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89)
던전 견문록-89화(89/319)
# 89
던전 견문록
제 90 화
[망치와 모루의 말락수스가 지저 남작 김진우의 가신(기사)이 되었습니다.] [다섯 번째 기사 말락수스는 주인과 운명을 함께하게 됩니다. 나가의 미궁이 파괴될 경우 말락수스 역시 소멸될 것입니다.] [말락수스가 다스리던 망치와 모루의 땅 ‘아이언 포지’가 봉토가 되었습니다. 말락수스는 여전히 한 미궁의 지배자이지만 섬겨야 할 주인이 생겼습니다. 망치와 모루의 땅을 관장하는 핵에 축적되는 던전 에너지의 20%가 나가의 미궁에 속합니다.] [언제든 두 미궁을 연결하는 포탈을 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포탈을 열고 말고는 온전히 남작의 권한입니다.]“내 그대에게 충성을 다 바치리다.”
과연 도미니크의 말대로다. 이미 승전의 대가를 넘치도록 누린 미궁의 주인들은 김진우의 말에 쉽게 설득되었다.
물론 봉신의 맹세를 맺는다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 이들도 있었지만, 이미 탐식의 왕이 봉신의 맹세를 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망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미몽의 여왕과 떠돌이들의 왕이 나섰다.
사실상 이미 한참 전에 봉신의 맹세를 마친 이들이지만 그들은 마치 보란 듯이 망설이는 이들 앞에 나서 김진우의 제안을 수락하는 시늉을 해 보였다.
그리고 그렇게 무릎을 꿇은 이들에게 그는 최상급 다운 잼을 수여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남은 세 미궁의 주인은 서로의 눈치를 보다 앞 다투어 충성을 맹세했다.
“아무리 동맹의 기치 아래 함께 싸웠다고 하나 어디까지나 그들은 경쟁 관계에 더 익숙하답니다. 비슷한 힘을 지닌 미궁들이 주인님의 지원을 받아 성장한다는 생각에 아마 길게 생각할 수 없었을 거예요.”
도미니크는 철저하게 그들의 심리를 이용했다. 주변의 미궁이 성장한다는 것은 곧 자신들이 도태된다는 것, 그리고 지저에서의 도태는 죽음과 다르지 않았다.
“이제 남은 것은 동맹군에 참가하지 않은 이들 뿐이군.”
실질적으로 지난 전쟁에 참가한 이들보다 그렇지 않은 이들이 더욱 많았다.
위치상 10층 귀족연합군의 진격로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대다수의 미궁은 사태를 관망했을 뿐이다.
“그들마저 전부 주인님 발아래 무릎을 꿇었을 때, 진짜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랍니다.”
도미니크의 말에 김진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간 순찰자들이 보내온 정보를 토대로 미궁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설득이 가능한 미궁과 그렇지 않은 미궁, 그리고 힘으로 찍어 눌러야 하는 미궁까지 오너 룸에 놓인 거대한 지도에 온통 파랗고 노랗고 빨갛게 체크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가의 요새를 벗어난 순찰자들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고, 그 사이로 까마귀의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
한창 9층의 세력 판도를 다시 재구성하는 중이었지만 정작 김진우 본인은 바쁘지 않았다. 대부분의 일 처리를 도미니크가 대신한 탓이다.
그래서 그는 하릴없이 미궁을 쏘다니며 하루라도 빨리 미궁의 업그레이드가 완료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기다리던 업그레이드 완료 메시지 대신 엉뚱한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축제의 땅 파티 홀에서 포탈 개방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남작의 허락 없이는 포탈이 열리지 않습니다.] [포탈의 연결을 허락하시겠습니까?]7층으로 내려간 뒤 한 번도 연락이 없던 윤희가 갑작스레 포탈의 개방을 시도한 것이다.
“허락한다.”
생각할 것도 없이 포탈의 개방을 허락하니 눈앞에 공간의 문이 쩍 열리고 그 너머에서 윤희가 넘어왔다.
“오랜만이네.”
“주인이시여.”
고개를 숙여 보이는 그녀의 모습이 마지막으로 헤어졌을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정체불명의 가죽으로 갑옷을 해 입은 그녀는 더 이상 어리숙한 던전 베이비가 아니었다.
차라리 11층 심층의 철혈의 기사를 닮은 그 복장을 보며 김진우가 용건을 물었다.
“나에게 병력을 지원해 주지 않겠는가?”
앞뒤 다 잘라낸 그 말에 그가 눈살을 찌푸렸다.
“병력은 갑자기 왜?”
“세력을 확장할 생각이거든.”
