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63)
던전 견문록-63화(63/319)
# 63
던전 견문록
제 64 화
#25. 용병
[망치와 모루의 왕 말락수스와 동맹을 맺었습니다.] [말이 동맹일 뿐 말락수스와 그의 군대는 망자의 땅마저 무릎 꿇린 나가의 위세를 두려워합니다. 그들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것입니다.]“승전을 축하드리며, 약소하지만 저희 왕께서 보내신 선물입니다!”
가뜩이나 조그만 몸을 더욱 구부린 말락수스의 사절 믈락이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들어보니 무언가 무겁고 단단한 것이 안에 들어 있는 듯하다.
[말락수스가 보낸 공물을 받았습니다. 난쟁이들은 앞으로도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조공을 바쳐올 것입니다.] [난쟁이들이 직접 만든 ‘명장의 갑옷과 칼’ 세트를 얻었습니다. 지저에서도 손재주가 좋기로 소문난 난쟁이들이 만든 물건이니만큼 품질은 보증할 수 있습니다.]믈락이 상자를 열자 김진우는 상자의 내용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번쩍거리는 갑옷 한 벌과 날카롭게 벼려진 칼이 척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물건인 것 같아 보였다.
“그대들의 왕에게 전하라. 그대들이 먼저 등을 돌리지 않는 한, 나가들은 난쟁이들의 땅을 침범하지 않을 것이다.”
“왕께서 무척 기뻐하실 것입니다.”
상자의 내용물을 대충 확인한 김진우가 짧게 말하니 난쟁이들이 몹시도 흡족한 얼굴로 미궁을 나섰다.
“이 짓도 못할 일이군.”
‘영양가도 없는 미궁과 전쟁을 하느니 이런 식으로 뒤를 다져두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주인님께서 건재하신 한 저들은 감히 삿된 마음을 품지 못할 테니까요.’
한숨을 푹 내쉬는 김진우를 보며 도미니크가 위로 아닌 위로를 했다. 그녀의 말마따나 지리적으로 한참 떨어져 있는 난쟁이들의 미궁을 공격하기에는 그다지 메리트가 없었다.
차라리 이런 식으로 협조를 받아 공물을 챙기는 것이 이득이었다.
물론 언젠가는 그들마저도 발아래 두어야 했지만, 최소한 그게 지금은 아니었다.
“대충 마무리된 건가?”
‘네. 장거리 순찰자들의 보고에 의하면 더 이상 사절단은 발견되지 않았답니다.’
도미니크의 말에 김진우는 이제야 살 것 같다는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있는 곳은 미궁의 입구 근처에 마련된 간이 알현실이다.
미궁을 찾는 사절들을 일일이 미궁의 내부까지 들일 수 없어 만든 급조된 공간이지만, 그새 손재주가 좋아진 나가 일꾼들 덕에 모양새는 나쁘지 않았다.
“발리셔스는?”
‘배정된 공간에 틀어박혀서 키메라 연구에 한창입니다. 아마도 완전히 망가진 자신의 몸을 대체할 몸을 만들고 있는 것 같아요.’
전쟁에서 패배하여 미궁의 운영권도 빼앗기고 강제로 수하가 된 발리셔스는 제 몸을 고치겠다고 필사적이었다.
“헛된 꿈을 꾸고 있군.”
‘지금은 그렇게라도 뭔가에 몰두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 테니까요.’
하루아침에 왕좌에서 내쳐진 그 기분이 얼마나 참담하겠냐마는 김진우는 음험한 발리셔스의 사정을 봐줄 생각 따위는 요만큼도 없었다.
“대충 봐서 다 만들어진 것 같으면 바로 빼버려. 괜히 본신의 힘을 찾았다가는 쓸데없는 생각만 할 테니까.”
‘네. 호야가 밀착 감시를 하고 있으니 너무 걱정 마세요. 힘을 잃은 발리셔스는 호야의 은신을 눈치 채지 못할 겁니다.’
