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61)
던전 견문록-61화(61/319)
# 61
던전 견문록
제 62 화
#24. 전리품
[전투가 끝이 났습니다. 망자들은 분쇄되어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갔습니다.]전투 종료 메시지와 함께 이런저런 문구가 떠올랐지만, 김진우는 고개를 한 번 흔드는 것으로 눈앞을 비워냈다. 고작 망자 몇 처리한 건 승리 축에도 끼지 못했다.
“분명 이게 다가 아닐 텐데.”
비록 병력적으로야 더 이상 꺼낼 패가 없다고 해도 음흉한 발리셔스라면 다른 수가 없을 리가 없었다.
이제는 정말로 그레이브 야드를 코앞에 둔 상태라 무언가 준비해 둔 패가 있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가들의 전진을 막는 그 어떤 전조도 보이지 않으니 김진우는 오히려 속이 편치 않았다.
“행군 속도를 늦추고 정찰에 더욱 신경을 쓰도록.”
릭샤샤와 장거리 순찰자들이 그의 명령에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근방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보여라, 발리셔스여. 이게 그대의 마지막 기회일지니.”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듯 쾌속한 진군 속도를 오히려 늦춘 김진우가 낮게 읊조렸다.
그런 그의 말을 망자들이 듣기라도 한 것일까. 갑자기 온 지저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흐어어어어!
키에에에엑!
갑작스레 들려온 바람 소리가 유부에서 흘러나온 것처럼 섬뜩했다.
가뜩이나 어둡던 지저에 더욱 까만 어둠이 뭉치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이 되자 온 통로를 메워 버릴 정도로 커다랗게 자라 버렸다.
[기생수가 위험을 감지했습니다.] [사기(死氣)가 온 사방에 가득합니다.] [사기, 음 차원의 에너지는 존재 자체로 살아 있는 자들을 두렵게 만듭니다. 나가들이 사기의 영향을 받습니다.] [불패의 사령관과 함께하는 나가들이 사기에 저항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사기는 사라지지 않습니다.]굳이 경고하듯 점멸하는 메시지가 아니어도 무언가 좋지 못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알 수 있었다. 살갗이 따끔거릴 정도로 차오르는 음습한 기운에 유달리 시꺼먼 어둠까지 온 세상이 그에게 경고하고 있었다.
[지저는 그 자체로 하나의 커다란 공동묘지와도 같습니다. 땅 밑 어느 곳을 가더라도 흙 한 줌마다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곳이 없으며 단말마가 스쳐 가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그런 지저에 인위적으로 응집된 사기는 결코 좋은 결과를 불러오지 않을 것입니다. 서둘러 사기를 흩어버리지 않으면 무서운 일이 생길 것입니다.]거듭 떠오른 경고. 짙게 뭉친 사기가 통로의 앞과 뒤에서 나가들을 위협하듯 다가오기 시작했다.
“어둠이 뭉치는 것을 막아!”
김진우의 말에 나가 용기사들이 일제히 호법룡의 목을 꼬리로 단단히 휘감았다.
다리 여섯 달린 호법룡들이 일제히 발을 구르고 앞으로 나서며 입을 쩍 벌렸다.
어지간한 크리쳐는 단번에 집어삼킬 정도로 거대한 주둥이 안쪽으로 새빨간 불꽃이 일렁이다 화르륵 뿜어져 나왔다.
키에에에엑!
비좁은 통로에서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붙어서 내뿜은 수십 개의 불꽃에 어둠이 비명을 지르며 요동을 쳐댔다.
“다시!”
오르테아가까지 전면으로 나서서 불꽃을 토해냈다.
새빨갛게 넘실거리는 불꽃에 어둠이 밀려가지만 그도 잠시일 뿐, 이내 전보다 더욱 선명한 빛깔로 다시 뭉치기 시작했다.
후열에서도 상급 나가 마법사들과 남은 나가 용기사들이 어둠을 몰아낸다고 법석을 떨었음에도 고작 사기가 접근하는 것을 막는 정도였다.
호법룡들이 불꽃 대신 바짝 마른입으로 기침을 토해낼 때까지 애를 써보았지만, 결국 어둠은 뭉치고 뭉쳐 하나의 커다란 덩어리가 되고 말았다.
[극도로 응집된 사기가 지저의 수많은 죽음과 만나 마침내 현세에 사자(死者)의 문(門)을 열었습니다.] [헤아릴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더욱더 깊어진 지저의 원한이 형태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살아 있는 자를 끊임없이 증오하고 증오하는 가장 끔찍한 존재, 사자(死者)의 군대가 소환되었습니다.]단단한 지저의 바닥이 쩍쩍 갈라지며 그 안에서 누렇게 변색된 뼈로 만들어진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렇게 튀어나온 손이 이내 수십이 되고 다시 수백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전부 모습을 드러냈을 때, 땅 밑은 또 다른 지옥이 되어 있었다.
“전투 준비!”
진즉부터 준비하고 있던 나가들이 일제히 창과 칼을 들어 올리며 기세를 북돋았다.
