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an Actor’s Book RAW novel - Chapter (103)
103.
“전부 재희 팬들이야? 한국에서 여기까지 온 거야?”
“….”
그런 듯 보입니다만.
조셉은 신기하다는 듯 웃으며, 다시 카메라 앞으로 돌아갔다.
커피차와 떡볶이 차는 13번 스튜디오 뒤에 정차한 뒤, 은근슬쩍 매콤하고 달짝지근한 냄새들을 풍기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냄새지?”
한국의 냄새입니다.
이무택 대표님은 선글라스를 끼고 터질 듯 우람한 근육질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딱 달라붙는 정장을 입고 계셨는데.
“재희야!”
내게 한달음에 달려오시더니 나를 와락 껴안으셨다.
“잘 지냈냐!”
“으앗! 아, 하하.. 네. 대표님. 으억, 잘… 지내셨죠?”
이무택 대표님이 내 어깨를 붙잡고 말했다.
“왜 이렇게 살이 빠졌어? 못 먹고 지내? 음식이 입에 안 맞아?”
“너무 잘 먹어요.”
그러니까, 이것 좀 놔주세요.
“우와, 도졌다….”
“재희 오빠! 여기 좀 봐주세요!”
이런 대표님 모습을 부러운 듯 바라보는 팬들의 시선과 카메라가 없어서 아쉽다는 듯 군침을 삼키는 기자들의 시선이 내게 쏟아진다.
“하하, 안녕하세요. 도재희 입니다.”
“꺄아아아!”
“…. 아하하.”
음, 어쨌든 조금은 부담스러웠던 만남이,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한결 부드러워진다.
아아.
조금은 그리웠나보다. 이런 느낌.
이무택 대표님이 내게 물었다.
“점심은 먹었어?”
“아직요.”
“그래? 배고프겠다. 가서 떡볶이 좀 먹어.”
“촬영 끝나고 크루들이랑 다 같이 먹을게요.”
“그래? 먼저 먹지 그래?”
“…”
그냥 같이 먹을게요. 대표님.
그 때, 박찬익 팀장님이 대표님의 귀에 대고 무슨 말을 속삭이셨다.
그러자 이무택 대표님이 생각났다는 듯.
딱, 딱! 엄지와 중지를 튕기시더니.
“아아. 맞네, 맞어. 인사 시켜드려야지. 어디보자… 이리 오세요. 이쪽으로.”
이무택 대표님은, 팬들 중 가장 수려한 외모를 자랑하는 여성 한 명을 내게 소개했다.
“재희야. 인사 드려. LA에서 떡볶이 차 섭외하신 1등 공신. 우리…. 죄송한데, 성함이 뭐라고 하셨더라…”
“도졌다리요.”
“아, 도졌다리님.”
“… 예?”
뭐라고?
순간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
내 얼굴에 물음표가 뜨자, 여자가 얼굴을 잔뜩 붉히며 내게 말했다.
“아, 안녕하세요오. ‘도재희도졌다리’ 입니다.”
“… 아.”
나는 그제야, ‘도재희도졌다리’ 라는 닉네임을 쓰는 내 팬 카페 회장이라는 것을 눈치 챘다.
“회장님이셨구나. 반갑습니다.”
내가 싱긋 웃자.
“처, [청춘열차> 때부터 팬이었습니다….!”
묘한 말투로 얼굴을 붉히는, 우리의 도졌다리 님.
어감이 조금 이상한 걸?
그 뒤로, 팬들의 인사가 이어졌다.
“안녕하세요. 오빠… 재희 Lover입니다.”
“재희 씨보다 나이는 한 살 많은데, 오빠라고 불러도 되죠? 저는 재희곰푸우 라고 해요!”
“도도재희 라고 합니다. 오빠 보고 싶어서 여기까지 왔어요. 힝.”
“….”
그만, 그만해.
나는 오글거리는 손가락을 쫙, 펴며 활짝 웃었다.
“모두 반갑습니다.”
그래.
닉네임이 어찌되었건 그게 뭐가 중요하겠는가? 이렇게 힘이 나는데.
“여기까지 와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내 인사에 10인의 팬들이 즐거움의 비명을 내질렀다.
“꺄아-!”
그 때, 연출팀 크루가 다가와 말했다.
“재희, 촬영 시작 할게요.”
“아, 네.”
이제 내 차례다.
촬영이라는 말에, 팬들이 웅성웅성 거리기 시작했다.
“대박! 오빠가 연기하는 모습을 실제로 보게 되다니.”
“곧 죽어도 될 정도야!”
“사진 찍고 싶다. 사진! 소장하고 싶다아!”
“….”
하하, 졸지에 팬들 앞에서 연기를 하게 되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평소보다 조금 떨리는 마음을 안고 카메라 앞에 섰다.
*
음악영화의 가장 큰 묘미는, 주변 동료들을 하나 둘 모으며 조금씩 성장해가는 장면들에 있지 않을까.
지금의 내 장면이 그렇다.
이렇다 할 공연장이 없어, 길거리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나와 조셉이 처음 마주하는 장면.