뜬금없는 말이다. 그래서 김진우는 병력의 지원을 약속하는 대신 자세한 상황을 물었다.
“7층의 미궁들이라는 게 생각보다 허술해. 마침 내 미궁 근방에 만만한 미궁이 몇 개 있다. 일단 그쪽 미궁들을 흡수할 생각이야.”
“흐음.”
그러고 보니 7층의 정세를 살피는 것을 지나칠 정도로 게을리 해왔다.
하기야 그럴 만도 한 것이 아래로 내려갈수록 강력해지는 미궁의 특성상 7층의 미궁들은 전력 외로 판단했다.
그런데 윤희가 지금 그 7층의 미궁을 병합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파티 홀의 병력은 지나칠 정도로 비대칭이다. 적진을 교란하는 데는 나름 쓸모가 있지만 제대로 된 전투에서 힘을 발휘하기에는 쓸 만한 병력이 없지. 나는 다른 미궁들을 흡수해 부족한 부분을 채울 생각이다.”
딴에는 맞는 말이다. 그 역시 기형적인 파티 홀의 소환수들을 알고 있는지라 그녀의 말이 일견 타당하게 들렸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미궁을 9층으로 옮기는 게 낫지 않아?”
번거롭기는 하지만 미궁을 옮길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전이라면 모를까, 이미 나가들의 요새 근방에 벌써 위성 미궁이 형성되는 중이다. 그녀 역시 원한다면 그중에 하나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래도 다른 생각이 있는 모양이다. 고개를 저은 그녀는 이내 자신의 생각을 설명했다.
“어차피 그대의 곁에는 차고 넘칠 정도의 인재들이 있어. 그런데 굳이 나까지 힘을 보탤 필요는 없겠지.”
단지 그뿐이라면 김진우는 병력의 증원을 허락할 생각이 없었다. 그녀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지 설명을 덧붙였다.
“7층에서 세력을 모으겠다. 그 편이 그대에게 더욱더 도움이 될 테니까.”
“7층이라고 해봐야 진짜 전쟁에서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이미 10층 귀족연합군과의 전쟁을 통해 각 층간의 전력이라는 게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를 절실히 깨달았다.
그런데 한 층도 아니고 무려 두 층이나 차이가 나는 7층의 세력을 규합해 봤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그에게 윤희가 다시 말했다. 그녀는 이미 이런 반응을 예상했는지 흔들림 없는 표정이다.
“나는 파티 홀의 몸집을 불릴 생각이 없어. 말 그대로 순수하게 단일 미궁으로서 힘을 키울 생각이야.”
“호오, 더 설명해 봐.”
“주변의 미궁을 공격해 그 핵을 얻을 거야. 그리고 그 핵들을 정제하여 파티 홀을 성장시킬 생각이야. 개중에 쓸 만한 미궁이 있다면 그대의 미궁처럼 나 역시 두 개의 핵을 사용할 수도 있겠지.”
그렇게 말한 그녀가 은근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나를 경계하지 마라. 나는 어차피 그대의 비호 없이는 지저에 존재할 수 없어. 이번 계획 역시 그대에게 힘을 보태고 싶어 생각해 낸 것이다. 물론 나 스스로가 이따위 허접한 미궁에 발목이 잡혀 있다는 게 못내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적당한 아첨과 적당한 진실. 김진우는 흥미가 동했다.
“얼마나 필요하지?”
“나가 용기사 서른, 그리고 투사 스물, 용사 스물이다. 그리고 전장의 까마귀면 족하다.”
“다른 건 문제가 안 되는데 모리건이라면 다소 시간이 걸릴 거야. 지금 임무를 맡고 미궁 밖으로 나간 상태거든.”
비교적 난폭한 미궁의 주인들을 제 나름의 방식으로 설득하러 간 모리건인지라 언제 돌아올지 기약이 없었다.
성향 상 한 번에 일을 다 처리하고 돌아올 가능성이 높았으니 당분간은 그녀를 볼 수 없을 게 뻔했다.
“혹시 미궁전에서 상대 주인을 제압하기 위해 모리건이 필요한 거야?”
“나는 아직 계승전의 패배로 인한 페널티를 벗어나지 못했어. 고작 7층이라고 내내 떠들어댔지만 사실 나 스스로도 고만고만한 7층 미궁의 주인일 뿐이지.”
“그럼 아쉬운 대로 발자크와 오르테아가를 붙여주도록 하마.”
단순무식하기로는 지저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듀라한과 드라칸이지만 전투력만큼은 발군이다.
“그쪽은 조금 미덥지 않은데…….”
“전투에 한해서는 제법 믿을 만한 놈들이야.”
