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an Actor’s Book RAW novel - Chapter (107)
107.
여기 모인 이들은, 내게 호감을 품고 자진해서 영화에 출연하겠다고 온 사람들이다.
백인, 흑인, 동양인.
가릴 것 없이 모인 배우들과 영화 제작자, 방송인들.
영화 [아다지오>의 쫑파티는,
뻥! 푸슈슈슈슉!
“마셔요!”
내가 터뜨린 샴페인 축포와 함께 시작되었다.
마시고 죽자 같은 문화는 한국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뻥! 뻐버버벙! 뻥!
이 날을 위해 하이마운트 측에서 대관한 웨스트 할리우드 중심에 있는 야외 가든 잔디에 샴페인이 줄지어 터지고.
보드카, 위스키, 샴페인, 칵테일 가릴 것 없이 각양각색의 술들이 잔에 채워졌다.
10M 길이의 테이블 위에 놓인 술잔들에 채워지는 오색찬란한 술들. 바텐더들이 즉석에서 칵테일을 만들어주고, 웨이트리스가 트라이에 술잔을 올려두고 움직인다.
그러면, 외치는 거지.
“방금 들고 온 거, 똑같이 두 잔씩 부탁합니다!”
파티에 참석한 그 누구도 취하지 못했다.
오늘 밤은 너무 길고, 인사를 나눠야 할 사람들은 끝이 없으니까.
“이봐요, 재희. [게라드 쇼>에서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저는 할리우드에서 조그만 영화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아니, 잠깐. 제가 먼저라고요. 일단, 한 잔 받아요. 재희. 우선 할리우드 데뷔를 축하합니다.”
이곳에 모인 사람만 백여 명이 넘어간다.
나만 하더라도, 한국에서 온 두 명의 대표를 비롯한 스탭과 경호인원만 해도 열 명이 넘으니, 조셉이나 엘라니 오코너 측 인원들은 말할 것도 없다.
모 할리우드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실내 수영장이 있는 고급 별장에서, 마이크를 쥐고 자신의 회사 직원들에게 화끈하게 괴성을 내지르는 남자 배우.
‘쇼는 계속 됩니다!’
우리들의 쇼는 계속 된다.
한국에서 즐기던 삼겹살에 소주가 그립긴 하지만.
이런 경험도, 나쁘지는 않은데?
모두가 흠뻑 취해가는 와중, 느지막한 시간에 막차에 탑승한 사람들이 있었다.
새로운 사람이 와도 모를 정도로 정신없는 시간이 흘러 가운데. 유독, 주변 사람들을 빠르게 모으는 사람들.
파티장 내부에 하나의 써클이 생겨났다.
‘뭐지? 누구야?’
나 역시, 이를 인지했고 까치발을 들어, 가든 입구를 향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잘 안보인다.
도대체 누가 왔길래 저러지?
그 때, 폴 안토니 감독이 소리쳤다.
“자! 모두들 주목해주세요!”
이미 새빨간 얼굴로 술에 잔뜩 취한 폴 안토니 감독이 소리지르다, 입을 틀어막았으나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잠시 자리에서 휘청이던 폴 안토니 감독이,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말했다.
“어우, 머리가 핑글핑글 도는군. 제기랄! 집중! 여기 누가 왔는지 다들 안 궁금해요!”
그제야 시끌벅적하던 파티장이, 점차 고요해졌다.
모두가 시선을 폴 안토니 감독에게 집중시켰다.
그리고 그 옆으로도.
“이럴 수가!”
그리고 모두가 놀라 입을 쩍 벌렸다.
“오웬!”
주변의 무명 배우들이 입을 쩍, 벌렸다.
같은 자리에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거물들이 여기 도대체 몇 명이야!
나 역시, 마찬가지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자, 그제야 자랑스럽다는 듯 폴 안토니 감독이 두 팔을 들어올렸다.
“오웬 감독님들이 우리를 축하해주러 오셨다고!”
“뭐? 정말?”
못 보던 남자가… 두 명이다.
재익이 형이 저 먼발치에서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잔뜩 흥분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명함을 꽂아 주고 싶은 듯 보였지만, 이쪽으로 다가오지는 못했다.
일개 매니저가 출연을 운운할, 그 정도 ‘급’이 아니다.
촬영 현장에서 무형의 아우라를 풍기며 스탭들에게 ‘절대적’ 지지를 받는 남자들.
장소가 파티장이라고 다를까.
“마스터! 오셨군요!”
이들을 아는 사람들은 ‘마스터’라 칭하는 거장.
오웬 형제.
