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an Actor’s Book RAW novel - Chapter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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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먹는 배우님 – 117화. >117.
10월.
한국에 돌아왔다.
올 해 초에 찍어두었던 박진우 연출의 영화 [7년의 기억>이 극장 정식 개봉을 앞두고 있기 때문.
오늘은, 첫 시사회 겸 무대 인사로 기자들과 일반관객들 앞에서 영화의 첫 선을 보인다.
아주 오랜만에 한국 팬들과의 만남을 앞두고 있는 상황.
기분좋은 긴장감을 숨길 수가 없다.
“준비하자.”
“네.”
끼긱-
서초동 OGV 시네마 하우스 앞에 차량이 정차했다.
까맣게 코팅된 창 너머로 인산인해의 사람들 그림자가 넘실거린다.
모두가 영화 [7년의 기억>을 보기위해 찾은 영화 팬들.
차량 문이 열리기 직전, 재익이 형이 말했다.
“오늘, [끝장 형제들>팀 오는 거 알고 있지?”
“네.”
“오는지 몰랐다는 연기만 잘 해줘. MC들 시사회 같이 참여하고, 질문 타임에 나올 거니까.”
[끝장 형제들>MKC 간판 예능 프로그램.
한국에 돌아와 딱히 예능에 출연할 생각은 없었지만- 이는 승낙했다.
딱히 많은 시간을 많이 투자하지 않으며, 프로그램 평판이 대중들에게 호의적이기 때문이다.
내용은 연말 시상식에 방영되며, 올 해를 빛낸 인물들을 찾아다니며 ‘고생했다’고 상패를 건네주는 내용으로. 프로그램에서 뽑은 4인의 인물 중 한 사람으로 뽑혔다.
방송 컨셉은 나는 모르게 몰래 찾아온다는 내용이지만, 실제로 내가 모를 리가 없지.
모르는 척만 잘해달라고.
“알겠어요.”
“오케이, 가자.”
재익이 형이 문을 열어젖혔다.
드르륵, 컹!
차량 문이 열리자 기자들의 셔터 세례와 함께 우레와 같은 함성이 들려왔다.
“꺄아아아아!”
“도재희! 도재희!”
재익이 형이 내게만 보이는 각도에서 미소 지었다.
“아이돌 저리가라네.”
수많은 팬들이 내 이름을 연호했다.
나와 팬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레드라인이 걷혀지고, 포토 존 앞으로 걸어갔다.
포토 존에는 [7년의 기억>에서 내 누나 역을 맡았던 여배우 하윤과 설강식 선배님, 여호석 선배님, 박진우 연출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서 와”
선배님들께 인사하고, 하윤과도 악수 했다.
마지막으로 박진우 연출과 뜨겁게 끌어안았다.
그리고 우리 다섯 사람은, 기자와 팬들에게 손을 흔들며 웃어보였다.
여호석 선배님이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며 내 쪽으로 곁눈질 하시더니, 복화술이라도 하듯 말씀하셨다.
“어때? 어디가 더 좋아?”
미국와 한국 중 어디가 좋냐는 질문.
음, 한국은 집에 온 기분이고, 미국은 회사에 나가있는 기분이다.
말해 뭐할까.
“지금이 너무 좋아요.”
“흘흘, 그럴 줄 알았어.”
포토타임이 간략하게 끝나고, OGV 시네마 하우스 안으로 들어섰다.
STAFF 목걸이를 건 남자가 우리를 VIP대기룸으로 안내했고, 일반 관객과 기자들이 썰물 빠지듯 극장 안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대중들의 눈에서 비교적 자유로워지자, 너도나도 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오웬 형제가 정말로 도 배우님을 보고 영화를 결심했습니까?”
최근 공개된 기사에는 ‘패브리케이터를 찍어야겠다는 결정적 계기가 된 배우가 바로, 도재희’ 라는 문장이 있었다.
오웬 형제의 빅 팬인 박진우 연출에게는 궁금할 수밖에 없는 대목.
“네. 그렇게 말씀해주시긴 하셨습니다만… 저 기분 좋으라고 하신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정말… 대단하네요.”
박진우 연출은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감탄을 보내더니, 설강식 선배님에게 말했다.
“제 말이 맞지 않습니까, 선배님? 재희 씨는 저만의 페르소나가 아니라는 말.”
그러자 설강식 선배도 알겠다는 듯 말했다.
“그러게. 우려와는 다르게 잘 적응하고 있어서 다행이야.”
“….”
응? 페르소나?
둘이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는 몰라도, 칭찬인 것 같지?
그 때, 조용히 듣고만 있던 하윤이 쑥스러운 얼굴로 내게 말했다.