그렇게 말한 김진우는 괜히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사실은 불패의 용병단 덕에 심처에 처박혀 시간만 축내는 오르테아가인지라 비슷한 성향의 발자크와 함께 묶어 보내려는 것이지만 그는 시치미를 뚝 뗐다.
“아쉽지만 그렇게 해야겠지.”
“좋아, 그럼 바로 조치해 주도록 하지. 그 외에 다른 건 필요한 거 없나?”
이야기가 대충 마무리되는 눈치라 그가 은근슬쩍 떠보니 윤희가 잠시 뜸을 들이다 말했다.
“필요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렇게 말한 그녀가 그를 힐끗 바라보고는 나직하게 이야기했다.
“그대가 바쁘지 않다면 파티 홀에도 종종 들러주었으면 한다.”
“왜? 뭐, 내 직접적인 도움이 필요한가?”
김진우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으니 그녀가 어물어물 대답하는데 그 모습이 어쩐지 그가 예전에 알던 윤희처럼 보였다.
“그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파티 홀의 소환수들은 지나칠 정도로 과묵해 무료하거든.”
이야기꾼이니 어릿광대이니 요란스러운 이름이지만 실상 그들은 하나같이 침묵을 미덕으로 아는 기이한 존재들이었다.
아마 그녀도 그 기이한 침묵이 싫어 이리 부탁하는 모양이다.
“말상대가 필요한 모양이군. 적당히 눈치 좋은 녀석들을 보내주도록 하지.”
그의 대답에 그녀가 뭔가 할 말이 더 있는지 입을 열었다 닫았다 반복하다 고개를 숙였다.
“그럼 용건은 이게 끝?”
“일단은.”
“좋아, 병력은 바로 보내주도록 하지. 길게 끌 것도 없으니까.”
그렇게 말한 그가 도미니크를 불러 병력을 추렸다.
그리고 오르테아가와 발자크를 불러 임무를 설명해 주는데, 이 철부지 드라칸은 불패의 용병단이 웅크리고 있는 9층의 벗어난다는 사실에 지나칠 정도로 기뻐했다.
“내 반드시 7층을 전부 평정하기 전까지는 9층에 발을 들이지 않으리!”
“웃기는 소리. 적당히 시키는 것만 하고 일 끝내면 재깍 돌아와.”
나름대로 제 포부를 당당하게 선언하는 오르테아가였지만 김진우는 단박에 그 말을 잘라내고 핀잔을 주었다.
“사고 치지 말고.”
물론 속마음은 사고를 쳐도 7층에 가서 치라는 게 김진우의 본심이었지만, 일단 겉으로 보기에는 어디까지나 그는 엄격한 사령관의 위엄을 지키고 있었다.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을 테니 조만간 한 번 더 들르도록 하겠다.”
“내가 보내준 병력, 가급적 피해 없도록 해줘. 9층을 벗어나면 힘이 약화되니 각별히 주의해 주고. 나한테는 하나같이 귀한 녀석들이다.”
김진우의 당부에 그녀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대답했다.
“페널티를 감안해도 이 정도의 병력으로 피해를 입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또한 나름대로 생각이 있으니 그대는 그런 걱정일랑 말아라.”
“뭐, 그렇다니까 나도 더는 말하지 않을게. 너도 몸조심하고.”
그렇게 윤희와 그녀를 받쳐줄 병력이 나가의 요새를 떠났다.
“그대 역시 무운을 빈다.
***
그렇게 발자크와 오르테아가를 7층으로 파견 보내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왕좌에 앉아 전반적인 미궁의 상황을 살피던 김진우는 낯익은 소음에 고개를 돌렸다.
파드득거리는 날짐승의 날갯짓 소리가 울려 퍼진다 싶더니 오너 룸 한편에서 모리건이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냈다.
“어라? 일찍 왔군.”
그의 말에 대답 대신 고개를 숙여 보인 전장의 까마귀가 오른손에 쥐고 있던 무언가를 우악스럽게 앞으로 내던졌다.
“아이쿠!”
그 거친 손길에 데굴데굴 굴러온 무언가가 비명을 지르더니, 이내 왕좌에 앉은 그를 발견하고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이건 뭐지?”
그 비굴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못 미더운 모습에 김진우가 모리건에게 상황을 설명하라 했다.
“오다가 주웠습니다.”
“이게 뭔데?”
그의 말에 모리건이 성큼 다가와 왕좌 아래서 눈동자를 굴려대는 무언가를 뻥 걷어찼다.
“소개해.”
그녀의 짧고 굵은 한마디에 비명을 질러대던 무언가가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