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74)
던전 견문록-74화(74/319)
# 74
던전 견문록
제 75 화
#32. 나가의 왕이 싸우는 방법
“그래도 심층의 귀족 분들인데 뭔가 이유가 있지 않겠나. 먼저 이야기부터 해봐야…….”
“같지도 않은 소리! 이건 침략이외다! 무려 2천이 넘는 군대를 이끌고 밀려 올라오는데 이제 와서 무슨 대화를 한다는 건가! 앞에서 아양이라도 떨면 군대를 물리고 돌아갈 것 같은가!”
“그렇다고 귀족들을 거스를 수는…….”
“지들이 언제부터 귀족이었다고! 결국은 다 같은 미궁의 주인이 아니던가! 왜 우리가 그렇게까지 저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난 이해할 수가 없군!”
회의실이라고 마련한 널찍한 공간은 각 미궁에서 보내온 대표들이 갑론을박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통에 시장통이나 다름없었다.
“여긴 지저야, 지저! 볕 좋은 저 땅 위 세상이 아니라 오직 힘이 전부인 땅 밑 세상이란 말이다! 귀족이란 허울 좋은 이름에 굴복하느니 난 미궁과 함께 폭사하겠다!”
망치와 모루의 왕 말락서스가 고래고래 악을 써댔다.
“어째서 귀족이 허울 좋은 이름뿐인가. 그에 걸맞은 힘과 전통이 있으니 그들이 귀족이지. 하물며 심층에서 사는 이들이야. 망치와 모루의 왕은 그들을 너무 쉽게 보고 있어. 뜨거운 화로 옆에 있다 보니 머리가 어떻게 된 건 아닌가?”
“화로가 덥힌 건 내 머리가 아니라 심장이다! 난 늪에 콕 처박혀 눈치만 보는 그대 고린토스와는 다르다!”
처음에는 그래도 나름 10층 귀족들의 침략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것이 어느 사이엔가 이렇게 서로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하기야 무리도 아니었다. 이렇듯 공통된 적 때문에 뭉치기는 했지만 엄연히 생존을 걸고 경쟁하던 관계, 이제 와서 새삼 유대감이 생겨날 리가 없었다.
“그만, 그만!”
지켜보고 있던 김진우가 도저히 더는 들어주지 못하고 그들의 말을 잘라냈다.
핏대까지 세우고 떠들어대던 미궁의 주인들이 그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자존심 강한 그들의 성정과는 맞지 않는 모습이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그의 이름 하나를 믿고 모였다. 연달아 강적들을 격파하며 전승의 위업을 이룬 나가 요새의 수장이 바로 그인 것이다.
하물며 그의 뒤에는 11층의 백작 철혈의 아나톨리우스가 있었으니 이 회의실에 모인 미궁의 주인들 중 그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은 이는 없었다.
“한심하군. 적들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는데 여유가 넘쳐. 여기 모인 자들은 2천의 군대가 몰려들어도 다 제 미궁은 지킬 수 있는 모양이야. 그렇지?”
그래서였을 것이다. 신랄한 그의 말에 미궁의 주인들은 화를 내기는커녕 반박조차 하지 못하고 눈치만 살펴댔다.
“아니야? 근데 지금 그렇게 한심한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가!”
애초에 성향이 온건한 이들만을 골라 만든 동맹이다. 발리셔스처럼 음흉한 이들을 배척하고 성격이 강성인 이들을 걸러냈더니 지금에 와서 이런 꼴이 나버렸다.
그 한심한 작태에 김진우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정예 병력으로만 무려 2천이다! 일백에 달하는 영웅급 소환수들이 선봉을 맡았다! 무지막지한 전력이지! 여기 모인 그대들의 전력을 전부 합쳐도 그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야! 그런 군대가 지금 9층으로 통하는 입구의 코앞까지 진군해 있다! 바로 그대들의 미궁을 짓밟기 위해서 말이다!”