북적이는 LA 거리에서 그 누구도 내게 관심을 가지지 않지만, 유일하게 조셉만이 내게 관심을 가진다.
우리는 서로 말이 통하지는 않지만, ‘음악’이라는 공통점 하나로 같은 것을 보고, 같은 의미를 가지는 장면이다.
앞의 버스킹 팀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기타 케이스에 턱을 묻고 돌담에 앉아 무료한 표정을 짓는 나.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편의점에서 파는 콜라와 햄버거를 오물거리는 나.
이를 지켜보는 조셉의 신기하다는 얼굴.
일련의 인서트 촬영이 끝나고, 본격적인 슛 사인이 돌아갔다.
나는 기타와 낡은 고물 앰프 하나를 들고 자리를 잡았다.
기다란 리드선을 연결하고, 접이식 의자를 펼쳐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그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지만, 나는 나만의 노래를 시작했다.
아무도 없는 집 empty house with no one
혼자 집에 앉아 Sit alone at home
씹는 싸구려 비스킷 Chew cheap biscuits
믿을 것은 목소리와 기타 뿐.
삼류멜로디에 어거지로 붙인 가사를 오랫동안 들어줄 사람은 없다.
작곡에는 재능이 없었으니까.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나를 무심하게 힐끔거리다, 다시 발길을 재촉할 뿐.
그런데 그 때.
조셉이 내 앞에 멈춰 섰다.
그는 내 음악을 조용히 듣더니, 멈춰서서 웃어보였는데.
내 곡이 끝나자 그는, 주머니에서 메모장을 꺼내 들더니 펜으로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그 메모장에는.
[이거 한 번 불러볼래요?]라고 적혀있었고, 조셉은 내게 악보 하나를 건네주었다.
“….”
나는, 약간의 경계가 담긴 눈초리로 악보를 받아들었다.
“악보네요?”
악보다.
오선지 위에 무성의하게 펜으로 칠해져있는 음표들.
재미있는 점은, 단 한 부분도 수정한 흔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거, 연주해 달라고 하는 건가요?”
내 질문에, 조셉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뭐야, 갑자기…
하지만 나쁜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유일한 관객이시니까. 신청곡은 서비스.”
나는 쓰게 웃으며, 악보에 기재된 음표를 하나하나 밟아 내려갔다.
음표 위에 쓰여 있는 기타 코드를 두어번 되짚으며, 스트로크를 바꿔가며 정리해보는데.
“음! 음! 음!”
조셉이 괴상한 소리를 내며, 긍정신호를 보낸다.
“말로 하시지….”
어쨌든, 이렇게 치는 거 맞다고 하는 거 같지?
연주를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끄덕여지는 고개. 본능적으로 리듬을 쫓는 오른발. 주변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멜로디.
나는 왼손으로 기타 줄을 움켜쥐며 그대로 멈춰섰다.
그리고, 눈을 화등잔 만하게 뜨고 물었다.
“이 노래, 당신이 썼어요?”
조셉의 의미심장한 웃음 바스트 컷.
그리고 묘한 기대감에 몸부림치는 내 얼굴 타이트 바스트.
입술이 옴짝달싹 거린다.
“… 대답해요.”
– 오케이!
마지막 대사와 동시에 무전기에서 오케이 사인이 터져 나왔고
“수고했어, 재희.”
“고생하셨어요.”
“꺄아아아아!”
10인의 팬들 사이에서 별안간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이, 참.
쑥스럽다고요.
*
커피와 츄러스. 그리고 떡볶이와 김밥, 어묵 국물이 있는 분식은, 한국 촬영장에서 빠질 수 없는 조합들이다.
암.
대한민국 국민들 모두가 좋아하는 음식들이지.
이런 한국의 맛은, LA에서도 제법 별미로 통했다.
“으앗! 매워!”
“근데 맛있어!”
맵다고 야단법석을 떨면서도, 맛있다고 유난을 떨며 먹는 크루들을 보고 있으니,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하하, 천천히 드세요.
“재희, 너무 잘 먹었어요. 조금 맵긴 했지만… 이거 이름이 뭐라고요?”
“떡볶이요.”
“떠뽀끼. 오케이.”
매콤한 한국식 떡볶이와, 미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간장베이스 떡볶이 까지.
오늘 점심은 떡볶이라고!
나는 분식 차 옆에서 크루들에게 하나하나 설명했다.
“제가 준비한 게 아니라, 제 팬들이 준비해줬어요.”
그러자 폴 안토니 감독은 ‘도졌다리’님에게 직접 감사 인사를 표하기도 했다.
“너무 잘 먹었습니다.”
폴 안토니 감독은 한국에서 온 내 팬들에게 진심으로 감동한 듯 보였고, 보다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어 보답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자 도졌다리님은 자신이 입고 있던 재킷 단추를 풀어헤치더니, 속에 입고 있던 반팔 티셔츠를 드러내보였다.
“어때요?”
“오 마이 갓!”
“재희!”
그녀의 반팔 티셔츠.
내 얼굴이 그려진 캐리커쳐 티다.
“….”
맙소사, 저런 건 언제 준비한 거야?
