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an Actor’s Book RAW novel - Chapter (124)
124.
“이게 전부?”
“응. 회당 1억 2천짜리 미니시리즈부터… 아니지, 1억 8천 제의한 곳도 있어. 중요한 건, 그냥 찔러보는 금액이 이렇다는 거야.”
“….”
“올릴 수 있다는 말이지. 크! 아깝다, 아까워.”
아직 내 차기작에 대한 소문이 닿지 않은 한국.
한국에서 차기작을 진행할 것이다, 그래서 도재희가 한국에 귀국한 것이다.
이런 소문만 무성하게 퍼져있는 상태에서 내게 밀려들어오는 제의들은, 일종의 시키지도 않은 대왕 돈가스다.
“먹고 죽으라는 거지.”
입 벌려라, 개런티 들어간다.
중국 시장이나 할리우드 시장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한국시장에서는 1억 개런티가 넘어선지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았다. 1억 개런티를 요구했다 방송 3사에서 공공의 적으로 찍힌 배우도 존재하지 않은가.
물론, 2억에 가까운 예외의 경우도 존재해 왔지만 그런 배우들이 다작을 하지 않았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이 영화는 출연료만 9억이네.”
영화, 드라마, CF.
줄줄이 밀려드는 고액 제안들을 직접 거절하기 민망했던 나는 한 번에 처리할 생각이다.
아주 에둘러서 표현하는 거지.
“아래층에 모여 있죠?”
“응. 이제 내려갈까?”
L&K 사옥에 내의 공개 프레스 존에서 진행한 공개 인터뷰. 선정된 다섯 곳의 매체에서 차출된 기자들이 한데 모여 앉아있었다.
이들은 내 ‘파발’.
오늘 오후에 내 차기작 계획을 실시간 검색어로 띄어 올려줄 것이다.
“오랜만입니다.”
나는 웃으며 기자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오채연 기자만큼이나 현장에서 오다가다 얼굴을 익힌 기자들이 다수다.
“미국 현지에서도 인기를 아주 실감하고 계실 것 같은데… 돌연, 한국에 돌아 오셨어요. 이유가 뭔가요?”
기자 한 명이 손을 들어 질문을 하려고 하자, 내가 막아섰다.
“제가 다 말씀 드릴게요.”
내가 한국 스케줄을 소화하는 법.
내 ‘영화’ 만들기는 이렇다.
먼저, 만 천하에 알린다.
“여, 연출에 도전하신다는 말씀이십니까?”
“잠깐만. [당신의 추억을 삽니다>? 그거 OGV 쪽 관계자한테 들은 이름 같은데? 재능 있는 신인 작가가 쓴 대본인데… 너무 좋았다고.”
“나도 들었어. 박진우 감독이 요새 차기작으로 밀고 있다는 작품이잖아. 그걸, 재희 씨가 쓰셨다는 겁니까?”
“네.”
“자, 잠깐. 그럼 박진우 감독이 연출이 아니라 제작을 맡았다는 거네요.”
“맞아요.”
“허! 이거 참, 재밌는 소식이네.”
기자들의 입 꼬리가 일제히 올라간다.
“수십 억 원의 제안들을 모두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스타가 ‘직접’ 만드는 영화. 제목 어때요?”
“나쁘지 않은데요.”
“지금 올라갑니다. 자, 간다.”
기자들이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였고, 기자들이 현지에서 쏟아낸 정보는 언론사로, 언론사에서 포털 사이트로.
불을 뿜는 봉화 마냥 번지기 시작한다.
[배우 도재희, 차기작 발표. “직접 만들고 싶었습니다.”] [도재희, 영화감독 데뷔 하나?] [[당신의 추억을 삽니다>는 어떤 영화? 영화관계자 “극찬”]이렇게 화제가 되는 기사는 포털사이트 메인에 걸리는 것은, 당연하고.
자, 내 영화 만들기 ‘두 번째’.
“반응 어때요?”
“지금 실검 1위야.”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어차피 개봉까지 많이 남아있기에, 이런 대중들의 관심은 금방 식기 마련이지만.
영화 관계자들은 다르다.
뜨는 작품, 뜰 수밖에 없는 작품. 투자자들의 지갑 주머니를 자동으로 열게 만드는 작품이라면, 한 시라도 빠르게 접촉하려고 할 터.
박진우 연출의 시간이다.
투자자를 모으고, 제작진을 꾸린다. 로케이션 팀은 전국 각지로 흩어져서 대본에 어울리는 촬영장을 물색하고, 섭외 팀은 배우들과 접촉한다.
“JW 미디어 쪽에서 투자제의 들어왔다는데?”
“대성엔터에서 자기 배우 두 명 집어넣는 조건으로 10억.”
“L&K가 현재 최대 투자자야. 역시! 회사에서 제대로 밀어주네.”
