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94)
던전 견문록-94화(94/319)
# 94
던전 견문록
제 95 화
거의 100여 명에 달하는 탐색자 무리는 차라리 잘 짜인 군대와도 같았다.
크리쳐를 몰아붙이는 모습도 한두 번 합을 맞춰본 것이 아닌지 기계처럼 유기적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능숙했다.
그 기세가 어찌나 대단한지 6층에서도 상대하기 까다롭기로 소문난 짝팔 원숭이들마저도 도망칠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수세에 몰려 있었다.
“넌 또 어디 팀이야?”
탐색자 무리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던 김진우는 갑작스레 들려온 고함에 고개를 돌렸다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탐색자와 눈이 마주 쳤다.
“어디 애들이야? 왜 또? 니네 팀장도 적당히 하라디?”
아무래도 다른 팀에서 온 전령이라고 오해한 모양인지 지휘관으로 보이는 탐색자가 욕설부터 내뱉었다.
“아, 조 팀장님, 저 사람, 라인 소속 아닌 거 같은데요?”
“뭐? 라인에 설 놈도 아닌데 왜 여기 들어와 있어?”
“그냥 탐색자 아닐까요?”
하지만 곁에 있던 일반 탐색자가 정정해 주자 금세 표정을 달리 했다.
“거, 미안하게 됐수다. 우리 애들 중 하나로 착각했지 뭐요.”
그렇게 말한 조 팀장이라 불린 인물이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이쪽은 크리쳐 몰이하느라 난장판이니까 웬만하면 다른 층으로 가쇼. 괜히 휘말리지 말고.”
“왜 몰이를 하는 겁니까?”
김진우는 물러서는 대신 오히려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그런 그를 보며 조 팀장이 인상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발품 판 값이라도 벌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내친김에 6층도 좀 정리하고.”
“이거 위험한 거 아닙니까? 이렇게 조직적으로 크리쳐들을 몰아내면 지저에서도 가만있지 않을 거 같은데.”
전쟁이 끝난 지 이제 겨우 10년이 지났을 뿐이다. 게다가 한쪽이 힘이 달려 나가떨어진 게 아니라 양쪽 다 상처를 입고 맺은 휴전 협정이다.
이렇게 대대적으로 설쳐 대다가는 언제 다시 전쟁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다.
“끄응. 어차피 비밀도 아니니 알려드리리다. 야, 이 새끼들아! 대갈통 빠갰다가 잼도 빠개진다고! 적당히 좀 하자! 엉? 빈손으로 돌아갈래?”
말을 하는 도중에도 성난 목소리로 고함치며 탐색자들에게 지시를 내린 조 팀장은 이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갔다.
“위에서 지침이 내려왔수다. 6층에 한해서는 자유롭게 움직여도 좋다고. 미궁과의 불필요한 충돌은 가급적 피하되 불가피할 경우 생존자를 남기지 않는 선에서 처리하는 식으로 움직이고 있지.”
5층은 이미 크리쳐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고, 6층은 아예 거대한 전선이 형성되어 그 너머로 크리쳐들을 내몰고 있었다.
이러니 8층까지 그 난리가 났을 것이다. 하물며 조 팀장이란 작자의 말에는 수틀리면 미궁도 쓸어버릴 수 있다는 뉘앙스가 짙게 배어 있다.
“이런 팀이 또 있습니까?”
“한 네 개 팀이 같이 움직이고 있는데, 뭐가 그리 궁금한 게 많수?”
너무 꼬치꼬치 사정을 캐물은 것인지 조 팀장의 얼굴에 경계하는 빛이 떠올랐다. 그래서 김진우는 적당히 말을 얼버무리고는 뒤로 물러났다.
“동쪽으로는 가지 마쇼. 그쪽은 위층에서 밀려 내려온 크리쳐들이 한 무더기니까.”
조 팀장의 경고를 뒤로하고 적당한 곳에 몸을 숨긴 김진우는 스텔스 능력을 활성화시켰다. 그리고는 최대한 탐색자들의 기척을 피해서 6층을 가로질렀다.
“캐애애액!”
“크르르르!”
탐색자들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을 무렵이 되자 멀리 크리쳐의 무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사납고 교활하고, 또는 크고 작은 크리쳐들이 한데 뭉쳐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피난민 행렬과도 같았다.
온몸이 그을리고 이리저리 상처를 입은 크리쳐들은 맥없는 걸음으로 끊임없이 7층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아…….”
