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79)
던전 견문록-79화(79/319)
# 79
던전 견문록
제 80 화
#34. 격류
“하나는 파르테논님이 보내신 초대장이고, 하나는 아나톨리우스님이 보내신 겁니다.”
아나톨리우스야 어떤 식으로든 연락을 취할 거라 예상했지만, 파르테논의 연락은 김진우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흐음…….”
뭔가 일이 묘하게 흘러가는 듯한 느낌에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 암상인은 그가 두 장의 편지와 목함을 확인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고민하던 그는 결국 아나톨리우스가 보내온 편지를 먼저 골라 들었다. 대기하고 있던 도미니크가 냉큼 다가와 봉투를 뜯고는 그 안의 내용을 읽어주었다.
‘시기가 맞지 않아 도울 수는 없었으나 먼발치에서나마 그대의 건승을 기원했노라. 약속한 성과 이상을 보여준 그대에게 경의를 표하며 그에 걸맞은 최대한의 지원을 보낼 작정이다. 준비가 끝나는 대로 블랙 머천트를 통해 보내도록 하겠다. 승전을 축하한다, 전승의 사령관이여.’
별다른 내용은 없었지만, 김진우는 편지에 쓰인 ‘최대한의 지원’이라는 부분에 주목했다.
이제껏 보내온 군자금만 해도 어마어마한데 지저의 백작이 보이는 최대한의 지원이란 어떤 것일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었다.
거기에 더해 전승의 사령관이라 자신을 부르는 아나톨리우스의 편지가 어쩐지 묘하게 전과는 자신을 다르게 대하는 것 같았다.
그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그도 아직은 알 수 없었다.
“아, 그리고 목함은 파르테논님이 보내주신 겁니다.”
암상인의 말에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 휘하의 귀족들을 줄줄이 박살 냈으니 기분이 좋을 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파르테논이 무언가를 보내왔다는 사실이 찜찜했다.
“이건…….”
기왕지사 보내온 물건이라 목함을 열어본 김진우가 인상을 찌푸렸다.
“전장의 까마귀를 대신할 영웅급 소환석입니다.”
결국 파르테논은 전쟁에서 패배한 지금까지도 모리건에 대한 원한을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식으로라도 제 한을 풀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집요한 성격, 처음부터 끝까지 그는 안중에도 없는 파르테논의 태도가 도통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영롱하게 빛나는 소환석을 다시 목함에 담고는 뚜껑을 닫았다.
“이건 안 받은 걸로 하지.”
“괜찮으시겠습니까? 파르테논님은 이대로 포기하지 않으실 겁니다.”
걱정스레 물어오는 암상인의 태도에 김진우가 파르테논의 초대장과 목함을 내밀었다.
“끄응. 그럼 어쩔 수 없군요.”
그렇게 말한 암상인이 그가 내민 목함과 초대장을 도로 받아 들려는데 어쩐 일인지 그가 도로 손을 쭉 잡아 뺐다.
“아니야. 생각이 바뀌었어.”
“네?”
“이건 내가 직접 돌려주도록 하지.”
그의 말에 암상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거 언제까지 답변을 줘야 하고 그런 기일은 없는 거지?”
“그런 말씀은 없으셨습니다만…….”
하기야 타고나기를 강자로 태어나 수많은 이 위에 군림해 온 파르테논이 설마 9층의 남작 나부랭이가 자신의 제안을 두고 저울질을 할 줄은 생각도 못할 것이다.
암상인마저도 황당한 얼굴을 하고 있을 정도이니 이런 반응은 파르테논의 예상 범위 밖이리라.
“그럼 내가 언제든 시간 내서 돌려주도록 하겠어. 이 초대장, 파르테논의 미궁과 통하는 거잖아?”
“그야 그렇지만…….”
“그보다 그대도 참으로 바쁘군. 아나톨리우스에 이어 파르테논의 전령 노릇까지 하다니.”
대답해 줄 생각이 없는지 김진우는 말을 돌렸다.
