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60)
던전 견문록-60화(60/319)
# 60
던전 견문록
제 61 화
[탐식의 왕 우서가 이끄는 탐식의 군대가 망자의 군대와 전투를 시작했습니다.]이제 시작된 모양이다.
“도미니크.”
‘네, 주인님.’
“다른 미궁의 상황은 어떻지?”
‘특별한 움직임은 없습니다. 다들 이 전쟁이 자신을 비껴가기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에요.’
도미니크의 대답에 김진우가 이번에는 릭샤샤를 불렀다.
“주인이시여.”
“장거리 순찰자들을 이끌고 출진하라! 전장에 내가 모르는 그 어떠한 것도 있게 하지 말라!”
“주인의 뜻대로.”
고개를 숙인 릭샤샤가 금세 어둠에 녹아들어 사라졌다.
“그럼 도미니크, 내가 없는 동안 미궁을 잘 부탁해.”
‘최선을 다하겠어요. 부디 몸조심하시기를.’
방어 병력으로 남겨둔 일단의 나가들과 도미니크를 일별한 김진우는 곧장 몸을 돌렸다.
“출진한다!”
“출지이이인!”
퀀투스가 쩌렁쩌렁하게 복창을 하고 나가들이 일제히 이동을 시작했다.
“오르테아가, 나가 용기사들과 함께 선봉을 맡아라! 군대가 나가야 할 길을 정리하라!”
“뜻대로!”
오르테아가가 짧게 대답하고는 30기의 나가 용기사들을 이끌고 어둠 너머로 달려갔다.
“퀀투스, 나가들을 이끌고 오르테아가의 뒤를 받쳐라!”
“모든 것은 왕의 뜻대로 될 것입니다!”
다시 퀀투스가 용사 열과 투사 서른을 이끌고 행군 속도를 끌어올렸다. 조금씩 멀어져 가는 퀀투스와 그의 부대를 바라보던 김진우에게 안젤라가 말을 걸어왔다.
“너무 서두르는 것 아닌가요? 탐식의 왕이 제대로 발리셔스를 견제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대는 내 뒤의 나가들이 하찮게 보이는가?”
이미 무리를 빠져나간 오르테아가와 퀀투스의 병력을 제외하고도 거의 일백에 달하는 나가가 그의 뒤에 있다.
“어쩌면 심층의 군대만을 보아오던 그대에게는 그럴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이곳이 9층이라는 걸 잊지 말도록.”
그렇게 말하는 김진우의 눈빛은 이미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하기야 지금의 군세 10분지 1도 되지 않던 시절에도 몇 배에 달하는 교룡왕의 군대를 맞아 승리를 일궈낸 김진우다. 그의 자신감이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안젤라는 여전히 우려를 표했다.
혹시라도 김진우가 아나톨리우스와의 만남에 지나치게 쫓기는 심정이 되어 무리하게 전쟁을 서두르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라도 된 모양이다.
그런 그녀의 내심을 헤아린 김진우가 차갑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나는 말이야, 누가 내 인생을 뒤에서 멋대로 조종하는 것이 끔찍하게 싫다.”
이미 노예처럼 토굴꾼으로 인생의 반 이상을 허비했고, 지저에서 지상에 오르는 데 그 남은 나머지의 반의반을 소모했다.
그렇게 힘들게 얻은 자유이고 삶이다. 그런데 그 삶에 누군가가 멋대로 개입하는 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난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이제는 확연하게 자신의 위치를 자각한 김진우, 그는 더 이상 던전 베이비 김진우가 아니었다. 그는 일백오십 나가 전사들의 주인이자 나가 요새의 사령관이고 만 팔천이백삼십 뱀의 왕이었다.
“아나톨리우스가 만든 판을 내가 다시 바꾼다.”
선언과도 같은 말. 지금 이 순간 안젤라는 차라리 강렬한 예언이라도 들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직은 철혈의 아나톨리우스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미약한 그녀의 주인이지만 지금만큼은 그가 심층의 여느 귀족 못지않아 보였다.
“그리고 이 전쟁이 끝났을 때.”
나직하게 이어지는 김진우의 음성. 안젤라는 저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아나톨리우스는 더 이상 나를 눈 아래로 보지 못할 것이야. 적어도 이 9층에서는.”
***
“생각보다 영민한 편이군.”
철혈의 아나톨리우스는 말 그대로 쇠로 만들어진 거인이었다.
