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an Actor’s Book RAW novel - Chapter (106)
106.
무대 위 쇼파 가장 좌측에 게라드가 앉았고. 센터에 조셉이. 가장 우측에 내가 앉았다.
[게라드 쇼>의 시작은 그 소문난 명성에 비해 아주 부드럽게 흘러갔다.“요즘 촬영 중인 영화는 무슨 내용입니까?”
“노래하는 청춘들에 대한 영화입니다. 꿈은 있지만, 아직은 올라서지 못한 뮤지션들에 대한 휴먼 영화죠.”
“그거 진부하지만 흥미로운데요. 이런 영화는 힘이 있죠. 지금은 사이드에 숨죽이고 살지만, 세상을 향해 소리쳐요. 네들만 살아있냐! 나도 버젓이 숨 쉬고 있다! 이렇게.”
“하하! 맞아요.”
“촬영은 어때요?”
“모든 게 다 좋아요. 벌써 막바지 촬영이 진행 중입니다.”
조셉의 근황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고 5분여가 흘렀다.
그 때, 돌연 게라드가 미끼를 던졌다.
모두 약속된, 레퍼토리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 폴 안토니 감독의 차기작에 캐스팅 확정이 되었다는 배우는, 조셉이 아니라 다른 배우였어요. 그게 누군지는 여기 모두가 알지만, 우리는 그를 존중하기에 앞으로 이 배우를 A라고 하죠. 여기서 질문. 근데, 왜 하루 만에 주연 배우가 A에서 조셉으로 바뀐 거야? 모두가 궁금해 한다고요.”
게라드의 질문의 끝이 내게 향했다.
“여기에 대해 할 말이 있다고요. 재희?”
정확한 타이밍에 쓰리 카메라가 번쩍였고.
나는 피해자가 되는 대신.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여유롭게 말했다.
“대단한 일은 아니에요. 뭐, 흔하게 따라 붙는 일종의 질투 같은 거죠. 너, 피부색이 왜 이래? 나랑 왜 다른거야? 블라블라블라.”
“재희. 우리는 확실하게 대답해주길 원해요. 지금, A에게 인종 차별을 당했다는 말인가요?”
“아뇨. 단지 제가 지나가자 코를 틀어막으며 불쾌한 표정을 지어보였을 뿐이에요. 실제로 A에게 잘못은 없을지도 몰라요. 갑자기 자기 발 냄새가 역겹게 느껴졌다거나, 코에 파리가 들어갔을지도 모르죠.”
내 말에 좌중이 웃음바다로 변했다.
“크하하! 심각한 문제를 가볍게 말하는 재주가 있네요.”
“새겨들을 필요가 없으니까요. 아마도 제가 LA에 머무는 동안 앞으로도 비슷한 얘기가 앞으로도 따라 붙을 겁니다. 너는 왜 여기에 있는 거야? 한국으로 돌아가! 이렇게요. 이건 일종의 고칠 수 없는 질병(Bug)이죠. 하지만 한국에는 이런 말이 있어요. 벌레(Bug)도 밟으면 꿈틀 거린다고. 그래서 난 계속 꿈틀거려 줄겁니다.”
미국인들은 이런 언어유희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게라드가 빵! 하고 터져버렸다.
“크흐하하하하! 벌레가 되지 않으려면, 앞으로 입 조심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그래서요?”
“뭐, 꿈틀거렸죠.”
“크하하!”
그 뒤로는 우리가 다 아는 이야기다.
“난 A에게 따져 물었죠. 네 태도를 확실히 해! 이 유치한 자식. 그 뒤로, A가 영화사에 하차 의사를 밝혔어요. 저와 함께 하기 싫었던 모양입니다만. 정작 하차한 사람은 A가 되었죠.”
분위기는 내게 매우 호의적으로 돌아갔다.
한 때. 파파라치 매거진을 운영하며, 할리우드 헌터로 불리던 게라드가 공영방송의 사회자가 된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화끈하네요!”
최소한, 뭐가 맞는 건지에 대해서는 안다.
게라드가 힘주어 말했다.
“제가 대신 경고해주고 싶어요. 이런 일은, 할리우드를 욕보이는 일입니다. 반드시 사라져야 해요. 최근 시상식에서도 이와 같은 문제가 불거진 것으로 아는데. 이는 할리우드의 수치입니다.”
그리고 나는 웃으며 말했다.
정확한 타이트 바스트에, 카메라를 노려보며.
“앞으로도 비슷한 일이 생길 시에는, 따져 물을 생각입니다. 너, 나랑 싸울 준비 된 거 맞아?”
