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75)
던전 견문록-75화(75/319)
# 75
던전 견문록
제 76 화
“으윽!”
갑작스러운 폭발에 휩쓸린 보레아스는 한참 만에 정신을 차렸다. 폭발 자체야 별게 아니었지만 그 뒤에 무너져 내린 천장에서 떨어진 무지막지한 토사가 문제였다.
온몸을 짓누른 암석과 흙 따위를 헤치고 겨우 몸을 일으킨 그는 눈앞에 드러난 참담한 광경에 신음을 토해냈다.
“보레아스님!”
통로 너머로 전령 삼아 보낸 부관이 달려왔다.
“괜찮으십니까!”
보레아스는 그 걱정 섞인 말에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만큼 눈앞에 드러난 참상은 처참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뻥 뚫려 있던 통로가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그 아래 토사에 깔린 병사들의 잔해가 보인다. 통로를 넘어온 병사 중 3분지 1 이상이 사라져 버렸다.
“크아아악!”
“끄으으…….”
온 사방에서 비명과 신음 소리가 난무하고 있다. 그렇게 살아 있기라도 한 병사들은 행운아였다.
폭발의 중심에 서 있거나 선두의 병사들은 각기 화염과 토사에 휩쓸려 형체조차 남기지 못했다.
“병력의 50프로가 날아갔습니다! 살아남은 병사들도 부상이 심각합니다! 게다가 통로가 완전히 막혀 진군은 더 이상 무립니다!”
창백하게 질린 부관의 보고에 보레아스가 분노에 차 울부짖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
***
“이게 대체… 무슨 재주를 부리신 겁니까?”
온몸으로 기포를 부글거리는 우서가 간신히 한마디를 내뱉었다.
“마법은 아닌 것 같은데, 이런 엄청난 폭발이라니…….”
김진우는 대답 대신 폭발에 휩쓸리지 않은 유일한 탐식의 덩어리가 전해오는 화면에 집중했다.
통로의 상황은 한 편의 지옥도와도 같았다. 토사에 깔리고 폭발에 휩쓸린 병사들이 이곳저곳에서 비명과 신음을 내지르고 있다.
그 가운데 살아남은 병력이 흙과 돌 따위를 걷어내고 부상자들을 구조한다고 난리를 피워대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동료의 손에 구출된 병사는 많지 않았다.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던 병력 중 거의 절반 이상이 사라진 것이다.
“이 정도면 다른 주인들에게 약조한 대로 시간을 벌었군.”
차가운 한마디에 우서가 이제는 그를 마치 귀신이라도 보듯 바라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떠한 마법적인 전조도 없이 통로를 완전히 무너뜨린 그 힘의 원천을 알 수가 없는 탓이다.
“시간만 벌었다 뿐이겠습니까. 전투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 정도의 타격을 입히다니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흥분한 우서의 말에 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10층의 병사들은 생각보다 몸이 튼튼했어. 봐라. 지금도 꾸준히 생존자들이 나오고 있지 않은가.”
그 말에 우서가 화면을 향해 고개를 돌려 보다가 신음을 내뱉었다. 마치 무덤에서 시체가 일어나듯 수많은 병사들이 흙과 돌을 밀어내며 일어나고 있었다.
“저 정도라면 40퍼센트가 아니라 20퍼센트나 죽었을까. 정말 무식할 정도로 터프한 놈들이군.”
따지고 보면 그 정도만 해도 기대 이상의 성과라고 할 수 있었다. 애초에 진격로를 막기 위해 벌인 작업에 저 정도의 숫자가 휘말렸다는 건 그야말로 행운이었으니까.
하지만 사실은 그 행운조차도 그가 만들어낸 행운이다.
지저의 존재들은 각 층을 벗어나면 페널티를 받는다. 자신의 미궁에서 멀어질수록 힘이 약화되는 것이다. 그런 불리함을 감수하고 각 층을 오고 가는 존재들이 얼마나 될까.
하물며 전쟁이 끝난 지 10년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는 거처 없이 떠도는 떠돌이를 제외하고는 거의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김진우는 층간 이동에 익숙하지 않은 적들의 허점을 노렸다. 시야와 감각마저 차단하는 통로의 어둠, 길게 이어진 행렬이 눈과 귀가 가장 어두울 때 일을 벌인 것이다.
그리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비록 지상에서 공수해 온 폭탄 자체의 살상력은 기대 미만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적들은 전체 병력의 10퍼센트에 달하는 무지막지한 피해를 입고 말았다.