“값만 맞는다면 누구와도 거래를 할 수 있는 게 상인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진짜 어쩌실 작정입니까?”
집요하게 다시 질문을 꺼내 든 암상인을 보며 김진우가 씨익 웃어 보였다.
“글쎄…….”
“끄응.”
그렇게 암상인이 끝끝내 의문을 풀지 못하고 돌아가고, 도미니크가 그를 붙잡고 잔소리를 해댔다.
‘혹시라도 파르테논과 만나볼 생각인 건 아니리라 믿어요, 주인님.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파르테논은 전형적인 심층의 고위 귀족이라고 했어요. 오만하고 광폭하고, 적과 쓸모없는 이에게는 냉혹한.’
아무래도 김진우가 또다시 엉뚱한 일을 벌일까 봐 걱정되는 눈치다.
“아, 어차피 당분간은 이걸 쓸 생각 없어.”
당분간이라는 단어를 묘하게 강조하는 그의 모습에 도미니크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대로 묵혀둘 생각도 없지.”
불안을 가중시키는 한마디에 결국 그녀가 참고 있던 한숨을 내쉬었다.
***
몸에 지니고 있던 다운 잼을 추출당한 영웅급 소환수들의 사체는 동맹군의 관심 밖이었다.
그래서 김진우는 비교적 멀쩡한 소환수의 시체를 손쉽게 가져올 수 있었다.
덕분에 신이 난 것은 발리셔스였다. 발리셔스는 간만에 손에 쥔 질 좋은 사체들을 붙잡고 두문불출했다.
지난 전투에서 전부 소모되었던 망자의 군대를 대신할 새로운 군대를 만들기라도 할 생각인 듯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다운 잼이 소모되었지만, 김진우가 이번 전쟁을 통해 얻은 다운 잼은 어마어마했다.
당장 던전 에너지로 환산해도 수만에 달하는 분량이라 그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발리셔스에게 다운 잼을 지원했다.
“적들이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떠는 진정한 망자의 군대를 만들어 보이겠습니다.”
나가 일꾼의 몸에 들어간 뒤로 부쩍 충성심이 강해진 발리셔스가 호언장담을 했다.
비록 육신의 한계로 인해 제약이 생기긴 했지만 망자 제작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지라 작업은 순조로웠다.
활기를 찾은 것은 발리셔스뿐만이 아니었다.
나가 마법사들 역시 김진우가 던져준, 아직 주인이 각인되지 않은 미궁의 핵을 가지고 연구를 한다고 연일 잠도 자지 않고 있었다.
“말했지만, 훼손은 절대 안 돼. 그리고 기간도 미궁이 업그레이드가 끝날 때까지다.”
나가 마법사가 그 말에 더욱더 연구에 박차를 가했다.
어차피 미궁의 업그레이드가 끝나야 새롭게 얻은 핵을 어떻게 활용할지를 결정할 수 있는지라 김진우도 더는 보채지 않았다.
그렇게 승리의 대가로 나가의 미궁이 살이 찌고 있는 과정에서 하루하루 말라가는 사내가 있었다.
바로 보레아스였다.
지저의 율법에 의해 모든 것을 빼앗긴 보레아스는 상태가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가 정신을 차려야 10층의 상황을 볼 텐데.”
‘사제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회복까지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보레아스가 의식을 차리지 못한 탓에 제대로 된 봉신의 계약도 하지 못한 터라 보레아스의 미궁과 10층의 현재 상황에 대한 궁금증은 잠시 더 미루어두어야 했다.
“며칠 내로 돌아올 테니 미궁을 부탁해.”
보레아스의 부상이 치유되고 미궁의 업그레이드가 완료될 때까지 그 잠깐의 텀을 이용해 김진우는 오랜만에 지저를 나섰다.
“후읍.”
도대체 얼마 만에 마시는 것인지 모를 지상의 공기에 김진우는 가슴이 뻐근해질 때까지 숨을 들이켰다.
