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an Actor’s Book RAW novel - Chapter (127)
127.
“안녕하세요. [영화가 좋다>의 마석률입니다. 오늘은 배우에서 감독으로. 또 할리우드에서 한국으로. 종횡무진 활동을 이어가며 충무로를 발칵 뒤집어 놓은 장본인을 만나보겠습니다. 얼마 전, 대종상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영화배우 도재희 씨입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영화가 좋다> 시청자 여러분들. 반갑습니다. 도재희 입니다.”
“네. 최근 아주 정신없으실 것 같습니다. 할리우드에서 찍은 드라마는 빅히트를 치고, 한국에서는 연출에 도전하시고. 요즘 어떠신가요?”
“하하, 영화 촬영에만 매진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설 선배님이나, 승희 형이 많이 도와주셔서 무리 없이 찍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이번 영화에서 그야말로 ‘역대급’ 라인업이 나왔습니다. 팬들의 관심이 엄청난데요. 어떠신가요? 실감하시나요?”
“네.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연기파 배우들이 총 집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당장, 저부터 너무 기대됩니다. [영화가 좋다> 시청자 여러분들! 잠시 후, 저희 [영화가 좋다>에서는 도재희, 설강식, 조승희 주연의 [당신의 추억을 삽니다> 티저 영상이 단독으로 최초 공개됩니다! 또, 아주 ‘특별한’ 손님들도 찾아올 예정이니, 채널! 고정하세요! 우선, 광고부터 보고 오시죠.”
“광고 들어갔습니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영화가 좋다>.
광고가 나오는 1분 30초 가량의 시간을 이용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으으.”
그러자 조승희, 설강식 선배가 내 옆에 의자를 놓고 앉았다.
MC가 말한 ‘특별한’ 손님의 정체.
우리 배우들.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달려와 조승희의 분장수정을 빠르게 마무리 지었고, 이내 플로어디렉터가 다가와 외쳤다.
“20초 전입니다!”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자리에 앉았다.
“10초 전! 스탠바이! 큐!”
빨간불이 번뜩이고, MC 마석률이 외쳤다.
“네! [영화가 좋다>에 특별한 손님들이 오셨습니다. 이쯤 되면 누군지 짐작하셨을 텐데요. 벌써부터 댓글이 난리가 났습니다. 네, 맞습니다. 한국 영화의 자존심! 설강식 배우님! 그리고 조승희 배우님 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영화는 좋다> 시청자 여러분. 설강식입니다.”
“조승희 입니다.”
이런 방송은, 보통 개봉 직전에 하는 것이 정석이다.
그래야 홍보 효과가 크니까.
하지만, 어떤 경우든 예외는 있기 마련.
캐스팅 당시부터 화제를 불러일으킨 이번 영화는 크랭크업 당시부터 언론들에게 집중 조명을 받아왔고, 촬영이 종료된 직후, 이런 ‘라이브 쇼’까지 섭외가 된 것이다.
“한 자리에서 뵙기 힘든 분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공교롭게도 도재희 배우님은… 아니지. 감독님이라고 해야 할까요?”
“편하신 대로 불러주십시오.”
“감독님으로 하죠. 도재희 감독님은 두 분과 모두 같은 작품에 출연 하셨었죠?”
“네. 맞습니다. 제 스크린 데뷔작은 조승희 형님과, 가장 최근 작품은 설강식 선배님과 함께 했습니다.”
“그 인연이 쭉 이어져 이런 엄청난 결과를 낳았군요! 좋습니다. 자, 다음으로는… 시청자들의 질문들을 취합해서 실시간으로 여쭤보도록 할 텐데요. 조금 짓궂을 수 있는 질문이라도, 괜찮으신가요?”
“아, 네.”
“좋습니다. 먼저 첫 번째 질문입니다.”
시청자 질문 시간.
“연기파 배우가 모두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배우들 사이에서 기 싸움 같은 것은 없었나요?”
“…. 오.”
기 싸움이라.
꽤나 직설적인 질문에 내가 조승희와 설강식 선배님 쪽을 흘낏 바라보았다.
“누가 대답하시겠습니까?”
이들 역시, 재미난 이야기라도 떠오른 듯 웃음 지었지만.
“설강식 선배님이 하실 겁니다.”
“응? 아뇨. 승희가 할 겁니다. 승희 너가 해.”
“예? 그럼, 도 감독이 할 겁니다.”
너나할 것 없이 대답을 미루었다.
이럴 땐, 막내가 나서야지. 어쩔 수 없이 내가 마이크를 잡았다.
“기 싸움이라….”
설강식 선배님이 편하게 말하라는 듯 어깨를 으쓱이셨고, 나는 옅은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죠.”
