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eon Odyssey RAW novel - Chapter (97)
던전 견문록-97화(97/319)
# 97
던전 견문록
제 98 화
“종은 정해져 있지 않아요. 짝팔 원숭이부터 시작해서 삼두사까지 6층에서 볼 수 있는 놈들은 죄다 있었어요. 다만 그놈들이 다른 크리쳐들과 차이가 있다면 기묘한 형태를 한 문신뿐이에요.”
“문신이라면…….”
“부릅뜬 눈 모양의 문신, 그게 ‘센티넬’이라 불리는 크리쳐들의 유일한 공통점이에요.”
그렇게 말한 이준영은 지난 전쟁에서 ‘센티넬’이라 불리던 존재들이 어떻게 인간의 군대를 괴롭혔는지 한참을 설명해 주었다.
“개발국에서는 이번 사태를 그냥 두고 볼 생각이 없는 모양이에요. 센티넬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시점에서 평화는 이미 물 건너간 거죠.”
“근데 따지고 보면 휴전 협정을 먼저 어긴 건 인간들이 아닙니까? 그렇게 대규모로 지저를 헤집는 건 지저를 자극하는 행동이 아닌가요?”
어쩌다 보니 마치 인간들을 책망하는 말이 되어버린지라 김진우가 흠칫하고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별달리 이상한 점을 느끼지는 못했는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그거야 그렇지만, 그래도 정부는 혹시라도 센티넬이 예전처럼 지상까지 올라오는 건 아닌지 예의 주시하고 있어요. 전쟁이 그렇게 쉽게 나겠냐마는 요즘 돌아가는 분위기만 봐서는 심상치 않은 것도 사실이에요.”
그녀의 말에 대충 지상이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한 김진우는 무거운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진우 씨, 부디 몸조심해요.”
“준영 씨도.”
염려가 가득한 그녀의 인사를 뒤로한 그는 백 선생의 감정소를 찾았다.
“어쩌면 전쟁이 일어날지도 몰라. 그 끔찍한 놈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니 믿고 싶지가 않구먼.”
이준영이나 백 선생 모두 어느 누구 하나 지상인들이 먼저 지저를 자극했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게 김진우는 지독한 모순처럼 느껴졌지만 굳이 내색하지는 않았다.
백 선생의 감정소를 떠난 김진우는 지저에 돌아오기가 무섭게 다시 암상인의 방문을 받았다.
“5층과 6층의 상황도 대충 정리되었으니 슬슬 움직여 볼 참입니다.”
지상인들은 지저가 혼란스럽다며 난리를 피워댔는데, 지저에서는 반대로 이제야 상황이 안정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짧은 시간 동안 땅 밑과 땅 위를 오가다 보니 머리가 아파올 지경이라 그는 말없이 암상인의 말을 듣기만 했다.
“3주일 뒤에 출발할 예정이니 그때 맞춰서 준비를 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그날 다시 마중 나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제 할 말만 지껄여 댄 암상인은 이내 미궁을 떠나려 했다. 파수꾼에 대해 일언반구 언급조차 없는 그 모습이 마치 처음부터 이리 될 줄 알았다는 눈치다.
“지상은 전쟁까지 각오하고 있었다.”
돌아선 암상인의 등을 향해 그렇게 말하니 암상인은 돌아설 생각도 않고 대답했다.
“전쟁 말입니까?”
“파수꾼에 대한 경계심이 이만저만이 아니더군. 최악의 경우 전쟁까지 각오하고 있었다.”
그의 우려에도 암상인은 태연했다.
“다시는 전처럼 큰 전쟁이 나지 않을 겁니다.”
“왜지?”
그 대답이 하도 당당해 하마터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뻔한 김진우가 이유를 묻자, 암상인이 잠시간의 침묵 끝에 대답했다.
“휴전의 그날을 기억하는 한 지상인은 절대로 지저를 향해 진군하지 못할 겁니다.”
무슨 말인가 싶어 그가 몇 번이나 방금 전의 말을 곱씹고 있는데, 암상인이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돌아보는 법 없는 그 당당한 걸음걸이에 김진우가 멍한 얼굴로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대체 그날 무슨 일이 있던 거지?”
쉽사리 물을 수 없는 그 분위기에 암상인을 그대로 돌려보낸 그는 한참이나 텅 빈 어둠을 바라보고 있었다.