“선배님. 지난 번… 팬 카페에서 LA갈 인원들 뽑을 때요.”
“네? 아, 네.”
“저도 그 때 지원했었는데, 떨어졌거든요. 그래서 너무 아쉬웠어요.”
“…. 아.”
그랬지.
잠시 잊고 있었다.
하윤, 내 팬 카페 회원이었지.
“그래도, 오늘 선배님 봬서 너무 좋아요! 도졌다!”
하윤은 이번 영화 촬영을 계기로, 미니시리즈 데뷔를 코앞에 두고 있다. 아직은 조연이지만, 이 영화가 그녀의 등 뒤에 날개가 될 것이다.
“선배님! 시사회 기념으로 사진 한 장 찍어도 될 까요!”
“그럼요.”
가끔 헷갈린다.
내 팬인지, 함께 출연한 여배우인지.
셀프 카메라에 우리 얼굴이 보였고, 찰칵 소리와 동시에 VIP룸의 문이 열렸다.
“배우님들! 시사회 시작하겠습니다.”
*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스릴러이자, 한 인간의 미워할 수 없는 드라마틱한 복수극.
[7년의 기억>은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이끌어냈고, 평론가들에게 극찬을 받았다.상영이 끝나고, 영화가 주는 열기가 채 가시지 않는 극장에서 진행된 관객 GV.
어느 기자가 내게 물었다.
“도재희 배우님! 영화, 몇 만이나 예상하십니까?”
몇 만이나 예상 하냐고.
통쾌한 사이다. 적절한 신파. 무거운 공기를 가볍게 풀어내는 시원시원한 액션까지.
흥행할 수 있는 공식은 모두 들어있는 영화다.
박진우 연출이, 성공을 위해 작정하고 만든 영화.
천 만.
그래, 천만은 들어야 만족할 것 같다.
만약 [7년의 기억>이 천만을 터뜨린다면.
박진우 연출은 단박에 ‘천만 감독’으로 급부상 하게 될 것이고, 나는 [이선>에 이어 2연속 천만 배우가 될지도 모른다.
으음, 그거 좋은데.
하지만 나는 눈웃음 지으며 겸손을 표했다.
“가능하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자 여호석 선배가 앞으로 나서며 마이크를 들어올렸다.
“물어 뭐해? 무조건 천 만이지. 안 그래? 끌끌!”
“천만 좋지.”
설강식 선배님까지 거들자, 나 역시 분위기에 편승해 큰 소리로 외쳤다.
“하하! 네. 천만 기원합니다!”
답변과 동시에 플레시가 터져 나오고 기자들이 너나할 것 없이 번쩍 손을 들어올렸다.
사회자가 한 기자를 지목하자, 그 기자는 이번에도 내게 물었다.
“도재희 배우님! 향후 일정이 어떻게 되십니까? 할리우드 활동에 전념하실 계획이십니까!”
“도 배우님! 영화 [패브리케이터>는 어떤 영화입니까?”
“도재희 배우님!”
“….”
아아.
[데드 매니악>과 [패브리케이터> 때문일까.관객 GV 행사인데, 어째 내 기자회견이 된 같은 기분이다.
내가 예의 있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영화에 관한 질문만 받겠습니다. 개인 인터뷰는 따로 진행할게요.”
그러자 기자들이 풀죽은 얼굴로 너나할 것 없이 손을 내렸고, 내가 입을 열었다.
“일반 관객 분들 질문을 받아볼까요?”
이 말은, 약속된 말이다.
사회자와 [끝장 형제들>팀. 그리고 [7년의 기억> 팀만의 약속.
슬금슬금, 숨어있던 VJ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객석 뒤편에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꺄아아!”
“한세혁!”
예능인 중 매년 브랜드 평판 1위를 놓치지 않는 국민 MC 한세혁이 모습을 드러내고, MC패널들이 단체로 몰려들었다.
객석은 뒤집어졌고- 기자들은 카메라 앵글을 뒤로 돌렸다.
“한세혁이? 여길?”
“[끝장 형제들> 팀인가?”
VJ들이 무대 단상 앞으로 몰려들었고, 나와 [7년의 기억>팀은 아무것도 몰랐다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세상에…”
이 모든 상황을 진즉부터 알고 있던 박진우 연출이 능청스럽게 놀란 연기를 선보였는데, 이를 본 여호석 선배님이 빵! 터지셨다.
“크하하! 똑바로 해. 박 감독.”
“…. 흠흠. 어색했나요?”
하하, 감독님은 역시 연기 말고 연출이 제일 잘 어울려요.
분위기는 좋다.
