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an Actor’s Book RAW novel - Chapter (110)
110.
우리 집에는 총 여섯 명이 산다.
나와 재익이 형, 그리고 영미 씨와 초희 씨.
그리고 남은 두 명은.
“어디가십니까?”
“아, 근처 좀 둘러보려고요.”
“그럼, 따라가겠습니다.”
“… 그러실 필요 까진 없는데 말이죠…”
경호원 두 명.
가벼운 마음으로 동네 구경에 나서려던 나를 무조건 따라 오시겠다는 부지런한 분들.
오늘은 HBS 미드 팀과 [데드 매니악> 미팅이 잡혀있다.
하지만, 그 전에.
나는 으리으리한 저택을 배경으로 몸을 풀기 시작했다.
베벌리힐즈.
나와는 다른 종류의 사람이 사는 곳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우리 동네’가 되어있다.
동네 구경이나 하며 몸 좀 풀어야겠다.
“다녀 와. 아침 준비해 놓을 테니까!”
“네!”
재익이 형의 아침 인사를 마지막으로 트레이닝 복을 입고 가볍게 동네를 뛰기 시작했다.
경호원 형님 두 명은, 먼발치에서 아주 조용히 차량으로 이동했다.
내 귀에는 이어폰을 낀 상태.
한국에서는 보기 힘들지만, 캘리포니아에는 지천에 깔려있는 야자나무 아래를 달렸다.
한 블록만 이동해도 눈에 띄는 카페와 저택들이 즐비한 동네.
이 시간이면 출근하는 직장인들로 붐빌 만도 하건만, 고요하기만 하다.
뭐, 어제 알게 된 이야기지만.
매일 매일이 똑같은 날처럼 평온하게 흘러가는 동네라고 한다. 인근 영화사를 운영하는 부유한 대표들이나 간부들, 영화감독, 뮤지션, 배우들이 많이 살기 때문.
이런 곳이 ‘아주 조금’ 시끌벅적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테면.
“오디오!”
“스피드!”
“카메라!”
“롤!”
“액션!”
촬영.
베벌리힐즈가 주는 조용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는, 영화감독들에게 특정한 영감을 부여하고,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의 메인 무대가 된다.
동네 자체도 영화나 드라마에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방침.
이런 일은 너무 빈번한 일이라,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조차 붙잡지도 못하는 ‘베벌리 힐즈의 일상’ 이지만.
나는 달리던 발길을 멈추었다.
“후우-”
호흡을 골라내며 먼발치에서 현장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거주 경호원 중 한 명이 내게 생수 한 병을 건네주었다.
“혹시, 필요해요?”
“아 감사합니다.”
나는 물을 받아들고 벌컥벌컥 삼켰다. 그러자 차올랐던 숨이 단숨에 트인다.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다시 촬영 현장으로 눈을 돌렸는데, 이내 내 눈이 커졌다.
내가 물었다.
“저 배우, 오헬리안 다미앙 맞죠?”
*
내 눈앞에 오헬리안 다미앙의 프로필 사진이 떨어졌다.
“이 사람은.”
“오헬리안 다미앙.”
우리는 HBS 제작진과 [데드 매니악> 미팅을 가졌다.
HBS 드라마 팀과의 미팅 룸.
드라마 [데드 매니악> 관련 미팅을 진행하던 도중, 내 눈길을 사로잡은 아주 뜻밖의 프로필 사진.
이는, 드라마 팀 HBS이 할리우드 주간지에 실린 연예계 톱헤드라인을 모아놓은 일종의 ‘경쟁 드라마 분석 표’ 였다.
“오헬리안 다미앙이 어떻다는 거죠?”
“음, 오헬리안이 [라스팔마스의 휴일 시즌2>에 합류했어요. 그 덕분에, 안 그래도 컸던 드라마의 몸집이 더 크게 불어난 상태죠.”
“[라스팔마스의 휴일> 이라면…”
“엄청난 히트작이죠. 그리고 동시에 저희 경쟁드라마기도 하고요.”
[라스팔마스의 휴일>미 방송사 NBO가 제작한, 초대형 히트작.
그리고 내가 참여하게 될지 모르는 [데드 매니악>의 예비 경쟁작.
미국은 뷰어(Viewer)수로 시청률을 따지고는 하는데.
[라스팔마스의 휴일>은 18세-49세(주 소비계층)에서 첫날 뷰어 수만 1,300만 명을 넘게 기록하고 전 미(美) 평균 시청률 2.8%를 굳건히 유지한 초대형 히트작이다.드라마는 ‘돈’이 되어야 만든다.
특히 ‘시즌제’ 드라마는 더더욱.
