 눈앞에 쩍 입을 벌린 포탈 너머로 우서가 보였다.
“준비됐지?”
마치 제 집 안방 문이라도 열 듯 아무렇지도 않게 포탈을 넘어선 김진우가 그렇게 물으니 우서가 대답 대신 온몸으로 기포를 부글부글 뿜어댔다.
“여기가 주인님의 첫 번째 기사가 머무는 미궁인가요?”
나들이라도 온 듯 한가로운 음성이 들리더니 안젤라가 포탈을 통과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 그녀의 뒤로 릭샤샤와 윤희가 모습을 드러내고, 줄줄이 나가 기수들이 교룡을 타고 넘어왔다.
“이건 좀…….”
오너 룸이 비좁게 도열한 십여 기의 나가 기수들을 보며 우서가 곤란한 얼굴을 했다. 어차피 한 배를 타게 되었다지만 어디까지나 타의에 의한 것, 김진우도 아닌 나가들에게까지 핵을 노출시키는 게 꺼림칙한 기색이다.
하지만 김진우는 우서의 걱정을 무시하고 곧장 출발할 것을 종용했다.
“가자. 앞장서.”
“그보다 대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그나마 오래 걸리지 않는다는 말에 우서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짧으면 한 달?”
“하, 한 달이나 말입니까?”
“길면 두 달.”
하지만 김진우의 ‘오래’와 우서의 ‘오래’는 기준이 달랐다. 우서가 뒤늦게 뜨악한 얼굴로 하소연을 했다.
“왕이시여, 제 수하들은 제가 없으면 존재 자체가 희미해지고 맙니다. 최소한 한 달에 한 번은 다시 힘을 북돋아주지 않으면 제가 돌아왔을 때 텅 빈 미궁을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아무래도 우서와 수하들의 관계는 김진우, 안젤라의 관계와 비슷한 면이 있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우서의 몸이 전보다 작은 것이 어딘가에 제 몸을 떼어주기라도 한 것 같았다.
“가능하면 맞춰주도록 하지.”
전이라면 모를까, 수하로 받아들인 이상 탐식의 미궁 역시 자신의 힘 중의 하나인지라 김진우가 나름 배려를 해주니 우서가 슬쩍 의견을 냈다.
“위층으로 올라가는 통로라면 굳이 제가 아니더라도 믿을 만한 안내인을 붙여드릴 수도 있습니다만…….”
하기야 길 안내를 맡길 것이라면 굳이 우서를 데리고 갈 필요도 없이 수하 하나를 앞세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김진우가 우서를 데려가려는 목적은 길안내만이 아니었다.
“혹시 포탈을 열 일이 생길지도 몰라. 그러니 잔말 말고 앞장서.”
지저에 탐색자들이 넘쳐나는 지금 시점에서 언제 어느 때 무슨 일이 생길지 장담할 수 없었다.
24시간 개방의 페널티가 있지만 포탈은 잘만 이용하면 만능열쇠와도 같은 것, 하나 더 있어서 나쁠 것은 없었다.
결국 우서는 마지막으로 제 몸에서 점액질 한 덩이를 쭉 뽑아 자신 대신 왕좌에 앉혀놓고 미궁을 나섰다.
“윤희, 길을 잘 기억해 둬.”
앞으로 얼마나 오가게 될지 모를 길이다. 윤희의 길잡이 능력이 있다면 다음부터는 한층 더 수월하게 방향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김진우는 윤희를 우서 바로 뒤에 세우고 근방의 지리를 익히게 했다.
“편하군.”
우서 역시 자신의 미궁 근방을 착실하게 정리해 놓은 모양인지, 아니면 9층의 유일한 귀족인 자신에 대한 소문이 난 것인지 흔한 크리쳐 하나 보이지 않자 김진우가 만족스러운 얼굴을 했다.
“왕께서 함께하시니 잡스러운 놈들은 얼씬도 못하고 근처에서 머리를 처박고 덜덜 떨고 있을 겝니다.”
우서가 슬쩍 아부를 하더니 이내 표정을 바로 하고는 한 가지 당부를 했다.
“왕의 행차에 감히 흙을 뿌릴 놈은 없겠지만 이 근방 너머에는 그야말로 야수와도 같은 놈들이 꽤나 많습니다. 존귀한 몸을 알아볼 눈도, 그 향긋한 내음을 구분할 능력도 없는 짐승들의 영역, 그때부터는 왕께서 위엄을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힘 좀 써달라는 거지?”
이래저래 돌려 말했지만 결국은 자신은 싸우기 싫으니 알아서 길을 터달라는 이야기였다. 그의 노골적인 말에 우서가 점액질을 뻘뻘 흘려대다 고개를 돌렸다.
“들었지? 앞으로 일이 생기면 너희들이 나서도록 해.”
김진우의 말을 들은 나가 기수들이 가슴을 두들기며 대열의 양옆과 앞으로 퍼져 나갔다.
크르륵.
교룡들의 낮은 숨소리를 들은 우서가 께름칙한 얼굴을 했다. 나가들이야말로 탐식의 군대를 무력화시키는 천적이라고 하더니 그게 거짓이 아닌 모양이다.
교룡 위에 올라탄 나가들을 볼 때면 우서는 괜스레 몸을 꿀렁거렸다.
“조금만 참아. 어차피 9층까지만 따라올 테니까.”
나가 기수들이 존재함으로써 힘을 비축하고 편안하게 길을 갈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미궁의 주력 중 하나인 나가 기수들이 오래도록 미궁을 비우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김진우는 나가 기수들을 8층으로 향하는 통로에 도달할 때쯤 돌려보낼 생각이다.
“가자. 서둘러서 손해 볼 건 없으니까.”
김진우의 말에 일행이 속도를 올렸다.