온몸으로 고귀함을 표현하듯 그는 아름다운 문양이 새겨진 갑주를 피부처럼 두르고 있었다.
창백한 얼굴은 비록 그 질감이 금속의 그것이라지만 거체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고 선이 미려했다.
강하면서도 아름다운 존재, 그것이 김진우가 철혈의 아나톨리우스를 처음 보고 느낀 느낌이다.
“죄, 죄송합니다, 아나톨리우스 백작님.”
“그대의 잘못이 아니다. 그가 생각보다 영리했을 뿐이지.”
암상인이 조금 전부터 안절부절못하고 발을 동동 굴러대는데 그 안색에 두려운 빛이 가득했다.
블랙 머천트라는 단체를 뒤에 두고도 저러는 것을 보니 심층의 백작이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다.
하기야 김진우 본인도 온 피부가 저릿저릿할 정도의 위압감에 당장에라도 뒷걸음질을 치고 싶을 지경이다. 하지만 기생수가 분비한 분비물이 두려움을 앗아간 것인지 그는 어쩐지 오기가 생겼다.
“심층의 귀하신 백작께서 여기까지 온 이유가 뭘까.”
“그저 투자자로서 내가 제대로 된 투자를 한 것인지 확인하러 온 것뿐이다. 원래대로라면 이렇게 정체를 밝힐 생각은 없었다.”
층을 벗어나면 쇠약해지는 페널티, 무려 두 층을 건너뛰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나톨리우스의 기세는 무서웠다.
“그래서 투자자 분께서는 감상이 어땠지?”
도전적으로 고개를 치켜든 김진우가 아나톨리우스를 향해 건들거렸다.
“지나치게 건방지고 예의가 없어. 지저에서 나고 자란 짐승다워. 그래서 마음에 들지 않아.”
아나톨리우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김진우는 몸이 덜컥 굳어버리고 말았다.
[고위 귀족의 위엄이 발동되었습니다.] [존귀한 백작의 말에 거역할 수 없는 힘이 실립니다. 같은 귀족이지만 비교할 수 없는 위엄에 당신의 몸이 경직되었습니다.]그간 자신이 다른 크리쳐들을 찍어 누르는 데 써온 귀족의 위엄이 거꾸로 날을 세우고 돌아왔다.
마치 포식자 앞에서 몸이 굳어버린 사냥감과도 같은 상황. 위기감에 온몸이 경고를 해왔다. 하지만 그 순간 기적처럼 그의 몸이 활력을 찾았다.
[기생수가 더욱더 격렬하게 분비물을 분비합니다.] [심층에서 지상까지 이르는 험난한 여정을 가는 동안 그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던 김진우의 특수 능력 ‘불굴’이 발동되었습니다.] [기적적으로 고위 귀족의 위엄에 저항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몸의 경직 효과가 풀렸습니다. 하지만 모든 신체 능력이 다소 감소하는 것만큼은 피할 수 없습니다.]간신히 몸이 풀린 김진우가 다시 태연한 신색을 찾자 아나톨리우스의 보석안이 빛을 발했다.
“제법이야. 야만적이지만 그만큼 힘이 있군. 고작 9층의 주인 따위가 내 앞에서 고개를 뻣뻣이 들고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지.”
“멋대로 사람 평가하기는.”
의외의 평이지만 김진우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애초에 자신의 의사가 배제된 만남, 멋대로 사람을 평가하는 태도가 기쁠 리가 없었다.
“원래는 그대의 자격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자리를 만들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그대는 충분히 내 앞에 설 자격이 있어 보이는군.”
하지만 그가 그렇게 생각하거나 말거나 아나톨리우스는 퍽 흡족한 모양이다.
“나에게 감상을 물었나?”
아나톨리우스의 금속으로 만들어진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기대 이상이다. 안젤라가 제법 괜찮은 주인을 만났어.”
하지만 그 미소는 부드럽지도 온화하지도 않은 냉엄한 왕의 미소. 아나톨리우스는 철저하게 김진우를 눈 아래로 보고 있었다.
“그대는 충분히 쓸 만한 ‘말’이다.”
***
회상에서 깨어난 김진우는 차갑게 굳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당분간은 장단에 맞춰주도록 하지.”
그렇게 말하는 그의 눈빛이 무섭도록 섬뜩한 빛을 흘려대고 있었다.
***
김진우가 이끄는 나가의 군대는 빠르게 망자의 땅을 향해 진군하고 있었다.
퀀투스와 오르테아가가 이미 길을 정리한지라 앞을 막아서는 크리쳐도 없고 갑작스러운 습격도 없었다.
