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58)
던전 견문록-58화(58/319)
# 58
던전 견문록
제 59 화
[여보세요?]휴대폰의 통화 버튼을 누르니 웬 사내의 목소리가 저편에서 들려왔다. 그 음성을 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나 잠시 생각하던 김진우는 이내 짧게 대답했다.
“누구십니까?”
그 날 선 목소리에 상대가 조심스레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번에 새롭게 발족한 지저개발국의 김주혁 차장입니다.]“지저개발국? 관리사무소랑 다른가요?”
지저개발국이라는 생소한 이름에 그가 반문했다.
[네. 그간 미궁관리사무소에서 해오던 일을 그대로 이어받긴 했는데, 전보다 더 거시적으로 지저의 전반적인 상황을 총괄 관리하는 부서입니다. 아무래도 근래 들어 시끄러운 일도 있었고 지저의 가능성을 생각하면 전처럼 현상 유지에만 급급하다는 건 문제가 있다는 판단이었거든요.]말이야 이래저래 돌렸지만 결국은 돈이 될 것 같으니 조금 더 제대로 관리하겠다는 말이다.
하지만 언더 워가 끝난 지 10년이나 흐른 지금에 와서 굳이 이런 일을 벌이는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하필 지금인가.
[자세한 건 유선상으로 말씀드리기 그렇고, 시간이 나실 때 한번 방문해 주시겠습니까? 김진우 씨는 저희 개발국에서도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최고 레벨의 던전 베이비라 꼭 한 번 방문해 주십사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멋대로 떠들어대던 지저개발국의 김주혁 차장은 몇 번이고 사무실을 방문해 달라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아니, 왜 이제 와서…….”
그간 정부가 지저를 방치해 오다시피 한 자세와는 확연하게 다른 개발국의 태도에 김진우는 도통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얼마 전에 미궁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그간 10년간 보여 온 정부의 행보가 석연치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지저에서 무지막지한 돈이 흘러나오고 있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 가치가 얼마나 될지 모르는 미궁의 발견으로 갑자기 끼어들었다고 하기에는 김주혁 차장의 태도가 지나치게 원숙했다.
아주 오랫동안 준비해 온 일이라는 것이 확연하게 느껴졌다.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왜?’라는 의문이 떠오르고 다시 사라졌다. 하지만 혼자 끙끙 앓아봐야 답은 나오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백 선생에게 연락을 취해보았지만 백 선생은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다.
오히려 지저개발국이 뭐 하는 곳이냐며 꼬치꼬치 물어오는 백 선생에게 대충 말을 얼버무린 김진우는 휴대폰에 찍힌 주소를 가만히 바라보다 집을 나섰다.
곧 다시 지저에 돌아갈 것을 생각하면 마냥 연락을 기다리기에는 상황이 맞지 않았다.
“음…….”
지저개발국은 광화문의 한가운데 있었다. 여느 회사의 사무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외관에 흔한 간판조차 없는 개발국의 사무실을 가만히 바라보던 그는 입구로 들어섰다.
40여 평 남짓한 사무실에 스물이 넘는 인원이 컴퓨터 화면을 보며 뭔가에 몰두하고 있는 지저개발국의 모습은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급조한 단체는 절대로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김주혁 차장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그의 방문을 뒤늦게 알아차린 직원 하나가 묻기에 그는 곧장 용건을 꺼내 들었다.
“누구라고 전해드릴까요?”
“김진우라고 하면 될 겁니다. 오늘 통화도 했습니다.”
“아, 김진우 씨요? 네, 알겠습니다.”
김진우의 눈이 번뜩였다. 태연한 척 말을 받아 넘겼지만 분명 사내는 자신의 이름을 듣고 적지 않게 놀란 눈치였다.
그 말인즉슨 이 사내 역시 자신이 누구인지를 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건 지저개발국의 거의 모든 직원이 지저와 밀접한 업무를 보고 있다는 사실과 일맥상통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한낱 사무직에 불과한 사내가 관리사무소에서도 등급 외 정보로 분류한 자신의 이름을 듣고 저리 놀랄 수가 없었다.
“오, 김진우 씨, 생각보다 일찍 오셨군요.”
사내가 파티션 너머로 사라진 지 얼마 되지 않아 금세 김주혁으로 보이는 사내 하나가 다가왔다.
“김주혁입니다. 이렇게 얼굴을 뵈니 무척 반갑군요. 자, 이쪽으로.”
