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81)
던전 견문록-81화(81/319)
# 81
던전 견문록
제 82 화
#35. 분실물
[상대는 그 압도적인 위엄에 저항할 수 없습니다. 또한 당신과 상대의 격차가 너무나 큰 탓에 상대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스스로의 신체를 강제하거나 위해를 가하는 행동이 아닌 한 상대는 당신의 말을 그대로 따르려 할 것입니다.] [강한 충격을 받을 경우, 위압 효과에서 풀려날 수 있습니다.]사내가 오들오들 몸을 떨며 고개를 푹 숙이자, 이준영과 정찬식이 놀라서 소리쳤다.
“진태야, 왜 그래, 인마?”
“개발국에 연락해! 아무래도 진태가 이상해!”
몸을 잡고 흔들어도 보고 소리도 쳐보았지만 여전히 온몸을 경련하듯 떨며 아무런 반응이 없는 진태라는 사내를 보며 김진우는 나직하게 말했다.
“괜찮아. 해치지 않아. 평소대로 해.”
동료의 이상에 혹시라도 미궁의 주인으로 선택받은 부작용이라도 일어난 것인가 싶어 난리를 쳐대는 정찬식과 이준영은 듣지 못할 정도로 작게 말했다.
그 한마디에 거짓말처럼 진태의 몸이 안정을 찾았다.
“이제 좀 괜찮아?”
“어. 갑자기 좀…….”
그렇게 말하면서도 김진우의 눈치를 살피는 그를 보며 정찬식이 힐끗 눈을 흘겼다.
아무래도 상황이 복잡하니 당사자가 그를 경계한다고 오해라도 한 모양이다.
“지저에 너무 오래 머문 건 아닙니까? 몸이라도 상한 건 아닌가 걱정되네요. 미궁은 다른 지저보다 더 춥고 환경이 혹독한 곳이니까요.”
시치미를 뚝 뗀 김진우가 태연하게 지껄여 댔다.
“그래, 안 되겠다. 이번에 김주혁 차장한테 말해서 너 잠깐이라도 지상에 올려 보내라고 말해야지.”
“그 정도로 되겠어? 이거 아무래도 잘못된 거 같은…….”
“이준영!”
어지간히 놀란 것인지 이준영이 해서는 안 될 말을 할 뻔한 것을 정찬식이 잘라냈다.
“음. 진우 씨, 죄송하지만 오늘은 날이 아닌 듯하네요. 개발국에는 제가 따로 얘기해서 다른 날을 잡도록 할 테니까 오늘은 이만 돌아가 주시는 게 좋겠어요.”
정찬식이 미안함 반 경계심 반의 복잡한 얼굴로 말했다.
“아냐. 나 진짜 괜찮아.”
진태라는 사내가 괜찮다고 거듭 말해봐야 소용이 없었다.
하기야 멀쩡한 사람, 그것도 일반인도 아닌 강건하기 그지없는 육체의 던전 베이비가 그렇게 온몸을 떨어댔으니 동료들이 그 말을 믿을 리가 없었다.
“제가 안내할게요.”
몇 번이나 동료를 돌아보던 이준영이 김진우의 손을 잡고 다시 포탈을 넘으려는데 정찬식이 은근하게 경고했다.
“준영아, 입 조심해.”
“미안해.”
등 뒤로 들려오는 나직한 음성을 들으면서도 김진우는 모르는 척 포탈을 넘었다.
“다음에 봐요. 그때는 제대로 미궁 구경 시켜드릴 테니까. 오늘은 미안해요.”
“아뇨. 동료가 먼저죠. 괜히 정신없게 해서 미안합니다. 어서 가봐요, 여기서부터는 저 혼자 갈 수 있으니.”
괜찮다고 말해도 몇 번이고 사과를 한 이준영이 결국 자리를 떠났다. 처음 이준영과 만난 장소에 홀로 선 그의 표정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미궁의 주인이라면 인간에게도 통하는 능력이었군.”
마냥 좋아하기에는 일전에 아나톨리우스의 능력에 압도당할 뻔한 적이 있는지라 그 속이 편치 않았다.
제법 강대한 축에 속하던 큰엄니 멧돼지 부족의 족장도 완벽하게 ‘귀족의 위엄’ 능력에 저항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때보다 한층 더 발전해 ‘말단 귀족의 위엄’에서 ‘하급 귀족의 위엄’으로 업그레이드된 위압 효과에 고작 5층의 주인에 불과한 진태라는 사내가 저항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뉴스에서 떠들어대던 각국이 보유한 미궁이라고 해봐야 별게 아니었다.
고작해야 6층에 불과한 미궁의 주인들이 자신의 능력에 저항하는 건 불가능한 일일 테니까.
“전부 내 밥이군.”