“하하! 그 싸움에 나도 동참하고 싶군요. 만약 비슷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 우리 [게라드 쇼>에 연락주세요 재희! 시청자들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내가 대신 고함 쳐줄게요. 내가 그만하라고 했지!”
“하하! 게라드, 고마워요. 아마, 내일부터는 저를 비롯한 모든 아시아 배우들이 [게라드 쇼> 트위터에 ‘좋아요’를 누를 겁니다.”
분위기가 조금 떠들썩해졌다.
하지만 나는 이 분위기가 단순히 왁자하게 끝나는 것을 원치 않았고.
풀샷 타이밍에 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게라드가 말했다.
“재희, 할 말이 남았나 보군요?”
“네.”
예정에 없던 쓰리 카메라에 불이 들어오고, 나는 입을 열었다.
공기가 착 가라앉았다.
“가볍게 말했지만, 진지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이런 일로 꿈을 잃고 싶지 않아요. 도와주세요.”
시종일관 유쾌하던 토크쇼 분위기가 아주 잠시- 무거워졌다. 게라드가 잠시 침묵하더니, 나를 지긋이 바라보며 대본에 없던 말을 했다.
“재희, 당신이 출연하는 영화 이야기군요.”
내가 쓰게 웃어보였다.
“정확해요. 게라드.”
*
괜히, ABS의 간판 토크 쇼가 아닌 것일까.
[게라드 쇼>의 파장은 엄청났다.방송이 나간 직후인 토요일 새벽, 밤새 전미 검색어에 내 이름이 오르내렸고.
아시아권, 혹은 차별을 당한 경험이 있는 흑인 배우들은 저마다 내 의견을 지지한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원치 않았던 인터넷 캠페인까지 일어날 지경이었다.
저마다 트위터나 자신의 SNS 계정에 내 ‘성씨’인 #Do를 달고 차별을 당했던 경험담을 쏟아내고 ‘Do’ 라는 영단어 뜻처럼, 실천하려는 희망을 전달했다.
그리고 이 SNS 사이에는.
“도재희의 행보를 지지합니다.”
조승희도 있었다.
뭐, 이것으로 모든 할리우드 시스템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조금의 인식 정도만 바뀌었으면 하는 바램일 뿐.
내가 선두에서 이 틀을 닦아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보다 큰 꿈을 펼칠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되길.
방송으로 얻은 인지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하룻밤 사이에 전 세계적인 유명 셀럽이 되어버렸다.
물론, 이런 일에 관심을 가지는 다수의 사람은 아시아권 사람들이지만.
게라드 쇼와, L&K 회사 트위터 계정은 팔로워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서양인들의 쇼에서 내뱉은 동양인 배우의 일침! 잘봤습니다!’
‘할리우드에서 코를 납작하게 눌러주길!’
나를 향한 응원의 메시지는 매일 수백 개씩 쏟아졌다.
“이럴 수가. 더 이상 내가 알던 재희가 아니게 되어버렸어.”
“에이, 저는 어제와 똑같아요.”
“아냐. 틀려. 아주 완전히 달라졌어.”
“….”
나는 여전히 며칠 전과 똑같은, 할리우드에서 성공을 거두길 원하는 배우 중 한 명이지만.
더 이상 주변에서는 그렇게 보질 않는다.
할리우드 배우들와 제작자들이 단숨에 주목하는 배우가 되어버렸다.
물론, 굳이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호의적인 얘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재익이 형은 하루하루 급변하는 분위기에 UAA에 경호원을 요청했고, 경호원 두 명이 항시 나를 따라다녔다.
“….”
이럴 수가.
엄청, 낯간지럽다고!
이제는 화장실 갈 때도 경호원이 따라 들어온다.
“적응해야 해.”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걸까.
노래 한 곡으로, 유튜브 1억 조회수를 돌파하고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된 국내 가수를 떠올렸다.
사실 반응이 이렇게 까지 폭발적일 줄은 몰랐지만.
‘영향력은 파도와 같아’
재익이 형의 옛날 충고를 미루어 볼 때, 예견 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제껏 억눌려있던 파도들이 너무 많았고.
이제 그 파도들이 배출 될 수 있는 출구가 조금 열렸을 뿐이다.
좁은 출구를 통해 너도나도 쏟아지니, 자연스러운 반응이랄까.
그 이후에, 조금 다른 분위기의 미국 토크 쇼에서는 섭외 요청이 줄지어 들어왔고.
몇몇 대학이나 기관에서는 강연 요청까지 들어오는 해프닝도 일어났다.
