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an Actor’s Book RAW novel - Chapter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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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먹는 배우님 – 109화. >109.
“재희 만큼 해외에서 일 복 터진 한국 배우가 어디 있어?”
이무택 대표의 딱 한 마디.
권우철 대표가 곁에서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적절한 시기에 들어온 [게라드 쇼>가 복덩이였죠. 존 미켈의 사고가 전화위복이 되면서, 기폭제 역할을 제대로 했어요.”
그러자 이무택 대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냐.”
“… 네?”
“쇼가 복덩이가 아니라, 재희가 잘 한 거라고. 그런 무대에서 그렇게 소신 있게 발언을 하면서도 밉보이지 않았잖아.”
이무택 대표의 말에 권우철 대표가 눈을 게슴츠레 하게 떴다.
‘당신이 어떻게 그런 생각을?’ 이라는 의미가 담긴 눈빛이었지만, 금세 눈빛을 바꾸며 수긍했다.
“이런, 듣고 보니 그 말이 맞네요. 쇼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재희가 잘한 거네요.”
“그렇지?”
권우철 대표의 동의에 이무택이 왁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 이거, 정말 우철이 네 말대로 흘러가고 있어.”
“… 그야, 언제는 제 말대로 안 흘러간 적이 있던가요?”
권우철 대표의 자존심.
업계를 꿰뚫어보는 눈이 정확한 권우철은, 자금으로 회사를 세운 이무택과는 다르게 로드매니저부터 시작해서 오직 ‘실력’ 하나로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재희는 첫 영화부터 확실히 증명했죠. 할리우드 크루들에게 얻은 평판이야 말할 것도 없고, 영화가 망한다고 하더라도 문제없어요. 아무리 망하더라도, 할리우드 절반은 편을 만들어 버렸으니까.”
의식 있는 몇몇 감독들. 비슷한 차별을 경험했던 배우들.
일종의 ‘라인’을 형성하며 SNS로 한창 지지를 표했던 사람들.
연달아 영화가 망한다고 하더라도, 아마 밥줄 끊길 걱정은 없을 것이다.
“작품 보는 눈도 타고났고. 찍었다 하면 성공인데.”
“이런 부분은, 저 보다 낫다니까요?”
“다음에 재희 한국 들어오면, 밑에 애들 작품 좀 골라달라고 부탁해야겠다. 어째, 다른 애들은 찍었다 하면 말아먹으니… 쯧쯔.”
이무택의 푸념에 권우철이 쓰게 웃었다.
“… 그러게요. 분발해야 하는데.”
이무택이 물었다.
“집은 해결 했어?”
“물론.”
“어디에? 그, 버버리 뭐시기?”
“베벌리 힐즈. 초호화 저택으로 준비했어요. 이제 할리우드에서 ‘소소한 한국식’ 예절은 끝났으니까.”
한국에서 온 신인 배우 도재희의 ‘소소하고 귀여운’ 한국식 애교는 끝났다.
상황이 급물살을 타고 바뀌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할리우드 ‘급’에 꿀리지 않게끔 물질적인 준비가 필요할 터.
L&K는 이를 최대한 지원했다.
기본적으로 집, 차.
현지 생활 유지비를 제외하면, 어차피 차후에 모두 회수 가능한 자금들이다.
도재희가 앞으로 얼마를 벌어다 줄지, 상상하기 힘든 부분들이기에 최대한 아낌없이 쏟을 예정.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네.”
이무택 대표의 말에 권우철이 피식, 웃었다.
“마음에 들고 자시고 없이, 아마도 입이 귀에 걸릴 겁니다. 아니지, 오히려 집을 보자마자 기겁하며 전화할 지도 모르겠네요. ‘대표님! 여기 너무 비싼 거 아니에요?’ 이렇게.”
“크흐하하! 맞아, 맞아. 재희가 생긴 건 안 그런데, 가끔 보면 촌스러운 구석이 있다니까.”
“후후, 그게 재희 매력이죠.”
이무택 대표가 늘어지게 쇼파에 등을 기대며 물었다.
“그나저나, 이번 영화랑 드라마는 어떻게 될 것 같아?”
오웬 형제들이 만드는, 베일에 싸인 독립영화와.
대형 블록버스터 재난 ‘미드’가 예고되었다.
“됩니다.”
“이유는?”
“이제껏 그랬으니까.”
“자신 만만한데”
딸그락,
권우철이 언더락 잔을 흔들며 말했다.
“걔 는 타고 났어요.”
“지금 쯤… 비행기는 탔을까 모르겠네.”
*
한국에 머무는 동안, 특별한 일정은 없었다.