식충이처럼 오너 룸에 죽치고 있던 호야를 이런 식으로 쓰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역시 주워오면 올수록 이득이군. 이렇게라도 다 쓰임새가 있으니.”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하는 말에 도미니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발리셔스와의 전쟁이 끝난 지도 벌써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그간 수많은 사절이 방문해 동맹을 신청하고 돌아갔으며, 김진우는 그중에 성향이 온건하고 쓸 만한 이들을 추려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확보한 동맹이 무려 넷이다.
망치와 모루의 왕 말락수스,
늪의 왕 고린토스,
떠돌이들의 왕 헤카림,
미몽의 여왕 아리아네.
동맹이라고 해서 당장 전력으로 쓰기에는 무리가 있었지만, 그들이 먼저 머리를 숙였다는 건 고무적인 일이었다.
그만큼 나가들의 위세가 대단해졌다는 이야기였다.
“일단 그레이브 야드와 파티 홀이 전력화될 때까지는 우리도 내실을 다지는 데 힘을 쏟는다.”
‘주인님의 뜻대로.’
도미니크가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또다시 어딘가로 사라졌다. 미궁의 대소사를 거의 도맡아하다시피 한 그녀야말로 미궁의 주인인 김진우보다 더 바쁜 존재였다.
그녀가 사라진 방향을 잠시 바라보던 김진우는 윤희를 찾았다.
“아…….”
그래도 요즘은 조금 상태가 나아진 윤희는 어눌하게나마 그를 보고 아는 척을 해왔다.
“잘 지냈어?”
입을 열어 대답하는 것도, 그렇다고 부정을 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김진우는 윤희가 제법 안정을 찾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초점 없던 눈동자에 희미하게 생기가 들어차 있다.
그게 심층에서 혹사당할 때와는 달리 자유로운 나가의 미궁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진 탓인지 그녀 소유의 미궁인 파티 홀이 순조롭게 3등급에 오르며 일어난 변화인지까지는 그도 알 수 없었다.
“흠, 5등급까지 오르면 뭔가 좀 변하긴 할 텐데.”
4등급까지가 그저 무늬만 미궁이라면 5등급부터는 진짜 미궁의 시작이다.
또한 미궁이 5등급에 이른다는 것은 그저 미궁이 성장한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미궁의 성장은 오너의 성장이기도 했다.
당장 김진우 스스로만 해도 5등급에 오르며 신체 능력이 월등하게 향상되었으며, 미궁이 6등급에 올랐을 때는 사령관이라는 타이틀까지 얻으며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어쩌면 윤희가 이 어두운 지저에서 가장 빨리 안정을 찾는 방법은 미궁을 계속해서 성장시키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묻고 싶은 것이 많거든.”
왜 전쟁이 끝나고 10년이 지나도록 지저를 떠나지 않은 것인지, 어쩌다가 주인에게 버림받아 경매장까지 오게 되었는지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주인님!’
평범한 듯하면서도 묘한 느낌이 있는 윤희의 얼굴을 보며 혼잣말을 하던 김진우는 도미니크의 음성에 고개를 돌렸다.
“사절단은 더 오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나?”
느릿느릿 다가오던 도미니크가 대답했다.
‘아뇨. 사절단이 아니라 주점에 용병이 왔어요.’
한때는 용병 하나가 아쉽던 시절이 있었지만 나가들이 부쩍 성장한 지금은 용병의 방문에 호들갑을 떨 만큼 나가의 미궁은 약하지 않았다.
“도미니크가 퀀투스랑 얘기해서 적당히 상대해 줘. 괜찮다 싶으면 고용하고 쓸모없으면 내보내.”
시큰둥한 반응에 도미니크가 고개를 저으며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게 평범한 용병이 아니라…….’
다소 들뜬 음성, 그러고 보니 도미니크의 얼굴이 어딘지 모르게 상기되어 있다.
‘영웅급 용병이 왔어요!’
***
“저자인가?”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확장된 미궁의 주점, 그 한복판에 난생처음 보는 존재가 우두커니 서 있다.