시청자가 있어야 드라마도 다음 ‘시즌’을 약속할 수 있다.
시즌1에서 초대박을 터뜨린 [라스팔마스의 휴일>이 ‘시즌2’에서 ‘오헬리안 다미앙’이라는 대형 스타를 섭외하는 이유는 어찌보면 당연하다.
시청률 굳히기에 들어가는 거다.
미드 [라스팔마스의 휴일 시즌2>에 프랑스의 국민배우 오헬리안 다미앙이 합류했다.
바로, 내가 아침에 보았던, 그 배우.
HBS 측 제작진이 우려를 표했다.
“불행하게도 저희 드라마와 비슷한 시기에 경쟁하게 될 드라마죠. 이런 대형 드라마에 오헬리안 다미앙이 출연하다니! 제기랄! 제대로 날개를 달아버렸군요.”
“이로써 우리 드라마는 시청률이 반 토막 날지도 모릅니다. 젠장!”
“현재는 LA근방에서 촬영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봤어요. 오늘 아침에.”
“아, 그래요?”
“네. 산책하다가 우연히.”
HBS 측이, [데드 매니악> 이야기 전에 내게 ‘경쟁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낸 이유.
“정말 솔직히 다 말씀드린 겁니다. 이 덕분에 배우 섭외가 조금 어렵기는 했어요. 아무래도 우리 드라마는 조금…. ‘독특’ 하니까요.”
“네, 독특하죠.”
작품에 참여하는 배우는, 크루들의 고충 및 고민, 모든 문제점 등을 공유할 의무가 있다.
특히 경쟁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알고있는 선에서 모든 정보를 끌어모은다.
붙어서 승산이 있는지.
저 작품에 주연은 누구인지, 인지도는 누가 꿀리지 않는지. 등등.
[데드 매니악>은 좀비 드라마다.이제껏 별로 시도된 적이 없던.
모 아니면 도가 될 확률이 농후한 극한의 생존 환경을 다루는 드라마.
물론, 미드는 한국드라마와 분위기 자체가 많이 다르기 때문에 ‘로맨스’ 자체가 메인이 될 필요는 없다.
이제껏 전 세계를 사로잡았던 미드들의 입맛들은, 모두 제각각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
[라스팔마스의 휴일>은 이미, 엄청난 사랑을 받았던 화제의 드라마다. 시즌2에서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농후하고.제작진이 내게 물었다.
“괜찮겠어요? 솔직한 심정으로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될 수도 있어요.”
나는 턱 끝을 매만지며 말했다.
“으흠, 제게 시간을 주실 수 있어요?”
“시간이라, 생각할 시간이라면… 오케이. 얼마나 드리면 되죠? 사흘? 일주일? 재희. 미안한 이야기지만, 너무 오래 끌지는 말아줘요. 하지만 일주일이라면, 저희는 여유를 가지고 기다릴 겁니다.”
내가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아뇨. 1시간이면 충분합니다.”
“응? 1시간?”
“네.”
내 말에 제작진이 환하게 웃었다.
“먼스Month를 시간hour 로 착각한 것만 아니면 좋겠군요.”
나 역시, 화답하듯 웃으며 말했다.
“대신, 시즌1의 전체 원고를 확인했으면 좋겠는데요.”
내 제안에 제작진이 흔쾌히 답했다.
“오케이. 그런 거라면 문제없어요. 오히려 저희가 먼저 부탁드리려고 했죠. 이봐요 재희! 제발 대본 한 번만 읽어보고 결정해줘요! 이렇게.”
“하하, 좋아요.”
“그런데 그 전에…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말씀하세요.”
그가 물었다.
“1시간이라는 시간이 수상한데요. 그 말은, 1시간 안에 대본을 모두 확인할 수 있다는 말로 들리네요. 아닌가요? 나만 그렇게 들렸나?”
나는 가볍게 웃어넘기며 말했다.
“1시간이면 충분해요.”
*
[데드 매니악>시즌1 시놉시스와 1화 분량을 가볍게 훑어보았다.
그 덕에, 내가 본 점수가 헛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황사먼지에 오염된 변종 괴물 ‘더스트Dust’는 중국에서부터 생겨나 극동아시아를 시작으로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된다.
인류의 존폐 위기에서 찾아오는 인간군상, 가족애를 떠올리는 에피소드들은 누구나 쉽게 몰입할 수 있다.
내가 맡은 역할은, 주인공과 같은 무리에 속해있는 살기 위해 몸 부림 치는 ‘동양인 청년’.
‘재밌다.’
과장 조금 보태서 손에 땀을 쥐고 읽을 수 있을 만큼 잘 쓰여 있다.
