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78)
던전 견문록-78화(78/319)
# 78
던전 견문록
제 79 화
#33. 전승의 업적
세 개의 미궁이 멸망했다. 독이 오를 대로 오른 보레아스의 맹공에 채 하루를 버티지 못하고 미궁이 무너진 것이다.
당연하게도 위기감이 팽배하기 시작했다. 그대로 두면 10층으로 도망칠 귀족연합군의 퇴로를 막아 괜한 피해가 생겼다는 목소리마저 나올 지경이다.
하지만 김진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표면적으로야 전황이 다시 귀족들에게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그들이 습격한 미궁은 모두 이미 김진우가 따로 보낸 수하들에게 점령당해 핵을 추출당한 텅 빈 미궁들, 귀족들이 얻은 것은 빈껍데기 미궁에 불과했다.
물론 이 사실이 퍼진다면 간신히 흐름을 잡은 동맹군이 사분오열될 테지만 그는 걱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 9층의 주인들이 그 사실을 알 길은 영영 묻히고 말았으니까.
“이제 슬슬 승부를 내야겠군.”
거듭된 습격으로 적의 병력은 이제 500도 남지 않았다. 아군도 피해가 꽤나 컸지만 새롭게 합류한 미궁의 병력이 있는 탓에 처음과 비교하면 오히려 병력은 늘어난 상황이다.
그렇게 늘어난 병력의 수만 해도 무려 1천에 달했으니 이제는 정말로 승부를 봐야 할 때였다.
김진우가 전장으로 삼은 것은 중간에 내뺀 늪의 왕 고린토스가 지배하던 미궁이다.
적들이 텅 빈 미궁을 점거하고 허탈함을 느끼고 있을 때, 김진우는 전 병력을 동원해 적을 몰아붙였다.
“네 이놈!”
그리고 그곳에서 김진우는 보레아스와 다시 마주쳤다.
“네놈만은 내가 반드시!”
[적 사령관 삭풍의 보레아스와 전투를 시작합니다.] [남작 김진우와 남작 보레아스는 둘 다 한 영지의 주인이자 일군을 이끄는 사령관입니다. 둘의 싸움은 그저 개인 간의 싸움이 아닙니다.] [지저의 율법에 의해 승자는 패자의 모든 것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작위이든 본신의 능력이든 승자에게 자신의 전부를 바칠 것입니다. 패자는 오직 승자의 처분에 모든 것을 따라야 합니다.]처음 보는 메시지, 김진우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아마도 이래서 10층의 귀족들이 서로를 견제하면서도 굳이 전쟁을 일으키지는 않은 모양이다.
패자의 모든 것을 승자가 얻는다는 것은 9층과 마찬가지였으나, 귀족 간의 전투는 패자를 강제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제 놈이 잘나서 살아남은 줄 아는 모양이군.”
지난 전투에서 보레아스를 놓아준 게 아쉬웠는지 모리건이 나서려고 했지만 김진우가 손을 들어 그녀를 제지했다.
“이번에는 내가 상대하지.”
그렇게 말한 김진우가 보레아스를 향해 칼을 뽑아 들었다.
[기생수의 특수 능력 마안이 발동되었습니다.] [사령관의 고유 능력에 의해 일시적으로 힘이 증폭됩니다.]***
“후우.”
과연 보레아스는 쉽지 않은 상대였다. 층을 벗어난 페널티에 애병마저 잃은 불리함까지 더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빠르고 강했다.
전쟁 동안에 보여주던 무기력한 모습은 그저 지휘관의 역량에 한정되었던 것인지 전사 보레아스는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악조건 속에서도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힘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결국 승리한 것은 김진우였다.
[귀족전에서 승리했습니다.] [행운인지 불행인지 남작 보레아스는 아직 숨이 붙어 있습니다. 당신의 말 한마디에 패자의 운명이 결정됩니다.] [승자는 패자를 노예로 부릴 수도, 이제껏 모아온 힘을 갈취할 수도 있습니다. 그 어떤 것이든 귀족전의 승리는 그 어떤 승리보다 더욱 달콤할 것입니다.]사지가 부러진 채 숨을 헐떡이는 보레아스의 눈빛이 분하다는 느낌보다는 체념의 빛에 가까웠다.
비록 승리했지만 김진우 역시 성치는 않았다.
부러진 왼팔은 보기 흉하게 꺾여 덜렁거리고 있고, 갈빗대는 금이 갔는지 숨을 쉴 때마다 극심한 통증에 신음이 절로 새어 나올 지경이다. 거기에 한계까지 혹사당한 온몸의 근육이란 근육은 전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이겼다!”
“승리했다!”
“크아아아!”
승리의 포효가 터져 나왔다.
“애먹이는군.”
당장에라도 주저앉을 것 같은 마음을 꾹 눌러 참은 그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승리의 함성을 내지르던 병력이 잔뜩 흥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다.
“마침내 우리가 이겼노라!”