아카데미와 칸이 사랑하는 남자.
아카데미에서만 8회 수상했고, 칸에서만 6회 상패를 들어 올린 형제들.
한 명은 감독으로. 한 명은 제작자로.
1980년대 독립 영화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세계 영화계에 획을 그어내며 본인들만의 색깔을 공고히 다져온 천재들.
독립영화하면, 이들의 이름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한국의 독립 영화와 비교할 수가 없다.
이들이, 왜 여기에 있단 말인가?
“….”
잘은 모르겠지만, 폴 안토니 감독과 안면이 있는 듯 보였다.
또, 조셉과도 약간의 안면은 있는 듯 보인다.
조셉과 오웬의 공통점을 떠올려보자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선댄스’ 영화제다.
선댄스를 거쳐 갔던 오웬 감독과, 선댄스와 유독 인연이 깊은 배우 조셉.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나를 어필하고 싶어진다. 어쩔 수 없는 본능이기도 하다.
배우라면, 이런 거장의 영화에 출연하고 싶으니까.
재익이 형이 잔뜩 흥분한 이유도, 아마 이런 이유일 것이다.
당장, 너를 어필 해! 이름을 머릿속에 박아 넣어버려! 당장 이 기회를 잡으라고!
하지만 섣불리 입을 열지 못했다.
이들에게 나는, 그저 숱하게 많은 동양인 배우중 하나일 테니까.
응?
‘어제 알던 재희가 아니게 되어버렸어.’
… 아닌가?
“이거, 영광인데 그래.”
오웬 공동감독 중, 형이자 연출을 맡은 코너 오웬이었다.
그가 나를 바라보며 씨익, 웃더니 내게 악수를 건넸다.
“어디서 봤나 했더니, 그 친구였네. 선댄스.”
“….”
나는 너무 놀라 건넨 손을 맞잡고 그 자리에 멈춰버렸다.
권우철 대표와 이무택 대표가 내 쪽으로 걸어오려다 덩달아 멈춰섰다.
…. 나를 알고 있다.
이런, 양치기 청년! (+@) 내 커리어를 시작 했던 작품이, 끝까지 따라와 도와주는 구나!
그러자 옆에 있던 동생인, 오너 오웬이 말했다.
“재희를 몰라? 이런, 빌어먹을! 이 파티의 진짜 주인공이 누군지도 모르고 왔단 말야? [게라드 쇼>에 나와 말했잖아! 이봐! 나 한국인이라고 얕보다간 다 죽는 거야!”
“쇼는 못 봤지만, 얼마나 화제였는지는 안다고. 단지, 그 재희가. 선댄스에서 보았던 그 배우 인 줄은 몰랐다는 말이니까.”
“몰랐다는 것을 자랑이라고 떠들어 대는군.”
“입 닥쳐, 오너.”
아주 옛날에 보았던. 지금으로 따지면 대략 5년 전.
내가 제대로 데뷔 기회조차 잡지 못하던 시절.
한 영화 잡지에서 보았던 이들의 기사 한 줄이 떠오른다.
‘예술영화? 아니, 이들은 오웬 영화를 만든다.’
오웬 형제는 박진우 연출과 매우 흡사한 영화 색을 가졌다.
박진우가 따뜻하다면, 물론, 이쪽이 더욱 ‘차갑고 냉정하다.’
리얼리티 속에 녹여낸 블랙코미디. 파국으로 치 닿는 듯 보여 지는 전개 속에서 선보이는 인간미.
이들은 기본적으로는 독립영화를 만들고, 그 어떤 외압, 이를테면 투자나, 배급사 등에도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만의 색채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감독으로서 프라이드도 대단하다고 들었다.
이런 거물이 이 파티에 참석한 이유.
“집에서 가까우니까, 술이나 진탕 마시다 가야지. 관계없는 사람이라고 우리에게 돈 받는 건 아니겠지?”
“염병. 제발 그런 썩을 농담 좀 하지 말라고.”
“입 닥쳐, 오너”
우리 자리를 빛내주고, 술을 마시기 위해.
그리고.
“재희의 한국 매니지먼트 대표, 권우철입니다.”
“반가워요.”
동생인 오너 오웬이 입 꼬리를 올리며 권우철 대표에게 말했다.
“혹시, 이 잔만 비우고. 얘기 좀 따로 할 수 있나요?”
그리고 나를 흘깃 거렸다.
내게 볼 일이 있는 듯 보였다.
나는 콧등을 긁적였다.
