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73)
던전 견문록-73화(73/319)
# 73
던전 견문록
제 74 화
“음…….”
빛이 사라지고 난 뒤의 윤희는 어쩐지 평소와 달라 보였다. 초점 없이 흐릿한 눈동자가 조금씩 또렷해지다가 빛을 찾았다.
“내가 누군지 알아보겠어?”
그 선명한 빛깔에 김진우가 기대하는 심정이 되어 말을 붙여보았다.
“아…….”
그를 본 윤희의 얼굴에 어쩐지 복잡한 기색이 떠올랐다.
“윤희, 내가 누군지 알겠어?”
몇 번이나 똑같은 질문을 해보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참을성을 갖고 한참을 기다려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한참 만에 겨우 한 대답이 고작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였다.
그녀의 얼굴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던 김진우는 한숨을 내쉬며 한 발자국 물러섰다. 그리고는 고개를 숙인 그녀를 그대로 두고 파티 홀의 상태를 확인했다.
[축제의 땅 파티 홀(5등급).] [주인 없이 버려져 있던 축제의 땅은 이제 원래의 기능을 찾았습니다. 가장 찬란하던 그때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5등급에 오른 미궁의 핵은 온전히 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1,400 던전 에너지가 비축되어 있습니다. 소환수를 소환하거나 새로운 건물의 건설을 명령할 수 있습니다.] [섭정의 권한으로 미궁의 운영에 관여하시겠습니까?]이제껏 시설물의 건설을 우선적으로 진행해 온지라 파티 홀의 방어는 나가들이 책임지고 있었지만, 전쟁을 앞둔 지금에 와서까지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관여하겠어. 소환수 목록.”
그의 말에 눈앞에 주르르 소환 가능한 소환수의 리스트가 떠올랐다.
□그림자 시종(1등급) (1/2)
*파티 홀의 크고 작은 일을 도맡아하는 일꾼입니다. 전투 능력은 전무합니다.
□그림자 경비병(1등급) (2)
*파티 홀의 축제가 끝이 나지 않도록 불청객을 내쫓는 임무를 부여 받은 그림자 경비병들은 파티 홀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림자 마술사(중급) (95)
*파티에 초대된 손님이 지루하지 않도록 화려한 마술을 선보이는 마술사는 현란한 마술로 상대의 정신을 쏙 빼놓습니다. 그림자 마술사는 적군의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환각’ 마술을 사용합니다.
□그림자 음유시인(중급) (65)
*그림자 음유시인들이 노래를 계속하는 한 축제는 끝나지 않습니다. 그들의 노래는 파티에 초대된 이들이 피로마저 잊게 만들 정도로 매혹적입니다. 적군의 힘을 약화시키고 아군의 힘을 강화시키는 노래로 전투를 보조합니다.
□그림자 어릿광대(3등급) (70)
*그림자 어릿광대는 축제의 꽃입니다. 온갖 재주에 능한 그들의 묘기를 보고 있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를 것입니다.
그들은 때때로 살벌하고 위험스러운 재주로 축제에 초대된 손님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어릿광대의 몸놀림은 누구보다 재빠르고 유연합니다. 또한 그들은 상대를 깜짝 놀라게 만드는 함정 설치에 능합니다.
□그림자 이야기꾼(4등급) (130)
*그림자 이야기꾼은 흥겨운 축제가 가장 무르익었을 때 등장합니다. 온갖 무용담을 늘어놓는 그들의 재담에 손님들은 정신이 쏙 빠질 것입니다.
이야깃거리가 떨어진 그들은 이야깃거리를 만들기 위해 직접 나서기도 합니다. 그림자 이야기꾼의 다른 이름은 ‘농담의 기사단’입니다.
그들은 재미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지룡과의 전투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파티 홀의 소환수들은 전부 어딘지 모르게 이상했다. 왠지 모르게 장난스러운 그들의 이름을 보고 있자니 도대체 어떤 존재들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등급도 소환에 필요한 던전 에너지도 전부 뒤죽박죽이라 보고 있노라니 머리가 지끈거리는 느낌이다.
“경비병 스물.”
[경비병(1등급)을 스무 명 소환하시겠습니까? 던전 에너지 40이 소요됩니다.]김진우는 고민 끝에 가장 알기 쉬운 경비병 스물을 먼저 소환했다. 그리고는 소환수들을 하나하나 불러내 그 역할을 확인해 보았다.
“끄응. 도대체가 정상적인 놈이 하나도 없군.”
소환되기가 무섭게 대뜸 재주를 넘어 보이는 그림자 어릿광대는 물론이거니와 시끄럽게 고함을 지르며 나타난 음유시인까지 정상적인 소환수는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힘을 확인해 본 김진우는 꽤나 만족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요란스럽고 우스꽝스러운 차림새와는 달리 그들의 힘이 제법 쓸 만했다.