“쓸어버려라!”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미리 주문을 외워둔 있던 상급 나가 마법사들이 진언을 내뱉었고, 나가 주술사들이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사자의 땅에서 맞이하는 모든 죽음은 영원한 고통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살아생전 어깨를 함께했던 동료들의 살점을 탐하고 그 영혼을 질시할 것입니다. 전사자들은 전원 사자의 군대에 편입됩니다.]눈앞에 떠오른 메시지 중 어느 하나 가볍지 않은 것이 없었다. 하지만 김진우는 변함없이 차가운 표정으로 나가들을 독려했다.
[사령관의 고유 능력 ‘전장의 지배’가 활성화되었습니다.] [나가들의 집단 전투 능력이 상승했습니다. 나가들은 당신의 작은 혼잣말에도 귀를 기울이고 그대로 따르려 할 것입니다.] [나가들의 진형이 한층 더 단단해지고 탄력적으로 변모합니다.]메시지가 끝나는 순간 나가들이 한층 더 견고한 진형을 꾸리고 사자의 군대를 맞았다.
나가 용기사들이 일제히 덜그럭거리는 사자들의 몸뚱이를 짓밟으며 뛰쳐나가고, 잇따라 나가 마법사들의 냉기 주문이 터져 나왔다. 용사의 방패가 앙상한 뼈다귀를 짓이기고, 투사의 도끼가 그들을 가루로 만들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힘,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투는 치열했다.
완전히 가루가 나기 전까지는 끝없이 달려드는 사자들, 그리고 작은 부상만 입어도 뻘건 눈으로 동료들을 향해 달려들게 만드는 흉악한 저주가 나가들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게다가 가장 끔찍한 건 끊임없이 땅 밑에서 기어 나오는 사자들이었다. 그들은 비록 앙상한 뼈다귀가 삐걱거리는 볼품없는 모습이었지만 그 수가 끝이 없었다.
그래서 전투가 마침내 끝이 났을 때, 나가들은 전부 지쳐 널브러지고 말았다.
모든 나가들이 지쳐 쓰러져 있을 때, 김진우는 눈앞을 가득 채우는 피해 보고를 보며 눈살을 찌푸려야 했다.
“릭샤샤!”
“여기 있나이다.”
그 자신하던 은신 능력마저도 펼치지 못하고 전투에 휘말렸는지 릭샤샤의 꼴은 엉망이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김진우가 쓰게 한마디 내뱉었다.
“힘들겠지만 남은 순찰자들이 없다. 망자의 땅까지 정찰을 부탁하지.”
비록 승리했지만 사자의 군대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지치지 않는 집요함, 사소한 상처만 입어도 금세 등을 돌리고 동료를 물어뜯는 끔찍한 저주와 끊임없이 몰려드는 사자들까지 어지간한 군대라면 아마 그대로 전멸하고 말았으리라.
그런 무지막지한 힘을 사역한 발리셔스, 아무리 망자의 왕이라 불리는 발리셔스라고 한들 멀쩡할 리가 없었다.
그래서 김진우는 나가들을 정비하는 대신 오히려 진군 속도를 높였다.
그의 예상이 맞았는지 원래대로라면 온갖 사기와 위험한 기운으로 뒤덮여 있을 그레이브 야드는 그저 텅 빈 미궁과도 같았다.
“함정은 없습니다.”
창백한 안색의 릭샤샤의 보고에 김진우는 나가들을 이끌고 발리셔스가 있을 오너 룸으로 향했다.
“그대가 나가들의 왕이로군.”
오너 룸에 도착한 김진우는 마치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왕좌에 앉아 있는 망자의 왕 발리셔스를 만날 수 있었다.
온몸에 바느질 자국이 가득한 발리셔스는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역시나 발리셔스는 김진우의 예상대로 사자의 문을 여는 데 기력을 무지막지하게 쏟아 넣은 듯했다.
그 증거로 말을 하는 동안에도 부스러져 떨어져 내리는 살점과 빛을 잃고 탁하게 바래 버린 눈동자까지 발리셔스는 경매장에서 보았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쇠약해져 있었다.
“탐식의 왕이 설마 그대와 한패였을 줄이야.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의 손에서 놀아났으니 원통하고 원통하구나.”
신세한탄이라도 하듯 지껄여 대는 발리셔스를 보며 김진우는 못마땅한 얼굴을 해 보였다.
“차라리 사자의 문을 열 게 아니라 이곳에서 그대를 맞아 싸울 걸 그랬나 후회가 되노…….”
완전히 무너져 버린 입술을 달싹이며 지껄여대던 발리셔스가 순간적으로 말을 멈추고는 바닥을 나뒹굴었다.
김진우가 갑작스레 다가가 목을 잡아 바닥에 내팽개친 탓이다.
그래도 한때는 망자들의 왕으로 군림한 이치고는 지나치게 초라한 모습이었지만, 그는 오히려 그 모습이 마음에 드는지 만족스러운 얼굴을 해 보였다.
“패자 주제에 왕좌에 앉아서 주절주절 지껄여대는 꼴이 영 보기 싫군.”
