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95)
던전 견문록-95화(95/319)
# 95
던전 견문록
제 96 화
#39. 새로운 종족의 탄생
“저 얼빠진 놈들은 누굽니까?”
언제 나타난 것인지 모리건이 특유의 까만 날개를 접어 보이며 말을 걸어왔다.
“6층의 피난민들이다.”
김진우의 한마디에 순식간에 난민이 되어버린 견족의 왕 노르토스와 다른 미궁의 주인들이 인상을 찌푸렸지만 감히 말대꾸를 할 생각은 못했다.
눈이 마주칠세라 재빨리 고개를 숙여 표정을 숨기는 그들을 보며 모리건이 눈살을 찌푸렸다.
“보아하니 미궁의 주인들인데…….”
노르토스의 위아래를 훑어보던 그녀가 이내 혀를 차며 말했다.
“너무 허약한데요?”
적나라한 말에 노르토스가 발끈해 고개를 들었다가 섬뜩하게 빛나는 모리건의 붉은 눈동자를 보고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직감적으로 자신이 상대할 수 없는 강자라는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다.
아니, 비단 눈앞의 까마귀 여인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김진우의 주변을 돌아다니는 이들 중에 자신들보다 약한 이는 하나도 없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노르토스와 다른 미궁의 주인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다시는 들지 못했다.
“꼴에 자존심은.”
모리건이 하는 양을 바라보던 김진우가 뒤늦게 그녀를 제지했다.
“이곳은 안전하니 상황을 듣도록 하겠다.”
왕좌에 앉은 오만한 왕을 보며 견족의 왕이 나서서 사정을 설명했다.
“갑자기 지상인들이 밀려오는 바람에 6층의 영역이 엉망이…….”
“거기까지는 나도 알고 있으니 그다음부터 시작하지.”
“그다음이라면?”
눈을 데굴데굴 굴리는 견족의 왕에게 김진우가 말했다.
“왜 그렇게까지 형편없이 밀린 거지? 5층은 몰라도 6층은 너무 쉽게 무너졌어.”
사실상 6층을 돌며 그가 가장 의아해한 부분이다. 5층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6층까지 그렇게 맥없이 밀려 버린 것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의 질문에 노르토스가 비통한 음성으로 말했다.
“전쟁이 끝난 지 10년, 지저는 너무도 약해졌습니다.”
“계속해 봐.”
“정확하게 말하면 지상과 가까운 미궁들이 약해진 것이겠지요.”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한 노르토스는 시종일관 우울한 얼굴을 감추지 않았다.
“지상인들은 제 앞마당 드나들 듯 지저를 오갔으며, 그들은 지저가 지저로 존재할 수 있는 생명의 원천을 무참히 약탈해 갔습니다. 그게 무려 10년입니다. 10년간 꾸준히 생혈을 뽑힌 거나 마찬가집니다.”
크리쳐는 다운 잼을 먹고, 포식자는 그렇게 다운 잼을 먹은 사냥감을 또다시 먹어치운다.
그리고 미궁은 다시 그런 이들을 집어삼키고 제 몸집을 불린다. 다운 잼이야말로 지저의 근간을 이루는 원천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난 10년간 지저의 초입과 저층을 찾은 지상인들의 수가 무지막지했다. 그들은 크리쳐를 사냥하고 채 여물지 않은 다운 잼을 닥치는 대로 쓸어갔다.
처음에는 크게 표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다운 잼을 섭취하지 못한 크리쳐들은 서서히 약해져 갔다.
피식자와 포식자 할 것 없이 크리쳐들은 쇠약해졌으며, 그러한 사정은 미궁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전쟁에서 입은 피해를 복구하기는커녕 시간이 흐를수록 미궁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다운 잼마저 구하기 힘들게 되었다.
“병사들의 유지비를 대지 못해 정예병들이 미궁을 이탈했고, 던전 에너지를 공급 받지 못한 미궁은 계속해서 약해졌습니다. 그 결과 한낱 야만적인 크리쳐에게까지 미궁을 내줄 지경이 되었지요.”
피눈물이라도 흘릴 것 같은 얼굴로 노르토스가 비통하게 말했다.
“다른 층 역시 마찬가지 상황인가?”
어쩐지 자신이 아는 지저와는 다르다 했더니 이러한 사정이 있던 모양이다. 심각한 얼굴을 한 김진우가 묻자 노르토스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닐 겁니다. 지상인들은 6층 아래로는 잘 내려가려고 하지 않았으니까요.”