그의 말에 그저 막연하던 전황이 뚜렷하게 형체를 갖고 현실이 되었다. 2천의 군대에 에워싸인 자신의 미궁을 상상이라도 했는지 미궁의 주인들 얼굴이 해쓱해졌다.
“병력을 전부 모아 합심해도 모자랄 판에 그대들은 지금 서로를 헐뜯기에 바쁘군. 10층의 귀족들이 보면 아주 좋아하겠어.”
날카로운 눈으로 노려보며 한소리 더 하니 그들이 뒤늦게 헛기침을 하거나 시선을 피했다.
“나는 내 화로의 불꽃이 꺼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과 맞서 싸울 것이외다! 이 망치와 모루는 그저 철이나 두들기라고 있는 것이 아니오!”
망치와 모루의 왕 말락서스가 분연하게 일어서 외쳤다. 동조를 바라는 듯한 그의 행동에 절반의 주인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했다.
“어떻게?”
그런 그들에게 김진우가 다시 한 번 찬물을 끼얹었다.
“망치와 모루의 왕은 2천의 군세를 막아낼 혜안이라도 있는가?”
동맹군을 소집할 정도면 당연히 자신과 같은 의견일 거라고 생각한 모양인지 말락서스가 당황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거야 모두가 힘을 합쳐서…….”
어린아이라도 낼 수 있는 유치한 의견. 계획이라고 할 것도 없는, 되는 대로 주워섬긴 말이다.
“막막하군, 막막해. 차라리 저 귀족들에게 붙는 게 나을 지경이야.”
한숨을 내쉬며 툭 내던진 그의 말에 장내의 분위기가 얼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굳었다.
그도 그럴 것이, 뒤늦게 그가 9층에서 유일한 지저 귀족이라는 사실을 떠올린 탓이다.
어쩌면 귀족들도 같은 귀족의 영지는 피해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라도 했는지 그들이 낭패스러운 얼굴을 해 보였다.
10층 귀족을 막아내려면 그와 나가들의 힘이 꼭 필요한 탓이다.
실상은 저 무지막지한 대군이 9층으로 몰려드는 이유야말로 나가의 요새 때문이었지만, 사실을 모르는 그들은 발만 동동 굴러대며 안절부절못했다.
착각이었지만 김진우가 의도한 상황이기도 했다.
이 간악하고 교활한 9층의 주인들은 귀족들의 목표가 나가의 요새라는 사실을 아는 순간 등을 돌릴 테니까. 어쩌면 상대적으로 만만한 나가의 요새를 앞장서서 공격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럼 남작께서는 따로 복안이 있으신지요?”
이제껏 단 한 마디도 꺼내지 않던 미몽의 여왕 아리아네가 그에게 물었다.
검은 박쥐의 날개로 몸을 감싼 그녀는 살벌한 회의장에는 어울리지 않는 고혹적인 눈짓을 하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복안까지는 모르겠고, 한 가지 방법은 있지.”
“오오! 과연!”
“역시 불패의 남작다우십니다!”
방법이 있다는 말에 9층의 주인들이 반색했다.
그 일희일비하는 모습이 하도 줏대가 없어 보여 김진우는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겉으로는 믿음직스러운 얼굴로 그들에게 신뢰를 심어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나와 나가들이 그들을 몰아내도록 하지.”
생각지도 못한 말에 장내가 술렁였다.
“물론 나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대들이 도와줄 것이 있어.”
***
회의가 끝이 나고 미궁의 주인들은 곧바로 전쟁 준비를 서두른답시고 부리나케 나가의 요새를 떠났다.
그런데 그렇게 떠나간 자리에 남은 미궁의 주인 둘이 있다.
“떠돌이의 왕과 미몽의 여왕은 내게 할 말이 있는가?”
반인반마(半人半馬), 하체는 말이고 상체는 인간의 형태를 한 헤카림과 미몽의 여왕 아리아네가 회의실에 남아 있다.