한참 만에 길게 내뱉는 숨결에 그간 쌓인 지저의 습한 공기와 갑갑함이 흘러가는 것만 같아 그는 몇 번이나 그 행동을 반복했다.
아, 이제야 살 것 같다.
전쟁통에 미궁을 나서지도 못하고 지저에 머물다 보니 시간이 많이도 흘렀다.
꺼두었던 휴대폰의 전원을 켜자마자 수십 차례 진동이 울렸다.
[부재중 통화 59건] [확인하지 않은 메시지 44건]그 어마어마한 부재중 통화와 문자를 본 그가 질린 얼굴을 했다.
“골고루도 왔네.”
이준영과 백 선생, 지저개발국과 가족까지, 그는 문자를 먼저 확인하기 시작했다.
[진우야, 대체 어디서 뭘 하고 다니는 게냐. 이거 보면 연락 좀 다오. 목소리 까먹겠구나.] [오빠, 저번에 우리 신랑이 오빠랑 밥 한번 먹자고 했는데 전화기가 도대체가 켜지질 않네. 이거 보면 연락 줘!]이건 가족이 보내온 문자이고,
[진우 씨, 바빠요?] [휴대폰이 계속 꺼져 있네요. 보면 연락 좀 줘요.] [아직도 지저예요?] [진우 씨, 중요한 이야기가 있어요. 확인하면 바로 전화 줘요.]이건 이준영이 보내온 문자였다.
[지저에 들어간 건가? 올라오는 대로 들르게. 급한 일이야.]그리고 마지막으로 백 선생의 문자가 와 있다.
“음…….”
가족의 문자는 둘째 치고, 이준영과 백 선생의 문자가 심상치 않았다. 뭔가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아 이준영과 백 선생의 번호를 두고 고민하던 그는 이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원이 꺼져 있어 소리샘으로 연결합니다. 연결 후에는 통화료가 부과되니…….]이번에도 이준영의 전화기는 꺼져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백 선생에게 전화를 걸자 신호가 몇 번 채 울리지 않아 늙수그레한 백 선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체 어디서 뭘 하고 다닌 겐가! 세상이 이 난리가 났는데!]***
백 선생의 감정소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니 백 선생이 기다리고 있다.
“대체 무슨 난리가 났다는 겁니까?”
휴대폰 너머에서 들려오던 음성이 심상치 않아 피로를 채 풀지 못한 채 온 김진우의 얼굴에 짜증이 가득했다.
“긴말 할 것 없네. 이것부터 확인하게.”
백 선생이 그의 질문에 감정소 한편에 놓여 있는 TV의 전원 스위치를 눌렀다.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스물네 번째로 미궁 보유국이 되었습니다.]TV를 틀자 타이밍 좋게 들려오는 아나운서의 낭랑한 음성에 김진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게 무슨!”
깜짝 놀란 그를 보며 백 선생이 조용히 화면을 보라며 눈짓을 보내왔다.
[미국에 이어서 세 번째로 저층의 미궁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가 보유한 미궁은 미국과 중국이 보유한 6층의 미궁과 불과 1층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5층의 미궁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봤나? 지금 세상은 미궁 때문에 발칵 뒤집어졌네. TV뿐 아니라 인터넷이고 뭐고 온 나라가 저것 때문에 난리도 아니야.”
백 선생의 말에도 김진우는 여전히 화면에 집중하고 있었다.
[현재 당국은 직접적으로 미궁의 위치를 밝히는 것을 피하고 있으며, 이는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한 지저개발국의 조치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초기에 미궁의 위치가 밝혀진 몇몇 국가들이 정체불명의 단체에게 미궁을 공격 받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미궁의 보유 여부를 밝힌 당국의 결정이 이해가 가지를 않는데, 김준호 기자, 혹시 이에 대한 답변이 혹시 있었습니까?] [네, 현재 대한민국의 최초 미궁인 ‘하리마오’는 완전히 안정기에 접어들었으며, 침입에 대비한 방비 역시 완벽하게 끝이 나 만전을 기하고 있다는 게 당국의 대답입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 공격에 대해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 미궁의 개발과 방비가 완료되었다는…….]아나운서와 기자가 번갈아 질답을 하는데, 기자 뒤로 보이는 배경이 김진우가 전에 방문한 지저개발국의 건물이다.
