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82)
던전 견문록-82화(82/319)
# 82
던전 견문록
제 83 화
“그 보물이 뭔데?”
화가 나는 건 화가 나는 거고 대책을 마련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리고 대책을 마련하려면 오르테아가가 훔친 보물이 뭔지를 알아야 했다.
그의 질문에 오르테아가는 그 커다란 눈동자를 뒤룩뒤룩 굴려댈 뿐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오르테아가!”
보다 못한 김진우가 손을 들어 오르테아가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꽥 하고 기괴한 소리를 내뱉은 드라칸이 바닥에 벌렁 드러누웠다.
“지금 너 때문에 불패의 용병단인지 왈패 용병단인지 하는 놈들이 미궁 밖에 진을 치고 있어. 내가 널 그들에게 넘기지 않아야 할 이유를 찾게 해다오.”
협박에 가까운 그의 말에 오르테아가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더듬더듬 설명을 했다.
“내, 내가 가져온 건 크라스토가 지니고 있던 미궁의 핵이다. 주먹만 한 다운 잼에 들어 있던 건데 9층을 헤매는 도중에 잃어버렸다.”
‘맙소사! 저 드라칸이 훔친 건 그냥 미궁의 핵이 아니라 크라스토의 고향이에요!’
상황을 파악한 도미니크가 비명처럼 외쳤다. 그리고 김진우는 분을 참지 못하고 오르테아가의 머리통을 다시 한 번 후려치고 말았다.
“설마 저 용병단이 거처도 없이 떠도는 이유가 이 반편이 드라칸 때문은 아니겠지?”
‘그것까지는 알 수 없지만 가능성이 없지는 않아요.’
도미니크가 창백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자 김진우는 쓰러져 몸을 떠는 오르테아가의 거대한 몸을 몇 번이고 걷어차 주었다.
***
불패의 용병 크라스토는 나가 수문장보다 배는 건장한 거인이었다. 붉은 빛이 감도는 근육질의 거구, 널따란 어깨에는 두 개의 머리가 얹어 있는데 각기 왼편에는 노인, 오른편에는 청년의 모습을 한 머리다.
“용병단을 이끌고 있는 크라스토요. 전승의 사령관의 명성은 익히 들었소. 반갑소.”
그중에서도 지금 이야기를 하는 건 노인의 머리였다. 청년의 머리는 눈을 꼭 감은 채 미동도 없었는데 흡사 잠이라도 자는 듯한 모습이다.
“그대의 영지를 침범할 생각은 없었소. 다만 용무가 있어 들렀으니 부디 무례를 용서해 주시오.”
이곳에 오기 전까지의 걱정이 무색하게 크라스토는 의외로 적대적이지도 사납지도 않았다. 시종일관 신사적인 태도로 선을 넘지 않으니 전투를 각오하고 나가들을 이끌고 온 김진우의 꼴이 우스워질 지경이다.
“그보다 먼저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드라칸 하나를 찾고 있소. 성체가 아직 다 되지 못한 드라칸, 외양은 제법 그럴싸하지만 사실은 반편이도 못 되는 드라칸이오.”
반편이 드라칸이라면 확실히 오르테아가가 맞았다. 그 명성 높은 드라칸 중에 오르테아가처럼 모자란 놈이 또 있을 리가 없었다.
시치미를 떼볼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김진우는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이름은 오르테아가, 그놈이 혹시 이곳에 있소?”
그래서 그는 크라스토의 질문에 사실대로 대답했다.
“허세만 가득한 오르테아가라면 내 영지에 있소.”
“역시 소문이 사실이었군. 남작의 경이로운 승리에 그 괘씸한 놈이 일조했다는 소문이 있었거든. 혹시나 해서 묻겠는데, 그놈을 내게 넘길 생각이 있소?”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김진우가 뒤편을 힐끗 바라보곤 다시 크라스토를 바라보았다.
“한 가지 물으리다. 만약 내가 그 말썽쟁이 드라칸을 넘기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실 작정이오?”
크라스토가 재미있다는 얼굴로 눈을 빛냈다. 그사이에 김진우는 상대의 병력을 눈으로 빠르게 훑어보았다.
크라스토만큼이나 거대한 덩치를 한 거인 병사들이 무려 마흔, 그중에 영웅급이 아닌 자가 없어 보였다.
싸워서 못 이길 정도는 아니나 오는 길에 들은 바로는 용병단의 전력은 저게 전부가 아니었다.
경계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다시 일백의 용병이 머물고 있다니 골치가 아파왔다.
“글쎄. 어떨 거 같소?”
크라스토의 말에 양측의 분위기가 날카롭게 변했다. 거인들이 위협이라도 하듯 낮게 목을 울리고, 그에 맞춰 나가들이 사납게 바람 소리를 내며 눈을 번뜩였다.
“뭐, 어쩔 수 없겠지. 그 말썽쟁이 하나 때문에 전쟁을 할 수도 없고.”
