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54)
던전 견문록-54화(54/319)
# 54
던전 견문록
제 55 화
#21. 축제의 왕
[특수 능력 ‘스텔스’가 활성화되었습니다.]어렵게 얻은 전투와 전투 사이의 짧은 텀, 기다리고 기다리던 스텔스 능력이 활성화되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어둠 속으로 몸을 감춘 김진우를 따라 안젤라 역시 그림자 속에 녹아들었다.
“보이는데요?”
안젤라의 음성에 그가 쓴웃음을 지었다.
“어쩔 수 없지. 그렇다고 버리고 갈 수는 없으니까.”
미궁에서 멀어진 지 지나치게 오래된 탓인지 우서는 크리쳐들의 사체로 포식했음에도 불구하고 힘의 손실을 막을 수 없었다.
그래서 몸을 투명하게 만들어 김진우에게 들러붙어 있었는데, 덕분에 김진우의 스텔스 능력에 오류가 생겨 버렸다.
갑옷처럼 들러붙은 우서가 빠르게 이동할 시에 주변과 동화되는 속도가 느려 약간의 딜레이가 생긴 것이다.
“죄송합니다.”
“만약 여기서 더 걸리적거리면 돌려보낼 테니까 그렇게 알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
“조용. 이동한다.”
우서의 은근한 말을 잘라낸 그는 이동을 시작했다. 빠른 이동이 불가능한 카모플라쥬 능력과는 다르게 스텔스는 전투만 벌어지지 않는다면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
그래서 김진우는 날듯이 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 있었다.
중간 중간에 서로 악다구니를 쓰며 죽일 듯이 싸워대는 크리쳐들과 마주치기도 했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허공에 생겨난 작은 일그러짐을 발견하지 못했다.
하기야 저렇게 살벌하게 서로를 물고 뜯고 있는데 다른 데 신경 쓸 여력이 있겠는가. 크리쳐들은 바로 제 옆을 지나가는 김진우 일행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확실히 7층 전체가 미쳐 돌아가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가자. 조금 거리가 있으니 서둘러야 해.]한참 전부터 움직일 생각도 없이 그대로 머무르는 지도의 한 점을 바라보며 김진우가 걸음을 재촉했다.
***
지도를 보며 이동을 한다는 건 생각 이상으로 편한 일이었다.
비록 그 지도가 중간에 뭉텅이로 잘려나가 연결부가 없는 반편이도 못 되는 것에 불과했음에도 불구하고 길을 가늠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그 덕분에 김진우는 윤희를 잃어버린 지 채 이틀이 되기도 전에 까맣게 표기된 미지의 영역을 넘어 윤희가 생뚱맞게 갱신하기 시작한 첫 지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주인님, 던전 엠블럼이에요.] [나도 봤어.]이제까지 이어지던 투박한 토굴과는 확연하게 다른 벽면에는 낯익으면서도 생소한 던전 엠블럼이 새겨져 있었다.
역시 짐작이 빗나가지 않았다.
윤희는 정체불명의 미궁에게 이끌려 공간을 넘어 이곳에 떨어진 것이다.
[저게 무슨 엠블럼이죠?] [마치 피에로의 가면처럼 보이는군.]과연 심층에 피에로라는 존재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외에는 마땅히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흠. 왠지 꺼림칙한데요.] [그래도 들어가 봐야지.]윤희를 찾는 것도 그렇지만 처음 지저 탐사를 결심하게 된 목표가 바로 저 안에 있을 게 분명했다.
[가자.]던전 엠블럼 앞에 멈춰 섰던 일행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
미궁은 아직 활성화되기 전이라 그런지 별다른 특색이 없었다. 그저 번듯한 바닥과 매끈한 벽면이 이곳이 미궁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진우는 일행에게 경고했다.
“조심해.”
버려진 미궁과는 다르다. 이곳은 아직 살아 있는 미궁이었다.
만약 미궁이 윤희를 주인으로 선택한 것이라면 자신들은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이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렇게 조심스러운 걸음을 옮기고 있는 그들은 짧은 통로 끝에 놓인 널찍한 공터를 발견했다. 공터의 한가운데에는 이곳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나무 상자와 해골이 놓여 있었다.