그 모습을 본 김진우는 기분이 묘해지고 말았다. 어쩐지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저 사나운 크리쳐들이 포식자로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종전 이후로 단 한 번도 지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지저의 존재들과는 다르게 지상인들은 꾸준히 지저를 들락날락거리고 있었다.
이제 와서 지상인들이 침략자처럼 보여도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저들을 동정하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인간이든 다른 포식자든 간에 약한 존재는 도태되는 게 지저의 율법이니까.
그저 피난민 행렬처럼 죽은 눈동자로 이동하는 크리쳐들을 보고 있자니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을 뿐이다.
그렇게 뭉쳐서 이동하는 크리쳐들이 있는가 하면, 홀로 움직이는 크리쳐도 있었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몸을 숨기고 있다가 이따금씩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5층의 크리쳐들을 습격했다. 아무래도 각 층간의 격차가 있는데다가 오랜 이동으로 지친 5층의 크리쳐들은 그들에게 손쉬운 먹잇감에 불과했다.
그렇게 서쪽과 동쪽에서 산발적인 전투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서로 먹고 먹히고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 난리통 속에서도 대부분의 크리쳐는 7층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지독하군.”
크리쳐들의 뒤를 따르는 도중에 습격당하는 미궁을 보았다. 하필이면 재수 없게 크리쳐들의 피난 경로에 끼어버린 것이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크리쳐들의 공격 속에서 미궁을 지키는 병력은 필사적이었다.
“크아아악!”
“깨개갱!”
두 발로 선 개와 같은 모습을 한 미궁의 병사들이 창을 잡고 크리쳐들을 공격했지만 중과부적이었다.
평소에도 호시탐탐 미궁을 노리는 크리쳐들이었으니 지금처럼 무리를 이룬 상황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크리쳐들은 두려움 한 점 보이지 않고 거침없이 미궁을 향해 달려들었다.
혈전이 이어졌다. 미미하게나마 미궁의 증폭 효과를 받은 미궁의 병사들은 정말 잘 싸웠지만, 조금씩 상황이 불리해지는 것만큼은 막을 수가 없었다.
아마 머지않아 미궁은 크리쳐들에게 짓밟히고 말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간들에게 영역을 빼앗긴 크리쳐들이 수도 없이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으니까.
팟!
그런데 어느 순간이 되자 미궁에서 넘실거리며 흘러나오던 특유의 기운이 사라졌다. 때를 맞춰 미궁의 병사들이 손과 발이 어지러워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무너지고 말았다.
“아…….”
그 모습을 보며 김진우는 미궁의 주인이 미궁을 포기했음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핵을 추출해 지금쯤 도주를 시작했을 것이다.
그 증거로 미궁의 정면을 끝까지 지켜내던 살아남은 병사들이 빠르게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이 향하는 곳에 아마도 미궁의 주인이 있으리라.
병사들이 사라지자 본능적으로 미궁의 심처를 향해 달려가는 크리쳐들의 모습을 보며 김진우는 고민하다 이내 몸을 돌렸다.
병사들이 몸을 빼낸 방향이다.
그리 오래가지 않아 김진우는 미궁의 주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른 병사들에 비해 배는 덩치가 크고 억세 보이는 존재는 끊임없이 뒤를 돌아보며 이를 갈아댔다.
“망할! 크리쳐들! 망할 지상인들!”
욕설을 내뱉는 꼴을 보아하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도는 파악하고 있는 모양이다.
“빌어먹을!”
계속해서 욕설을 내뱉는 미궁의 주인을 바라보던 김진우는 스텔스 능력을 해제하고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견족의 왕 노르토스의 미궁을 다스리는 온당한 주인을 만났습니다.] [지저 귀족의 고유 능력 하급 귀족의 위엄이 발동되었습니다.] [상대는 그 압도적인 위엄에 저항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의 신체를 강제하거나 위해를 가하는 행동이 아닌 한 상대는 당신의 말을 그대로 따르려 할 것입니다.] [강한 충격을 받을 경우, 위압 효과에서 풀려날 수 있습니다.]온몸을 덜덜 떨어대다 바닥에 납작 엎드리는 견족의 왕을 보며 그가 복잡한 얼굴을 해 보였다.
***
크리쳐들의 습격을 받은 것은 견족뿐이 아니었다. 온 사방으로 퍼져 7층을 향해 나아가는 크리쳐들은 만나는 미궁마다 닥치는 대로 공격을 해댔다.
개중에는 어렵게나마 자신의 터전을 지켜낸 미궁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노르토스의 미궁처럼 크리쳐들에게 밀려나 버린 미궁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최악은 미처 핵을 추출할 틈도 없이 크리쳐들에게 미궁의 심처를 허락하고 주인이 살해당한 몇몇 미궁이다.