“흠…….”
그의 말에 헤카림이 아리아네를 보며 불편한 내색을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헤카림을 아랑곳하지 않고 곧장 용건을 꺼내 들었다.
“탐식의 땅이 근래 들어서 부쩍 성장하고 있더군요.”
“그래서?”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싶어서 김진우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으니 아리아네가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게 다 남작님 덕분이란 소문이 있답니다.”
슬슬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이 상대하기 까다로운 여인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뒤늦게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며 시치미를 뗐다.
“나쁜 분이시네요. 이런 말은 원래 남자가 먼저 해야 하는데.”
결국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본론의 언저리를 맴돌던 아리아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미몽의 땅과 저 아리아네는 남작님의 봉신이 되기를 원합니다.”
[지저 남작의 권능 ‘봉신의 맹세’가 발동합니다.] [미몽의 여왕 아리아네가 남작의 기사가 되기를 자청했습니다.] [그녀를 받아들이시겠습니까?]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그랬다. 아리아네는 우서가 갑작스레 성장한 배경에 김진우와 나가의 요새가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이렇게 저돌적으로 나온 것이다.
하기야 전쟁을 벌이지 않는 한 정체되기 시작한 미궁의 성장세를 되돌릴 수는 없었다.
그런 와중에 눈 아래로 보던 우서가 갑작스레 자신들의 위에 서니 조바심이 날 만도 했다.
“왜지? 어차피 이번 전쟁만 끝나고 나면 그대는 그대 나름대로 안락한 삶이 보장되어 있지 않은가. 굳이 남의 밑으로 들어가는 이유를 모르겠군.”
“과연 이번 전쟁이 끝일까요?”
생각지도 못한 말. 김진우가 순간 눈썹을 꿈틀거렸다.
“저는 아닐 거 같은데. 남작님은 그렇게 두지 않을 거잖아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9층을 정복하고 10층마저 발아래 둔다. 그리고 마침내 심층 귀족들의 심장에 비수를 꽂는다.
그 과정에서 전란이 생길 것은 불 보듯 빤한 일, 하지만 아직까지 말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했다. 위기를 느낀 9층의 주인들이 뭉치기를 바라지 않은 탓이다.
“저는 미몽(迷夢)의 여왕, 제게는 남작님을 맹목적으로 만든 그 미몽의 형상이 아주 흐리게나마 보인답니다.”
“미몽이라…….”
지저 공작을 향한 자신의 복수심을 꼬집는 것일까. 김진우는 자신의 속내가 드러났다는 사실에 위기감보다 씁쓸함이 느껴진 것은 하필이면 그것을 알아차린 것이 헛된 꿈을 꾸는 자들의 여왕인 탓이리라.
“아이 참, 언제까지 제 속만 태우실 거예요. 저 아리아네, 다른 건 몰라도 절대로 배신 따위는 하지 않아요. 남작님의 꿈은 아주 맛있어 보이거든요.”
속을 알 수 없는 아리아네의 얼굴이 다소 찝찝하기는 했지만 오는 전력을 굳이 마다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봉신의 계약이 되고 나면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던 자신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아리아네를 네 번째 기사로 임명하시겠습니까?]“받아들이지.”
[미몽의 아리아네가 지저 남작 김진우의 가신(기사)이 되었습니다.] [네 번째 기사 아리아네는 주인과 운명을 함께하게 됩니다. 나가의 미궁이 파괴될 경우 아리아네 역시 소멸될 것입니다.] [아리아네가 다스리던 미몽의 땅이 ‘봉토’가 되었습니다. 아리아네는 여전히 한 미궁의 지배자이지만 섬겨야 할 주인이 생겼습니다. 미몽의 땅을 관장하는 핵에 축적되는 던전 에너지의 20%가 나가의 미궁에 속합니다.] [언제든 두 미궁을 연결하는 포탈을 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포탈을 열고 말고는 온전히 남작의 권한입니다.]몇 번이나 본 메시지가 다시 떠오르고, 아리아네가 무릎을 꿇고 충성의 말을 속삭였다.