*
일부러 현장에 늦게 도착한다거나, 메이크업을 늦게 받는다거나 이런 유치한 기 싸움이 아니다.
연기 생활을 하다보면, 가끔 이런 이야기를 듣고는 한다.
“연기는, 결국 예민한 사람이 잘해.”
예민한 사람.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어려워하고, 고심하고, 별것도 아닌 일에 마음을 깊게 쓰고, 자기감정에 솔직해도 너무 솔직한 사람들.
맞는 말이라고 느낀다.
조승희와, 설강식이라는 두 명의 ‘예민 덩어리’들을 보니까 자연스럽게 알겠다.
나는 내 ‘일’에 대해서만큼은 예민한 편이다.
조승희야 ‘연기 결벽증’ 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유명하고, 설강식 선배님은 털털한 듯 보이지만, 자신이 연기한 테이크(TAKE) 중 몇 번째 테이크의 연기가 가장 좋았는지 다 기억할 만큼 꼼꼼하고 예민하다.
이런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있는데, 어찌 기 싸움이 안 일어날까.
“음, 재희야. 이번 씬, 다시 찍었으면 좋겠는데…”
“네? 저는 좋았는데요.”
“그래? 음, 아냐. 아무래도… 다시 찍어야겠어.”
조승희.
연기 결벽증이라는 말에 걸맞게, 내가 충분히 훌륭하다고 오케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재촬영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는, 설강식 선배님도 마찬가지였다.
“도 감독. 승희가 감정을 좀 더 쓰는 것 같은데… 우리 그림 어때?”
“좋은 것 같은데요. 확실히 격렬해졌어요.”
“그렇지? 그럼, 이 씬 마지막 컷 뭐로 쓸 거야?”
“선배님 바스트요.”
“그래? 그럼 내 바스트만 다시 따자.”
조승희X설강식은 서로에게 절대 지지 않으려는 듯, 필사적으로 재촬영을 했다.
상대방이 90점이면, 나는 95점. 그 다음은 100점.
그 덕분에 120% 이상의 연기가 나왔다.
이 싸움의 중심에서 ‘나’ 역시 빠질 수 없다.
이따금씩 위기감을 느낄 때면, 배시시 웃으며 촬영감독님께 양해를 구했다.
“음, 한 번만 더 찍을까요?”
나 역시, 지고 싶지 않으니까.
*
MC가 왁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 그러니까, 말은 하지 않아도 서로가 서로를 의식하고 있었다는 말이네요?”
“네.”
“조승희 배우님. 설강식 배우님. 반론할 기회를 드릴게요. 사실입니까?”
MC의 질문에 두 사람은 어깨를 으쓱였다.
인정한다는 말이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죠. 그렇죠, 선배님?”
“승희, 재희. 둘 다 한 번 쯤 넘어가줄 법도 한데 끝까지 이겨먹으려고 다시 찍자고 하더라니까요. 껄껄!”
“선배님, 저도 먹고 살아야하지 않겠습니까.”
“으흐흐, 오랜만에 긴장하고 좋았지.”
둘의 이런 반응에 MC가 잔뜩 신난 얼굴로 말했다.
“이야! 정말 기대됩니다. 이런 반응이 비단 저만 그런 게 아니거든요. 벌써 댓글이 4천 개를 돌파했습니다. 그럼 댓글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 와, 설강식이 견제할 정도라고? 대체 어느 정도 길래?
– 영화 개봉은 언제 하나요? 그 날에 휴가 쓰고 싶은데.
– 티저 영상 빨리 공개해라!
대체적으로 한껏 ‘기대감’을 품은 반응들.
MC가 시간을 확인하더니 이제 적절하게 터뜨릴 때라고 생각했는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다들 궁금하시죠? 자, 채널 고정하십시오. 광고 나간 뒤, 곧 바로 티저 영상 공개합니다.”
*
까만 배경 위에 은하수처럼 떠오르는 별빛. 그리고 빛나는 한 줄의 문구.
[당신의 추억을 삽니다.>전환되는 장면.
장소는 가로등도 몇 대 없는 밤 골목이 을씨년스러운 읍내 외곽.
숨에 잔뜩 헐떡이며 달려가는 내 얼굴.
“헥, 헥. 할아버지.”
[간직하고 싶었던 추억.>80세를 넘긴 특수 분장을 한 설강식의 아련한 눈빛.
“잊고 싶지 않았어. 내, 모자란 아들 놈도.”
[절대 잊고 싶지 않았던 그 기억.>“제가, 당신의 추억을 사겠습니다.”
신비로운 느낌의 조승희, 그리고.
“얼마 인가요, 그거.”
“….”
그와 대비되는 촌티 가득한 내 모습까지.