하지만 나는, 한사코 모두 거절했다.
이런 입에 발린 ‘말’만으로 인지도를 끌어올리려던 것이 아니다.
내 모든 목적은, 연기에 있고.
이를 이루는 수단은, 대본 속에 살아있는 캐릭터 속에만 존재한다.
이번 인지도를 통해, 보다 수월한 할리우드 활동이 가능해졌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만족한다.
*
오늘은 영화 [아다지오>의 마지막 촬영 날이다.
하지만 더 이상, ‘우리들만의 촬영’ 이 아니게 되었다.
“까메오 한 자리 만들어 줄 수 없나?”
“어서와요! 게라드! 얼마든지 만들어 드려야죠!”
[게라드 쇼>의 게라드 윌리엄 주니어가 펍의 주인역할로 노 개런티 까메오를 자처하며 영화에 출연하기로 했고.“저희도 돕고 싶습니다!”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배우들이 너도나도 우정출연을 하게 해달라고 요청한 탓에 출연 예정이던 보조출연자들을 모두 취소하기도 했다.
영화의 마지막 촬영이자, 내가 밴드 아다지오의 보컬로서 노래를 부르는 마지막 공연.
또 영화의 엔딩.
이 공연을, 할리우드에서 유명하지는 않지만 누구보다 열정적인 배우들이 관객 역할로 참여하여 메우기로 했다.
일종의 ‘할리우드 파티’를 연상케 한, 촬영 현장은.
오렌지카운티의 어느 작은 펍(Pub)에서 이루어졌다.
“이럴 수가!”
난데없이 일어난 별들의 전쟁에 폴 안토니 감독은 흥분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거, 바스트 한 컷씩은 모두 담아드려야 하는데. 어떻게 찍을지 모르겠네. 우선 좀, 모여 앉아볼까요?”
영화에서 주연은 못되지만, 조연이나 비중있는 단역을 맡아오던 배우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거, 그냥 영화의 한 장면인데?
“재희! 이게 모두 다 재희 때문이야! 이런 시련을 내게 주다니!”
폴 안토니 감독의 즐거운 비명과 함께 슛 사인이 돌았다.
무대 위에는 나와, 조셉.
그리고 밴드 아다지오 멤버들이 서있다.
– 액션!
카메라가 돌아가고, 우리는 모두 긴장된 기색으로 서로 눈을 맞추었다.
“가자!”
드러머의 외침과 동시에 폭발적인 반주가 시작되었다.
드럼을 부술 기세로 내려치는 드러머. 손이 보이지 않는 키보더. 머리를 세차게 흔드는 베이시스트.
그리고.
마이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 있는 나와 조셉.
시작은 내가 먼저였다.
[Drawing drive>같은 그림을 그리며, 즐거운 드라이브에 나서는 우리들의 힘찬 외침.
I like to paint 나는 그림 그리는 일이 좋아.
Painting a car 자동차를 그리고
I also draw airplanes. 비행기도 그리지.
내가 노래를 부르고, 말 못하는 조셉은 활짝 웃는 얼굴로 한참을 서성였다.
그의 입술이 옴짝달짝 거린다.
그리고 드디어 입술이 활짝 열렸다.
Draw a dream 꿈을 그리다.
어, 조셉이 말을 했어.
내 눈이 크게 뜨였고, 피부엔 닭살이 돋아났다. 밴드원들 모두가 똑같은 감동을 느꼈고.
조셉 역시,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노래했다.
즐겁고 유쾌한 목소리였다.
영화의 엔딩에 걸맞게, 관객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프로 배우들이라 그런가.
연기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아니, 이들은 정말로 이 무대를 즐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유명 프로듀서’ 역으로 특별출연한 엘라니 오코너가 맥주 병을 흔들며 소리쳤다.
“정말 환상적이야!”
나와 조셉은 함께 호흡하며 계속해서 노래했다.
I like to paint 나는 그림 그리는 일이 좋아.
Painting a car 자동차를 그리고
I also draw airplanes. 비행기도 그리지.
극중에서 내내 말 못하던 조셉이 마지막에 입을 열었다.
할리우드에서 숨죽이고 살던, 우리 같은 배우들이 입을 열었다.
모두가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 입 닫고 살지 말자!
“락앤롤이야!”
“즐겨!”
분위기는 한 없이 달아올랐고.
내 가슴 역시 한껏 부풀어 올랐다.
“후아!”
오늘 같은 날에는, 마음껏 취해야지.
[ 책 먹는 배우님 – 106화. > 끝ⓒ 맛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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