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88)
던전 견문록-88화(88/319)
# 88
던전 견문록
제 89 화
[나가 시녀(영웅급) 도미니크가 진화했습니다.] [도미니크가 나가 시녀(영웅급)에서 ‘왕의 조언자(일반)’가 되었습니다.] [주인의 명예를 위해 헌신하던 그녀는 이제 진정한 의미의 조언자가 되었습니다.]도미니크는 전보다 한층 더 인간에 가까워진 모습이었다.
검은 머릿결과 보랏빛 눈동자는 여전했지만 창백한 푸른빛의 피부가 마치 인간처럼 혈색이 도는 것이 하반신만 빼면 인간과 꼭 같았다.
[주인을 위해 헌신하고 싶다는 그녀의 순수한 열망이 지저의 신비에 닿았습니다.] [지저의 신비가 작용합니다. 희박한 확률을 넘어 그녀의 등급이 상승했습니다.] [그녀의 등급이 왕의 조언자(일반)에서 왕의 조언자(정예)가 되었습니다.]그리고 그녀는 고치에서 모습을 드러내기가 무섭게 다시 한 번 변화를 일으키고 있었다.
[왕의 조언자는 왕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춘 존재입니다. 그녀는 한층 더 지혜로워졌고, 왕을 위해 헌신하기에 적합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특수 능력 ‘내정관의 위엄’을 얻었습니다. 미궁의 운영과 관리에 있어 더 이상 그녀보다 뛰어난 존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지휘 아래 모든 나가의 작업 효율이 상승합니다.] [특수 능력 ‘대리자의 자격’을 얻었습니다. 왕의 부재 시에 그녀는 임의로 병력을 소환하거나 통솔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왕에게 속한 봉토로부터 지원군을 강제로 차출할 수 있는 권한이 생겼습니다.] [그녀의 변화는 오로지 왕을 위한 충성심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열망이 새로운 능력에 눈을 뜨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고유 능력 ‘헌신과 봉사’가 생성되었습니다. 그녀는 왕의 명령이라면 언제나 능력 이상의 힘을 발휘할 것입니다. 그것이 전투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숨 한 번 들이켜기도 전에 연달아 떠오른 메시지에 김진우는 도미니크가 마침내 그토록 원하던 대로 시녀라는 종의 한계를 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주인님!”
마침내 변화가 끝이 났을 때, 도미니크는 감격에 찬 얼굴로 그를 불렀다. 그런데 그 음성이 언제나처럼 머릿속을 울려대는 게 아니라 육성으로 들렸다.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운 건 아니겠죠?”
당장에라도 달려와 안길 것처럼 다가선 그녀가 그의 앞에 멈춰 서서 몸을 한 바퀴 돌리더니 자랑이라도 하듯 양손에서 각기 냉기와 치유의 빛을 뽑아 보였다.
“헤헤, 이제 저 주인님의 곁에 설 수 있게 되었어요.”
그간 늘 힘겨운 전투를 해온 주인 곁에서 힘을 보태지 못했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하던 그녀인지라 변화한 스스로의 몸을 살피는 얼굴에 뿌듯함이 가득하다.
“이상한 말을 하는군.”
김진우가 그런 도미니크에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한참 들떠 있던 그녀가 순간 조마조마한 얼굴이 되었다.
“언제고 내 옆 자리는 도미니크의 것이었지. 이제 와서 새삼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군.”
“아…….”
뒤이어진 그의 말에 그제야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감격에 찬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도 잠시, 그녀는 이내 시선을 떨구고는 우아한 몸짓으로 고개를 숙였다.
“다녀왔습니다, 나의 하나뿐인 주인이시여.”
어느새 평소의 음성을 찾은 그녀가 그에게 경의를 표했다.
***
왕의 조언자가 되어 돌아온 도미니크는 곧장 밀려 있는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단지 그녀가 돌아왔을 뿐인데 왠지 모르게 죽어 있던 미궁이 다시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다.
그간 안젤라가 그녀의 빈자리를 대신 해왔다고는 하나, 역시나 그녀의 일 처리를 따라갈 수는 없었다.
“와아, 어떤 의미에서는 그녀야말로 진짜 괴물이네요.”
그 경이적인 일 처리 속도와 능숙함에 안젤라가 질린 얼굴로 말했다.
“도미니크야말로 진정한 공신이지. 만약 그녀가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4등급도 채 되지 못하는 미궁을 안고 끙끙거리고 있을 거야. 아니, 어쩌면 교룡왕의 준동 때 이미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르지.”
그 무한한 신뢰의 표현에 안젤라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를 완전히 신뢰하시는군요.”
“이제껏 그녀는 나의 기대를 배신한 적이 없으니까.”
전투에 나서서 도드라지게 활약한 것은 아니지만 그녀가 있기에 그는 지상이든 지저든 마음 편히 미궁을 비울 수가 있었다.