“왕께 충성을!”
마침 쉬고 있던 것인지 퀀투스가 김진우를 발견하고는 우렁차게 인사를 했다.
퀀투스를 따라 주점에 있던 나가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여 보이는데 미동도 없이 서 있던 용병이 몸을 돌렸다.
“나가들의 왕이자 지저의 존귀한 남작님께 인사드립니다.”
절도 있게 고개를 꺾어 보이는 용병의 모습은 지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차림새였다. 거대한 철갑을 머리에서 발끝까지 두른 용병은 마치 중세의 중갑기사와도 같은 위압적인 모습이었다.
“흐음.”
척 보기에도 절도 있는 움직임이나 정중하면서도 비굴하지 않은 태도가 범상치 않아 보였지만, 인재라면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김진우는 어쩐지 날카로운 눈빛으로 중갑기사를 바라보았다.
“지저의 떠돌이 기사 발자크입니다.”
투구 안쪽에서 들려오는 음성이 기이할 정도로 울림이 있었다.
‘떠돌이 기사라면 심층에서나 볼 수 있는 존재예요. 그가 왜 9층까지 왔는지 도통 알 수가 없네요.’
하기야 귀족들이 사는 심층이 아니고서야 스스로 기사라고 자처할 만한 이가 있을 리 없었다.
“방문 목적은?”
김진우의 질문에 발자크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대답했다.
“9층에 전승의 사령관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어쩐지 투구의 어둠 너머로 도전적인 눈빛을 보내오는 발자크의 모습을 보며 김진우가 한쪽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래서? 이제 구경 다 했으니 돌아갈 참인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피식 웃어 보인 발자크가 테이블 위에 올려둔 비정상적일 정도로 거대한 도끼를 잡아 들고 눈을 빛냈다.
“떠돌이 기사 발자크, 의탁할 주군을 찾아 9층까지 왔소! 그대, 전승의 명성이 진실이라면 나를 꺾고 내 검을 받아주시오!”
뭔가 시대에 맞지 않는 고전적인 전개에 김진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제멋대로군.”
청하지도 않았는데 찾아와 난데없이 결투를 신청하는 발자크의 행동이 거슬린 것일까, 김진우는 시종일관 차가운 얼굴이다.
‘퀀투스!’
“저런 건방진 작자를 보았나! 여기가 어디라고!”
뒤늦게 발자크의 돌발행동에 제동을 걸고자 도미니크가 퀀투스를 찾았다. 퀀투스는 신성한 왕에게 도전한 발자크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전승의 업적이 사실이라면 여기서 증명하시오!”
발자크는 퀀투스의 살벌한 눈빛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 할 말만 해댔다. 그런 그를 보며 퀀투스가 달려들려는데 김진우가 손을 휘저어 퀀투스를 만류했다.
거절해도 명성이 하락, 패해도 명성이 하락, 결정은 처음부터 나 있었다. 하지만 그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었다.
“그대의 도전을 받아들이기 전에 한 가지 묻지.”
“물으시오!”
쓸데없이 우렁찬 발자크의 대답에 인상을 찌푸린 김진우가 나직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그대가 여기 온 진짜 이유를 말하라.”
“나는 전승의 사령관의 명성을 듣고…….”
“헛소리 작작 하고 진짜 이유를 밝히라고 말했다.”
반론의 여지조차 주지 않는 단호한 음성에 발자크가 입을 꾹 다물었다.
“핑계는 괜찮았어. 근데 말이야.”
김진우가 슬쩍 손가락을 내밀며 말했다.
“그 갑옷이라도 바꿔서 입고 오지 그랬나.”
“무슨…….”
변명이라도 하려는지 입을 열려던 발자크의 말을 김진우가 단박에 잘라냈다.
“그대나 그대의 주인이나 변장에는 소질이 없군.”
그렇게 말한 그가 한쪽 입꼬리를 치켜 올리고 차갑게 물었다.
“철혈의 기사단의 기사가 여긴 무슨 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