한참 만에 입을 연 크라스토의 말에 팽팽하던 긴장감이 일순간 사라져버렸다.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김진우마저도 얼이 빠진 얼굴로 크라스토를 바라보는데, 크라스토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남작은 그럼 그 하찮은 놈 때문에 내가 전쟁이라도 감수할 거라 생각한 거요, 아니면 불패와 전승 둘 중 뭐가 진짠지 겨뤄보기라도 할 거라 생각한 거요?”
노인의 얼굴에 떠오른 것은 유쾌함이다.
“만약 내가 그럴 생각이 있었다면 남작은 지금 말하는 이 머리가 아니라 옆에서 자고 있는 머리를 상대해야 했을 거요.”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듯 지껄여 대는 크라스토의 행동이 차라리 황당할 지경이다. 그러고 보니 청년의 얼굴을 한 머리는 이제 코까지 골며 잠을 자고 있다.
김진우는 아직도 얼떨떨함을 떨쳐내지 못하고 가만히 그 기이한 모습을 바라보았다.
“대충 뭘 생각했는지는 알겠소. 하지만 용병은 돈으로 움직이는 존재, 대가 없이는 싸우지 않소.”
나름대로 투철한 크라스토의 용병관이 이번만큼은 김진우에게 행운이었다. 다소 안도했지만 여전히 경계심이 가득한 얼굴로 그가 크라스토에게 물었다.
“그럼 단지 그 말을 하려고 이곳까지 온 거요?”
“그럴 리가 있나. 방금 말하지 않았소?”
그렇게 말한 크라스토가 씨익 웃었다.
“용병은 대가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다고.”
***
크라스토는 돌아갔다. 일이 생길 때까지 9층의 어딘가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겠다며 휘하의 용병단을 이끌고 사라진 크라스토는 진한 여운을 남겼다.
“짓궂은 작자로군.”
아직까지 얼떨떨한 기색이 역력한 김진우의 말에 도미니크가 불쑥 말을 걸어왔다.
‘대체 누굴까요?’
크라스토는 제 입으로 나가들에게 협력하기 위해 찾아왔다고 했지만, 의뢰주가 누구인지는 끝끝내 밝히지 않았다.
“내가 심층으로 진군할 거라는 사실을 아는 자, 그리고 불패의 용병단에게 의뢰비를 지급할 수 있을 정도로 재력이 있는 자. 하지만 아나톨리우스는 아니지. 그 철면의 백작이라면 온갖 생색을 다 냈을 테니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여전히 답은 나오지 않았다.
“이걸 좋아해야 할지, 걱정해야 할지 모르겠군.”
크라스토는 시시한 전쟁에는 끼어들 생각이 없다고 했다. 자신들이 나서는 것은 심층 이상이 될 것이라며 그마저도 스스로 상대를 고르겠다고 하니 꽤나 다루기 힘든 용병이라 할 수 있었다.
‘일단 그들이 쓸 만한 자들이라는 건 확실해요. 비록 그들을 쓰게 되는 건 꽤 시간이 흐른 뒤겠지만.’
심층 귀족들의 군대를 상대로도 단 한 번도 지지 않은 그 불패의 전력은 꽤나 매력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냥 그들의 합류를 반길 수 없는 것은 그 의뢰주의 정체를 알 수 없는 탓이다.
“으, 십년감수했네.”
다만 이 중에서도 순수하게 기뻐하고 있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전쟁의 불씨가 될 뻔한 골칫덩이 드라칸이었다.
“지저가 좁다더니 하필이면 이곳에서 만날 게 뭐람.”
그 노골적인 기쁨의 표현에 심사가 뒤틀린 김진우가 뒤에서 드라칸을 걷어차 버렸다.
“으엑! 왜, 왜? 다 잘 풀리지 않았는가!”
위기를 모면했다고 그새 기가 산 오르테아가를 보며 김진우가 살벌한 얼굴을 해 보였다.
“여기까지 오기 전에 뭘 하고 다녔는지 좀 들어야겠어. 또 무슨 사고를 쳤지?”
그렇게 말한 김진우가 성큼 다가가 몸을 일으킨 오르테아가의 다리를 걸어 다시 넘어뜨렸다.
“물론 그 전에 좀 맞아야겠다.”
멋모르던 초짜 던전 오너이던 시절에도 오르테아가는 김진우를 이길 수 없었다.
그런데 미궁이 강해지며 급속도로 성장하고 거기에 온갖 증폭 효과까지 받은 그를 이제 와서 이길 리가 없었다.
“여, 여기 오기 전에 10층에서! 억!”
잽싸게 자신의 과거를 이실직고하는 오르테아가였지만 김진우의 주먹이 훨씬 더 빨랐다는 게 문제였다.
“10층에서 뭘 어쨌다고?”
김진우가 잘근잘근 오르테아가의 몸을 밟으며 계속해서 다그쳤다. 때 아닌 드라칸의 비명이 나가의 요새에 울려 퍼졌다.
