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an Actor’s Book RAW novel - Chapter (13)
13.
티저 영상은 코스 요리에서 메인 요리가 나오기 전에, 시청자들의 군침을 돌게 만드는 일종의 ‘에피타이저’ 역할을 한다.
예고편과는 개념이 조금 다르다.
줄거리를 전달하는 예고편과는 다르게, 내용과 무관한 짧은 영상 하나로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목적이 있다.
[청춘 열차>에서는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폐철로’와 ‘열차’라는 매개체를 이용해 ‘미스터리’ 느낌으로 표현해냈다.뿌연 안개를 청춘에 빗대고, 그곳을 지나가는 기차를 우리들에 빗대며 현실적임과 동시에 환상적인 느낌을 가미하는 것.
동화 같은 멜로디와 함께 안개 속을 거니는 주연배우들.
고즈넉한 간이역이 배경으로 등장하고- 도저히 기차가 다닐 것 같지 않은 녹슨 철길이 휑하니 드러난다. 하지만 의외로 뒤에서 기차 경적 소리가 들려오고, 고개를 돌리면 기차가 철길을 빠르게 지나간다.
후두두두두둑!
[너도, 나도 우리 모두. [청춘열차>]소윤의 나레이션과 함께 등장하는 짧은 대표 문구로 마무리.
이 티저 영상은 잭팟 까지는 아니었지만, 실시간 검색어에 이름을 올리며 작품의 흥행을 어느 정도 예감 하게했다.
L&K사무실 매니지먼트 1팀은 제법 완성도 있는 티저 영상에 한참 동안 들끓고 있었다.
“현재 [청춘열차> 실검 2위! 반응 좋고요!”
“와, 대박! 영상 퀄리티 좋은데?”
“색감이 대박이지 않아요? 배경에 비해 우중충한 느낌이 전혀 안 들어요.”
“기차가 CG라는 느낌도 전혀 안 들죠? 확실히 돈 좀 들이니까 드라마도 퀄리티 나온다. CG팀이 영화 팀이 라더라니.”
“재희 좀 봐. 몰입 감이 상당한데? 완전 씬 스틸러!”
한참을 왁자하게 떠들던 재익이 형이 기분 좋다는 듯 웃으며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어때? 포털사이트에 이름 올라간 소감이?”
그래.
티저 영상이 공개된 오늘,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 끝자락에 내 이름이 올랐다.
18위. 도재희.
물론, 유동인원이 빠르게 몰려왔다 사라지는 점심시간이라는 점을 고려해 볼 때. 거품이 빠지듯 금방 내려갈 것이다.
또한, 검색어 순위 최상단을 차지한 송문교나 소윤, 김균오에 비하면 내게 쏟아진 관심은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받아보는 대중의 관심에 그 경중은 중요하지 않았다.
“신기하네요. 제 얼굴이 인터넷에 나오니까.”
L&K 홍보팀에서는 내 프로필 정보에 대해 포털 사이트 측에 수정요구를 했고, [청춘열차> 티저 영상 공개와 시기가 맞물려, 내 사진이 포털 사이트에 공개되었다.
이제, 인터넷에 내 이름을 치면 프로필 사진이 나옴과 동시에 트위터에 내 이름이 오르내린다.
– 도재희? 이 분 비주얼 좋은데요?
– [청춘열차>남자 배우들 전부 비주얼이 훈훈 ㅋㅋ!
– 본방 사수 각 ㅋㅋ 기대 됩니다!
– 도재희라는 분… 처음 보는데 연기력 좋네요.
댓글, 관심, 인지도.
내가 그렇게나 기다려왔던 모든 것들.
이건 마치, 헤어 나올 수 없는 악마의 유혹과도 같았다.
“지금 반응 딱 좋다! 이번 방송 3사 경쟁작들이 비교적 약해서 기대해 봐도 좋겠어.”
“이야 이정도면 시청률 10% 가볍게 찍겠다!”
모든 사람들이 축제 분위기였지만, 사무실 한 가운데서 유독 얼굴 표정이 안 좋은 사람 한 명이 있었다.
문교다.
연신 얼굴을 구기고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송문교에게 매니저 한 명이 다가가 말했다.
“문교야. 티저 올라온 거 봤어? 너 잘 나왔던데?”
“….”
“문교야?”
송문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바락 소리질렀다.
“아! 안 본다고! 그딴 거!”
“… 어, 어?”
“티저는 지랄. B급 감성만 쳐 들어가지고.”