그의 선언에 살아남은 병력이 더욱더 힘차게 함성을 질렀다.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강대한 10층 귀족들의 군대는 완전히 전멸하였고, 귀족들은 전부 도망쳤습니다.] [이제껏 이루어온 승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위대한 승리, 불리한 전황을 뒤집고 상대를 마침내 분쇄하고야 만 당신의 업적에 지저의 존재들이 감탄합니다.] [그간 알음알음 지저에 전해지던 ‘전승의 사령관’이라는 이름이 전 지저에 퍼져 나갑니다. 앞으로 지저의 존재들은 당신을 남작이 아닌 전승의 사령관으로 기억하고 부를 것입니다.] [명성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상승했습니다.] [카리스마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상승했습니다.]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를 보며 김진우는 뒤늦게 승리를 실감했다.
***
비록 승리를 했지만 동맹군의 상태는 그야말로 참담했다. 최종 전투에 참가한 1천의 병력 중 고작 250 남짓한 이들이 살아남았다.
참전한 미궁의 주인들 중 여섯이나 전사했다.
그리고 그렇게 주인을 잃은 미궁들은 고스란히 김진우의 손에 쥐어졌다.
총사령관의 고유 권한이었다.
반발하는 이는 없었다. 살아남은 미궁의 주인들은 하나같이 처음부터 김진우와 나가의 요새에 우호적인 이들 뿐. 마치 계획한 것처럼 느껴질 지경이다.
그래서 살아남은 미궁의 주인들은 더욱더 두려움을 느꼈다.
9층의 많은 이들이 말했다. 이번 전쟁에서 9층이 이길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그들은 장담했다. 그만큼 9층으로 밀고 들어온 10층의 군세는 9층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대군이었다.
그런 강대한 군대를 그들의 총사령관이 일방적으로 몰아붙인 것이다.
다른 동맹군의 도움도 없이 두 번의 습격을 통해 적의 수를 절반 가까이 줄여 놓았고, 그 이후로도 저 사나운 맹수들을 마치 몰이라도 하듯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야금야금 병력을 소진시켰다. 그 결과 막다른 곳에 몰린 귀족연합군은 귀족들을 제외하고는 누구 하나 살아남을 수 없었다.
9층에서도 그 이름이 드높은 삭풍의 보레아스마저 단기 결전에서 패배하여 그의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실로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업적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저 냉혹한 총사령관은 몇 수 앞을 내다보고 있었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전쟁의 와중에도 그는 그간 알게 모르게 자신을 견제해 오던 미궁의 주인들을 처리하는 수완을 보였다.
비록 직접적으로 손을 쓴 것은 아니지만 가장 치열한 전장에 그들을 몰아넣고 적과 함께 상잔시켰으니 그 냉혹함과 치밀함은 두려워할 만했다.
“그동안 수고했다.”
마지막 전투의 흔적이 채 가시지 않은 늪의 미궁, 높다란 왕좌에 앉은 김진우가 동맹군의 주인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완전한 하대,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를 기분 나쁘다 여기는 기색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부터 이루어질 논공행상에 대한 전권을 그가 지니고 있는 탓이다.
미궁의 주인들은 침을 꼴깍 삼키며 김진우의 입을 주시했다. 지금부터 그의 말 한마디에 웃는 이가 생기고 가슴을 치는 이가 생겨날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의 허리가 조금씩 굽혀지고 눈빛이 공손해지고 있었다.
***
이번 전쟁을 통해 주인을 잃은 미궁의 수만 해도 무려 아홉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권리를 이어받은 것은 당연하게도 살아남은 미궁의 주인들이다.
살아남은 다섯의 주인 중 새롭게 미궁을 얻지 못한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이상이다.”
아직 남은 미궁의 수가 무려 넷이나 됐지만 김진우는 논공행상을 마무리 지었다.
부수적인 수입이라고 할 수 있는 전사자들의 몸에서 나온 다운 잼과 무구들은 진즉에 분배하고 난 뒤였다.
“혹여 결정된 사항에 대해 이의가 있는 자가 있다면 지금 말하라.”
미궁의 주인들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옥쇄를 각오하고 어렵게 얻은 승리,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새로운 미궁을 얻었으니 할 말이 있을 리 없었다.
게다가 그에게 반기를 든 이들의 말로가 어땠는지를 눈앞에서 지켜본 탓에 더욱더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럼 아무도 이견이 없는 걸로 알겠다.”
그의 선언에 살아남은 미궁의 주인들이 고개를 숙이거나 바닥에 엎드려 앞 다투어 승전의 공을 칭송했다.
그렇게 김진우가 이번 전쟁을 통해 얻은 전리품은 어마어마했다. 동맹군 모르게 챙긴 미궁의 핵만 해도 무려 다섯이다.
추방자들의 미궁을 먼저 선점했고, 귀족연합군의 습격으로 멸망한 것으로 알려진 늪의 왕 고린토스의 미궁 역시 한 발 앞서 핵을 추출해 둔 상태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아홉 개의 핵을 얻은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모두들 수고했다.”
논공행상마저 마무리 지은 김진우의 선언에 제 할 일을 마친 동맹군은 해산했다.
***
‘주인님!’
