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96)
던전 견문록-96화(96/319)
# 96
던전 견문록
제 97 화
[거울 망령 일족이 탄생했습니다.] [실체가 없는 이 망령들은 산 자가 죽기 전에 보고야 마는 자신의 환영과도 같습니다. 그들은 끔찍한 흉내쟁이이며 끝내는 타인의 모습을 훔쳐내고야 마는 진정한 약탈자이기도 합니다.] [이제껏 모습을 드러낸 적 없는 이 망령은 강력하기 그지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들은 왕과 미궁을 위해 기꺼이 적들의 모든 것을 강탈하고야 말 겁니다.] [지저의 신비가 새로운 강자의 출현에 깊은 관심을 표합니다. 지저의 신비는 이 거울 망령의 일족이 지저에서 성공적으로 자리 잡기를 원합니다.] [지저의 신비에 의해 냉철하고 지혜로운 망령들의 왕 에스페토스가 탄생했습니다.]시작부터 기존의 위성 미궁의 생성 때와는 다른 메시지가 한참이나 떠올랐다.
비단 개구리나 큰머리 난쟁이는 마치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한 줄도 채 표시되지 않던 것이 지금은 왠지 모르게 메시지 창 자체가 들뜬 듯한 느낌마저 들 지경이다.
[거울 망령들의 왕 에스페토스는 미궁의 등급이 5등급에 오르기 전까지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메시지를 본 김진우가 그간의 쪽박도 잊고는 연신 탄성을 내뱉었다. 그런 그와 찬란하게 빛나는 핵을 번갈아 바라보던 도미니크와 안젤라가 뭣도 모르고 덩달아 기뻐했다.
***
세 개의 위성 미궁 중 무려 두 개를 말아먹었지만, 남은 하나가 워낙 결과가 좋으니 김진우는 핵의 합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원 재료가 된 핵들이야 사실상 9층에서 불로소득으로 얻은 그저 그런 미궁의 핵에 불과했다.
활성화시킨다고 해도 그 능력이 눈에 차지 않을 건 자명할 터, 그는 차라리 모험을 해보는 건 어떨까 고민했다.
그래서 그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나가 마법사들이 연구에 한창인 연구실로 향하게 되었다.
“쉬이익.”
지난일 이후로 그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한 상급 나가 마법사들이 그를 보고는 작업을 멈추고 허리를 곧추세웠다.
“하던 거 마저 해.”
그가 손을 휘저으며 말하니 그제야 슬금슬금 제 할 일을 하기 시작한 상급 마법사들이다.
“음…….”
그들이 이런저런 기구와 용액들을 만지며 작업에 몰두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김진우는 슬며시 품에 손을 넣었다.
나가 마법사들이 사고를 친 이후로 품에 갈무리하고는 절대 내주지 않던 미궁의 핵이 아직도 세 개나 남아 있다.
거기에 더해 이번 6층에서 데려온 미궁의 주인들이 바친 핵이 네 개이다.
한참을 품에 손을 넣고 꼼지락거리고 있던 그는 결국 눈을 질끈 감고 핵을 꺼내 들었다.
“제길, 모 아니면 도지.”
그의 말에 고개를 돌린 나가 마법사들은 촤라락 하고 책상 위로 쏟아진 핵을 보고는 눈이 돌아갔다.
[상급 나가 마법사들이 미궁의 핵을 합성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기존의 핵들이 하나로 합쳐졌습니다.] [두 개의 핵이 합쳐져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미궁의 핵이 또다시 합성에 성공했습니다.] [미궁의 핵이 또다시 합성에 성공했습니다.]그렇게 다시 여섯 개의 핵을 사용하여 세 개의 합성 핵을 얻었다.
이번에도 역시나 활성화시키기 전에는 그 내용물이 뭐가 들었는지 알 수가 없던지라 김진우는 적당한 장소를 물색해 핵을 활성화시켰다.
“다시 또 30일인가.”
합성 핵의 결과물을 확인하는 심정이 복권 당첨 번호를 기다리는 그 심정과 크게 다르지 않아 자괴감이 들었다.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 보면 합성에 사용된 핵들은 전력화하기에는 애매한 물건이었다. 추방자들의 미궁이니 늪의 미궁이니 결국 그리 내세울 것 없는 그저 그런 미궁에 불과했으니까.