“앞으로 제 모든 것은 남작님의 것, 몸도 마음도 모두 원하시는 대로…….”
그렇게 말하면서도 뭔가를 바라는 듯 눈을 반짝이는 그녀를 보니 아무래도 자신도 한시바삐 우서처럼 봉신의 혜택을 누리고 싶은 모양이다.
하지만 쉽게 다운 잼을 내어줄 생각이 없으니 그녀는 당분간 헛물만 켜게 되리라.
“그대 역시 같은 용건인가?”
헤카림은 아리아네가 선수를 쳤다는 사실에 다소 분한 얼굴이었지만, 이내 표정 관리를 하고 고개를 숙여 보였다.
“지저에 떠도는 모든 소문이 남작님에 관한 것이니 앞으로는 그 소문이 무용담이 되고 신화가 되겠지요.”
다소 이유가 다르기는 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좋다, 받아들이지.”
***
‘회의는 어떻게 되었나요?’
미궁의 주인들만이 참석한 회의인지라 회의의 경과를 알 수 없던 도미니크가 조마조마한 얼굴로 물어왔다.
“일단 저 겁 많은 놈들이 납득할 만한 실적을 보여야겠지.”
‘그럼 바로 시작인가요?’
뭔가 미리 준비한 수가 있는지 도미니크와 김진우의 대화는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아니. 조금 더 끌어들인다. 어차피 한 번 이를 드러낸 놈들이라면 언제고 다시 드러낼 거야. 그러니 지금 최대한 10층 놈들의 세를 꺾어놓을 생각이다.”
‘아슬아슬하겠군요.’
“우리가 한 번이라도 아슬아슬하지 않은 적이 있던가?”
김진우가 피식 웃으며 하는 말에 도미니크가 배시시 웃어 보였다. 이제껏 치러온 전투들을 새삼 떠올리기라도 한 모양이다.
“어쨌건 생각지도 못한 소득도 있었어. 미몽의 여왕과 떠돌이의 왕이 봉신을 자처했다.”
‘꽤나 감이 좋은 자들이네요.’
“9층이고 10층이고 이제껏 살아남은 자들이니까.”
강하고 약하고를 떠나 살아남는 게 미덕인 이 지저에서 지금껏 미궁의 주인으로 남아 있다는 것만 해도 그들은 충분히 유능한 이들이었다.
“장거리 순찰자들을 불러들여라. 지금 출발시켜야 얼추 시간이 맞을 테니까.”
‘네,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
보레아스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감히 제 앞에서 고개를 빳빳이 든 크리쳐들도 눈에 거슬렸지만, 더욱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은 자신에게 떠안기듯 병력을 맡기고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10층의 귀족들이었다.
대열의 어디에 처박힌 것인지 그들은 도통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망할 놈들. 정말 속까지 썩어버렸군.”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인지 한때는 나름대로 봐줄 만하던 귀족들이 어느 순간이 되자 사치와 향락에 타락해 구제불능의 쓰레기가 되었다.
“이미 구제불능의 쓰레기라면 차라리 지금처럼 얌전히 있는 게 차라리 나을 겁니다.”
“글쎄다. 저 교활한 기회주의자들이 끝까지 저렇게 있을까. 누가 뭐라고 해도 근 100년간 없던 승작의 기회다. 눈앞에 과실이 보이면 눈이 돌아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이들이지.”
“발톱과 송곳니는 잃었어도 욕심은 그대로군요.”
부관의 말에 보레아스가 욕설을 내뱉고는 마침내 보이기 시작한 9층의 통로를 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나가의 왕이라……. 대체 어떤 놈일까?”