나가들의 요새 게이트에 우두커니 서 있던 도미니크가 김진우를 보고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을 해 보였다.
“다녀왔어!”
‘주인님!’
그 어떤 말도 하지 못한 채 주인님이라고 몇 번이나 반복해서 부른 도미니크가 달려와 그를 끌어안았다.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정말 다행이에요.’
생각보다 걱정을 많이 한 모양인지 엉엉 울며 품에 기대오는 그녀를 보며 김진우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평소의 똑 부러지는 모습은 어디 갔는지 울다 웃다 반복하는 그녀의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와도 같아 보인 탓이다.
‘죄, 죄송해요.’
한참 만에 눈물을 멈춘 도미니크는 자신이 보인 추태가 떠올랐는지 묘하게 부끄러운 얼굴이다.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승전을 축하하는 그녀의 말에 게이트에 도열해 있던 수많은 나가들이 허리를 조아렸다. 그들의 인사를 받으며 미궁 안에 들어선 후에야 김진우는 비로소 전쟁이 끝이 났다는 사실을 실감하고는 길게 한숨을 토해냈다.
***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미궁을 찾은 암상인이 납작 엎드리며 외쳤다.
“온 지저가 남작님의 승리에 놀라고 있습니다. 그 난폭한 보레아스님마저도 무릎 꿇린 힘과 몇 배의 군세를 농락한 신산귀계에 감탄하지 않은 자가 없습니다.”
아첨이랄 것도 없이 암상인이 하는 말은 모두 진실인지라 김진우는 겸손하게 빼는 것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상대가 좀 멍청해야지.”
오만한 말이었지만 이 역시 사실이다. 김진우가 겪어온 10층 귀족들은 지독스러울 정도로 멍청했다.
생존을 걸고 벌인 전쟁임에도 안일하기 그지없던 그들의 태도 덕분에 큰 변수 없이 승리할 수 있었다.
“지저는 힘이 지배하는 곳, 강자는 약자를 힘으로 찍어 누를 뿐이니까요.”
하기야 본신의 힘이 남다르니 그간은 별다른 전략이니 전술이니 쓸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 멍청함마저도 약점이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요.”
아무래도 그가 이룬 업적이 워낙에 대단한지라 말에 무게감이 실렸다. 암상인이 진정으로 감탄했다는 얼굴로 몇 번이나 그의 업적을 칭송했다.
“이제 슬슬 본론을 꺼내지?”
말이 자꾸만 언저리를 맴도는 느낌이라 김진우가 적당히 암상인의 말을 잘라냈다. 암상인은 기분 나쁜 기색도 없이 비굴하게 웃으며 손바닥을 비벼댔다.
“그렇지 않아도 그럴 참입니다요.”
암상인의 목소리가 한층 더 간드러졌다.
“이번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 남작님께서 전부 소화하기에는 너무 덩어리가 크지 않을까요. 만약 원하신다면 저희 블랙 머천트에서 처분을 도와드리겠습니다.”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 다운 잼이야 앞으로 쓸 일이 있을 테니 차치하고서라도 적의 시체에서 벗겨낸 갑주와 무기의 수만 해도 그 수가 무지막지했다.
암상인의 말마따나 나가들이 쓰기에는 크기도 맞지 않고 그 쓰임이 어정쩡한지라 김진우는 흔쾌히 암상인의 제안을 수락했다.
“에, 또…….”
허리를 반쯤 접은 채 굽실대던 암상인이 고개를 들었는데, 그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 빛을 발하고 있다.
“전리품으로 얻으신 미궁의 핵들은 어떻게 하실 작정입니까?”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만약 처분하게 된다면 그대에게 넘기도록 하지.”
이번에도 미궁의 핵을 탐내고 있던 모양인지 입맛을 다시는 암상인의 얼굴이 여간 실망한 빛이 아니다.
“그보다 아나톨리우스는 어떻게 됐지?”
“파르테논님이 맹렬하게 공격했지만 철혈의 기사단은 그야말로 철벽이었습니다. 양쪽 다 큰 피해나 소득 없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는데, 그간의 전례를 생각해 보면 아마 이대로 끝이 아닌가 싶습니다.”
“정작 필요할 때는 도움이 안 되는 작자로다.”
혀까지 차며 하는 말에 암상인이 슬쩍 딴청을 피웠다.
무려 백작이나 되는 인물을 씹어대는 김진우의 행동에 차마 맞장구를 칠 수가 없던 모양이다.
“또 용건이 있을 텐데.”
이제까지의 경험을 미루어 생각해 보면 암상인이 거래 하나만 보고 움직였을 리 없었다.
“아이고, 이렇게 속을 탁 짚어내시니 10층의 귀족 분들도 도리가 없던 게죠. 정말이지 남작님을 속일 수는 없는 모양입니다요.”
호들갑스럽게 떠들어댄 암상인이 품을 뒤적거렸다.
“이번에는 좀 많습니다.”
그렇게 말한 암상인이 손을 내미는데 그 위에 두 개의 봉투와 하나의 목함이 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