손을 대면 바스러질 듯 낡은 나무 상자와 그걸 다시없는 보물처럼 죽어 해골이 되어서도 끌어안고 놓지를 않고 있는 주검 하나, 일행은 그 기묘한 조합을 보며 발걸음을 멈추었다.
[대체 뭐죠?] [글쎄…….]안젤라가 상자의 정체를 물었지만 김진우라고 알 턱이 없었다.
“제가 확인해 볼까요?”
우서가 그들이 텔레파시로 나누는 대화를 눈치 챘는지 작게 속삭이듯 말하고는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철퍼덕 하고 바닥에 눌어붙은 우서가 이제는 어린아이만 해진 몸통에서 주먹만 한 점액질 덩어리를 떼어내더니 상자를 향해 던졌다.
안젤라의 텔레파시에 김진우가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꾸물거리며 바닥을 기어 전진하는 점액질 덩어리의 모습은 꽤나 흉물스러웠다.
“그럼 한번 열어보겠습니다.”
형태가 상자라서 그런 것일까, 우서는 당연한 일이라는 듯 상자를 열어보려고 했다.
“잠깐! 멈춰!”
이제 막 점액질 덩어리가 상자에 닿으려는데 김진우가 우서를 제지했다.
“굳이 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괜히 위험을 자초할 필요는 없어. 저 상자는 그냥 무시한다.”
“아…….”
그제야 자신들이 묘한 분위기에 휘말렸다는 사실을 깨달은 우서가 작게 신음했다.
무의식중에 저 상자를 꼭 열어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 이곳이 어디인지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뭔가 이상해.”
김진우 역시 그런 일행의 변화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도 열어봐야 할 것 같은데…….”
미련이 남은 듯한 우서의 말에 안젤라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혹시 미궁에 숨겨져 있는 보물이 아닐까요.”
평소 웃는 얼굴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냉정한 안젤라의 말치고는 지나치게 희망적이고 낙관적인 말이다. 아니, 애초에 명령도 없이 모습을 드러낸 것부터가 정상적이지 않은 행동이다.
“그대도 그렇게 생각하는군.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네.”
거들먹거리는 듯한 우서의 말과 행동, 그 기색이 묘할 정도로 흥분해 있다. 안젤라 역시 다시 얼굴을 들여다보니 볼이 빨갛게 상기된 것이 어딘지 모르게 들뜬 모습이다.
탁, 탁.
그때 일정하게 들려오는 소음에 김진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주변을 둘러보던 그는 이내 그 소리가 제 발 끝에서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자신의 발끝이 마치 별개의 의지라도 지닌 것처럼 리듬을 타듯 바닥을 찍어대고 있다.
“흠, 흠.”
그 순간 들려온 콧노래. 고개를 돌린 그의 눈에 안젤라가 작게 허밍을 하듯 콧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그 노래가 마치 처음부터 맞춘 것처럼 리듬을 타듯 바닥을 찍는 발소리와 호흡이 딱 맞았다.
“음. 열어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는 우서의 몸이 춤을 추듯 출렁거리고 있다.
위험하다.
기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일행의 행동을 보는 순간 그의 온몸이 긴장으로 굳었다.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경고가 들려오고 있다.
“상자에서 떨어져!”
다급한 음성에 안젤라와 우서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을 했다.
“뭔가 이상해! 물러서라고!”
이제는 머릿속으로 환청처럼 경쾌한 노랫소리까지 들려올 지경이라 김진우의 음성이 깨어져 나간 칼끝처럼 날카로웠다.
하지만 일행은 여전히 멀뚱멀뚱 그를 바라보다 예의 그 행동을 반복했다.
결국 보다 못한 그가 한발 나서서 어느새 상자 바로 근처까지 다가간 우서와 안젤라를 잡아 멀찌감치 던져 버렸다.
상황이 급박한 탓에 힘 조절도 않고 던졌더니 우서가 빈대떡처럼 벽에 붙어 뭉개졌다 스르륵 흘러내렸다.
“음?”
우서는 충격 탓인지 정신이 없어 보였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상자와 그를 번갈아 바라보다 이내 기포를 부글거리며 몸을 낮췄다. 뒤늦게 위험을 감지한 모양이다.
안젤라 역시 공터 바깥 통로까지 튕겨져 나갔다가 돌아오는데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다.