“흠. 질투 나네요.”
흡혈귀 특유의 집착이 묻어나는 음성에 그가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쓸데없는 짓을 하진 않으리라 믿는다.”
“차별 대우가 너무 심한 거 아닌가요? 그녀나 나나 주인님 하나만 보고 살아가는 건 마찬가진데 너무하시는군요. 제가 설마 같은 식구를 어떻게 할까 봐 그러시는 건가요?”
진심으로 서운하다는 듯이 지껄여 대는 그녀였지만, 김진우는 그녀의 눈동자 뒤에서 일렁이는 기이한 열기를 보았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녀는 필요 이상으로 서운한 표를 내고 있었다.
“경고하지. 내가 명령하지 않는 이상 그 어떤 일도 하지 마.”
그 차가운 태도에 안젤라는 오히려 달뜬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입술을 핥았다.
“안젤라.”
평소라면 그냥 넘어갔을 김진우가 오늘은 어쩐 일인지 집요하게 그녀를 붙들고 늘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흡혈귀 특유의 과도한 집착과 이기적인 성향에서 기인한 비틀어진 충성이 우려된 탓이다.
그간 조용히 지내온 그녀였지만, 같은 식구를 보고 살기를 번뜩이는 눈빛을 보니 이쯤에서 경고를 해둘 필요가 있었다.
“전 그 정도로 멍청하지 않답니다. 주인님이 화를 낼 게 뻔한데 뭐 하러 그런 짓을 하겠어요.”
역시나 그녀는 어딘가 망가져 있었다. 아군을 해코지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보다는 주인의 눈 밖에 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더 큰 그녀의 태도에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만약 지저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관장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한번 물어보고 싶다. 도대체 이런 말썽장이들을 자신에게 몰아준 이유가 대체 무엇인지 반드시 물어보고 싶다.
공교롭게도 때마침 눈앞에서 우르르 몰려가는 발자크와 모리건, 오르테아가를 발견한 그는 다시 한 번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
전반적인 미궁의 일 처리를 끝낸 도미니크는 새롭게 생성 중인 위성 미궁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그 과정에서 나가 마법사들이 저지른 만행이 드러난 것은 필연적이다.
“미궁을 끔찍하게도 생각하는 블랙 머천트가 알면 난리가 날 일이지.”
상황을 설명해 준 김진우가 쓰게 웃는데, 어쩐 일인지 도미니크는 핵의 합성에 긍정적인 기색이다.
“하지만 주인님, 잘 생각해 보세요. 핵의 합성이 확률적으로 쓸모없는 핵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해도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 따지고 보면 주인님과 요새에 필요한 것은 더 이상 양적인 팽창이 아니랍니다.”
왕의 조언자라는 위치 때문일까, 전보다 한층 더 적극적으로 조언을 해오는 그녀를 보며 김진우가 그 이유를 물었다.
“주인님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9층이 아닌 심층이에요. 지난 전쟁에서 패퇴한 10층의 귀족들은 둘째 치고 제대로 된 심층의 귀족들을 적으로 상정한다면 더 이상 어중이떠중이 같은 병력을 모으는 것은 메리트가 없어요.”
“어정쩡한 병력을 모으는 것보다 차라리 실패할 확률이 있어도 핵의 합성이 나을 거라는 소리군.”
“꼭 그렇다고는 볼 수 없지만, 어쩌면 나가 마법사들이 지금 저희 미궁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 줄 실마리를 찾은 것일지도 몰라요.”
김진우는 단박에 도미니크의 말을 이해했다.
당장 심층에 도사린 백작들만 해도 나가의 요새와 병력의 질적인 면에서 차이가 극심했다.
6등급에 이른 미궁이지만 병력의 수만 늘어났다 뿐이지 실질적으로 예전의 미궁과 극적으로 차이가 날 정도로 병력의 질이 상향된 것은 아니었다.
나가 용기사니 투사니 뭐니 해도 결국은 철혈의 기사단을 상대로 단 몇 시간도 버틸 수 없을 게 분명했다.
“주인님, 이제부터는 확실히 해야 해요.”
“뭐를 말이지?”
그가 반문하니 도미니크가 전에 없이 빛나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주인님의 목표가 정확하게 어디까지인지요?”
대략적으로 심층의 누군가와 원한을 갖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나가들도 전부 알고 있지만, 김진우는 그게 누구인지 정확하게 밝힌 적이 없었다.
이제껏 살아남는 데 급급한 것이 이유라면 이유였는데, 도미니크가 그 문제를 정면으로 지적하고 나섰다.
“단순히 9층 전체를 지배하는 것이라면 지금의 전력으로도 충분해요. 나가 요새 하나로는 부족하지만 탐식의 땅을 비롯한 봉토들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주인님의 목표는 고작 9층이 아니잖아요?”
“음…….”