“전승이니 뭐니 해도 결국은 9층의 시시껄렁한 놈들이나 상대하던 잡졸 아니겠습니까.”
“모르는 소리. 단 몇 달 만에 두 번의 큰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미궁을 성장시킨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하다못해 파르테논님의 귀에까지 그 이름이 들어간 존재가 그런 하찮은 잡졸일 리가 있나.”
물론 그게 좋지 못한 쪽으로 파르테논에게 찍혀 이제는 풍전등화의 운명이 되었다지만, 그래도 무언가 특별한 구석이 있는 인물일 게 분명했다.
그러니 11층의 귀한 몸께서 직접 승작까지 약조하며 이리 내몰았을 테지.
보레아스의 말에 부관이 그도 그렇다며 나름 기대하는 얼굴을 해 보였다.
그간 자신을 따라다니며 전귀가 되어버린 부관의 섬뜩한 눈빛에 그제야 보레아스가 표정을 풀었다.
“이제 여기만 넘으면 9층이군요. 9층 놈들, 혼비백산해서 방방 뛰어댈 게 눈에 선히 보입니다.”
“내친김이다. 경로에 놓인 모든 미궁을 전부 초토화시킨다. 핵은 챙기고 살아 있는 것들은 전부 죽인다.”
살벌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껄여댄 보레아스는 통로 너머로 정찰을 나간 수하들이 아무 이상이 없음을 알려오자 이내 진군을 명했다.
“호오, 여기가 9층이로군.”
“킁킁, 뭔가 야만적인 냄새가 나는 곳이군.”
“나름대로 낭만적이지 않은가. 어쩌면 이곳에 내 미궁을 아름답게 장식해줄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르지.”
언제 튀어나온 것인지 10층의 귀족들이 대열의 선두에 나서 한심한 소리를 해댔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낀 보레아스가 눈을 부라리는데 타락했어도 동등한 귀족이랍시고 남작들은 콧방귀도 끼지 않았다.
“물러서라! 그대들 때문에 행군이 늦어지고 있지 않은가! 대열이 엉킨단 말이다!”
성난 보레아스의 말에 귀족들이 몇 마디씩 떠들어대다 이내 다시 대열로 파고들었다.
“망할 놈들.”
“근데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한때는 11층을 넘볼 정도로 강대한 이들이었는데 어쩌다 저리 된 걸까요?”
부관의 질문에 보레아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 역시 수도 없는 시간 동안 고민해 온 문제였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음?”
생각에 잠겨 있던 보레아스는 코끝을 파고드는 이질적인 냄새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무슨 냄새지?”
“킁킁, 유황 냄새 같기도 한데…….”
매캐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텁텁한 향이 공기 중 미세하게 섞여 있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그가 대열을 정지시키려다가 얼굴을 굳혔다.
각 층의 연결하는 통로는 평범한 구멍이 아니었다.
통로를 가득 채운 새까만 어둠은 기척도 소리도 집어삼키는 기괴한 것, 이제 와서 대열을 멈추기에는 통로 너머에서 꾸역꾸역 밀고 넘어오는 크리쳐의 수가 너무도 많았다.
“정지! 정지!”
게다가 말도 지독스러울 정도로 안 들어먹었다. 정지라는 선두의 신호를 통로 너머까지 전달하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
“전령을 보내라! 아직 넘어오지 않은 자들은 잠시 기다리라고!”
“알겠습니다!”
부관이 명령을 받고 사라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갑자기 굉음이 터져 나왔다.
“정지! 뭔가 이상하다!”
선두에 서 있던 영웅급 전사들도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리고 외쳤다. 하지만 통로를 통해 꾸역꾸역 밀고 넘어오는 병력을 수습하기란 쉽지 않았다.
쾅! 쾅!
그리고 절반 정도의 병력이 통로를 빠져나왔을 때, 온 통로에 새빨간 불꽃이 피어오르고 이내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