[치명적인 현혹의 함정에 저항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축제의 왕이 내린 끔찍한 저주 ‘끝나지 않는 축제’의 영향으로부터 일행은 완전하게 벗어났습니다.] [현혹의 효과가 사라졌습니다.] [기생수조차도 감지할 수 없는 은밀한 저주를 막아낸 당신의 판단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아주 약간이지만 카리스마가 상승하였습니다.]함정에 저항하는 데 성공했다는 메시지가 떠오른 순간, 그는 자신과 일행을 괴롭히던 노랫소리가 정체불명의 상자에서 흘러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현혹에서 풀려난 탓인지 상자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더 이상 경쾌하지도 흥겹지도 않았다. 딱딱한 무언가가 부딪치듯 둔탁한 소음에 오히려 등골이 서늘해질 지경이다.
“조심…….”
일행을 추스른 그가 경고를 채 끝내기도 전에 공터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여 있던 상자에서 노랫소리가 뚝 끊기고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축제의 왕은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파티를 망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함정에 저항한 불청객을 직접 쫓아내기 위해 ‘문지기’가 나타났습니다.]메시지가 끝나기 무섭게 상자를 끌어안고 있던 해골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달그락달그락.
몸을 일으킨 해골이 온몸의 뼈마디를 부딪쳐 대며 울어댔다. 그 모습이 꼭 잠에서 깨어난 망자처럼 보여 어지간한 이라면 기절이라도 할 것처럼 끔찍해 보였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일행 중 죽은 자를 두려워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메시지 창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해골의 뒤에서 나타난 안젤라가 손끝의 갈고리처럼 오므리고 해골의 목뼈를 그대로 후려쳤다.
우드득!
평소의 그녀답지 않은 우악스러운 공격에 해골의 목뼈가 단숨에 박살 나며 두개골이 저 멀리 굴러갔다. 바닥을 나뒹구는 두개골을 넓게 몸을 펼친 우서가 집어삼켜 버렸다.
“아…….”
미처 나설 새도 없이 끝나 버린 전투. 안젤라가 와르르 무너져 내린 해골을 잘근잘근 밟아대다 뒤늦게 후련한 얼굴을 해 보였다.
“이깟 하찮은 함정에 당하다니…….”
심층에서 거하던 그녀는 고작 7층에 불과한 미궁의 함정에 당했다는 사실이 못내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다. 우서 역시 마찬가지인지 꾸물거리며 기어와 남은 뼈를 모조리 집어삼켜 버렸다.
“미궁의 주인이 어떤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보지 않아도 그 고약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우서 본인이야말로 투명한 몸 안에 가득 삼킨 해골이 소화되는 모습이 고약했지만 어느 누구도 그 사실을 지적하지는 않았다.
“가자. 시간을 너무 지체했어.”
한숨을 내쉰 김진우는 다시 미궁의 깊은 곳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그 뒤로도 몇 번인가 함정을 만났지만, 한 번 크게 당할 뻔한 적이 있어서인지 일행은 쉽사리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
막상 그렇게 경계하는 마음을 먹고 나니 사실 미궁 자체의 함정은 대수롭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쪽에 특화된 것인지 거의 모든 함정이 현혹과 매혹, 또는 혼란을 일으키는 종류의 것이었다.
막판에 이르러 그간 미궁에 현혹되어 억류돼 있던 십 수 마리의 크리쳐들이 달려들어 한바탕 전투를 치러야 했지만, 김진우와 일행은 그 어떤 피해도 없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정말 윤희의 기운이 느껴져요. 대체 어떻게 윤희가 여기 있는지 안 거죠?”
안젤라가 어떻게 윤희를 찾아낸 것이냐며 신기한 어투로 물었지만, 김진우는 대답하는 대신 주먹을 꽉 움켜쥐고는 뒤로 젖힐 뿐이었다.
콰앙!
그때 무지막지한 소음과 함께 흙먼지가 날리더니 낡은 석문이 무너져 내렸다.
그렇게 열린 틈새 너머로 망연자실해 주저앉아 있던 윤희가 벌떡 몸을 일으키는 것이 보였다. 돌처럼 굳은 그녀의 뒤로 피에로의 가면이 새겨진 커다란 석탁이 보였다.
[기생수의 특수 능력 ‘탐색’이 발동되었습니다.]메시지와 함께 김진우의 세상이 흑백으로 변했다.
[아직 활성화되지 않은, 각인이 끝나지 않은 미궁의 핵을 발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