“일단 마술사와 음유시인은 전투 보조, 어릿광대는 순찰자랑 비슷한 것 같고…….”
마술사는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환각을 불러냈고, 음유시인의 노래는 힘을 북돋아주었다.
어릿광대는 온갖 함정을 그 자리에서 뚝딱 설치하는 재주를 부렸고, 날래기가 나가 장거리 순찰자들 못지않았다.
“이야기꾼이 조금 비싸기는 하지만 주력으로 써야겠어.”
그중에서도 가장 쓸 만한 것은 그림자 이야기꾼이었다.
이야기꾼이라는 이름과는 다르게 시종일관 과묵함을 유지하는 그들의 힘은 두 자루의 칼을 귀신처럼 썼는데, 그 힘이 나가 투사들 이상이었다.
하기야 그 하나하나를 소환하는 데 드는 비용이 나가들 이상이었으니 그 정도의 힘을 발휘하는 게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던전 에너지가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의 병력을 소환해 낸 김진우는 한참을 더 파티 홀에 머물다 나가의 요새로 돌아갔다. 그
런 그의 뒤편으로 윤희가 망설이다 따라붙었다.
“돌아오셨어요?”
하릴없이 오너 룸에서 빈둥거리고 있던 안젤라가 그를 보고 반색했다.
“그래, 쉬고 있어. 필요한 일이 있으면 부를 테니까.”
그가 안젤라의 호들갑에 시달리는 사이 윤희가 고개를 한 번 숙여 보이고는 오너 룸을 나섰다. 그녀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그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안젤라.”
“네?”
조잘조잘 그의 곁에서 떠들어대던 안젤라도 김진우의 음성이 착 가라앉았음을 느끼고는 진지하게 대답해 왔다.
“오늘부터 윤희 곁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마.”
“알겠어요. 근데 언제부터요?”
“지금부터.”
단호한 대답에 그녀가 잠시 울상이 되더니 이내 어둠 속에 녹아들었다.
안젤라마저 사라진 오너 룸에 홀로 남은 김진우는 인상을 찌푸리며 혼잣말을 했다.
“분명 정신을 차렸는데…….”
또렷하게 초점이 돌아온 눈동자에 이따금씩 복잡한 기색이 떠오르는 얼굴까지 윤희는 상태가 회복된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어쩐 일인지 시치미를 뗐다. 그게 뭔가 사연이 있어 보여 더는 캐묻지 않은 그였다.
“하지만 왜?”
그녀가 굳이 그 이유를 숨겨야 할 이유가 생각나지 않은 김진우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생각에 빠져들었다.
***
[탐식의 땅에서 포탈 개방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남작의 허락 없이는 포탈이 열리지 않습니다.] [포탈의 연결을 허락하시겠습니까?]갑작스러운 메시지에 김진우가 곧장 포탈 연결을 허가했다.
“왕이시여어어어!”
포탈이 열리기가 무섭게 철퍼덕 튀어나온 우서가 비명처럼 외쳤다.
“10층의 귀족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벌써?”
몇 개의 미궁에서 출병한 군대가 지저를 행군하는 도중에 도적들에게 분쇄되어 지리멸렬한 게 바로 며칠 전이다. 그런 귀족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 이쪽에 와서 확인부터!”
우서의 말에 김진우가 곧장 포탈을 넘었다.
“보십시오! 저 새까맣게 몰려드는 군대를!”
우서가 벽에 걸린 널따란 탐식의 덩어리를 가리켰다. 얇게 펴진 점액질 덩어리는 10층의 어느 통로를 희뿌옇게 비추고 있었다.
“저게 어디지?”
“9층과 10층을 잇는 통로에서 불과 3일 정도 떨어진 거리입니다!”
우서의 비명과도 같은 보고에 김진우가 인상을 와락 찡그렸다. 그런 그의 눈에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크리쳐들이 통로를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이 보였다.
“너무 빠른데?”
“저기 보십시오!”
우서가 또 다른 화면을 가리켰다.
“망할!”
화면 속에는 언젠가 그도 한 번 보았던 존재, 삭풍의 보레아스가 깃발을 내걸고 보무도 당당하게 행군하고 있었다.
***
보레아스까지 참전한 적의 수는 물경 2천에 달했다. 미궁 하나하나에서 참전한 수는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워낙에 참전한 미궁의 수가 많다 보니 그 수가 어마어마했다.
병사들의 면면도 작은 난쟁이부터 시작해서 통로가 비좁아 몸을 웅크린 거인까지 실로 다양하기 그지없었다.
“대체 무슨 수를 쓴 거지?”
사치품에 빠져 그 대금을 치르기 위해 멀쩡한 미궁의 시설물마저 팔던 10층의 귀족들이다. 이빨이 무디어질 대로 무디어진 병력이 도적 하나를 감당하지 못해 전멸한 것이 불과 며칠 전이다.
