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56)
던전 견문록-56화(56/319)
# 56
던전 견문록
제 57 화
“뭐가 이렇게 소란스러워? 가서 좀 알아봐.”
송종철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하자 사내 하나가 사라졌다.
“그거 막는 게 뭐 힘들다고 저 난린지.”
“요즘 탐색자들이 미궁 때문인지 도통 말을 안 듣습니다. 이번에도 협회 이름으로 지저 탐색을 자제해 달라고 공문까지 돌렸는데 이 모양이니…….”
“에잉, 다들 욕심에 눈이 멀어가지고는…….”
사실 따지고 보면 본인부터 지저에 들어선 이유가 다른 탐색자들과 다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말하는 모양새가 뻔뻔했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이들은 전부 협회에서 한 자리씩 차지한 그의 수족 같은 이들, 어느 누구도 이를 지적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이건 뭐, 어떻게 하는 거야?”
한참을 들여다보고 이리저리 만져 봐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제단과 석탁. 지금 그들은 미궁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오너 룸에 있었다.
하지만 활성화되지 않은 오너 룸은 그저 휑한 석실에 불과할 뿐 특별할 게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 거라도 좀 만져봐. 여기 내내 있을래?”
송종철의 지시에 협회의 간부들이 금세 부산을 떨며 석탁이며 벽 등을 닥치는 대로 쓸고 만지고 다녔다.
[다행히 아직 늦지 않은 것 같네요.]그사이에 아무도 모르게 잠입한 김진우와 안젤라는 송종철 일행이 하는 짓거리를 지켜보다 한심하다는 투로 말했다.
[애초에 인연이 아닌 걸 저리 붙들고 있으니 보는 제가 다 갑갑할 지경이네요.]안젤라의 텔레파시에 김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선택 받은 이라면 원하지 않아도 미궁에 이끌려 강제로 주인이 된다. 김진우 본인이 그랬고 윤희가 그런 경우이다.
그 말인즉슨 이 안에 미궁의 선택을 받은 이는 아무도 없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아오, 이제는 하다하다 미궁이 사람 차별하냐.”
송종철이 갑갑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분통을 터뜨리는 것을 보며 안젤라가 물었다.
[어떻게 하실 거예요? 이대로 지켜보실 거예요?] [일단 틈을 봐야지.]일단 미궁에 선택 받지 못한 것은 김진우나 안젤라 역시 마찬가지인지라 방법을 찾아봐야 하는 상황이라는 건 송종철 일행과 똑같았다.
“바깥에 크리쳐가 습격했답니다!”
그때 바깥 상황을 살피러 나간 협회의 탐색자가 돌아와 보고했다.
“뭐? 크리쳐? 애들이 몇인데 크리쳐가 습격을 해!”
“그게 은신한 크리쳐랍니다. 카모플라쥬나 뭐 그런 거 같은데, 지금 바깥은 난리도 아닙니다.”
[풉. 크리쳐래요. 아마도 우리 얘기 같은데.]안젤라가 호들갑을 떠는 모습이 우스웠는지 송종철 일행을 비웃었다.
“그래서 찾았대?”
“아뇨, 아직. 지금 그쪽으로 트인 애들 몇이 샅샅이 수색 중인데 나오지를 않은 모양입니다.”
“일 처리를 뭐 그따위로 해? 여기가 저층도 아니고 고작 4층에서 그 인원으로 그것밖에 못해?”
“그게… 탐색자들이 하도 소란을 피워대는 통에 쉽지가 않은…….”
버럭 소리를 지르는 송종철의 모습에 탐색자가 목을 움츠렸다.
“가만, 밖에서 발견 못했으면 이 안까지 기어 들어온 거 아니야?”
과연 경험 많은 던전 베이비다운 판단이다. 송종철이 그리 이야기하자 협회의 간부들이 일제히 무기를 꺼내 들고 주변을 노려보았다.
[아무래도 들키겠는데요.]안젤라는 지금의 상황이 재미있는지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밝은 음성이다.
“밖에 나가서 탐지 능력 있는 애들 아무나 하나 데려와 봐.”
송종철이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훑어보며 지시를 내렸다. 그사이에 결정을 내린 김진우가 안젤라를 불렀다.
[네?] [잠깐 시간 좀 벌어줄래?]안젤라가 단번에 그 의미를 알아듣고 아무도 보이지 않게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할까요? 몇 명 정도는 죽여도 되나요?]상큼한 말투와는 어울리지 않는 살벌한 내용. 그러고 보니 조금 전부터 안젤라의 기척이 잔뜩 들뜬 것이 뭔가 사정이 있는 듯했다.