***
[미궁의 업그레이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미궁의 등급이 1등급에서 2등급으로 격상됩니다. 잠겨 있던 시설들이 새롭게 활성화되었습니다.] [망령의 제단을 통해 망령 노역자를 소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거울 망령의 미궁은 순조롭게 업그레이드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미궁을 업그레이드할 자금을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할 일도 없었고, 미궁이 노출되어 공격 받을까 봐 노심초사할 일도 없었다.
당연하게도 거울 망령의 미궁은 착착 성장해 갔다.
[미궁의 업그레이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미궁의 등급이 2등급에서 3등급으로 격상됩니다. 잠겨 있던 시설들이 새롭게 활성화되었습니다.]비교적 짧은 시간에 두 번의 업그레이드가 끝나고 거울 망령의 미궁은 3등급에 올라섰다.
“음, 조금 더 지켜봐야 하나.”
아직까지는 기존의 미궁과 크게 차이 나는 점은 없었다. 다소 특이한 점이라면 미궁을 오가는 망령 노역자들의 존재감이 기이할 정도로 존재감이 없다는 점 정도였다.
그것을 제외하고는 거울 망령의 미궁은 여느 평범한 미궁과 똑같았다.
지금 같아서는 오히려 비단 개구리의 둥지가 오히려 더욱 쓸 만할 지경이다.
3등급에 올라 소환된 오색 개구리 병사들은 일신의 전투 능력은 보잘것없었지만, 적의 몸을 마비시키는 독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꽤나 유용했다.
실제로 시험해 본 결과 나가 용사와 투사들은 물론 호법룡마저도 일순간이나마 근육이 굳는 효과가 있었으니 의외로 비단 개구리들을 쓸 곳이 있을지도 몰랐다.
다만 큰머리 난쟁이들은 정말로 쓸 곳이 하나도 없었다.
하다못해 일꾼들마저도 커다란 머리통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팔다리 탓에 맡은 일도 제대로 못할 지경이니 그 이후로 나온 소환수들의 쓸모없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그러한 사정은 거울 망령의 미궁이 4등급에 오르는 순간 역전되고 말았다.
거울 망령의 웅덩이라는 호칭을 얻은 이 미궁은 4등급에 오르기가 무섭게 많은 것이 변했다.
가장 특이한 것은 4등급에 오르기까지 생성된 소환수의 목록이 오직 둘이었다는 것이다. 망령 노역자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소환수도 생성되지 않아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거울 망령(하급) (70)
*실체 없는 이 망령들은 산 자가 죽기 전에 본 자신의 환영과도 같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죽인 자들의 모든 것을 약탈하는 끔찍한 존재들입니다. 희생자의 능력과 외모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자신의 손에 죽지 않은 존재라도 온전한 사체를 흡수하는 행위를 통해 거울 망령은 사자의 능력을 일부 훔쳐 올 수 있습니다.)
(망령의 등급을 넘어서는 희생자의 능력과 모습은 훔칠 수 없습니다.)
(망령을 임의로 성장시키려면 소환석이 필요합니다. 그들은 소환석 속의 소환수와 똑같은 능력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소환수를 희생해 망령을 변화시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시험 삼아 잡아온 9층의 크리쳐를 그들 사이로 던져주었더니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망령 중 하나가 희생된 크리쳐의 생전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보였다.
그 광경을 지켜본 김진우는 거울 망령의 가치를 깨달을 수 있었다. 능력을 훔쳐 낼 존재들만 있다면 그들은 무궁무진한 변화를 보여줄 것이다.
물론 그때까지는 망령 노역자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하릴없이 미궁을 떠돌아야 한다는 점이 다소 아쉬웠다.
“그래도 이건 진짜 대박이군.”
비록 자신의 등급을 벗어난 상대의 능력을 훔쳐 내지는 못하지만, 그는 거울 망령들을 보며 만족스러운 얼굴을 했다.
“꽥!”
하지만 그에 반해 비단 개구리들은 특별히 달라진 점이 없었다. 혹시라도 등급이 올라가며 마비 독이 맹독으로 변하지는 않았을까 기대해 보았지만, 오색 개구리 병사들이 내뿜는 독액은 여전히 마비의 효과만 지니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쪽은 조금 더 성장을 시켜봐야 그 향후 거취를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에 반해 큰머리 난쟁이들의 미궁은 여전히 쓸모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미궁의 활동을 정지시키고 그대로 핵을 추출해 버렸다.
“그래도 이대로 합성하기에는 조금 찝찝하군.”