그야말로 쾌속의 진군. 이대로라면 예상보다 이르게 그레이브 야드에 도착할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주인이시여, 염탐꾼의 눈이 한둘이 아니옵나이다. 명만 내리면 일거에 처리하겠나이다.”
본대와 전방을 오고 가며 꾸준히 정찰에 전념하던 릭샤샤의 보고에 김진우가 착 가라앉은 눈으로 말했다.
“내버려 둬.”
“하지만 저들 중 망자의 왕 발리셔스에게 우리의 진군을 고하는 이가 있을지 모릅니다.”
굽이진 통로마다 갈라진 틈바구니에 몸을 숨기고 지켜보는 수많은 눈이 있음은 그도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그 종족도 난쟁이부터 짐승의 모습을 한 놈들까지 실로 다양했다. 하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대로 둬라. 눈이 있고 귀가 있음에도 그런 멍청한 짓을 하는 이들까지 신경 쓸 것은 없다.”
이번에는 정말로 단단히 마음을 먹었는지 흔들림 없는 김진우의 모습이 그야말로 단단한 바위와도 같아 보였다.
“그리고 그런 멍청한 놈들이 있다면 이번 기회를 통해 한번 힘을 보여주는 것도 좋겠지.”
“모든 것은 주인의 뜻대로.”
자신감 넘치는 태도에 릭샤샤가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다시 어둠 너머로 사라졌다.
그녀가 사라진 어둠 너머를 바라보던 김진우가 눈앞에 허상처럼 떠오른 지도를 보며 거리를 가늠했다. 망자의 땅에 도착하기까지 이제 불과 3일이 남지 않았다.
지금쯤이면 발리셔스 역시 낌새를 알아차리고 부랴부랴 전투 준비를 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어쩌면 우서에게 보낸 군대를 다시 불러들일지도 몰랐다.
그의 예상대로였다.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김진우는 전투가 종료되었다는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탐식의 우서가 이끄는 군대와 망자들의 군대의 전투가 종료되었습니다.] [망자들의 군대가 퇴각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탐식의 군대와 망자들의 군대는 서로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데 실패했습니다. 비록 망자들의 군대가 발길을 돌리기는 했지만 이번 전투는 승자도 패자도 없습니다.]그리고 메시지가 떠오른 그날부터 망자들이 본격적으로 나가들의 진군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우서와의 전투에 나선 본대가 돌아올 시간을 벌려는 작정이리라.
“그대로 밟고 간다!”
선봉의 역할을 마치고 본대에 합류한 오르테아가와 용기사들이 누더기를 덕지덕지 기운 듯한 흉물스러운 망자들을 그대로 짓밟았다.
단 한 걸음도 나가들의 걸음을 늦추지 못한 망자들의 최후를 보며 김진우는 눈을 빛냈다.
“속이 탄 모양이지.”
“설마 주인님께서 이렇게 빨리 전쟁을 시작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안젤라의 말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봉신의 맹세가 군주와 가신 간의 비밀 계약이라는 것이 지금에 와서는 호재로 작용했다.
발리셔스는 그저 눈엣가시 같은 우서를 짓밟아 나가의 미궁을 견제할 힘을 얻으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 자신의 군대를 끌어내기 위한 수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마 지금쯤은 우서와 나가들의 관계를 깨달았으리라.
하지만 이미 때는 늦어버렸다.
우서와 탐식의 덩어리들을 공격하기 위해 나선 망자들은 일주일 거리에 있고, 나가들은 이제 망자들의 땅 그레이브 야드의 코앞까지 진군해 있었다.
“키에에엑!”
또다시 나가들을 습격한 망자 하나가 나가 용기사들에게 짓밟혀 그대로 분쇄되었다.
이제는 정말로 습격이라고 하기에도 뭐한 수준이라 차라리 코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그렇게 발악적으로 이어지는 소규모 습격에 김진우는 확신했다.
발리셔스는 대담하게도 대부분의 병력을 출진시켰다.
그것이 우서를 단 번에 정리하기 위한 한 수였는지 아니면 망자의 땅 그레이브 야드가 지닌 특성을 믿은 탓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꽤나 강단 있는 결단인 것만큼은 확실했다.
하지만 그 대담함이 지금 발리셔스 본인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서둘러라, 냄새 나는 망자들과 드잡이를 하고 싶지 않다면!”
김진우의 호령에 나가들이 더욱더 걸음을 서두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