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an Actor’s Book RAW novel - Chapter (100)
100.
스튜디오 시티는 영화인들이 대거 모여 사는 동네다.
배우, 감독, 제작자, 아티스트 할 것 없이 서로가 이웃이며, 크루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영화감독 겸 할리우드 스타로 이름을 날리는 조셉 이든 캣맨은 의외의 섭외 전화를 받았다.
“음악 영화?”
본인은 30대 중반이 훌쩍 지났다.
청춘을 논하기에는 나이가 조금 많다는 흠이 존재하지만, 남자 배우들에게 30대라는 나이는, 가장 많은 작품을 소화할 수 있는 시기다.
분장에 따라 20대부터 40대 아버지 역할까지. 다양한 배역을 소화할 수 있다.
“… 글쎄.”
하지만, 반응은 조금 회의적이었다.
말 못하는 아티스트.
모든 대사를 단음과, 눈빛으로 표현해야하는 역할은 배우라면 충분히 매력을 느낄 수 있다는 강점이 존재했지만.
이미, 모든 준비가 끝나가는 영화가 아닌가?
다급하게 주연 배우를 찾는다는 것은, 내부에 무슨 문제가 생겼다는 의미다.
“이유가 뭐죠?”
– “자세한 얘기는 만나서 하고 싶은데요. 조셉이 흥미만 있다면요.”
“….”
잠시 고민했다.
간절해 보이긴 했으나, 거절하려는 의사를 밝히려던 찰나.
말을 고민하고 있는 그 때, 하이마운트 제작PD가 말했다.
– “도재희가 참여하는 영화예요.”
“응? 누구요?”
– “도재희. 선댄스에서 보셨다는 배우요.”
“알아요. 알죠. 그걸 묻는 게 아니라…. 재희가 그 영화에 참여한다고요?”
– “네.”
조셉 이든 캣맨의 얼굴이 조금 달라졌다.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우선, 얘기나 들어볼까요.”
*
“한국에 돌아가자. 재희야.”
“맞아요. 오빠가 이런 취급 받아야 해요? 그냥 한국가서 편하게 작품해요.”
“….”
재익이 형의 감정적인 대응은 이해한다.
이런 대접을 받을 아이가 아닌데, 왜 굳이 여기까지 왔는데? 그 마음을 너무나 잘 알기에.
나는 조금 이성적으로 대처했다.
“우선, 영화사 측 의견을 들어보도록 하죠.”
“영화사? 당연히 주연 배우 감싸고돌게 뻔하잖아.”
그래, 맞는 말이다.
주연 배우라는 자리는, ‘투자자’ 즉, 물질적인 가치와 얽혀있다. 인지도가 높지만 사생활이 엉망진창인 배우들도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것들이 모두 이런 부분.
하지만.
“모르죠. 하이마운트는 거대한 곳이잖아요.”
삼류 영화사도 아니고, 이런 거대한 영화제국이 인종차별 문제를 조용히 묵인할까 싶기도 했다.
또, 성급하게 판단을 내리고 싶지 않을 뿐이다.
이 영화에 자리 잡지 못하면, 그 패널티 역시 내가 안고 가야한다.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분위기를 쑥대밭으로 만들다니.
내가 참았어야 했나?
그 때, 에이전트 빌이 전화를 받으며 복도 휴게실로 나왔다.
“하이마운트에요.”
그리고 심각한 얼굴로 하이마운트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통화를 마친 빌이 “잠시 만요.” 라고 중얼거리더니.
재익이 형과 통역사를 대동한 채 어딘가로 사라졌다.
영미 씨와 초희 씨는 궁금해 하며 그 자리에 멍하니 앉아 초콜릿을 까먹기 시작했다.
“뭐지?”
“그러게요. 궁금하네.”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대략 5분 정도가 흐르고 재익이 형과 빌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무슨 일 있어요?”
내 물음에 재익이 형이 약간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하이마운트로 넘어가자.”
“네? 왜요?”
“존 미켈이 ‘하차’ 하겠다고 말한 모양이야.”
“….”
기어코, 사고를 치는구나.
*
멀리 떨어지지 않은 하이마운트 사무실에서 아주 의외의 인물과 조우했다.
“조셉?”
선댄스에서 내게 식사와 함께 캐스팅제의를 했던 조셉 이든 캣맨. 그가 나를 보며 활짝 웃었다.
“오랜만이에요. 재희.”