간판도 뭣도 없던 당시와는 다르게 대한민국 국기와 지저개발국이라 쓰인 간판이 버젓이 건물 위에 올라와 있다.
“이게 말이 됩니까?”
백번 양보해서 정부에서 미궁을 얻게 되었다고 치더라도 그걸 공개적으로 밝힌 이유를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정부에서는 이번에 새롭게 얻은 미궁을 통해서 실리가 없는 초입 탐사의 비중을 줄이고 곧장 저층 탐색을 시킬 모양이야. 실제로 몇몇 탐색자 팀이 그 포탈이라는 놈을 통해 5층으로 바로 내려갔네.”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미궁의 주인인 탐색자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있던 게 바로 얼마 전이다.
그런데 굳이 미궁이 노출되는 위험을 무릅쓰고 민간에까지 미궁의 보유 여부를 공표할 이유가 없었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군.”
자리를 비운 지 얼마나 됐다고 이 난리가 난 것인지, 김진우는 좀처럼 머릿속이 정리되지를 않았다. 그런 그를 보며 백 선생이 설명을 덧붙였다.
“우리나라는 차라리 양반일세. 그래도 나름 나라에서 제법 통제를 잘 하고 있거든.”
그 말인즉슨 결국 사고가 생긴 미궁도 있다는 말이다.
“미국은 보유한 일곱 개의 미궁 중 세 개나 오너의 신상이 완전히 까발려졌어. 그중 하나는 살해당했고 둘은 종적이 묘연하네.”
“오너의 신상이요?”
“그래. 각기 8, 10, 11 레벨의 던전 베이비들일세. 이 중 살해당한 건 8 레벨의 던전 베이비일세. 안가에서 가슴에 구멍이 난 채로 발견되었다더군. 정부에서 발 빠르게 수습해서 미궁이 다른 이들에게 넘어가는 것은 막고 있는 모양이지만, 여러모로 문제가 끊이지 않는 듯하네.”
점입가경이다. 백 선생은 그에 이어 중동의 나라 중에는 테러 단체에게 공격당해 미궁의 소유권 자체를 상실한 곳도 있다고 했다.
“후우, 정말 난리가 났군요.”
이제야 조금 머릿속이 정리됐는지 김진우가 한결 차분한 태도로 말했다.
“난리지. 근데 진짜 난리는 저게 아닐세.”
그렇게 말한 백 선생이 TV를 껐다.
“또 무슨 일이 있습니까?”
이미 미궁의 민간 공개를 본 뒤로 더 이상 놀랄 일은 없다 생각한 김진우였지만 뒤이어진 백 선생의 말에 다시 한 번 놀라고 말았다.
“민간에 공개되지 않은 미궁이 하나 더 있어. 물론 주인이 정해지지 않은 미궁일세.”
“대체 어떻게…….”
“어떻게 찾았는지는 나도 모르지.”
백 선생이 그렇게 말하고는 갑자기 눈을 빛냈다.
“근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놀라운 일들이긴 했지만 백 선생이 수다나 떨자고 그를 부른 것은 아닐 것이다. 자세를 고친 김진우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백 선생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정부에서 그 주인 없는 미궁의 주인을 찾고 있어.”
설마설마하는 심정에 그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서 자네를 찾은 걸세.”
“혹시 정부에서 던전 베이비들을 찾고 있는 겁니까?”
그의 질문에 백 선생이 대답했다.
“맞아. 정부에서는 지금 고 레벨의 던전 베이비들을 상대로 비밀리에 미궁의 주인을 찾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