돈이 준비되었다.
얼마를 어떻게 쓸지에 대한 따분한 이야기 따위는 집어 치우자.
쓸 때는 화끈하게 써야지.
마지막 세 번째.
“그럼, 캐스팅 하러 가시죠.”
배우 라인업.
*
12월.
한국에서 가장 뜨거운 영화 한 편이 제작 준비를 빠르게 마쳐가고 있다.
제작 총괄을 맡은 박진우와 프로그램 기획 일을 도맡아 처리하게 된 김민희 두 사람은, 예상치도 못한 ‘큰 돈’을 쥐게 되었다.
“150억이 넘는데…? 무슨 블록버스터 찍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많을 필요가 있나.”
“후반 작업(CG) 생각하면 이 정도는 여유자금이지 뭐. 그 덕분에 세트도 빨리 짓고 있잖아?”
그 덕분에 장소 대관 및 섭외는 차질 없이 진행되었다.
애초에 ‘돈’ 이라는 것은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일도 쉽게 풀리게 만드니까.
한국에 돌아온 직후, 곧 바로 작업에 들어간 경기도 남양주 세트작업은 별 무리 없이 진행되고 있다.
시대물도, 사극 세트도 아니기에 세트 짓는 일은 오래 걸릴 것도, 어려울 것도 없다.
“확실히 이름값이 있어서 그런가… 속도가 다르다. 달라.”
“그렇지? 도 배우님이 처음 두 달 안에 끝낸다고 하셨을 때, 긴가민가했거든. 이게 될까? 근데 되겠는데?”
“나도. 근데 요즘 돌아가는 상황 보고 있으면… 이제껏 우리가 너무 복잡하게 생각했던 건 아닐까 싶어. 원래 이렇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인데.”
“음, 엄밀히 말하자면 그건 아냐. 도 배우님 이름 값 때문에 가능했지.”
“후후, 그런가.”
프리프로덕션은, 영화가 크랭크업(촬영 시작)하기 직전까지의 모든 과정을 말한다. 제작진 섭외부터 촬영장소 섭외 등등. 이 과정이 가지는 기간은 영화마다 천차만별.
그런데, 도재희가 언론에서 공식 발표한 이후에 배우 섭외를 제외하고 굵직한 것들은 대부분 완료되어가는 상황이니 놀랄 수밖에.
이제는 ‘배우’ 섭외만이 남았다.
[당신의 추억을 삽니다> 팀 초미의 관심사는 하나.과연 어떤 배우가 섭외될 것인가?
[요즘 ‘대세’ 배우 양주혁, SNS 통해 도재희에게 공개적으로 캐스팅 희망. “선배님. 저도 끼워주시면 안될까요.”] [영화 [당신의 추억을 삽니다.> “시놉시스 저도 보고 싶어요!” 안달 난 배우들]웃돈을 얹어서라도 들어오고 싶어 하는 영화. 현재 작품에 들어가지 않은 배우들 사이에서 들어오고 싶어 난리가 난 영화다.
“누가 뽑힐까? 박 형. 재희 씨가 슬쩍 해준 얘기 없어?”
“없었어. 알 잖아. 철저하게 분업해서 일 진행했던 거. 섭외는 도 배우님 만 아시겠지. 확실한 것은, 전화 한 통이면 A급 배우들이 줄줄이 캐스팅 되는 역대급 작품이 될지도 모른다는 거고.”
“히야. 전화 한 통에 캐스팅이라.”
“….”
박진우는 은근히 기대감을 품었다.
도대체 얼마나 클까.
이제는 상상도 되질 않을 지경이다.
*
태평양 건너 [데드 매니악>은 벌써 9회, 10회 방영을 앞두고 있다.
시청률은 [라스팔마스의 휴일> 시즌2를 넘어섰다.
이 화제의 드라마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고 있는 배우는.
“재희야.”
“네?”
나였다.
“전미 시청률 1위. 북미 시청률 1위! 축하한다!”
더스트들 사이에서 살아남은 인간군상들 중 가장 ‘인간적인’ 행동을 하는 내 연기가 공감을 얻었고.
주인공 ‘조지’와 더불어, 시즌 말미 까지 무조건 살려놓아야 하는 배우 1위로 뽑혔다.
“방금, UAA랑 통화하고 왔는데. 벌써부터 [데드 매니악> 제작진들 시즌2 촬영 언제 들어갈지 호들갑이라던데?”
“아직 방송도 안 끝났는데. 벌써요?”
“응. 우리 쪽 스케줄 계속해서 확인하고 있더라. 미국에 언제 돌아 오냐고.”
“시즌2 대본도 안 나왔을 거면서, 호들갑은.”
L&K 권우철 대표님이 말씀하셨던 ‘정치적’인 문제.
미국 제작사와의 관계에서 우위를 가지고 가는 행동.