충분한 휴식을 취했고, 10월 말 혹은 11월 초에 개봉하게 될 영화 [7년의 기억> 무대인사 일정을 간략하게 조율했고, 매체 한 곳을 지정해 할리우드 행에 관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매체는, 스타 매거진의 오채연 기자.
“후후, 재희 씨는 볼 때마다 새로워서 좋아요.”
“으음, 그런가요?”
“네. 얼리어답터 알죠? 신제품 나오면 반드시 써봐야 하는 사람. 제가 그런 사람이 된 기분이에요.”
“… 그 말씀은, 제가 신제품이라는 말인가요?”
“후후, 네. 항상 새로움을 주는 우리 재희 씨. 단독기사 사랑합니다!”
“….”
고오맙다.
“한국 활동은 그럼, 언제 재개 예정이신가요?”
“아마도, 10월에 들어와 3주 정도 체류할 예정입니다.”
스케줄이 벅차다.
한국과 미국 양국을 오가니, 벅찰 만큼 많은 스케줄.
[7년의 기억> 무대 인사를 제외하고도.홍콩에서 열리는 아시아 태평양 스크린 어워즈(이하 APSA) 개막식 ‘사회자’ 문의가 들어왔다.
함께 무대에 서는 배우는, 중국 여신이라 불리는 ‘연쯔이’
APSA.
동아시아 문화산업을 선두 하는 영화인들이 대거 모이는 영화 축제.
시기가 딱, 한국 체류 기간이라 승낙했다.
“이야 개막식 사회자라. 하긴, 그럴 시기도 되었죠? 그런데 아직 8월 초인데요. 그 사이에는 어떤 스케줄을 진행하시나요?”
“영화 하나와 드라마 하나에 들어가게 될 것 같은데. 자세한 스케줄은 저도 모르겠습니다.”
“으음, 그거 궁금한데요.”
“에이, 이미 대충 다 알고 계시면서.”
“후후, 들켰다. 어쩔 수 없죠. 재희 씨 본인 입으로 직접 말한 것만 기사로 내야 하니까.”
영화와 드라마.
작품 두 개를 이리저리 널뛰기 하며 촬영에 박차를 가할 모습을 상상하니, 벌써부터 심장이 요동친다.
이것도, 중독이다.
“촬영하신 [아다지오>는 개봉 예정일이 언제인가요?”
“정확한 시기는 모르겠지만, 한국과 미국 동시 개봉예정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시지 마시고 소스 있으시면 흘려주세요.”
“… 정말 몰라요.”
그 뒤로, 통상적인 이야기가 오갔다.
할리우드에 기반을 다지는 현재의 다짐과 포부를 묻는 질문들. 그럼, 내 입에서 나올 대답 역시 통상적인 대답뿐이다.
하지만 이런 ‘안전하고 통상적인’ 인터뷰가 어느새 익숙하다. 벌써, 적응해버렸다니까.
인터뷰가 끝났다.
“오늘은, 여기까지.”
그 때, 오채연 기자가 내게 불쑥 손을 내밀었다.
“자요.”
“….”
응? 악수하자는 건가?
내가 그녀의 손을 가볍게 맞잡자, 오채연 기자가 풋,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왠지, 다음에 만날 때는 이렇게 가벼운 악수도 못하게 될 까봐. 미리.”
“그게 무슨 말인가요?”
사람이 바뀌기라도 한 다는 말인가.
하지만 오채연 기자는 눈웃음을 지으며 다른 질문으로 돌렸다.
“후후, 다음에는 언제 볼 수 있을까요?”
“으음, 글쎄요. 10월?”
“그럼, 또 새로운 모습 기대할게요.”
… 뭐야, 싱겁게.
나 역시 싱겁게 웃어보였다.
“신제품이 되어서 돌아오죠. 후후.”
“기대할게요. 아, 참! [게라드 쇼> 같은 프로그램 나갈 예정이면, 미리 귀띔이라도 줘요. 방송 반드시 챙겨볼 테니까.”
“어차피 현지 기사 나갈 텐데요 뭘. 꼭지만 따시면 되는 거 아녜요?”
“그게 아니고. 싸움닭 도재희 씨가 싸우는 모습 라이브로 보고 싶어서 그래요. 뭐랄까… 팬 심이랄까. 후후후, 이거 은근히 중독이라니까?”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당돌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언제나 몸 조심히!”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웃어주고는, 컵 홀더를 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자님도요.”
그리고 손목의 시계로 눈을 돌렸다.
벌써, 비행기 시간이 다되었다.
*
“….”
“미쳤다!”
그래.
미쳤어.