생전 처음 당해보는 수모에 발리셔스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사이 김진우가 뼈로 만들어진 왕좌를 꿰차고 다리를 꼬았다.
“패자는 말이 없어. 안 그래?”
차갑게 웃은 그가 미궁의 핵을 보고는 혀를 찼다.
“던전 에너지까지 끌어다 썼군.”
여느 미궁의 핵과는 달리 당장에라도 꺼질 듯 희미하게 빛나는 핵을 보는 그의 얼굴에 못마땅한 빛이 떠올랐다.
“그대를 위해 준비한 내 비장의 한 수를 채 써보지도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로다.”
바닥을 나뒹굴다 힘겹게 몸을 일으킨 발리셔스가 씹어뱉듯이 말했다. 하지만 김진우는 피를 토하듯 외치는 발리셔스를 쳐다보고 있지 않았다.
“이거야 원, 멀쩡한 미궁이 아예 못 쓰게 됐군요.”
갑작스레 끼어든 음성, 기력이 쇠약해진 발리셔스는 눈치 채지 못했는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 그대는?”
“이렇게 다시 만나 뵙게 돼서 유감입니다, 발리셔스님.”
오너 룸에 나타난 이는 블랙 머천트의 암상인이었다.
“인사는 나중에 하고, 먼저 할 일부터 하도록 하지.”
김진우는 처음부터 암상인의 등장을 알고 있었는지 놀라는 기색도 없이 말했다.
“사전에 약속한 대로 계산을 보도록 하지.”
사전에 대체 무슨 약속이 있던 것일까. 발리셔스는 돌아가는 상황을 도통 파악하지 못하겠는지 멍한 얼굴을 했다.
“이번에도 손해는 저희 쪽에서 보게 생겼군요.”
“나는 그대와의 약속을 전부 지켰어. 지저에 미궁이 또 하나 사라질 것을 안타까워할 그대를 위해 미궁에는 손 하나 대지 않았지. 핵이 저 모양 저 꼴이 된 건 내가 아니라 발리셔스 탓이야. 그러니 셈은 원래 하려던 대로 해야 하지 않겠나.”
김진우의 말에 암상인이 울상을 했다.
“어떻게 된 게 남작님만 얽혔다 하면 멀쩡한 미궁들이 박살이 나니 이거야 원. 나중엔 9층에 남아나는 미궁이 있을까 벌써부터 걱정입니다요.”
전부터 느낀 것이지만 일개 상인치고는 지나칠 정도로 미궁을 아끼는 암상인의 태도가 부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그는 굳이 이를 지적해 꼬치꼬치 캐묻지 않았다.
어차피 때가 되면 알 게 될 일이고, 지금 묻는다 해서 암상인이 제대로 된 대답을 해줄 것 같지 않았다.
“먼저 미궁의 핵, 5등급이지만 상태가 저 모양이니 제값 받기는 글렀습니다. 마지막에 무리를 한 모양인지 핵의 원천까지 뽑아다 쓰는 바람에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이래서야 미궁을 살리는 데 드는 비용이 얼마나 될지 걱정이 될 지경이군요.”
희미하게 빛나는 미궁의 핵을 두고 값을 셈하는 암상인. 김진우는 시큰둥한 얼굴이다.
“그리고 아직 남은 망자의 군대가 도합 70기 정도에 교룡왕의 시체로 만든 키메라, 혈표의 키메라까지… 어디 보자.”
마치 상품의 가치를 품평하듯 짧은 손가락을 세우고 이리저리 셈하는 암상인의 모습을 보며 발리셔스가 뒤늦게 상황을 깨달았는지 버럭 화를 냈다.
“감히 그대가!”
하지만 암상인은 냉정하게 발리셔스를 무시했다. 비굴하게 굽실대던 허리를 곧게 핀 암상인은 마치 하찮은 수인족 노예 보듯 망자의 왕을 보고 있었다.
그 사실에 분노한 발리셔스가 마지막 기력을 모아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암상인을 향해 다가섰다.
“그럼 마지막으로 남은 게, 음,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대가 값을 치른다면 얼마나 쳐주겠는가?”
암상인의 바로 앞까지 다가선 발리셔스는 자신을 바라보는 암상인의 차가운 눈빛에 분노마저 잊고 몸이 굳어 경직되고 말았다.
“생명력의 그릇도 깨졌고 원체 육신도 보잘것없고, 그리 많이는 못 쳐드릴 것 같은뎁쇼. 뭐, 선택은 남작님께서 하시는 거니까 전 값이나 치르고 물건이나 받으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뒤늦게 발리셔스는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 암상인이 말하는 마지막 남은 물건이 무엇을 말하는지. 그걸 깨닫는 순간 발리셔스는 무너지듯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흠, 그래도 망자의 왕이라 불리던 작잔데 헐값에 팔기는 그렇군.”
“그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암상인의 질문에 김진우가 망연자실하게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발리셔스를 바라보다 이내 결정을 내렸다.
“그럼 이렇게 하도록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