그런데 지금 점액질로 만들어진 화면 너머로 보이는 크리쳐들은 그 눈빛이 사납고 번뜩거리는 것이 절대로 오합지졸이 아니었다.
단 며칠 만에 일어난 변화에 김진우는 좀처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런 와중에 방문한 암상인을 반기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상황을 말하라!”
인사도 생략한 채 대뜸 외치는 그의 태도에 암상인 역시 심각한 얼굴로 곧장 대답했다.
“11층에서 움직였습니다!”
“절망의 파르테논인가?”
절망의 파르테논과는 이미 적대 관계가 된 탓에 이제 와서 새삼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그가 알고 싶은 것은 어떻게 10층의 오합지졸을 단 시일 만에 저렇게 탈바꿈시켰냐는 것이다.
“파르테논 백작님이 10층의 귀족들에게 승작을 약속했습니다!”
“승작? 그게 백작 나부랭이 마음대로 되는 거였나?”
“원래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수하에 있는 귀족 중 계승자를 정해두지 않은 부고자가 생길 경우 백작이 임의로 그 계승자를 선택할 수 있기도 합니다.”
“미친!”
욕설이 절로 튀어나왔다. 하필이면 지금의 타이밍에 수하의 귀족 중 하나가 변을 당했을 리 없으니 승작의 대가로 내세운 작위의 주인이 어떻게 되었을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저쪽에서 저렇게 적극적으로 움직이는데 아나톨리우스는 뭘 하고 있는 거지?”
짜증 섞인 그의 말에 암상인이 어두운 얼굴로 대답했다.
“아나톨리우스님은 지금 10층과 9층의 상황을 살필 여력이 되지 않습니다.”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그리고 그런 예상을 확인이라도 시켜주듯 암상인의 말이 이어졌다.
“아나톨리우스님은 지금 파르테논님의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예상치 못한 말에 김진우는 차라리 마음이 차갑게 식어버렸다.
“이유는?”
“파르테논님의 휘하에 있던 귀족 분이 아나톨리우스님 휘하의 철혈의 기사에게 살해당했다는 게 그 이유입니다.”
갈수록 가관이라고 암상인이 하는 말이 점입가경이다.
“그게 말이 되나?”
그가 본 아나톨리우스는 철혈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냉철한 사내였다. 그런 그가 하필이면 지금 같은 때 그 같은 악수를 두었을 리가 없었다.
“진실이야 어찌 됐든 간에 아나톨리우스님이 9층과 10층의 상황을 살필 여력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아나톨리우스님이 11층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기는 하지만, 파르테논님 역시 그에 못지않은 강군을 이끌고 있으니…….”
암상인의 말은 아직도 끝이 나지 않았다.
“게다가 명분이 파르테논님에게 있으니 아나톨리우스님도 상황이 좋지만은 않습니다. 신속을 자랑하는 기사단은 방어에는 맞지 않으니까요.”
가만히 듣고 있던 김진우가 휘하의 지휘관들을 호출했다.
“주인이시여!”
“릭샤샤, 용기사 열 기를 주겠다. 당장 10층으로 향하는 통로에 인접한 미궁으로 달려가 전하라.”
그의 표정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10층의 군세가 올라오고 있다. 그들의 수는 물경 2천에 달하니 준비를 단단히 하라 이르라!”
이미 9층에서 어느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전적과 세력을 일군 나가 요새의 전령이다.
일면식도 없는 미궁의 주인이라고 한들 이야기도 듣지 않고 내칠 리가 없었다.
“발자크!”
“발자크 여기 있나이다!”
“동맹 미궁들에게 전하라. 2천에 이르는 대군이 밀고 올라오고 있으니 살기를 원한다면 이곳으로 모이라 전하라!”
연달아 터져 나오는 지시에 릭샤샤와 발자크는 물론이고 퀀투스와 오르테아가 마저 미궁을 떠났다.
“그들만으로는 부족할지도 모릅니다.”
“부족하지. 당연히 부족하고말고.”
암상인의 음성이 사태의 급박함을 알리듯 어두웠지만, 김진우는 이미 평정을 찾았는지 방금 전보다 훨씬 더 안정된 모습이었다.
“그걸 아시면서 지금 이렇게 태연하신 겁니까?”
암상인의 의문 섞인 말에 김진우가 고개를 저었다.
“태연할 리가 없지. 이미 파악한 군세만 2천, 그중 영웅급 소환수만 해도 100에 달한다. 생각만 해도 아찔한 병력이군.”
하지만 정작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은 무언가 믿는 바가 있는지 그다지 급해 보이지 않았다.
“혹시 방법이 있는 겁니까?”
그가 설명해 주기를 기다려도 대답이 없으니 암상인이 애가 탄 모양이다. 안달 난 얼굴로 물어오는 암상인을 보며 김진우가 대답했다.
“당장 저들을 모두 격퇴할 방법은 없다.”
“그런데 왜…….”
“하지만 저들의 발을 묶어둘 방법이라면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