이거, 너무 미쳤어!
UAA와 L&K의 합작품.
운전대는 빌이 잡았지만, 재익이 형이 조수석에서 직접 네비게이션에 주소를 기입하고, 오가는 길을 외우는 것에서부터 이상하긴 했다.
집이라니.
“이게 다 뭐죠…”
“앞으로 미국 생활하면서 묵을 집.”
재익이 형이 이를 드러내며 웃어보였다.
“조금 일찍 준비했어야 하나 싶기도 했지만… 전작에서는, 얼마나 미국에 머물지 확실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다르지.”
“….”
그래.
상황이 짧은 시간 동안 많이 바뀌기는 했다.
‘시즌제’ 미드와 계약하기 직전이고.
현지 에이전시인 UAA 조차도 아마, 계속해서 일이 들어올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는 상황.
아마, 미국에 지내는 기간이 한국에서 지내는 기간보다 길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이런 초호화 저택을 내가 갖게 될 것이라는 상상은 해 본적이 없다고.
총 3층짜리 저택이다.
차고에는 내가 쉬는 날, 타고 다닐수 있는 고급 세단 한 대가 주차되어있고. 정원에는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수영장과 작은 연못. 뒤뜰에는 바비큐 그릴이 준비되어있다.
이제껏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7성급은 못 되도, 항상 고급스러운 호텔에 묵었었는데 그런 호텔들과 비교해 봤을 때, ‘고급’ 이라는 이름이 무색해질 만큼, 으리으리한 곳이다.
L&K가 나를 위해 투자했고, UAA 에이전트 빌이 내 입국 날짜에 맞춰 생필품들까지 죄다 채워놓았다.
‘재희는 연기만 해요. 나머지는 우리가 합니다.’
각자 할 일을 위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것.
이것이 할리우드 스케일.
“1층에만 방이 일곱 개에 화장실은…”
“….”
뭐, 이런 것들은 일일이 설명하기에 입만 아프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남들에게도 떳떳하게 자랑할 수 있는 내 ‘개인적인’ 공간이 생겼다는 점이다.
재익이 형과 영미 씨, 초희 씨는 밴 트렁크에 가득 실린 짐을 마당에 내리기 시작했다.
“재희야, 너는 들어가서 쉬어.”
“제건 제가 챙길게요.”
나는 재익이 형을 도와 빠르게 내 짐 가방을 내린 뒤, 거실과 방을 둘러보았다.
“우와”
초희 씨의 탄성이 터져 나올 만큼 넓다.
집 안을 채우고 있는 가구들을 치워버리면, 풋살이라도 할 수 있을 만큼.
“대박!”
영미 씨는 저택과 사랑에라도 빠진 듯, 눈에서 하트를 쏘았지만.
“으음.”
사치를 즐기지 않던 내가 사는 세계와는 정반대의 다른 세계인 것 같은 이질감이 든다.
“1층은 재희 공간이야. 3층은 영미 씨와 초희 씨가 쓰면 되겠다. 우리, 한 집에 살면서 개인적인 프라이버시는 존중하자고. 알겠지?”
“넵!”
한 켠에서는 재익이 형이 각자 생활하게 될 방과 생활 규칙 등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나는, 휴대전화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곧 바로 권우철 대표님께 전화를 걸었다.
“대표님?”
– “어, 재희야. 잘 도착 했지?”
“아, 네. 방금요. 그것보다…. 여기, 이 집. 엄청 비싼 거 아니에요? 고작 네 명 살아서 이렇게 클 필요는 없는데.”
그러자, 수화기 너머에서는 약간의 침묵이 흐르더니.
권우철 대표의 왁자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 “하하하하! 거 봐요. 제가 말했죠?”
– “크하하하!”
이무택 대표님의 웃음소리가 섞여 들리는 것을 봐 함께 계신 듯 했다.
“….”
근데 왜 계속 웃으시는 거야.
– “재희야! 이제 적응 해야지! 언제까지 이코노미만 탈거야? 이제 윗물도 좀 마셔보고 그래! 즐기라고 네 위치를!”
“….”
아, 그런 거였어?
아무래도 나 촌스럽다고 욕하는 것 같은데.
대표님들들 입장에서 나는 촌스러운 사람일지는 몰라도.
적어도, 소박한 인간은 아니다.
나는 집 천장을 바라보다- 창 밖에 한 눈에 보이는 베벌리힐즈의 광경을 응시하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뭐, 이제는 적응 해야겠지.
내 ‘급’에 맞는 위치로 지내려면 말이야.
[ 책 먹는 배우님 – 109화. > 끝ⓒ 맛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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