역시나 예상대로 평범한 인상의 사내는 김주혁 차장이었다. 그의 안내를 받아 김진우는 사무실의 한 귀퉁이에 마련된 회의실로 들어섰다.
“이렇게 빨리 오실 줄은 몰랐는데, 조금 놀랍군요.”
“궁금한 것이 많아서요.”
반갑게 자신을 반겨주는 김주혁 차장의 태도가 어쩐지 능숙하면서도 능글맞아 보여 김진우는 용건부터 꺼내 들었다. 이런 상대를 대할 때 이리저리 말을 돌리면 결국 손해 보는 건 사회 경험이 많지 않은 자신인 탓이다.
“아, 그렇습니까?”
“네. 지저개발국이 대체 뭐 하는 곳입니까? 주변에 물어봐도 아는 사람이 없더군요.”
“혹시 벌써 개발국에 대해 주변에 얘기를 하신… 아, 뭐 상관은 없습니다. 어차피 곧 공식적으로 발족식을 가질 예정이라…….”
저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떠들어대는 김주혁을 보며 그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온몸이 ‘용건만 간단히’라고 말하고 있다.
김주혁 역시 그 사실을 느꼈는지 이내 무안한 얼굴로 설명을 시작했다.
“저희 지저개발국은 지저의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조금 더 제대로 관리하여 공익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취지로 발족한 단체입니다.”
“결국 다운 잼 때문입니까?”
“다릅니다. 다운 잼 때문이 아니라 그 다운 잼으로 얼마나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느냐가 주 관심사라고 할까요. 사실 다운 잼이 지닌 가치는 무궁무진합니다. 최상급 다운 잼 정도면 사실 다방면의 사회 분야에 지대한 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런 무한한 가치를 지닌 다운 잼이 지금은 소수의 재력가에게만 혜택이 돌아가고 있다는 게 안타까울 뿐입니다.”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았지만 결국은 다운 잼 때문이라는 건 자명했다.
예나 지금이나 지저에서 발생하는 수익과 가치는 무진장에 가까웠다. 그간 정부가 지저를 방치한 것이 오히려 이해가 가지 않을 지경이다.
정부는 지저에 대한 모든 권리를 민간에 양도하다시피 했으니까. 하다못해 지저 탐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던전 베이비마저도 민간 가정에 양육권을 넘긴 정부였다.
그런 그들이 왜 하필 지금에 와서 이렇게 본격적으로 지저에 대한 관심을 표하는지 도무지 그 속내를 짐작할 수 없었다.
“하필이면 왜 지금입니까?”
단도직입적인 질문에는 많은 의미가 들어 있다. 김주혁 차장 역시 그 짧은 말에 담긴 의미를 알아들었는지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말을 골랐다.
“왜 하필 지금이 아닙니다.”
한참 만에 꺼낸 김주혁 차장의 말이 꼭 선문답과도 같았다.
“지금이기 때문에 시작한 일입니다.”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말에 김진우가 다음 말을 기다렸지만, 김주혁은 더 설명해 줄 마음이 없는 모양이었다.
“자세한 건 차차 아시게 될 겁니다. 김진우 씨는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최고 레벨의 던전 베이비,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김진우 씨라면 저희 측에서도 마냥 정보를 숨기진 않을 거라 약속드립니다.”
“지금 얘기해 줄 것도 아닌데 굳이 먼저 말을 꺼낸 저의를 알 수가 없군요.”
이럴 거라면 차라리 나중에 얘기를 꺼내는 게 나았을 것이다. 긁어 부스럼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김주혁 차장은 이런 그의 반응조차 예상했는지 뜸들이지 않고 대답해 왔다.
“저희는 최소한 김진우 씨를 비롯한 심층에서 올라온 분들께서는 알아주기를 바랐거든요.”
“무슨 뜻입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대답하는 것 없는 김주혁 차장의 태도에 슬슬 짜증이 나던 참이라 그가 반쯤 몸을 일으킨 채로 물었다.
김주혁 차장은 그런 그의 태도에도 변함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전쟁이 완전히 끝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기묘할 정도로 울림이 있는 목소리에 김진우는 저도 모르게 반쯤 일으켰던 몸을 다시 주저앉혔다.
“부디 당분간이라도 쓸데없는 분쟁에 휘말리지 말아주십시오.”
김주혁 차장이 이제까지의 능글능글한 태도를 버리고 고개를 숙여 보이는데 그 태도가 지나치게 간절했다.