***
어떻게 안 것인지 암상인이 거울 망령의 미궁을 방문했다.
“새로운 미궁의 탄생의 축하드립니다. 아울러 전에 없던 일족의 탄생 역시 축하드립니다!”
근래 들어 왠지 축하 인사만 받는 느낌이라 김진우는 시큰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어떻게 알고 온 거지?”
“영업 비밀이라고 해두겠습니다.”
그래도 궁금한 건 궁금한 거라 대체 거울 망령 일족의 탄생을 어떻게 안 것인지 물어봤더니 역시나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그보다 뭣 좀 물어볼 게 있는데.”
한참이나 이어진 축하의 말을 잘라낸 김진우가 마침 생각났다는 듯이 이야기를 꺼냈다.
“말씀하십시오.”
암상인은 준비한 축사가 더 있는지 아쉬운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그도 잠시, 그의 말에 암상인의 능글능글한 얼굴도 딱딱하게 굳고 말았다.
“혹시 5층과 6층이 어떤 상황인지 알고 있나?”
“네. 눈이 있으니 보았고 귀가 있으니 들었지요.”
그렇게 대답한 암상인이 한숨을 내쉬고 대답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간 지상인들은 꾸준히 지저를 헤집고 다녔습니다. 이제 땅 밑 어둠은 더 이상 그들에게 두려움도 신비도 아닙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탐험의 땅일 뿐이지요.”
10년간 던전 베이비들을 내세워 꾸준히 탐사를 이어온 지상인들은 그 경험과 노하우가 최고조에 이르러 있었다. 거기에 주인 없는 미궁에 대한 탐욕이 더해지니 그 기세가 걷잡을 수 없을 지경이다.
“5층과 6층의 미궁들은 지난 전쟁에서도 가장 혹독하게 시달린 이들입니다. 그 탓에 그 힘이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쇠락했습죠. 몸을 일으킬 생명줄마저도 지상인들에게 빼앗기고 이제는 또 제 터전마저 잃고 말았으니 안타까운 마음뿐입니다요.”
“그렇다고 해도 이대로는 위험하지 않은가?”
한탄을 토해내는 암상인에게 김진우가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그렇게 묻는 그를 암상인이 묘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몹시 기분 나쁘군.”
“아닙니다요. 자작님은 분명 지상인 출신인데 어째 말하는 게 지저의 존재보다 더 지저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 같아서 조금…….”
사실은 지저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혹시 모를 나가의 요새와 인간들의 충돌을 우려하는 것이다.
하물며 심층의 공작이라는 목표가 있는 이상 배후가 소란스러운 것 역시 바라지 않는 일이다.
“워낙에 들려오는 이야기들이 흉흉해서 말이지.”
적당히 대답을 얼버무리니 암상인이 빤히 그를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6층은 절대 인간들이 점령할 수 없을 테니까요.”
“말은 잘하는군. 이미 6층 미궁의 주인 중 이런저런 사정으로 미궁을 내주고 쫓겨난 자가 한둘이 아니다. 그렇게 쉽게 보고 있다가는 큰코다치기 십상이지.”
김진우의 타박에도 암상인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렇게 말한 암상인이 언제 그렇게 어두운 얼굴을 했냐는 듯이 웃었다.
“파수꾼들이 이제 곧 움직이기 시작할 테니까요.”
“파수꾼?”
도대체가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라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암상인이 설명해 주었다.
“파수꾼은 드러나지 않은 지저의 힘입니다. 그들이야말로 지저의 진정한 저력이라고 할 수 있죠. 그들이 한번 움직이기 시작하면 지상인들은 절대로 지금처럼 설쳐대지 못할 겁니다. 제가 장담합니다.”
“그렇다면 왜 처음부터 그들이 나서지 않았지?”
6층이야 그렇다고 쳐도 5층은 완전히 탐색자들에 의해 점거당하다시피 한 상태이다.
그 때문에 크리쳐들이 이동을 하고 각 층에 혼란이 생겼으니 파수꾼이라는 존재가 있다면 지금에 와서 움직인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애석하게도 5층의 파수꾼은 지난 전쟁에서 전멸해 버렸으니까요.”
“그럼 지금 움직일 파수꾼은 6층의 파수꾼이라는 말이지?”
“맞습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째 파수꾼이라는 존재가 각 층마다 존재한다는 듯한 뉘앙스다.