나는 이런 것들이 ‘필요’ 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리 즐기는 타입은 아니다.
하지만, 대머리 PD와 맺었던 불공정 계약 때문에라도 나는 고개를 뻣뻣하게 들 것이다.
“기다리라고 해요. 재계약 원하면.”
“그래야지. 자기들이 별 수 있나? 지금 전미가 기다리고 있는 배우인데, 우리 스케줄 맞춰서 기다려야지. 개런티도 한 60만 질러버려. 지금 기세로는 충분할 것 같은데.”
말은 이렇게 했지만.
“….”
결국, [데드 매니악> 촬영 때문에 한국에서의 영화 준비를 최대한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알았어. 독촉 하지 마. 빨리 갈 테니까.
나는, 나대로 내 영화에 들어갈 배우들 캐스팅 작업에 매진했다.
투자를 미끼로 내 머리 위에서 움직이려는 회사들은 1차적으로 모조리 걸렀기에 배우 섭외에 대해서는 그 어떠한 압박도 없었다.
온전히 내 머리 속에서 일어난 캐스팅.
주연 배우라는 영향력과, 감독의 영향력.
두 가지를 동시에 등에 업은 내게 무서운 것은 없었고, 조단역을 캐스팅하는 나는.
마치, 거대한 냉장고를 내 마음대로 독식하는 쉐프였다.
“이 배우 준비해주세요. 아, 그 친구는 안돼요. 목소리가 너무 힘이 없어요.”
감자, 당근, 양파.
가릴 것 없이 식칼로 퉁퉁퉁 치면 ‘배역’ 이라는 이름의 예쁜 재료가 되어 내 머릿속이라는 그릇 안에 담겼다.
이들은 내 머릿속에서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할 지 정답을 보여주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철저한 ‘기준’ 에 맞춰지지 않는 배우는 그대로 탈락.
내 안에서는 철저하게 ‘오디션’이 진행되었고.
조단역 미팅을 가질수록 확고해졌다.
“실력파 찾기 힘드네요. 인물이 이렇게 없나.”
배우는 많고, ‘진짜’ 배우는 몇 없다는 사실.
“후, 그러게. 조단역은 다 비슷비슷한 느낌이라… 주연은 누구로 할 거야? 설강식 선배님은 참여하신다고 하셨지?”
“네.”
설강식 선배님이 영화에 참여해 주기로 하셨다. 하지만 이 영화에 등장하는 주연 배우는 총 세 명.
설강식, 도재희. 마지막.
“다른 한 명은?”
“음. 그건 이미 정해놨어요.”
“응? 누구?”
이 영화를 쓰면서, ‘신’ ‘특별한 존재’를 연기할 배우는 이미 머릿속에 있다.
아직, 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누군데 그래?”
재익이 형의 질문에 내가 빙글빙글 웃으며 전화기를 들어올렸다.
극을 쓰면서,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배우.
통화 버튼을 누르고 짧은 착신 음이 흘러나온 뒤, 내가 말했다.
“승희 형, 요즘 뭐해요?”
“…. 누구? 조승희?”
조승희.
연기 결벽증.
대한민국 연예계 최상위 포식자.
그래.
기왕 할 거면, 제대로 한 번 해보자.
*
[설강식X조승희X도재희 이런 조합, 어디에도 없었다.] [도재희 영화에 출연, 우정? “아니다. 대본이 너무 좋았다.”] [제대로 불붙은 연기 신들의 전쟁! [당신의 추억을 삽니다> 크랭크업 까지, D-10]끝나버렸다.
이제껏 본 적 없는 라인업이 펼쳐졌으니까.
스크린에서 각각의 얼굴도 보기 힘든 대배우 세 명이 한 작품으로 한데 뭉쳤다.
“….”
휴대폰 속 현란한 헤드라인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 남자.
여의도 빌딩 숲 보다 높은 머리 위.
구름 같이 지어진 고층빌딩 펜트하우스.
그 널찍한 거실에 서 있던 조승희는 보고 있던 휴대폰 기사를 닫아버리고는 쇼파 위로 던졌다.
털썩.
“….”
시선을 창밖으로 던졌다. 몇 걸음 걸어가서- 베란다 문을 열어젖혔다.
쌀쌀한 12월의 밤바람이 불어와 조승희의 머리칼을 휘감았다.
그런, 그의 얼굴이 조금 복잡해졌다.
“으음.”
함께 영화를 찍는 것 뿐인데.
왜, 부담감을 느끼는 걸까.
분명, 처음에는 안 그랬는데 말이야.
여전히 사랑하는 후배고, 좋은 동생이지만.
“…. 도전인가. 아니면 동정인가.”
가끔은 참, 무섭게 느껴진다.
[ 책 먹는 배우님 – 124화. > 끝ⓒ 맛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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