그리고 살아남은 적들은 진격로가 막힌 채 우왕좌왕하고 있다.
“그래도 조금은 기대했는데.”
폭발의 중심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상처 하나 입지 않은 보레아스의 모습을 보며 김진우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적장은 흙과 모래 부스러기에 처음의 그 위풍당당함은 잃은 대신 그만큼 독이 올라 사나워져 있었다.
“겁을 집어먹고 미궁에 틀어박힌 미궁의 주인들에게 알려라. 적들은 병력의 10분지 1을 잃었고 나아갈 길마저 막힌 채 우왕좌왕하고 있다고.”
나가의 요새로 돌아온 김진우가 그렇게 말하자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던 나가들이 일제히 함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시간을 많이 번 것은 아니다. 그러니 서둘러 약속을 지키라 전하라.”
대기하고 있던 용기사들과 순찰자들이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미궁을 나섰다.
“이제 시작이다.”
***
나가들이 달려와 전해준 소식에 미궁의 주인들은 경악했다. 아직 본격적인 전투는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적 병력의 10분지 1을 소멸시켰다는 나가들의 보고가 믿기지 않은 탓이다.
하지만 급박한 전쟁의 와중에 그들이 거짓을 고할 리는 없을 터, 미궁의 주인들은 그저 나가의 요새가 지닌 힘에 전율할 뿐이었다.
“대기하고 있던 병력에게 알려라! 출진한다!”
하지만 언제까지 놀라고 있을 수는 없었다. 통로가 무너져 진격이 늦춰지기는 했지만, 무너진 흙과 암석은 거두어내면 그만이다.
머지않아 다시 진격을 재개할 적들을 생각하며 미궁의 주인들은 절반의 병력을 방어를 위해 남겨두고 나머지 절반을 출진시켰다.
그렇게 출진한 병력들이 줄을 지어 나가의 요새로 향했다.
“망치와 모루의 왕이 보낸 일백 난쟁이가 미궁의 경계에서 대기 중입니다!”
“미몽의 왕이 보내온 백오십의 몽마가 도착했다는 보고입니다!”
왕좌에 앉아 속속 도착하는 병력에 대한 보고를 받고 있던 김진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미니크.”
‘네, 주인님.’
“내가 없는 동안 이곳을 부탁한다.”
그의 말에 도미니크가 그 어느 때보다 다부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대체 무슨 수를 쓴 걸까.”
나가의 미궁 외곽에 모인 각 미궁의 주인들은 하나같이 혼란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그도 그럴 것이, 원거리 감시가 가능한 몇몇 주인들로부터 10층과 이어진 통로 부근 전체가 매몰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마법은 아니야. 마법이었다면 10층 귀족들이 그 낌새를 눈치 채지 못했을 리 없어. 듣기로는 저들의 군세에 마법에 능한 이들이 다수 끼어 있다고 했어.”
“동감이다. 수탐을 보낸 수하의 말에 의하면 폭발 직전에 그 어떤 낌새조차 없었다고 들었다. 마법이었다면 그전에 에너지의 유동이 있었겠지.”
“끄응. 진짜 환장할 노릇이군.”
머리를 맞대고 김진우가 이룬 믿을 수 없는 전과에 대해 토론하고 있는 주인들, 이제껏 한마디도 하지 않던 떠돌이의 왕 헤카림이 탐탁지 않은 얼굴로 딴지를 걸었다.
“궁금한 건 이해하지만, 그대들은 뭔가 이상하군. 어쨌거나 전승의 남작은 우리 편이 아닌가.”
그래도 봉신의 계약을 했다고 역성을 드는 것인지 미몽의 여왕 또한 못마땅한 얼굴을 했다.
“순진하다 못해 멍청하군. 저 정체불명의 힘이 우리에게 향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나? 만약 그렇게 되면 막을 방법은 있나?”
“생각만 해도 끔찍해. 만약 내 미궁의 중심에서 저런 일이 일어나면 난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주인들의 말에 헤카림이 한마디를 더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미궁의 주인들이 떠들어대던 재해를 일으킨 당사자의 음성이 들린 탓이다.
“여전히 태평한 놈들이군.”
스텔스 능력이 사라지며 나타난 희뿌연 잔상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김진우의 표정은 차가웠다.
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에 깜짝 놀란 미궁의 주인들이 그 표정을 보고는 더욱더 기가 눌린 모습이 되었다.
“적들이 그대들과 같다면 소원이 없겠군. 그랬다면 아마 지금쯤 9층을 포기하고 도망치고 있을 테니까.”