“아니, 여긴 어쩐 일이에요?”
내가 놀라며 물었다. 그러자 조셉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요? 여긴 우리 동네라고요.”
“….”
아, 그렇지.
이방인은 나잖아.
내가 피식, 웃자 조셉이 다 안다는 듯 말했다.
“얘기는 대충 들었어요. 일단 안으로 들어갈까요?”
“아, 네.”
뭘까?
조셉 이든 캣맨이 갑자기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우연히 있었다고 마주쳤다고 하기에는, 마치 이번일의 관련자처럼 나와 함께 동행 한다.
우리가 함께 도착한 곳은, 하이마운트의 어느 사무실.
그곳에는 폴 안토니 감독을 포함해, 엘라니 오코너. 오디션에서 보았던 하이마운트 크루들이 앉아있었다.
생소한 이들도 몇몇.
“어서 와요.”
나와 조셉이 쇼파에 앉았다.
엘라니 오코너와 폴 안토니 감독 역시, 제법 밝은 얼굴이었고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하이마운트의 실무를 맡고 있는 ‘케빈’ 이라는 남자가 내게 명함을 내밀었다.
그리고, 매우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재희. 한국의 유명한 무비 스타를 초대해놓고 이런 ‘조잡한’ 일로 불편하게 만들어서 미안합니다. 저는 케빈이라고 합니다. 하이마운트의 이사를 맡고 있죠.”
이사. 거물이다.
그리고 이런 거물이 ‘조잡한’ 이라는 단어를 제법 힘주어 말하는 것이…
어째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네, 무슨 일입니까?”
내 물음에 케빈이 제법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결론을 말씀 드리자면, 존 미켈이 영화에서 빠질 예정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조셉 이든 캣맨이 맡기로 했어요.”
나는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 네?”
“우리 영화사는, 이런 문제를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인종차별주의는 사라져야죠.”
케빈이 말한 이야기의 전말은 이랬다.
존 미켈이 하이마운트를 찾아와, 하차 의사를 전달했고.
하이마운트 측은, 존 미켈을 설득하거나 나를 궁지로 몰아넣는 것을 선택하는 대신.
“저를 데려 왔죠.”
조셉 이든 캣맨을 섭외했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영화에 참여하겠다는 결정을, 시나리오도 제대로 읽지 않고 하루만에 내릴 수 있었던 이유가 뭐야?
내가 되묻자, 조셉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
“그야, 나중에 재희 때문이죠.”
“네?”
“전에 제의했던 제안은 아직 유효해요. 제 영화에 출연시키고 싶다는 제안. 그러니, 이번에 제게 빚졌다고 생각해요.”
하하, 그러니까.
“저 때문에 참여 하신 거라고요?”
그러자 조셉이 짓궂게 웃으며, 내게만 들리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영화사에는 비밀이에요. 솔직히 영화는 구려요. 근데, 엘라니 오코너 씨의 음악과 재희가 참여한다고 하니, 참여하기로 결정했어요.”
“…..”
이런 시원시원한 남자 같으니.
내가 케빈에게 물었다.
“존 미켈은 순순히 물러나겠다고 하던가요?”
그러자 케빈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뭘 어쩌겠어요. 본인이 먼저 제안한 일인데.”
*
존 미켈은 영화사의 부름을 받고 다시 사무실로 들어섰다.
“결정 하셨습니까?”
그의 표정은 당당함 그 자체였다.
자신이 내게 밀릴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그런 당당함.
아니, 오만함인가?
하지만 이런 존 미켈은, 쇼파에 앉자마자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축객령’을 듣게 되었다.
“존 미켈. 원하는 대로 하차하세요.”
“…. 에?”
“하차하시라고요.”
존 미켈의 얼굴이 종잇장 구겨지듯 구겨졌다.
“주어가 빠진 거 아닙니까? 그 동양인이 아니라, 나를?”
“네.”
“그, 무, 무슨 그런 농담을….”
“어쩔 수 없죠. 그렇다고 아무 죄 없는 재희를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
“아, 혹시나 남겨질 영화에 대해 미안해 할 필요는 없어요. 이미, 다른 배우로 섭외를 마친 상황이니까.”
존 미켈은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뭐? 고작, 하루만에?”
하루 만에 대체자를 구했다고?
그럼 빼도 박도 못하고 나가리라는 말이다.