***
일행은 적당한 공터에 자리를 잡았다.
“주인이시여, 이쪽에 주인의 자리를 만들어놓았나이다.”
릭샤샤의 음성에 고개를 돌린 김진우는 어디서 마련한 것인지 재질 불명의 가죽이 바닥에 깔려 있는 것을 보고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데…….”
“주인께서는 미궁의 한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들었나이다. 혹여 찬 바닥에 자리를 마련했다가는 그 성질 나쁜 나가 계집의 잔소리를 들어야 할 터, 부디 헤아려 주시옵소서.”
성질 나쁜 나가 계집이란 아마도 도미니크를 가리키는 것이리라.
“그렇게 하지.”
그렇지 않아도 도미니크로부터 온갖 잔소리를 듣고 나서야 미궁을 나설 수 있게 된 그인지라 굳이 사양하지 않고 바닥에 깔린 가죽 위에 몸을 눕혔다.
“그대들은 3기 1조로 불침번을 서도록. 주인께서 이곳에 계심을 모두가 알게 하여라.”
그사이에 나가 기수들보다 서열이 위로 잡힌 것인지 릭샤샤가 거침없이 지시를 내렸다.
“나 탐식의 왕이 있는 곳에 누가 있어 소리 없이 접근하겠는가. 언더 엘프 계집은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말라!”
그런 릭샤샤를 향해 우서가 호통을 치고는 제 몸을 꾸역꾸역 나누어 이곳저곳에 뿌렸다. 바닥에 흘러내린 점액질 덩어리가 꾸물대며 기어가 통로 너머로 사라지자 우서가 김진우를 보며 우쭐거렸다.
마치 자신의 능력을 뽐내는 듯한 모습이다.
멀리 떨어진 탐식의 땅에서도 나가의 미궁을 들여다볼 정도의 능력이니 우서의 장담대로 침입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저 능력으로 인해 김진우에게 코가 꿰인 우서인데 지금은 당시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듯 보여 그게 못내 우스웠다.
“9층은 원래 다 이런가요?”
안젤라 역시 우서의 채신머리없는 행동이 우스웠는지 입가를 가리고 낮게 웃어 보였다.
“우서가 특이한 거지.”
당장 자신이 본 교룡왕 아낙스투스만 해도 미궁의 주인이라고 불리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강자였다.
나가의 미궁을 찾은 다른 사절단의 면면을 보아도 9층 미궁의 주인들이 모두 우서 같지는 않을 게 분명했다.
“생긴 것도 재미있고 하는 짓도 재미있네요. 9층이 더 좋아질 것 같군요.”
“글쎄.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시기상조지. 여기라고 심층과 다를까. 이곳도 틈만 보이면 물어뜯겠다고 달려드는 지저의 일부분일 뿐이야.”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었다.
당장 김진우 본인만 해도 초라한 탐식의 군대를 보고 섣불리 우서의 힘을 과소평가한 전적이 있다.
탐식의 군대 또한 겉모습만큼은 우서처럼 우스꽝스러웠다. 그렇지만 실상을 알고 보면 탐식의 군대는 어지간한 물리적 충격 정도는 무시하는 막강한 점액질 덩어리들로 이루어진 까다로운 상대였다.
우서 역시 지금은 몸을 낮추고 있지만 필시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글쎄요. 심층의 주인들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걸요. 저 탐식의 왕이라는 작자만 해도 심층에 가면 고작 일개 부대장이나 맡을 수 있을까. 심층은 진짜 괴물들의 세상이에요.”
“심층의 주인이라면 나 역시 본 적이 있지.”
어디 보았다 뿐인가. 십 수 년을 그 밑에서 노예처럼 살아온 김진우다. 은연중에 드러나는 사나운 기세에 안젤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원한이 있군요?”
김진우는 대답 대신 조용히 야영 준비에 한창인 일행을 보았다.
던전 베이비로 지저에 들어섰을 때와는 다른 분위기로 여기 있는 어느 누구도 크리쳐의 습격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의 남작 타이틀 때문인지, 아니면 스스로의 힘을 믿는 것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은 미궁 밖 지저라고 하여 특별히 불안해하지 않았다.
하기야 9층 미궁의 주인이 둘이나 있고 사납고 용맹한 나가 기수들이 10기나 주변에 포진해 있다.
탐식의 왕은 제 몸을 나눠 온 사방에 거미줄처럼 경계망을 펼쳐 두었고, 안젤라는 살아 있는 존재의 기척을 찾아낼 수 있는 흡혈귀다.
불시의 습격이란 애초부터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김진우는 이곳이 지저의 어딘가라는 사실조차 희미하게 느껴질 정도로 평안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일행은 다시 길을 나섰다.
그사이에 몇 번의 습격이 있었지만, 모조리 나가 기수들에 의해 격퇴되었다.
나가 기수들의 전투를 처음 눈앞에서 목도한 김진우는 감탄하고 말았다.
교룡과 기수가 마치 한 몸처럼 적을 물어뜯고, 할퀴고, 창으로 찢어발기는데 그 용맹성이 보통이 아니었다.
크리쳐들은 모습을 드러내는 족족 나가 기수들에 의해 다운 잼이 추출되고 말았다.
“여기가 위층으로 향하는 통로입니다.”
우서가 멈춰 서며 말하는 순간, 김진우는 메시지 창을 확인할 수 있었다.
[8층과 9층을 잇는 통로를 발견했습니다.] [탐식의 땅에서 9층과 8층을 잇는 통로까지의 경로가 지도에 추가되었습니다.] [길잡이 능력의 효과로 윤희가 나가의 미궁과 탐식의 미궁을 잇는 경로를 가늠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9층 지도의 가려져 있던 부분의 일부가 공개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