***
지저의 일을 해결하고 다시 지상으로 향하려던 김진우는 문득 잊고 있던 존재가 떠올라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안젤라.] [네, 주인님.]파티 홀이 5등급에 오른 뒤로 변화가 생긴 윤희를 감시하느라 24시간 윤희의 곁에 붙어 있던 안젤라는 오랜만의 호출에 반가운 기색이 역력했다. 화사하게 미소를 띤 그녀는 그를 보자마자 품으로 파고들었다.
마치 새끼 고양이처럼 가슴에 뺨을 비벼대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던 김진우는 슬쩍 어깨를 잡아 밀어내며 용건을 꺼내 들었다.
“윤희는 어때?”
“흐음.”
한껏 반갑게 맞아주었더니 정작 그녀의 주인은 전혀 감흥이 없는 눈치다.
살 떨리는 미녀의 육탄 돌격에도 흔들림 없는 눈동자는 정말로 아무런 설렘이나 반가움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그게 못내 서운했는지 안젤라가 금세 풀죽은 얼굴을 했다.
그래도 그녀는 일단 보고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확실히 주인님 말 그대로예요. 윤희는 분명 회복됐어요.”
“그렇게 말하는 근거는?”
“멍하니 있는 건 전이랑 다름없지만 그녀는 지금 생각이라는 것을 하고 있으니까요. 누군가가 지시하기 전에 먼저 행동하며, 그리고 이따금씩 감정을 보이기도 해요.”
안젤라의 말은 새삼 놀랍지도 않았다. 파티 홀의 업그레이드가 있던 그날, 그 역시 윤희의 생각에 잠긴 얼굴을 분명히 보았다.
“근데 왜 말을 하지 않는지 도통 알 수가 없군. 안젤라가 보기에는 그녀의 변화가 우리에게 해가 될 것 같아?”
“알 수 없어요. 그녀가 제 원천이라면 모를까, 속을 알 수 없는 인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길이 없죠.”
고개를 끄덕이던 김진우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물었다.
“그럼 내 생각은 알 수 있다는 거야?”
“생각은 몰라요. 다만 주인님의 감정이 한쪽으로 극단적으로 쏠리면 어렴풋이 어떤 기분인지 정도는 알 수 있어요. 가령 지금은 불쾌해하시는 것 같네요.”
제 속을 누군가 들여다보고 있다는 사실에 기분 좋을 턱이 없다. 김진우의 얼굴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오해하지 마세요. 주인님이 불쾌하면 저도 불쾌하고 기뻐하시면 저도 기뻐요. 그리고 그 이유는 저도 알 수 없어요. 그저 주인님의 감정에 따라 저도 울고 웃을 뿐, 그것마저 불쾌해하시면 저는 정말 서운해요.”
서운한 기색이 역력한 그녀의 얼굴을 보며 김진우가 표정을 풀었다.
하기야 그녀를 통해 얻은 것이 많으니 하나쯤 사소한 불편함은 감수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다소 누그러진 얼굴을 한 그가 다시 설명을 재촉했다.
“계속해.”
“불패의 용병단이 영지에 방문했을 때, 윤희는 분명 무언가 고민하고 있었어요.”
당시에는 크라스토를 신경 쓰느라 윤희에게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김진우는 그때 윤희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고민?”
“네. 분명 그녀는 갈등, 고민, 후회, 자책…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우울해하고 있었답니다.”
“남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능력은 없다고 한 것치고는 꽤나 자세히 알고 있군.”
그의 말에 안젤라가 조금은 서글픈 얼굴로 말했다.
“흡혈귀는 타인이 느끼는 기쁨을 전혀 알 수 없어요. 우리는 웃는 얼굴과 우는 얼굴조차 구별할 수 없답니다. 주인님을 통해 들여다보지 않은 세상은 반쪽뿐인 세상이거든요.”
어쩌면 그렇기에 흡혈귀들이 주인에게 집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김진우는 그녀가 다소 불쌍하게 보였다. 하지만 굳이 겉으로까지 그런 생각을 내색하지는 않았다.
주인의 사랑을 갈구하는 안젤라지만 동정을 바랄 정도로 그녀는 자긍심이 없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런 만큼 저는 타인이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에 예민하답니다.”
“그런가.”
안젤라를 복잡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김진우가 생각에 잠겨 있다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지금 윤희는 어디 있지?”
“언제나처럼 자신의 거처에 있답니다. 아무리 변화가 생겨도 기본적으로 그녀의 생활 패턴 자체는 변하지 않았어요.”
안젤라의 대답에 김진우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주인님?”
인상을 잔뜩 찌푸린 그의 눈이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축제의 땅 파티 홀의 주인 윤희가 파티 홀로 통하는 포탈 개방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남작의 허락 없이는 포탈이 열리지 않습니다.] [포탈의 연결을 허락하시겠습니까?]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확인한 김진우가 벌떡 일어나 말했다.
“윤희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로 알아챈 안젤라가 대답 대신 검은 안개로 변해 미궁을 날았다. 그런 그녀의 뒤를 김진우가 따랐다.
[윤희가 파티 홀로 통하는 포탈 개방을 재차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남작의 허락이 없어 포탈은 개방되지 않았습니다.] [포탈의 연결을 허락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