그녀는 캐리어에서 똑같은 티를 잔뜩 꺼내들더니, 영화 크루들에게 일일이 나눠주기 시작했다.
크루들은 재밌어 하며 티를 받아들었고, 다수의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티셔츠를 입어보았다.
“이거, 썩 마음에 드는 군.”
“재희와 24시간 함께 있는 기분이야. 훌륭해!”
“…..”
하지만.
부끄러움은 왜 내 몫일까.
도졌다리님이 말했다.
“제가 쇼핑몰을 운영하거든요. 이번에 한번 준비해봤어요. 혹시, 마음에 안 드시나요?”
“아, 그럴 리가요. 너무 감사합니다.”
“그럼, 괜찮으시면… 오빠도 입어주시면 안되나요?”
“아, 네.”
도졌다리님은 쑥스러워 하면서도 할 건 다 하는 여자였다.
그녀는 결국 내 옷까지 갈아입히는 데 성공했다.
“꺄르르 너무 잘 어울려!”
“….”
그녀는 프로다.
“이제 슬슬 나갈까요?”
어쨌든, 오늘의 내 촬영 일정은 모두 끝이 났고 이제 부터는 자유시간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기자 및 팬들과의 데이트 시간.
“가시죠.”
우리는 촬영장에서 빠져나와 하이마운트 사내 로비로 들어섰다.
통제되었던 휴대전화 사용 및, 카메라 사용이 허가되는 순간.
우리는 하이마운트 회사 로고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기자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 도중.
“엇! 잠시만요!”
사내 로비를 지나던 내 캐리커쳐 티를 입은 크루들을 붙잡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오랜만의 단독 기삿거리에 기자들의 입이 귀에 걸렸다.
“김치. 김치라고 말하면 되요.”
“킴-치?”
“예스, 예스.”
“킴-치!”
“좋아요. 오, 그림 좋다.”
“….”
동서양을 막론하고 도재희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모여 찍은 단체사진.
아마도, 한국에 이런 제목으로 기사가 나가지 않을까.
[도재희 IN 할리우드. 너도 나도, 도재희에게 도져버렸다.]“….”
상상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리는걸.
기자님, 제발요.
그 뒤로는, 팬들과 LA 맛집과 명소를 둘러보며 사진을 찍었다. 정해진 팬 미팅 일정만 소화하면 되었던 한국과는 다르게 끝없는 ‘무한’ 사진 촬영이 이어진다.
“꺄하하하! 오빠! 여기 좀 보세요!”
“으익! 내가 너무 못 나왔다. 꺄르르! 다시! 다시!”
“….”
“아앗! 눈 감았어요. 한 장 더요!”
“오빠! 무슨 생각해요! 웃어요!”
“아, 하하…”
“꺄르르르!”
김-치.
정말이지, 사진 찍는 기계가 된 기분이군.
소소하지만, 팬들의 마음이 담긴 선물들.
다행히, 할리우드 크루들은 우리 팬들의 마음을 귀엽게 봐주었고.
나 역시, 만족스러운 하루다.
그러던 와중, 난데없이 카메라 및 조명 장비들이 잔뜩 실린 봉고차가 우리가 앉아있던 가든 앞에 정차했다.
“왔다.”
‘일상적인’ 스케줄에 들이닥친 ‘비일상적인’ 손님들.
촬영 팀들이 분주하게 장비를 세팅하며 라인을 맞춰서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만들어진 촬영 팀과 우리들의 경계.
“… 왔군요.”
팬들은 들뜬 얼굴로 소리쳤다.
“TV 출연이라니!”
“그럼 미국에 제 얼굴이 나오는 건가요?”
이게 무슨 일이냐.
투자를 했으면, 그 만큼 이익을 취해야하는 것이 회사다.
팬들에게 돈을 쓴 만큼, 방미 일정에서 확실하게 뽑아먹어야 했던 L&K는 한국의 기자들 뿐 만 아니라, 미국 현지 방송국 까지 섭외했는데, 이들이 바로.
“하이. 저는 KAN [니콜라스 인터뷰>의 니콜라스입니다.”
캘리포니아의 지역 방송 KAN의 기자들과 니콜라스라는 이름의 연예인 리포터였다.
미국 전 주(州 )에 방영되는 큰 방송은 아니다. 그런 곳은 섭외하기도 까다로울뿐더러, 내 스케줄에 온전히 맞출 수도 없겠지.
딱, 캘리포니아(LA, 오렌지카운티, 샌디에고)내의 주민들에게 소개되는 일종의 지역지.
하지만, 언젠가 오프라 쇼 같은 미국의 대형 TV쇼에 진출 시키려는 L&K의 첫 단추로는 부족함이 없다.
캘리포니아는 미국 인구의 10%를 차지하며, 전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니까.
이런 곳에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인터뷰 방송을 하는 것이다.
리포터인 니콜라스가 말했다.
“한국의 슈퍼스타를 보기 위해, 13시간을 날아온 팬들이 있습니다. 과연, 이 슈퍼스타는 누구일까요?”
아하하.
네, 저요. 저.
[ 책 먹는 배우님 – 103화. > 끝ⓒ 맛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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