처음에는 지옥거미들의 왕, 12층의 지저공작에게 원한을 갚기 위해 미궁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려고 보니 어느새 지저의 시스템에 익숙해진 자신이다.
지저의 신비를 알면 알수록 지저 공작이라는 목표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목표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당장 11층의 백작들만 해도 감히 상대할 수 없는 세력인지라 그는 선뜻 자신의 목표를 말하기가 망설여졌다.
하지만 그도 잠시, 김진우는 결국 자신의 목표를 말해주었다.
“내 목표는 지옥거미들의 왕, 12층의 지저 공작이다.”
생각과는 달리 도미니크는 그의 목표를 듣고서도 그다지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지저 공작을 쉽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10층의 귀족들에 11층의 백작들까지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너무나 많네요.”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목표를 하나하나 나열한 그녀가 한참을 궁리하더니 명쾌하게 답을 내렸다.
“일단 9층의 남은 미궁을 전부 복속시키는 게 우선이겠군요.”
“반발이 있을 거다.”
명분 없는 전쟁은 때로는 약자들을 뭉치게 만드는 명분이 되기도 한다. 아직까지 나가의 요새와 그의 수하들은 9층 전체를 상대로 전쟁을 치를 정도로 강하지 않았다.
“한꺼번에 그들을 무릎 꿇리려고 한다면 주인님 말씀대로 반발이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건 주인님의 행보에 절대 좋지 않겠죠.”
그렇게 말한 그녀가 오너 룸의 중앙에 놓인 거대한 지도를 손으로 가리켰다.
“일단은 주인님에게 호의적인 미궁의 주인들을 불러 모으세요.”
“불러 모아서?”
그의 질문에 도미니크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그들에게 선택하게 해야지요.”
“과연 그들이 쉽사리 내 밑으로 들어오려고 할까?”
비록 사납고 난폭한 9층의 주인 중에 비교적 온건한 성질의 주인들을 모아 동맹군을 구성하기는 했지만, 그 온건함이 나약함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망치와 모루의 왕 말락수스만 해도 그 기질이 드세기만 했다.
말락수스는 10층의 귀족들에게 길을 내주느니 차라리 미궁과 함께 폭사하겠다고 당당히 선언할 정도로 강골이었다.
다른 미궁의 주인들 역시 교활한 면이 없는 대신 그만큼 우직한 편이었다.
하기야 그런 이들이니 10층 귀족연합군의 압도적인 전력을 알고도 동맹군에 참가했으리라.
“이미 그들은 10층의 귀족들과 싸우기 위해 한 번 주인님 밑으로 고개를 숙이고 들어온 적이 있어요.”
“그때는 상황이 특수했으니까. 게다가 내가 그들을 지휘하기는 했지만, 실질적으로 내 명령에 따른 것은 몽마들과 반인반마뿐이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답니다.”
시종일관 담담한 태도를 유지하는 도미니크의 모습은 불과 얼마 전 시녀였을 당시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지금의 그녀는 차라리 노련한 참모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처음이 어렵지 한번 제 위에 올라서는 것을 인정하고 나면 두 번째는 쉬워요.”
그렇게 말한 그녀가 지도에 표시된 탐식의 땅을 톡톡 두들기며 말을 이어갔다.
“하물며 한번 단맛을 본 자들은 쉽사리 그 맛을 잊지 못한답니다.”
***
지난 전쟁에서 나름대로 공을 세운 미궁의 주인들이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 그렇게 모인 그들은 김진우가 자신들을 소집한 이유를 도통 모르겠다는 얼굴이다.
“또 전쟁의 기미라도 보이는 것입니까?”
“10층의 귀족들이 다시 들고일어날 조짐이라도?”
아무래도 첫 만남이 10층 귀족들의 연합군을 상대하기 위해서인 탓인지 그들은 혹시 모를 전쟁의 조짐에 극도로 예민했다.
지금에야 승리해 이렇듯 당당하다고 하지만, 하마터면 10층의 귀족들에게 제 미궁을 유린당할 뻔했으니 그들이 우려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건 아니고.”
오너 룸까지 손님을 들일 수 없어 너른 공터에 임시로 만든 왕좌, 그 위에 걸터앉은 김진우는 오만한 표정으로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렇다면 우리를 부른 이유가 무엇이오?”
성질 급한 난쟁이 말락수스가 한 걸음 나서며 물었다.
“내 그대들에게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다.”
그렇지 않아도 김진우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세우고 있던 미궁의 주인들이다. 그의 말에 모두가 하나같이 귀를 쫑긋 세우고 경청하는 자세를 보였다.
그런 그들을 보며 김진우가 흡족한 얼굴을 말했다.
“지난 전쟁의 과실은 충분히 달콤했던가?”
뜬금없는 질문에 영문을 몰라 미궁의 주인들이 대답도 못하고 서로의 눈치만 살피고 있을 때, 그가 다시 한 번 물었다.
“만약 그대들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있다면 받아들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