“저 나가있으라고 하고, 그 시간동안 대체자를 구했다고?”
“뭐, 그렇게 되었네요. 영화는 찍어야하고, 우리도 살아야하니까.”
“….”
유치한 ‘갑질’로 시작했던 사소한 에피소드가, 이렇게 되어버렸다. 도재희가 사과만 한다면, 적당히 용서해주고 끝내려고 했던 문젠데.
왜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존 미켈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 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하이마운트 이사 케빈의 눈이 차가워졌다.
“미켈, 당신이 자초한 일이잖아요.”
“그게 무슨 말이죠?”
“몰라서 묻는 겁니까? 크랭크인 까지 한 달 남은 영화에 하차하겠다는 말을 던져놓고, 이제 와서 우리에게 책임을 묻는 겁니까?”
케빈의 언성이 조금 높아졌다.
그리고 더 말하기도 귀찮다는 듯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
“인종차별이라니. 정말, 기가 막히는군. 요즘이 어느 시댄데 면전에다 대놓고 이런 일을 벌이다니. 이번 일은, 조용히 덮기로 했으니. 그냥 물러나세요.”
존 미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내가 두 팔을 들어올렸다.
“이거, 감사합니다.”
제법 공정한 방향으로 일처리를 한 것에 대한 감사.
그러자 케빈은 무슨 말이냐는 듯 말했다.
“아뇨, 저희가 감사드려야죠.”
“네?”
“재희 덕분에, 조셉 같은 스타를 섭외할 수 있었으니까요.”
내가 조셉을 바라보자, 조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모두 재희 덕분이죠. 하하”
*
이 소식을 모두 전해들은 재익이 형은 황급히 한국으로 전화를 걸었다.
지금, 한국 시간으로 새벽일 텐데.
음, 모르겠다.
어쨌든, 이번일이 있고 나서 제일 먼저 L&K에 보고했던 모양이었는데 모든 일이 잘 해결되자 가벼운 얼굴이었다.
“잘 해결 되었어요. 주연이 바뀌었다니까요? 존 미켈 그 싹퉁 바가지가 아니라! 무려, 조셉 이든 캣맨이라고요. 네! 재희한테 홀딱 반했던 그 할리우드 스타!”
짧은 시간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그 날 저녁은.
“영미 씨, 오늘은 술 마시자고”
“오예!”
영미 씨와 초희 씨에게 내려졌던 재익이 형의 ‘금주령’이 해제되는 날이었다.
우리는 인근 마트에서 술을 잔뜩 사서는, 숙소 안에서 파티를 벌였다.
에이전트가 추천한 식당에서 바비큐와 햄버거, 감자튀김 따위를 잔뜩 사들고 양주와 맥주를 섞어 마셨다.
“양맥의 황금 비율을 아시나요?”
메이크업 아티스트 초희 씨는, 이런 자리가 익숙하다는 듯.
버번 위스키와 인디카 IPA를 기가 막히게 섞어내며 우리에게서 ‘드링크 아티스트’ 라는 별명을 얻어냈다.
“우와, 이거 대단한데!”
“여하튼 그 얼굴만 반지르르한 그놈, 꼬시다 꼬셔!”
우리는 음식을 양껏 배불리 먹고, 내일 스케줄이 예정되어있기에 적당히 취한 상태로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할리우드의 새로운 밤.
나는 숙소 한 켠에 올려져있는 [아다지오>의 스크립 대본을 들여다보았다.
거기에는 존 미켈의 얼굴이 떡하니 프린팅 되어있었지만.
이제는 기존 대본들이 모두 회수되고, 조셉의 얼굴과 내 얼굴이 찍힌 새로운 스크립 대본이 나올 예정이다.
물론, 조셉의 제안이었다.
‘재희랑 같이 넣으면 어때요?’
하이마운트는 흔쾌히 승낙했다.
그리고 며칠 뒤.
조셉과 내 얼굴 사진이 프린팅 된 새 대본을 받아든 나는 놀라 그대로 멈춰서고 말았다.
“…. 어?”
[73/100] (+17)뭐지?
원래, 이 점수였던가.
아니다.
[65/100] (+21) 원래 이게 아니었던가.소름이 쫙 돋아나는 순간이다.
왜 수치가 갑자기 변한 걸까?
배우가 바뀌어서?
“….”
이거 뭐야 도대체.
[ 책 먹는 배우님 – 100화. > 끝ⓒ 맛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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