하기야 그가 알기로도 탐색자들은 위험도가 급격하게 상승하는 6층 아래로는 잘 내려가려고 하지 않았다.
실제로도 이준영이 일전에 구해준 지도 역시 6층까지 표기되어 있지 않았던가.
“하지만 지금은 모르겠습니다. 지저가 약해진 만큼 지상인들은 강해졌으니까요. 만약 지상인들이 작정하고 밀려들면 8층은 몰라도 7층만으로는 막기 힘들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가?”
모리건을 비롯한 요새의 수뇌들은 난생처음 듣는 이야기에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경쟁하는 관계라 해도 지저의 존재가 맥없이 지상인들에게 밀렸다는데 기분이 좋을 턱이 없었다.
그리고 김진우는 이도저도 아닌 애매모호한 얼굴로 수하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지상인들이 번성했으니 좋아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이제는 제 터전이나 다름없이 되어버린 지저의 쇠락에 슬퍼해야 하는 걸까.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마음에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그가 표정을 굳혔다. 쓸데없는 감상에 빠질 시간 따위는 없었다.
심층으로 진군할 여력이 생긴 지금, 혼란스러운 저층의 상황이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이대로라면 심층으로 나아가기는커녕 배후를 걱정해야 할 지경이다. 최악의 경우 같은 인간을 상대로 싸워야 하는 일도 각오해야 했다.
물론 그때 가서 과연 망설임 없이 동족을 향해 칼을 뽑아 들 수 있을지는 나중 문제였다.
미궁과 운명을 함께하게 된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 살기 위해서라도 싸워야겠지만 지금은 거기까지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그의 솔직한 심정이다.
“이제 그대들은 어떻게 할 생각이지? 가급적이면 요구 사항을 들어주지.”
이미 이곳에 오기 전에 봉신의 계약으로 묶어버린 6층의 주인들이었지만, 김진우는 복잡한 얼굴로 그들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그들을 존중하기 때문이 아니라 미궁의 주인이라 생각할 수 없는 미약한 힘에 어디에 배치해야 할지 마땅히 생각이 나지 않은 탓이다.
“외람되지만 왕께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물어라.”
눈치를 보며 나선 노르토스가 그의 허락에 조심스럽게 말했다.
“9층의 주인들은 전부 이렇게 강합니까?”
그렇게 말하는 노르토스의 시선이 모리건을 향해 있다.
“그들이 강한지는 모르겠지만, 너희들이 약한 건 확실하지.”
김진우가 나서기 전 모리건이 한껏 거들먹거리며 대답했다.
“모리건은 미궁의 주인이 아니야. 그녀는 조금 특별한 존재지.”
아무래도 모리건과 자신을 보고 9층의 힘을 과대평가하는 것이 분명해 그가 사실을 정정해 주었다.
하지만 그 역시 노르토스를 비롯한 6층 주인들의 힘이 9층에서 살아나가기에는 다소 손색이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고 있는 터였다.
“그럼 저는 미궁을 포기하겠습니다.”
[견족의 왕 노르토스가 미궁의 소유권을 포기하고 양도하려고 합니다. 만약 그의 제안을 수락할 경우 새로운 미궁의 소유권을 온전히 얻을 수 있습니다.] [미궁의 주인 자리에서 물러난 노르토스는 영웅급 소환수로 나가의 요새에 머물 수 있게 됩니다.] [노르토스는 다른 소환수들과 똑같이 성장의 기회를 얻습니다. 하지만 한때 미궁의 주인이었던 만큼 그는 영웅급 이상의 존재로 성장할 잠재력이 충분히 있습니다.] [노르토스의 미궁의 소유권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보며 김진우가 눈살을 찌푸리니 노르토스가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다.
“솔직히 9층에서 살아남을 자신이 없습니다. 지금은 그저 왕의 그늘 아래서 예전의 힘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를 바랄 뿐입니다.”
아무래도 자신이 있던 6층과는 무려 세 층이나 차이가 나는 9층의 압박감이 상상을 초월한 모양이다.
노르토스는 미궁의 주인이 되는 대신 안전한 요새에서 제 몸을 건사하기를 원했다.
“원하는 대로 하라.”
[노르토스 미궁의 소유권을 얻었습니다.] [최상급 다운 잼도 아닌 상급 다운 잼에 담긴 노르토스의 미궁은 사실상 제대로 다시 활성화가 될 수 있을지조차 불확실합니다. 만약 활성화에 성공한다고 해도 핵의 불안정성은 언제든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습니다.]노르토스의 제안을 받아들이자 눈치를 살피고 있던 다른 미궁의 주인들 역시 앞 다투어 미궁의 소유권을 포기했다.