등급도 위치한 층도 별 볼일 없는 미궁을 어떻게 해볼 생각은 없었지만, 일단 그들이 자신의 아래라는 것을 눈앞에서 확인하고 나니 괜히 기분이 묘한 김진우였다.
***
“미안해요.”
“괜찮습니다. 그때 그 진태라는 친구는 이제 괜찮은가요?”
다시 만난 이준영은 여전히 미안한 얼굴이었다. 조금 더 뻔뻔해져도 좋으련만 이 여자는 은혜든 뭐든 한번 상대에게 빚을 지면 도무지 잊지를 못했다.
“네. 진우 씨 말대로 지저에 너무 오래 머물렀는지 몸이 축났나 봐요. 지금은 멀쩡해졌어요.”
본래 지상이 지저에 또 다른 세상이 있음을 알기 전까지만 해도 지하로 내려갈수록 기온이 높아지던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미궁 탓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탓인지 전쟁 이후 다시 찾은 지저는 지독할 정도로 한기가 강해져 있었다.
그 탓에 지저에서 나고 자란 던전 베이비가 아닌 이상에야 탐색자들도 텀을 두고 지저를 찾고 있었다.
“아무래도 지저는 인간이 머물기에는 지나치게 가혹한 곳이니까요.”
그렇게 말한 김진우는 왠지 모르게 싸한 기분에 말을 멈췄다.
그러고 보니 자신은 이제 지저에 머물면서도 아무런 불편함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지저의 어둠도 음습함도 아무런 지장이 없으니 지저란 그에게 있어 그저 또 하나의 세상과 다름없었다.
그게 왠지 모르게 심장을 조여 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과연 나는 아직도 인간인가.
지저에서 나고 자라 이제는 미궁의 주인, 그것도 지저의 귀족이 된 자신이 과연 전과 같은 존재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남 걱정할 때가 아닌데요. 진우 씨야말로 쉬엄쉬엄 지저에 들어가요. 식은땀 흘리는 거 봐.”
이준영의 말에 뒤늦게 자신의 몸이 한기라도 만난 것처럼 차갑게 식은땀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김진우는 애써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떨쳐냈다.
***
다시 찾은 하리마오 미궁. 미궁의 주인인 진태라는 사내는 보이지 않았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개발국이 지정한 병원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받고 있다고 한다.
“뭐, 이참에 푹 쉬고 검사도 받고 좋죠. 나도 검사 한번 받아봐야 하는데.”
지저개발국의 사람들은 어렵게 얻은 미궁의 주인에게 혹여 일이라도 생길까 봐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검사를 하려고 할 테니 진태가 다시 자신의 미궁을 찾는 것은 오랜 후가 될 것이다.
“여기가 하리마오 미궁의 중심을 가르는 통로랍니다. 누구든 미궁에 들어서려면 이곳을 통과해야 해요.”
그렇게 설명하는 이준영의 설명에 김진우가 다소 질린 얼굴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온 통로가 최신식 화기로 도배되어 있는 탓이다. 아무래도 미궁의 모자란 힘을 이런 식으로 보충한 듯했다.
“이건 비밀이지만 진우 씨에게만 알려드릴게요. 저쪽은 저희도 지나다닐 수 없어요. 지뢰가 쫙 깔려 있거든요.”
하다못해 폭발물까지 설치해 두었다니 더는 할 말이 없었다. 어쩐지 통로에 덧대진 골조와 보강물이 남다르다 했더니 나름 이유가 있던 모양이다.
하지만 하리마오 미궁은 그것 외에는 별다른 특이점이 없는 평범한 미궁이었다.
그렇게 뉴스에서는 대단한 것처럼 떠들더니 그 실체는 제대로 통하지도 않는 화기를 도배해야 할 정도로 빈약한 미궁에 불과했다.
그런 사실을 은근슬쩍 흘렸더니 이준영이 고개를 저었다.
“저기 있는 방어 설비들은 크리쳐에 대비한 게 아니에요.”
“아…….”
뒤늦게 김진우는 하리마오 미궁이 5층에 위치한, 비교적 접근이 용이한 미궁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신음을 내뱉었다.
“어쨌건 여러 가지 더 볼거리가 있지만, 아쉽게도 진우 씨에게 허락된 건 여기까지예요.”
아직 미궁의 소환수도, 핵도, 또 시설들도 보지 못했지만 김진우는 아쉬워하지 않았다.
어차피 대단할 것도 없는 미궁의 시설을 본다고 해서 흥미가 동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근데 진짜로 개발국의 제안 받아들일 생각 없어요?”
이준영이 은근슬쩍 전의 화제를 꺼내는 모습을 보니 김주혁 차장에게 언질이라도 받은 눈치다.
“조건이야 좋지만 그만큼 얽매이는 게 많겠죠. 전 다른 건 몰라도 어딘가에 묶이는 건 딱 질색입니다.”
선을 딱 그은 단호한 대답에 그녀가 머쓱한 얼굴을 해 보이다가 이내 다시 붙임성 있게 말을 걸어왔다.