[저들을 얕보지 마. 저래 봬도 지저에서 끝내 살아 올라온 이들이다. 지금 보이는 게 저들의 전부가 아니야.] [글쎄요. 저들은 주인님하고 다르게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것 같은데요. 생명력도 혼탁하고 그다지 강해 보이지도 않아요.]왠지 모르게 쩝 하고 입맛 다시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아 김진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시간 없으니 잡담 그만 하고 적당히 가서 소란 피워. 가급적이면 모습 드러내지 말고.] [네, 노력해 볼게요.]어쩐지 사고를 칠 것 같은 느낌이라 말리고 싶었지만, 이미 안젤라의 기척은 주변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잠깐 나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안젤라가 뭘 어떻게 한 것인지 금세 바깥이 소란스러워지고 상황을 살피러 나간 탐색자가 송종철을 다급하게 불러댔다.
“왜 또?!”
“그게… 애들 중 몇 명이 좀 이상합니다!”
“뭐가 어떻게 이상한데?”
“눈이 돌아가서 같은 편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현우가 다쳤고 병우하고 진식이도 다쳤어요!”
“이런 미친!”
송종철이 욕설을 내뱉고는 오너 룸을 나서려다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혹시 모르니까 너하고 너는 여기 남아서 지키고 있어. 기껏 고생해서 남 좋은 일만 시키지 말고.”
끝까지 경계를 늦추지 않는 송종철의 모습이 과연 탐색자협회의 간판다웠다. 하지만 김진우는 남은 두 명의 탐색자를 눈으로 훑어보고는 차가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거 미궁의 저주 아냐? 그렇잖아. 전 주인도 갑자기 죽었고, 이번에도 애들 몇이 갑자기 미쳐 날뛰고. 어째 으스스한데?”
석탁을 등지고 선 탐색자들이 바깥의 동정을 살피며 이야기를 하는데 낯빛이 어쩐지 창백했다. 아마도 안젤라가 벌인 소란을 두고 단단히 오해한 모양이다.
“괜한 일에 휘말린 건 아닌지 몰…….”
“왜 말을 하다 말아?”
동료가 갑자기 말을 멈추자 고개를 돌린 탐색자가 희끗거리는 그림자를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풀썩 쓰러졌다.
“후, 힘이 너무 세졌나.”
단지 기절만 시키려 했을 뿐인데 일반 탐색자도 아니고 던전 베이비나 되어 거품까지 물고 쓰러진 두 사내의 모습이 차라리 황당할 지경이다.
하지만 그도 잠시, 이내 표정을 굳힌 김진우는 석탁을 살펴보았다.
던전 엠블럼이 지나치게 희미해져 있어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있는지 없는지도 구별하기가 쉽지 않았고, 그마저도 흐릿해 대체 무슨 엠블럼인지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주인을 잃어 활동이 정지된 미궁의 핵을 발견했습니다. 새로운 주인을 찾기 전까지는 활성화되지 않습니다.]짚이는 것이 있어 석탁에 손을 얹으니 메시지가 다시 떠올랐다.
[각인에 실패했습니다. 주인을 잃은 미궁이 각인 작업을 거부하였습니다.]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아니었다. 강제로 석탁을 뜯어서라도 가져가야 하나 고민하는 그의 눈앞에 새로운 해결책이 나타났다.
[활성화되지 않은 핵을 추출하려면 최상급 다운 잼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미궁의 핵을 추출하는 데 성공한다고 해서 그것이 당신이 미궁의 소유권을 가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미궁은 언제든 자신의 주인을 스스로 선택하려고 할 것입니다.]생각할 것도 없었다. 최상급 다운 잼이라면 마침 혈표의 심장을 지니고 있다.
품에서 혈표의 심장을 꺼낸 그가 석탁에 가져다 대니 석탁 위에 얼룩처럼 희미하게 새겨져 있던 던전 엠블럼이 쑥 빨려들 듯 빨간 보석 안으로 사라졌다.
[활성화되지 않은 미궁의 핵을 추출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적당한 주인을 찾기 전까지 미궁의 핵은 다운 잼 안에 잠이 들어 있을 것입니다.] [핵을 잃은 미궁이 완전히 기능을 정지합니다.]메시지가 끝나기가 무섭게 석실의 공기가 마치 생명을 잃은 미궁을 대변하듯 착 가라앉았다.
[주인님!] [다 끝났어! 가자!]마침 돌아온 안젤라의 텔레파시에 김진우는 곧장 석실 밖으로 몸을 날렸다.
“애들 정신 상태 똑바로 체크하라고 했지! 시바! 정신 간당간당한 애들은 지저에 못 들어오게 하라고 했잖아! 저러다 사고 친다고 내가 몇 번을 이야기했어!”
“그게 솔직히 지저에서 올라온 놈들 중에 제 정신 유지하는 놈이 얼마나 있다고…….”
“이 새끼가 말대꾸를 하네? 너 많이 컸다? 나 송종철이야, 송종철! 어디서 말대답이야!”
잔뜩 화가 난 송종철과 협회의 간부들이 다시 석실로 돌아오더니 바닥에 누워 거품을 물고 자빠져 있는 사내들을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런 망할! 야, 뭐 없어진 거 있나 확인하고, 넌 애들 확인해!”