[이 추억의 값은, 당신이 느끼는 그 ‘즐거움’> [당신의 추억을 삽니다.>영화의 시작과 끝을 관통하는 솔직한 편집.
특별할 것 없는 티저 영상이지만, 세 명의 배우의 얼굴을 한 장면에서 볼 수 있다는 즐거움은.
영화팬이라면 모두가 느끼는 공통된 생각일 것이다.
“와….”
MC의 탄성과 함께 우리 앞에 세팅되어있는 노트북에는 실시간 댓글들이 마구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우리는 인터넷 방송을 하는 스트리머 마냥, 댓글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반응 좋은데요.”
“그러게.”
프로그램은 어느새, 막바지를 향해갔다.
“자, 마지막으로 배우 분들께 공통 질문 한 가지씩을 드릴 건데요. 아무나 먼저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아, 네.”
“감독 ‘도재희’가 영화를 하나 더 찍자고 한다면?”
내가 영화를 찍자고 한다면?
내게는 해당되지 않는 질문인데.
이 질문에 설강식 선배님이 소리없이 웃음을 터뜨리셨고, 조승희 역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 부정인가.
섭섭할 것 같은데.
하지만, 대답은 의외였다.
“대본을 봐야 알겠지만, 감독으로서 능력은 이 작품을 통해 충분히 보았어요. 재능 있는 친굽니다. 어려운 선배들을 데리고 융통성 있게 잘 찍었어요. 저라면 할 것 같습니다.”
“저도, 해야죠. 누가 불러주는데.”
둘의 긍정에 MC가 이번에는 다르게 물었다.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그럼, 도재희 감독님은 다시 영화를 연출하실 생각이 있으십니까?”
내게는, 다른 질문이다.
감독을 다시 할 생각이 있냐고?
“음.”
나는 살짝 눈가를 찌푸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뇨. 다시는 안 할 것 같습니다.”
“네?”
그러자 설강식 선배님이 내 어깨를 살짝 치며 말씀하셨다.
“이봐, 도 감독. 네가 그렇게 말하면 우리가 뭐가 되?”
“허허, 이 자식이….”
“하하! 죄송합니다. 더는 못할 것 같아요. 저는 역시, 배우가 좋습니다. 한 번이면 족하다고요.”
음, 뭐랄까.
이 한 작품으로 연출에 대한 욕심은 모두 충족시켰다.
더 이상 짜낼 아이디어도, 획기적인 장면구성도. 어떤 번뜩이는 것도 생각나질 않는다.
그 사이, 다른 ‘갈증’은 더욱 강해졌다.
MC가 물었다.
“오, 의외의 답변인데요. 연출로서는 데뷔작이자 은퇴작이 되시겠네요. 그럼, 차후 계획이 어떻게 되십니까? 역시… 배우로 돌아가십니까?”
“네.”
“그럼, 국내에서의 활동을 기대해도 좋을까요? 기다리는 국내 팬들이 많습니다.”
나는 옅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저었다.
“아뇨.”
내 이런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곳은 이제 바다 건너에 있다.
“잠시, 미국 좀 다녀오겠습니다.”
“아. 할리우드요.”
이번 내 여정은.
“아마도,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
아직 [데드 매니악>은 시즌2 대본 수정을 마치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 이전에, 한국에서의 일정을 모두 무사히 끝마쳤다.
따라서 꼬투리 잡힐 일도 없다.
한국 스케줄을 모두 끝내고, 곧 바로 미국행이 결정되었다.
당분간 한국에 들어올 일은 없다.
한국에서 [당신의 추억을 삽니다>의 후반 작업이 남아있지만. 우선 CG 팀에서 1차 작업을 마친 뒤, 소스를 들고 LA로 넘어올 예정이다. 그리고 스튜디오 한 곳을 빌려 미친 듯이 편집에만 매진해야겠지.
그 덕분에 [데드 매니악> 시즌2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차기작에 대한 문의도 받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정말, 연출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배우가 편하지?”
재익이 형의 질문에 내가 풉, 웃음을 터뜨렸다.
“네. 그래도 덕분에 많이 배웠어요. 어떤 지랄 맞은 감독을 만나도, 그 감독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다고나 할까.”
“그 HBS 대머리 제작 PD도?”
[데드 매니악>의 HBS 제작 PD.인종을 빌미로 출연료를 협상하던 그 자식.
“… 아뇨. 그 쪽은 용서가 안 됩니다만.”
“HBS 제작 PD가 계속해서 UAA에 확인한다고 하더라. 40만 달러에 재계약. 이거, 어떻게 할 거야?”
나는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만나서 직접 얘기할게요.”
미국으로 간다.
[ 책 먹는 배우님 – 127화. > 끝ⓒ 맛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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