“그럼 저희랑 같이 일하는 건요? 보수도 후한 편이고 나름 일도 편해요. 지저에 오래 머물러야 한다는 게 흠이지만.”
“준영 씨가 하는 일이 어떤 건데요?”
전에는 밝히지 못했지만 이미 하리마오 미궁의 입장까지 허락 받은 김진우인지라 이준영도 더는 숨기지 않았다.
“미궁의 방어, 그리고 새로운 미궁의 탐색, 그게 저희가 하는 일이에요.”
***
하리마오 미궁을 다녀온 뒤로 김진우는 각국이 보유한 미궁에 대한 흥미를 완전히 잃고 말았다. 전력도 못 되는 하찮은 미궁에 신경을 쓰는 대신 그는 다른 부분에 주목했다.
‘지저에는 인간들이 알지 못하는 것이 아직도 많아요. 그건 인생의 반을 지저에서 살아온 우리라고 해도 다를 게 없어요. 그리고 그중에는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한 미궁도 포함돼요.’
주변에 아무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바짝 붙어서 귓가에 속삭이던 그녀의 행동, 그녀는 마치 김진우가 미궁의 주인이 되기를 바라는 듯했다.
아무래도 미궁의 주인이 되는 것이 지긋지긋한 탐색자 인생을 벗어나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녀는 모를 것이다.
미궁의 주인이 된다는 건 어쩌면 더욱더 지저에 깊이 발을 담그는 것이라는 사실을. 어정쩡하게 현대 문명을 받아들여 뒤죽박죽이 된 하리마오 미궁의 모습이야말로 그들이 아직 지상의 존재들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음?”
생각에 잠겨 있던 김진우는 갑작스레 떠오른 알림 창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나가의 요새를 찾은 방문자가 있습니다.]당분간은 지상에서 더 쉬리라 마음먹었지만 손님이 있다는데 지체할 수는 없었다.
“포탈.”
그의 나직한 한마디에 허공이 쩍 갈라지고 지저로 향하는 문이 생겨났다.
“무슨 일이야?”
‘주인님!’
그를 반겨주는 도미니크의 얼굴이 평소와는 다르게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이다.
“손님은 어디 있지?”
‘주인님이 부재중이시라 영지의 경계에서 아직 기다리고 있어요.’
그 말투가 어쩐지 조심스러운 면이 있어 그가 물었다.
“대체 누군데?”
‘불패의 용병 크라스토가 그의 용병단과 함께 주인님을 찾아왔어요.’
“불패의 용병?”
이름만 들어도 거창한 그 이름에 김진우가 눈살을 찌푸리며 거부감을 표하자 도미니크가 보충 설명을 했다.
‘원래는 10층에서 활동하다 10층에서 전쟁이 사라지자 11층으로 거점을 옮긴 용병단이에요.’
10층도 아니고 무려 11층에서 활동하는 용병단이라는 말에 그가 표정을 굳혔다.
“시비 걸러 온 건가?”
‘아니요. 크라스토는 자신의 미궁과 귀족의 자리마저 버리고 용병으로 떠도는 인물, 이제 와서 9층의 미궁에 시비를 걸 이유가 없어요.’
“괴짜로군.”
작위야 그렇다 치지만 미궁마저 버리고 지저를 떠도는 용병의 이야기에 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놈들이 왜 여기까지 왔지?”
대단한 존재인 건 알겠는데 방문의 목적을 알 수 없었다.
‘그게…….’
마침 걸음을 옮기던 그들의 시선에 게이트에 웅크리고 앉아 저 너머를 바라보고있는 오르테아가가 보였다.
“저건 또 왜 저러고 있어?”
산만 한 덩치, 드라칸의 이름이 무색하게 겁에 질린 기색이 역력한 오르테아가를 보며 김진우가 물었다. 그런 그를 발견한 오르테아가가 호들갑을 떨며 달려왔다.
“나, 남작, 날 좀 살려줘!”
가만히 두었다가는 그 우람한 팔뚝으로 자신을 껴안을 기세라 김진우가 질겁하며 물러섰다.
‘크라스토가 미궁에 방문한 목적은…….’
그녀가 오르테아가를 힐끗 바라보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저 버릇없는 드라칸을 찾아온 것이랍니다.’
“뭐?”
생각지도 못한 방문 목적에 그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글쎄 저 드라칸이 크라스토의 보물을 훔쳐 용병단에서 달아났답니다.’
“그게 아니다! 나는 훔치지 않았어! 다만 잠시 빌렸을 뿐이야!”
어째 일이 복잡하게 흘러가는 느낌이라 김진우가 오르테아가를 다그쳤다.
“그 보물이 뭔데? 그리고 지금 그 보물은 어디 있는데?”
“이, 잃어버렸다!”
결국 김진우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