이상한 낌새를 느낀 송종철이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는 석실을 둘러보았다.
“없어지거나 달라진 건 없습니다.”
“없어진 게 없는 게 아니라 애초에 뭐가 있었는지를 모르니 없어진 게 없다고 하는 거겠지.”
그렇게 말한 송종철 본인도 석탁을 보고 있으면서도 사라진 던전 엠블럼을 발견하지 못했다.
“어쨌건 더 찾아봐! 탐색자들 막아두는 것도 하루 이틀이야! 그전에 쇼부 쳐야지, 안 그러면 얻는 것도 없이 욕만 오지게 먹을 판이니 알아서들 해!”
이미 알맹이는 김진우가 챙겨가고 남은 것은 빈껍데기뿐인 미궁이었지만 이 사실을 알 리 없는 송종철은 애꿎은 협회의 간부들만 닦달해 댔다.
***
지상에 올라오는 길에 마주친 수많은 탐색자들은 여전히 미궁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떼가 꼬질꼬질 낀 얼굴로 어두운 땅 밑 세상을 헤매는 것이 안쓰러워 조금 찔리기는 했지만 김진우는 이내 무시했다.
어차피 저들 중에 미궁의 선택을 받은 이는 없었다. 만약 있었다면 진즉 미궁이 대상을 끌어들여 강제적으로라도 각인을 끝마쳤을 것이다.
혹시나 다른 층에도 무언가 이변이 일어난 건 아닌가 되짚어 올라오며 확인을 해보았지만 별다른 특이 사항은 없었다.
“여기가 지상이군요!”
흡혈귀 주제에 지상의 볕을 만끽하듯 양팔을 벌리고 감동한 안젤라의 모습이 지독스러울 정도로 이질적이다.
“와!”
하지만 그건 그녀의 정체를 아는 김진우의 감상일 뿐 게이트를 오고 가는 수많은 탐색자들은 그녀를 보며 시선을 떼지 못했다.
오후의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는 백금발을 늘어뜨린 채 한없이 싱그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이국적인 미녀는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외국인 탐색잔가?”
“와, 나 진짜 심장 쫄깃해진다.”
그나마 대부분의 탐색자들이 지저로 향한 지 오래라 평소에 비해 다소 한산한 게이트였지만, 그래도 시선이 쏠리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인상을 찡그린 김진우가 냉큼 다가가 안젤라의 머리에 후드를 뒤집어씌웠다.
어차피 외양만 봐서는 인간과 다를 바 없는 그녀인지라 거리낄 게 없었음에도 그 비인간적인 아름다움이 지나치게 시선을 끄는 것이 불편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후드를 다시 젖히고는 볕을 만끽했다. 제 뺨에 와 닿는 햇살이 그렇게 좋은 모양이다.
“조금만 더!”
흡혈귀라는 정체성마저도 모호해지는 안젤라의 모습에 그가 다시 한 번 후드를 뒤집어씌웠다.
“나중에. 어차피 시간은 많아.”
“나중에요? 또 데리고 와주실 건가요?”
애원하듯 매달리는 그녀를 보고 탐색자들이 사나운 얼굴로 김진우를 노려보았다. 그래봤자 그가 한 번 주변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황급히 고개를 돌리고 딴청을 피워댔다.
당사자는 모르겠지만 지저 탐색을 막 끝내고 나온 던전 베이비들은 야성이 채 가라앉지 않아 눈빛이 섬뜩했다.
미궁 탐색에도 참가하지 못한 탐색자들이 받아낼 만한 눈빛이 아니었다.
“흠. 같은 지상인이라고 전부 다 주인님 같지는 않은 모양이네요. 밑에서 본 탐색자라는 족속들도 여기 땅 위의 인간들도 전부 보잘것없어요.”
후드를 씌워주느라 가까이 다가선 그의 귓가에 바짝 붙은 그녀가 속삭이듯 말했다.
“역시 전 주인님이 아니면 안 되겠어요.”
어지간한 사내라면 심장이 덜컹 내려앉을 달콤한 음성이었지만, 김진우는 귀찮다는 듯이 후드 끝을 쭉 잡아당겼다.
“내가 호칭 조심하라고 했지.”
후드 끝을 잡힌 채 질질 끌려가는 안젤라의 모습을 본 탐색자들이 김진우 모르게 이를 갈아댔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탐색자들에게 원성을 산 김진우는 남들이야 뭐라고 하건 신경 쓰지 않았다.
집에 도착하니 안젤라가 금세 구석구석을 살펴본다고 수선을 피워댔다.
“이곳이 주인님이 지상에서 지내는 곳이군요. 감동이에…….”
“포탈.”
창고를 개조한 집이 뭐 그리 특별하다고 감동했다는 듯이 떠들어대는 그녀의 말을 잘라낸 김진우가 곧장 포탈을 열고 그녀를 끌어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