“왕이시여!”
“주인님!”
헤카림과 아리아네가 그의 등장에 무릎을 꿇으며 극도의 공경을 표하자 주인들은 경악했다. 하지만 그들이 놀라거나 말거나 김진우는 하던 말을 이어갔다.
“그렇게 떠들어댈 시간에 적들을 몰아낼 궁리나 좀 해보시지. 아직 끝나지도 않은 전쟁 뒤의 일을 벌써부터 걱정하는 걸 보니 내가 다 환장할 지경이야.”
그의 말에 주인들이 뒤늦게 자신들이 보인 추태를 깨닫고는 입을 다물었다.
“근데 이게 다 모인 건가?”
지난번의 회의에 참석한 늪의 왕 고린토스를 비롯한 몇몇 미궁의 주인이 보이지 않았다.
“우서, 어떻게 된 거지?”
김진우를 따라 은신하고 있던 우서가 모습을 드러내며 대답했다.
“음. 고린토스의 미궁은 완전히 문을 걸어 잠갔습니다. 다른 곳 역시 마찬가지고요. 그들은 맞서 싸우는 대신 자신의 미궁에 몸을 숨기는 것을 택한 모양입니다.”
“어쩌면 승자가 누가 될지 저울질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미몽의 여왕 아리아네가 차갑게 한마디 하자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그도 그럴 것이, 김진우의 표정이 마치 얼음장 같은 탓이다.
“약아빠졌군. 어쩌면 그들이야말로 현명한 것일지도 모르지.”
말과는 달리 그의 눈빛은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불참한 주인들이 눈앞에 있다면 씹어 먹기라도 할 기세이다.
“물론 10층의 귀족들이 이긴다면 그들은 그 현명함에 대한 대가를 받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긴다면 그들은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야. 내가 그렇게 만들겠다.”
박쥐처럼 간을 보는 고린토스와 다른 주인들을 떠올리며 자리에 모인 미궁의 주인들은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직 전황은 바뀌지도 않았건만 이곳에 온 것이 잘한 선택이라 느낀 모양이다.
“어쨌건 더 올 사람이 없으면 우리 남은 계산을 봐야지?”
정색한 김진우의 말에 미궁의 주인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펴댔다.
하지만 그도 잠시, 그가 눈썹을 찌푸리자 망치와 모루의 왕 말락수스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며 고개를 숙였다.
“전투 난쟁이 일백, 나가의 왕께 지휘권을 이양하는 바요. 이는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는 변하지 않을 것이오.”
[망치와 모루의 왕 말락수스가 이끌고 온 일백의 전투 난쟁이들에 대한 지휘권을 획득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왕이 결정을 반복하지 않는 한 당신의 명령을 최우선적으로 따를 것입니다.]말락수스의 선언에 다른 주인들도 황급하게 지휘권 이양을 선언했다.
[미몽의 왕 아리아네가 이끄는 백오십의 몽마들이 당신의 지휘를 받게 됩니다.] [봉신의 맹세의 효과에 의해 그들은 나가들과 동일한 증폭 효과를 받게 됩니다.] [떠돌이들의 왕 헤카림이 이끄는 백사십의 반인반마들이 당신의 지휘를 받게 됩니다.] [봉신의 맹세의 효과에 의해 그들은 나가들과 동일한 증폭 효과를 받게 됩니다.]봉신의 맹세를 한 아리아네와 헤카림뿐 아니라 이 자리에 모인 열 명의 주인이 모두 지휘권을 이양했다.
[나가 요새의 사령관이자 온당한 왕, 그리고 지저의 남작인 당신은 연합군의 총사령관이 되었습니다.] [총사령관의 위치는 9층을 침범한 10층의 모든 귀족을 몰아낼 때까지 유지되며 그 위엄은 절대적입니다.]그렇게 김진우의 휘하에 모인 병력의 수가 700에 달했다. 아리아네와 헤카림, 그리고 말락수스를 제외하고는 모두 절반 정도의 병력을 남겨두고 온지라 생각보다 그 수는 많지 않았지만 김진우는 몹시 만족한 얼굴이다.
“좋다, 그대들은 지금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말에 미궁의 주인들이 착잡한 표정으로 서로의 눈치를 보다 고개를 숙였다.
“그럼 편제는 가는 동안 다시 맞추는 걸로 하고, 일단 이동한다!”
“이동!”
마치 부사령관이라도 된 것처럼 우서가 그의 말을 제창하자 700의 병력이 일제히 이동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