***
[미궁의 활성화 작업이 끝났습니다.] [미궁의 핵이 활성화되고 기존의 통로가 미궁의 일부로 재구성됩니다.] [기존의 핵이 합성되어 만들어진 핵은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완전히 새로운 미궁입니다.] [당신은 지금 새로운 미궁의 탄생을 눈앞에서 보고 있습니다.] [지저의 신비가 새로운 미궁의 탄생을 축복합니다.] [미궁의 핵이 마침내 활동을 시작합니다.]지저를 정신없이 쏘다니다 보니 어느새 요새 근처에 위성 미궁으로 심어두었던 미궁의 생성이 완료되었다.
상급 나가 마법사들의 독단으로 그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 미궁의 핵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새로운 종족이 탄생합니다.]평소 보아오던 섬광보다 몇 배는 더 찬란한 섬광이 온 지저를 감싸 안았다.
나가 마법사들이 만들어낸 해괴한 결과물을 구경하러 온 모리건과 도미니크, 그리고 안젤라가 그 안에 담긴 무지막지한 에너지를 느끼고 감탄했다.
“뭔가 대단한 게 나올 것 같은데요?”
안젤라가 섬광 속에서 눈을 찌푸린 채 말하는데 그 음성에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랬으면 좋으련만.”
핵의 합성 당시에 본 경고 메시지가 무색하게 온 지저에 생명력과 에너지가 충만했다. 이대로라면 뭔가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싶어 김진우도 들뜬 얼굴로 섬광이 걷히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섬광이 잦아들었을 때, 김진우의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비단 개구리 일족이 탄생했습니다.]기대하던 것과는 달리 섬광 뒤에 드러난 미궁의 핵은 이제껏 본 어떤 미궁의 핵보다 작고 초라했다.
1등급에 불과함을 감안하더라도 그 둔탁한 빛깔이나 크기가 기대 이하라 김진우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비단 개구리 일족이 어떤 식으로 성장하게 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지저의 신비가 비단 개구리 일족의 탄생에 축복을 내립니다.]메시지 끝에 핵의 빛깔이 다소 윤택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초라함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주인님?”
안젤라가 떨떠름한 얼굴로나마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김진우에게 말을 걸었다. 잠시 동안 멍하니 핵과 허공을 바라보던 그가 와락 인상을 찡그렸다.
“아무래도 망한 것 같군.”
***
두 번째로 활성화된 합성 핵 역시 ‘큰머리 난쟁이’라는 애매한 종족을 내놓았다.
핵의 빛깔과 크기 역시 비단 개구리의 미궁에 있는 그것만큼이나 작고 초라해 김진우는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멀쩡한 핵 두 개, 그리고 최상급 다운 잼 두 개를 날려먹었군.”
험악한 얼굴을 한 그가 마지막으로 활성화를 앞둔 미궁의 핵을 보며 이를 갈았다.
“망할 마법사 놈들.”
“그래도 일단 지켜보세요, 주인님. 어쩌면 생각보다 쓸 만한 존재가 나올지도 몰라요.”
도미니크가 그를 위로했지만 김진우는 표정은 펴지지 않았다. 이것도 연구 성과라고 자축하던 상급 나가 마법사들의 얼굴이 떠올라 그는 속에서 천불이 났다.
“그거야 그렇지만 이거 열 받는군. 멀쩡한 미궁을 두고 이렇게 만들었으니 속이 쓰릴 지경이야.”
그가 솔직하게 속내를 터놓자, 과묵한 모리건마저 나서서 그를 위로했다.
“아직 하나가 남았으니 실망하기에는 이릅니다. 어차피 터놓고 말해서 합성되기 전의 핵이라고 해도 그다지 쓸모가 있는 놈들도 아니었으니까요.”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말이라 김진우는 쓰린 속을 부여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핵이 활성화를 시작했다.
[새로운 종족이 탄생합니다.]이미 두 번이나 겪은지라 충만한 생명력과 에너지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시큰둥한 얼굴로 섬광이 걷히기를 기다리던 김진우는 빛이 사라지고 마침내 드러난 광경을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지난 두 개의 합성 핵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찬란한 미궁의 핵이 그의 눈앞에 있다. 오색영롱한 빛을 뿌려대는 핵을 보고 있는데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