객석 반응은. 때 아닌 예능 군단의 깜짝 출연에 자지러질듯 기뻐했고, 기자들은 ‘먹잇감’을 놓치지 않는 맹수의 눈으로 우리를 둘러싸 노트북을 두드릴 준비를 마쳤다.
이들이 영화 시사외장에 왜 왔을까?
모두가 궁금해하는 순간, 국민MC 한세혁이 무대로 올라 와 내게 말했다.
“많이 놀라셨죠?”
나는, 얼떨떨한 심정을 감추지 못한 채 말했다.
“예, 예…”
“축하드립니다! [끝장 형제들>이 뽑은 올해를 빛낸 인물에 뽑히셨습니다!”
패널들이 박수를 유도했고, 객석에서 물개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나는.
“하아-?”
입을 쩍! 벌렸다.
“에, 정말요?”
그러자 박진우 연출이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그래! 저거지!’ 라고 말하는 듯 했다.
흠흠, 감독님.
연기는 이렇게 하는 거라고요.
*
시사회가 끝나고, VIP룸에서 진행된 [끝장 형제들> 촬영.
예능 촬영은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다.
미리 협의된 ‘대본’이 있기는 하지만, 머릿속에 꽉 들어 차있는 ‘콘티’대로 촬영하는 것이 아니라 ‘즉흥’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내가 무언가 ‘만들어야’ 하는 입장일 경우에나 그렇다.
그 누구보다 내 예능 섭외를 원한 쪽은 방송국 쪽이고.
나는 들어오는 예능 중, 하나 두 개를 적당히 골라내기만 하면 되는 입장.
국민 MC 한세혁은 능수능란하게 촬영 분위기를 지휘하며 내게 곤란한 질문은 애초에 차단했고. 내 ‘위주’로 방송 분위기를 주도했다.
대본에는.
“이번에 영화 시사회를 다녀왔거든요. 역시, 도재희라는 말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어요. 그렇죠? 이 방송이 나갈 때쯤이면 극장 최종 스코어가 나왔겠네요. 아까 천만 예상하셨죠?”
“하하, 네. 바램입니다.”
“지금 촬영이 10월 중순이거든요. 아직 개봉하기도 전입니다. 시청자 여러분들. 저 한세혁이 [7년의 기억> 성적을 예상해봅니다. 1000만, 무조건 넘는다고 봅니다.”
“천만 못 넘으면 제가 한 말 편집해주세요. 하하.”
이런, 가벼운 영화이야기와 근황 토크부터.
“[게라드 쇼>에서 우리, 재희 배우님이 하셨던 말씀이 화제가 되었잖아요. 그 뒤로 #Do 운동으로도 이어졌고. 어떻게 보시나요? 문제점들이 많이 개선이 되었나요?”
제법 중요하면서 무거운 질문들도 다수 포함되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게라드 쇼>와 SNS를 통해 유색 배우들의 뜨거운 지지를 얻어내었다는 점과, 할리우드에서 쉬지 않고 활동을 이어가는 점 때문에 이들이 나를 찾아왔으니까.“아직 가시적인 성과는 없지만, 차차 바뀌리라 믿습니다.”
“그렇군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면… 할리우드에 처음으로 진출한 배우는 임명한 선생님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도재희 배우님을 보면, 이런 느낌이 들어요. 혼자 외롭게 할리우드에서 싸우고 계시는 느낌. 길을 닦고 있는 느낌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 으음.”
그렇게 봐주면 고맙지만.
글쎄.
내가 무슨 정의의 용사도 아니고.
“글쎄요. 저는, 그저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뿐입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요.”
모든 일의 순서를 따지기 이전에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
내 ‘성공’.
이 전제가 ‘중심’에 있다. 이것이 빠진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물론, 내 성공을 말미암아 제2, 제3의 경우가 나올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는 영광이고 훌륭한 일이겠지만.
‘최초’가 나였으면 하는 욕심은 숨길 수가 없다.
속물적인가?
하지만 난 영웅이 아닌 걸.
이들 역시, 내가 말한 ‘진실’이 거짓인지 아닌지- 그 누구도 관심이 없다.
저들이 관심있는 것은, 내 말이 어떻게 들리는지.
어떤 ‘흥미’를 유발할 지.
그것 만이 중요할 뿐.
“오.”
한세혁의 입이 조금 벌어졌다.
“역시, 겸손하시기 까지 하군요.”
“….”
영향력은 파도와 같고, 그 파도가 밀어닥쳤다.
나는, 어느새 그런 사람이 되어버렸다.
[ 책 먹는 배우님 – 117화. > 끝ⓒ 맛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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