“그럼 혹시 파수꾼이라는 족속이 9층에도 있나?”
그래서 그가 께름칙한 얼굴로 물으니 암상인답지 않게 스산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데 그 동글동글한 얼굴에 비틀린 웃음이 떠오르니 그게 또 그렇게 소름 돋을 수가 없다.
“파수꾼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지난 전쟁에서 전멸한 초입과 5층의 파수꾼들을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9층을 전부 발아래 두고 정복자라는 타이틀까지 얻은 자신이건만 그는 휘하의 주인 중 어느 누구에게도 파수꾼에 대해 듣지 못했다.
그게 못내 찝찝해 그가 파수꾼의 정체를 물었더니 암상인이 고개를 저었다.
“8층과 9층의 파수꾼들은 지난 전쟁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저 같은 상인 나부랭이가 그 정체를 알 리가 없지요.”
“정체를 숨기고 있는 모양이군.”
“자작님이시니까 말씀드리는 건데, 파수꾼이 꼭 미궁의 주인일 필요는 없습니다. 때로는 일개 병사의 모습으로 있을 수도 있고 때로는 땅굴을 헤매는 야만적인 크리쳐의 무리에 속해 있을 수도 있답니다.”
들을수록 오리무중이라 김진우가 와락 인상을 찡그렸다.
“혹시라도 자작님 휘하의 주인들을 불러 확인할 생각은 하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파수꾼의 임무는 그 어떤 것보다 신성하고 무조건적인 임무입니다. 그것이 설령 제 목숨 줄을 쥔 주인이라고 한들 말입니다.”
어쩐지 경고의 의미가 담긴 말이다.
“뭐, 자작님이 지저를 등지지 않는 이상 파수꾼을 만날 일은 없으니 그리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실제로 심층의 귀하신 분들도 파수꾼이 누구냐는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대화를 마친 암상인은 다시 처음의 화제로 돌아갔다.
“이런 어수선한 판국에 새로운 일족이 탄생했다는 건 진심으로 경사스러운 일입니다. 자작님도 이제 지저를 귀히 여기는 것 같아 제가 다 뿌듯할 지경입니다요.”
실상은 나가 마법사들이 친 사고에 불과했지만 김진우는 내색하지 않았다.
합성을 통해 미궁을 몇 개씩이나 날려먹었다는 사실을 미궁 알기를 끔찍이 아는 암상인이 알면 잔소리를 할 게 빤한 탓이다.
“다른 미궁들도 들를 건가?”
“다른 미궁들이라면… 요새를 말씀하시는 건지? 혹시 필요한 게 있으십니까?”
암상인의 대답에 김진우가 오만상을 찌푸렸다. 혹시 몰라 다른 합성 미궁에 대해 떠보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도리어 반문하는 것이 다른 미궁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눈치다.
아니,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아예 모르고 있는 게 분명했다.
1등급 미궁도 방문하던 암상인이 모를 정도면 대체 얼마나 하찮은 미궁이라는 건지 비단 개구리 일족과 큰머리 난쟁이를 떠올린 김진우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
암상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6층까지 파죽지세로 밀어붙이던 탐색자들이 강렬한 저항에 부딪쳐 도리어 4층까지 밀려났다는 소식이 이곳저곳에서 들려왔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탐색자들이 죽거나 다쳤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중에는 제법 레벨이 높은 축에 속하는 탐색자들도 많은지라 지상의 분위기는 영 말이 아니었다.
“제가 아는 팀도 꽤 많이 분해됐어요.”
이준영과 어렵사리 연락이 닿았다. 탐색자들 간에 떠도는 소문들이라고 해봐야 그저 크리쳐들이 우르르 몰려와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는 둥의 뜬구름 잡는 소리뿐이었다.
그래서 김진우는 이준영에게 5층의 상황을 물었다. 그녀는 선뜻 지저의 참상을 가감 없이 전해주었다. 5층에 위치한 흑호의 미궁에서 지내는 그녀는 근방에서 일어난 전투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만큼 그녀가 전해준 정보는 세세했다.
“곧 발표가 나겠지만, 지난 전쟁에서 모습을 드러낸 놈들이 다시 활동을 시작한 것 같아요.”
암상인의 정보와 완전히 일치하는 이야기, 김진우는 그들이 파수꾼일 거라고 확신했다.
“대체 어떤 놈들이랍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