“저희는 김진우 씨의 힘이 꼭 필요합니다.”
***
김주혁 차장과의 만남은 더욱더 많은 의문을 만들어주었다.
“이럴 거면 차라리 말을 말지.”
속 시원히 터놓을 것도 아니면서 괜한 궁금증만 생긴 꼴이라 김진우는 갑갑한 마음에 혼잣말을 했다.
‘조만간 전부 털어놓겠습니다. 다만 그때까지 제발 편견 없는 눈으로 저희 지저개발국을 지켜봐 주십시오. 부탁드리겠습니다.’
인사말 대신 마지막까지 김주혁 차장은 당부 아닌 당부를 해왔다.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또다시 무언가가 변화하고 있음을 직감한 김진우는 더없이 무거운 얼굴로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지저에서는 볼 수 없는 탁 트인 시야, 어쩐지 오늘만큼은 그 너른 하늘이 더욱더 가슴을 짓눌러 왔다.
***
“지저개발국에 대해 알아봤네.”
부탁한 적도 없건만 백 선생은 지저개발국에 대한 정보를 알아와 떠들어댔다.
“그간 정부에서 손 놓고 있던 탐색자들 관리와 지저에 대한 사안 일체를 개발국이란 곳에서 맡을 모양이네.”
“미궁관리사무소보다 조금 더 디테일하게 관리하겠다는 거군요.”
“그게 그렇지도 않네. 개발국에선 디테일하게 관리하겠다는 게 아니라 직접 지저를 관리하겠다는 걸세.”
“무슨…….”
“건너 건너 어렵게 입수한 정보네만, 정부 소속의 탐색자 팀이 생겨난 모양이야. 그것도 일반 탐색자들은 하나도 없이 전부 던전 베이비와 군인으로만 이루어진 팀일세.”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지저개발국은 생각 이상으로 오래 준비를 해온 부서임이 분명했다.
“아주 제대로 준비를 했어. 그동안 이 정도로 숨겨온 게 용할 지경이야. 대체 무슨 수를 쓴 건지 그나마 저 정보도 저쪽에서 발족을 앞두고 있으니 풀린 거지 그게 아니었으면 나도 깜박 속았을 거네.”
나름 자신의 정보력에 자신이 있던 모양인지 백 선생은 지저개발국이 하는 일 자체보다 그 보안 수준에 감탄을 토해냈다.
“하여튼 간에 이번 일로 협회는 완전히 나가리 난 걸세. 가뜩이나 미궁을 독식한 일로 원성을 샀는데, 이번에 지저개발국이 발족하면 완전히 판 다 깨진 거지. 개발국이 하는 일이 결국은 협회가 하던 일하고 큰 차이가 없거든. 같은 값이면 공신력 있는 정부 쪽으로 사람이 쏠리기 마련 아닌가.”
지저개발국의 김주혁 차장이 거창하게 떠들어댔지만, 요컨대 결국은 밥그릇 싸움이나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이런 것이라면 굳이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듯했다. 어차피 이해가 맞아떨어지면 서로 이용하고 필요한 것을 취하면 되는 것, 복잡한 정치 싸움에 끼어드는 건 딱 질색이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말이 신경 쓰였다.
분명 지저는 패퇴하여 다시는 지상을 침범하지 않기로 조약을 맺은 걸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무슨 전쟁이 또 있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말인가.
아니, 나하고는 상관없나?
김진우의 얼굴이 차갑게 식었다. 전쟁이라면 이미 지저에서 지겹도록 겪고 있다. 이제 와서 전쟁이란 말에 놀란 새가슴을 할 이유가 없었다.
백 선생과 대화를 마친 김진우는 적당히 장단을 맞춰주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그리고 다운 잼 좀 가져오게. 여기가 무슨 복덕방도 아니고 맨날 맨 몸으로 들락날락거리기에도 미안하지 않은가.”
“조만간 가져오도록 하죠.”
그렇지 않아도 필요한 물품을 몇 가지 구입할 게 있어 다운 잼을 돈으로 환산할 필요가 있던 참이다. 다음을 기약하니 백 선생이 입맛을 다시고는 손을 휘휘 저어댔다.
“음? 왜 또? 뭐 빠뜨렸나?”
문을 나서려던 김진우가 멈춰 선 것을 보고 백 선생이 심드렁하게 물었다.
“아, 아닙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김진우의 눈앞으로 다른 어느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메시지가 잔뜩 떠올라 번쩍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