하지만.
‘제작진이 마이너스야.’
HBS 제작진들은 [라스팔마스의 휴일>을 유독 신경 쓰는 듯 보였다.
방송사가, 자기 드라마에 ‘확신’을 품지 못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자기 드라마의 장점을 어필하기 보다는, 다른 드라마를 치켜세우며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비유하다니.
결과는 결국, 시청자가 판단할 몫이지 않은가.
이러한 측면에서는 조금 아쉬움을 느꼈다.
하지만 제작진들의 ‘부정적인’ 의견과 [데드 매니악>의 흥행가능성은 무관했다.
“….”
이 드라마가 가지고 있는 자신감은, 대본 속에 녹아있다.
[88/100] (+5)완성도.
이렇게 잘 준비된 무기를 뒤에 숨겨두고.
‘상대가 강하니까 조심해요.’ 라고 내게 조언했다.
겸손일까, 아니면 조심성이 많은 팀일까.
아무래도, 자신들의 대본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모르는 것은 아닐까.
‘멍청한 검사가, 그에게 과분한 무기를 들었군’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는 기우였다.
나는 책을 덮고 시간을 확인했다.
정확히 1시간이 지나있었고,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HBS측과 재회했다.
근데, 이들의 표정이 조금 이상했다.
“후후…”
잔뜩, 기대감에 찬 상태로 내 반응이 궁금해 죽겠다는 얼굴이었다.
“기분이 좋아보이시는군요?”
내 물음에, HBS 측이 물었다.
“어떤가요? 다윗이 이길 것 같나요? 골리앗이 이길 것 같나요?”
“….”
응? 갑자기 뭐라고?
“재희가 만약 배팅한다면 누구에게 걸겠어요? 다윗? 골리앗? 대본은 어땠어요? 재미있었나요?”
1시간 전의 이들은 자신들의 작품에 대해 심히 걱정스러운 얼굴이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이들은 자신들의 작품에 ‘확신’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
대본을 읽기 전과 읽은 후의 반응이 다르다.
뭐야, 이 상황은?
하지만 당최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은 아니다.
“…..”
내 마음을 확인하는 것인가.
적을 키워주고, 일부로 자기 자신을 낮춘다.
그리고 상대의 머릿속에 혼란을 심어 넣는다.
자신의 주장 없이, 세간의 평가만을 신경 쓰며 줏대 없이 행동하는 배우가 많다.
‘이 작품 되겠어?’
‘어차피, [라스팔마스의 휴일>에 밀릴 텐데, 뭐하러 해.’
‘안 될 작품은 거들떠도 안 보는 게 좋아.’
유명 배우 섭외에 연달아 고전하고 있는 [데드 매니악> 이라면.
이럴 수도 있다.
일종의 떠보기.
배우가 작품을 보는 ‘눈’이 있느냐 없느냐.
‘너, 확실히 준비 된 거 맞아?’
말로만 듣던 이 ‘동양인’ 배우가 우리 작품을 위해 얼마 열심히 싸워줄 수 있는 열정적인 ‘전사’ 인가.
“… 으음.”
퍼즐조각이 얼추 맞춰진다.
내 앞에서 ‘연기’ 하는 것이다.
그제야 모든 상황을 이해한 나는 피식, 웃어버렸지만 눈은 조금 날카로워졌다.
“한국에는 이런 말이 있어요. 계란으로 바위를 친다고. 경쟁 드라마인 [라스팔마스의 휴일>이 얼마나 큰 바위인지는 모르지만, [데드 매니악>은 적어도 아주 단단한 짱돌은 되는 듯 보이는군요.”
‘대본이 좋은데요?’를 돌려서 말한 표현.
그러자 HBS 측 스탭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마치, 기대하던 대답을 얻은 듯 했다.
“그리고 하나 더.”
“네?”
“[데드 매니악>과 [라스팔마스의 휴일>이 다윗과 골리앗이라고 하셨던가요? 누가 다윗이고 누가 골리앗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두가 알고 있듯.
“골리앗은 고작 돌멩이 하나에 무너지는, 덩치만 커다란 허상일 뿐이에요.”
“….”
이 싸움은, 다윗이 이겼다.
그러자 내 말을 얌전히 듣고있던 제작진의 눈에 커졌다.
내가 마음에 드는 듯한 얼굴.
하지만.
“그런데, 조금 섭섭하기도 하네요.”
나는 표정을 딱딱하게 굳히며 말했다.
“짓궂으시네요. 이런 식으로 저를 시험하시다니.”
[ 책 먹는 배우님 – 110화. > 끝ⓒ 맛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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