*
[한국인 최초 미 공영방송 ABS [게라드 쇼> 출연! 거기다 사이다 발언까지!] [도재희, 그의 커리어는 할리우드에서도 특별하다.] [SNS 통해 유색 배우들에게 큰 지지를 받은 도재희. 할리우드 다음 행보에, 영화인들 모두 주목.]오랜만에 한국에 돌아왔다.
내 팬들의 미국 방문에 대한 이야기는 소소한 에피소드 정도로 알려졌지만, 최근 [게라드 쇼>와 그 방송이 불러온 후폭풍은 한국에도 꽤 크게 불어 닥쳤다.
하지만, 그 온도차는 꽤나 달랐다.
따뜻한 햇빛과 조금 차가운 바람이 공존하며 공감과 반발이 함께 일던 할리우드와는 다르게.
한국은 내게 호의적이었다.
아무래도, 조승희 같이 할리우드 경험이 있는 배우들이 내게 지지 메시지를 보냈기 때문이리라.
내가 국내에 복귀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온갖 매체와 방송국이 인터뷰를 위해 L&K앞에 장사진을 쳤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나는 이런 관심들을 모두 꺼둔 채, 사당동 본가에서 휴식을 취했다.
평소와 조금 다른 행동이라면.
[선배님, 통화 괜찮으십니까?]설강식 선배님께 개인적으로 연락을 드렸다는 점정도.
연락을 드린 지 10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바로 답장이 왔다.
[이 자식, 드디어 연락하는 구나. 기다렸다.]나는 곧바로 전화를 걸어 약속 날짜를 잡았다.
삶에서 연기를 배우는 법.
선배님이 사시는 수원 인계동의 어느 고깃집에서 식사를 함께 했다.
“선배님. 잘 지내셨습니까?”
“나야 항상 똑같지 뭐. 어서와 앉아.”
식사와 함께 시작된 반주.
술병이 한 병 두병 쌓이기 시작하고, 설강식 선배님의 근황 이야기가 끝나자, 본론이 시작되었다.
“재희야.”
“예.”
“네 소식은 인터넷 통해서 봤다. 아주 시원시원 하더구나.”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는, 내게 응원과 함께 조언도 잊지 않으셨다.
“그런데 말이야.”
“네, 선배님.”
“독불 장군은 능력을 손에 쥐고 있을 때나 가능한 이야기야. 네 능력. 그걸 증명하기 전 까지는 시련이 많이 따를 거다.”
“….”
맞는 말이다.
나는 방송을 통해, 어느 정도 자신감을 표출해버렸으니까.
한국에서 호평일색이던 기사 이면에 숨겨진 진실들.
할리우드에서 내가 직접 피부로 느꼈던 시선들.
호의적인 사람들이 있는 반면, 내가 표출한 자신감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과 우려를 보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렇기에 경호원을 고용한 것이고.
“새겨듣겠습니다.”
나를 증명하는 방법은, 영화와 연기를 통해 눈에 보이는 성적을 보여주는 방법 뿐 이다.
… 머리가 조금 아프다.
하지만, 방송 출연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노이즈 마케팅도 마케팅의 일환이라고, 만천하에 나를 알리는 것에는 성공했으니까.
이제는 보여주면 된다.
그 전에.
어떻게, 보여줘야 할까.
무슨 작품으로?
“잔소리라고 듣지 말고. 진심으로 생각해서 하는 말이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 다음 작품은? 또 미국에서 하니?”
내 차기작.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으음, 그래? 하긴, 미국에서 한 작품 시작했다고 연달아 물기가 쉽지 않지. 그럼 당분간 한국에 있겠구나?”
모르겠다.
… 오웬 형제.
그들이 내게 제안했다.
뭐, 직접적으로 ‘섭외’, ‘캐스팅’ 같은 단어를 언급한 것은 아니다.
다만, 내 차기작 계획에 대해 물었었다.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 권 대표에게, 오너 오웬은 웃으며 말했다.
‘그렇군요.’
딱, 거기까지.
내게 그 어떤 제안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자신들이 준비하고 있는 영화에 대해 아주 간략하게 알려주었다.
간략한 줄거리만 들었지만, 꼭 하고 싶을 만큼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이들이, 내게 영화를 제안 할까?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
“헤, 모르겠습니다.”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웃어버렸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
그러자 설강식 선배님이 술잔을 들어올렸다.
“마시자. 그럼 생각나겠지 뭐.”
“넵!”
그 때, 띠링!
문자가 한통 도착했다.
발신자는 권우철 대표.
문자에는 동영상 링크가 띄어져 있었고.
… 동영상?
이게 뭐지?
[ 책 먹는 배우님 – 107화. > 끝ⓒ 맛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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