자신의 손에 들린 것이 지저에 유일한 큰머리 난쟁이들의 원천이라는 사실이 그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이대로 합성에 핵을 사용했다가는 큰머리 난쟁이 일족 자체가 지저에서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래서 그는 고민 끝에 이 처치 곤란의 핵을 강화의 실험 재료로 사용했다. 상급 나가 마법사들이 신이 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큰머리 난쟁이의 심장을 강화합니다.] [잘게 쪼갠 미궁의 파편이 필요합니다.] [버려진 미궁의 파편을 사용해 핵의 강화를 시도하시겠습니까?]“하겠다.”
이번에도 큰 변화가 없을 경우 그는 큰머리 난쟁이들을 지저에서 지우기로 마음먹었다.
[큰머리 난쟁이의 심장이 강화되었습니다.]“뭐야? 이게 끝이야?”
그 어떤 부연 설명도 없었다. 짧은 섬광과 함께 떠오른 메시지 한 줄, 그게 강화 작업의 끝이었다.
다소 차이가 있다면 최상급 다운 잼이 무색하게 탁한 빛을 발하던 큰머리 난쟁이 미궁의 핵이 아주 약간이나마 광채를 띠었다는 점이다.
그걸 보면 강화의 효과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안 돼!”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에 다가온 상급 나가 마법사들이 다시 강화를 시도하려는 것을 김진우가 단호하게 제지했다.
만약 강화의 효과가 대단치 않다면 굳이 애물단지 핵을 들고 고생할 필요가 없었다.
설령 대단하다고 한들 애초부터 변변치 않은 큰머리 난쟁이 미궁의 핵을 강화하느니 다른 쓸모 있는 핵을 강화하는 게 이득이다.
그 점을 뒤늦게 깨달은 그는 연구실의 책상 위에 늘어놓은 핵과 파편을 갈무리했다. 바로 곁에 있던 나가 마법사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지만 그는 무시했다.
“아니, 이런 게 있다면 진즉 이야기를 해주셨어야지요!”
처치 곤란의 핵을 처리해 준 것은 뜻밖에도 암상인이었다.
미궁을 귀히 여기는 암상인이라면 어쩌면 이 쓸모없는 종족마저도 귀히 여기지 않을까 했더니 역시나 그랬다.
“아니, 정말로 쓸모없는 놈들이라니까. 팔다리가 짧은데 머리통이 너무 커서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래도 금방 탄로 날 거짓말로 핵의 가치를 부풀릴 수 없어 김진우가 솔직하게 사정을 토로하니 암상인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아…….”
그러고 보니 큰머리 난쟁이 일족의 생김새가 암상인과 판박이다. 그 붉은 피부색이나 뾰족한 귀를 제외하면 큰 머리 난쟁이나 임프나 큰 차이가 없었다.
본의 아니게 짧은 팔, 다리, 그리고 큰 머리를 두고 인신공격을 한 모양새가 되었다. 그가 민망한 얼굴로 헛기침을 했다.
“이 세상에 쓸모없는 종족은 없습니다.”
그런 그를 보며 암상인이 낮게 혀를 차고는 표정을 달리 했다.
“새롭게 태어나는 종족보다 사라지는 종족이 훨씬 많다는 건 알고 계시지요? 새로운 일족의 탄생은 그 자체로 경사스러운 일입니다.”
암상인이 늘 이런 말을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블랙 머천트는 절대로 평범한 상인 집단이 아닌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윤을 추구해야 할 상인이 이리도 지저의 모든 것을 귀하게 여길 리가 없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암상인을 바라보고 있자니 암상인이 괜스레 헛기침을 했다.
“혹시 또 이런 일이 있으면 언제든 불러주십시오. 바로 달려오겠습니다.”
미궁을 귀히 여기라며 잔소리에 시달릴까 걱정했건만, 다행스럽게도 암상인은 합성까지는 생각이 닿지 않은 모양이다.
크게 잔소리하는 일 없이 그에게 건네받은 미궁의 핵을 신주단지 모시듯이 안고 돌아갔다.
***
암상인이 돌아간 이후 김진우는 거울 망령의 활용법을 두고 고민을 거듭했다.
제대로 된 재료만 있으면 전천후 만능 군대가 만들어질 것도 같은데, 당장 쓸모 있는 존재들이 눈에 띄지를 않으니 답답할 지경이다.
“아!”
그러던 와중에 김진우는 지난 전쟁에서 발리셔스에게 넘겨주었던 수많은 시체가 떠올라 저도 모르게 무릎을 탁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