오너 룸까지 짓쳐든 크리쳐들은 마구잡이로 미궁의 핵을 뜯어 먹었고, 그리 오래지 않아 핵은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핵을 뜯어 먹은 크리쳐들은 변화를 일으켰다.
[생명력의 결집체, 지저의 신비가 만들어낸 정수를 집어삼킨 크리쳐들이 변화를 일으킵니다.] [그들은 야성을 극복하고 마침내 새로운 존재로 거듭날 것입니다.]찬란한 빛 속에서 온몸이 뒤틀리고 변화를 일으키던 존재들, 그대로 있었다면 김진우는 새로운 종의 탄생을 지켜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저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온몸으로 넘치는 생명력을 내뿜으며 변화를 일으키던 크리쳐들을 다른 크리쳐들이 습격한 것이다.
굽었던 발이 펴지고 구부정하던 허리가 채 다 서기도 전에 새롭게 거듭나던 크리쳐들은 갈기갈기 찢겨지고 말았다.
그리고 수많은 크리쳐들에게 집어삼켜지고 말았다.
다시 변화가 일어나고, 다시 또 살해당해 뜯어 먹힌다.
시간이 흐를수록 변화의 빛은 미약해졌고, 마침내 사체를 뜯어 먹은 크리쳐들이 더 이상 변화를 일으키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아비규환의 참상은 끝이 났다.
이보다 더욱 참혹한 현장을 지켜본 적도 있고, 불과 얼마 전에는 수천이 격돌하는 전쟁을 겪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진우는 속이 울렁대는 듯한 기분이다.
이성이라고는 한 자락도 존재하지 않는 야성과 야만의 세계, 그 끔찍한 모습을 지켜보던 그는 게걸스럽게 사체를 씹어대는 크리쳐들의 머리통을 박살 냈다.
그리고는 그대로 현장을 떠나갔다.
***
“아…….”
자신을 보고 얼빠진 얼굴을 한 윤희를 향해 김진우가 피로한 얼굴로 말했다.
“윤희, 생각보다 상황이 좋지 않아. 지상인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렇게 말한 그가 어둠 너머를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의 방비로는 충분하지 않다. 아무래도 미궁을 옮겨야 할지도 몰라.”
“그게 무슨…….”
“지금 당장은 괜찮을 거야. 하지만 지상인들이 바로 위 6층까지 도달해 있어. 위층은 완전 전쟁이다.”
그가 지금껏 본 것을 전부 설명해 주자 그녀의 얼굴 역시 심각해졌다.
“만약 지상인들의 생각이 바뀌어 7층까지 넘볼 경우, 너는 절대로 파티 홀을 지켜낼 수 없어. 파티 홀은 너무 통로 쪽에 붙어 있어.”
지리적인 약점을 그간 파티 홀 특유의 교란 능력으로 보완해 오고 있었으나, 만약 탐색자들이 7층에 들어선다면 그녀의 미궁은 발가벗겨지고 말 것이다. 탐색자 중에는 숨겨진 물건이나 크리쳐들을 귀신같이 탐지해내는 인물들이 차고도 넘쳤으니까.
“일단은 너도 염두에 두고 있도록 해. 최악의 경우 미궁을 이전한다.”
그렇게 말한 김진우가 포탈을 열었다. 그런 그의 뒤편으로 언제 나타난 것인지 견족의 왕 노르토스를 비롯한 몇몇 이가 서 있다.
“6층에서 주워온 놈들이다.”
눈짓으로 정체를 물어오는 윤희를 향해 짧게 한마디 남긴 김진우는 포탈 너머로 사라졌다.
황당한 얼굴로 그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던 윤희가 이내 고개를 돌려 남은 이들을 살펴보았다.
행색이 엉망이고 그 본신의 힘 자체도 그리 대단하지 않은 것이 하찮아 보여 그녀의 얼굴에 차가운 빛이 떠올랐다.
“흐음.”
자신들의 미궁과는 차원이 다른 파티 홀의 모습을 보고 주눅이 든 노르토스와 미궁의 주인들이 냉엄한 표정을 한 윤희의 눈치를 살피다 슬그머니 김진우의 뒤를 따랐다.
“아…….”
그리고 포탈을 넘은 그들의 눈앞에는 신세계가 펼쳐져 있다. 방금 전에 본 그 대단한 미궁조차도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찬란한 미궁, 나가의 요새가 6층에서 쫓겨 온 미궁의 주인들 앞에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