송문교는 있는 성질 없는 성질을 다 부리더니 문을 소리 나게 쾅! 닫으며 사무실을 뛰쳐나가버렸다.
얼빠진 매니저가 중얼거렸다.
“… 쟤 왜 저래?”
그러자 재익이 형이 인상 찌푸리며 말했다.
“아이, 그냥 모르는 척 해.”
“뭔데, 촬영 때 무슨 일 있었어?”
“아 별 일은 아니고, 어쨌든 지금 문교한테 [청춘열차> 얘기 안 꺼내는 게 좋아.”
“말해 봐. 무슨 일인데?”
재익이 형이 난감하다는 얼굴로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아, 그게.”
*
간단한 일이다.
티저 촬영 당일.
감독님의 도발에 아침부터 분개한 송문교는 눈에 쌍심지를 켰고, 티저 촬영을 진행하는 내내 표정이 좋지 않았다.
문병철 감독님도 첫날부터 싸우기는 싫었는지, 거기에 대해 트집을 잡지는 않았지만.
“컷! 다시 갈게요!”
어디까지나, ‘겉’으로 말을 하지 않은 것뿐이었다.
그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확실히 고의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독 송문교 촬영 분량에서만 똑같은 씬을 반복해서 찍고 있으니까.
송문교가 특별히 못한 것도 아니었다.
마치, 일부러 엿 먹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불순한 공기가 촬영장을 지배했고, 자연스럽게 분위기는 흐려졌다. 불만 섞인 얼굴로 송문교는 연기가 제대로 나오질 않아 반복되는 NG에 촬영은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 이거 분위기 왜 이래, 점심 전에 다 찍고 오후부터는 포스터 해야 하지 않아?”
“아 그게….”
“빨리 찍어야지. 여기 관광지라는 거 잊었어? 좀 있으면 레일바이크 타는 꼬맹이들 잔뜩 몰려올 텐데.”
좋은 배경도 있겠다, 인물들이 걸어가는 것 몇 컷트만 찍으면 되는 간단한 촬영이다.
그런데 왜 자꾸만 딜레이 되는 걸까.
“지금 나쁘지 않잖아? 근데 감독님 왜 저러시냐?”
촬영감독님이 연거푸 NG가 나오자 짜증 섞인 목소리로 불만을 토로했다. 하지만 조연출이 귀에 대고 몇 마디를 건네더니,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중얼거리셨다.
“어휴, 연출이랑 배우가 틀어지면 중간에 있는 우리만 피 본다니까. 일단 알았어.”
티저 촬영은 점심을 먹고도 한 시간 넘게 진행하여 오후 두 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고.
“컷! 다시!”
“컷! 아니 표정 좀 진득하게!”
“컷!”
“컷! 컷! 컷! 에라이! 다시!”
송문교가 낸 NG는 셀 수 없이 많았다.
이것은 감독님이 배우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경고였다.
고작 1분짜리 티저 영상을 찍을 때도 이렇게 고생할거니, 내 앞에서 괜히 ‘배우부심’ 부리지 말라는 경고.
하지만 송문교는 이것을 단순한 ‘경고’가 아닌, ‘도발’ 로 받아들였고 표정을 딱딱하게 굳혀버렸다.
“시발, 개 같네. 진짜.”
포스터 촬영까지 모두 마치고 차에 오르는 송문교는 입에 육두문자를 달고 있었다. 이는 회사에 도착해서도 마찬 가지였다.
“시청률도 거지같은 듣보잡 감독 새끼가 지금 나를 의도적으로 엿 먹이잖아! 스텝들 배우들 다 보는 앞에서!”
로드 매니저인 명길 씨는 하루 종일 들들 볶였고.
“아 시발! 그러니까 내가 하기 싫다고 했잖아! 형은 왜 억지로 시켜서 사람 이 꼴로 만들어!”
현장에 나오지도 않은 박찬익 팀장은, 촬영 종료 후 송문교의 꼬장을 죄다 받아줘야 했다.
송문교도 송문교지만, 확실히 감독님도 보통 성질이 아니다.
‘꼰대’ ‘독종’ ‘트러블메이커’ ‘컴플레인’ 모든 단어들이 문병철 감독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모든 내막을 들은 매니지먼트 1팀 사람들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문 감독님 성질머리 보통이 아니시지.”
“아니지, 이번 건 문교 잘못이지. 늦는 것도 타이밍 봐서 해야지 첫 촬영부터 그래버리면 감독님 체면은 뭐가 되냐?”
“맞아. 이번 건 문교가 잘못했어. 원래 그놈아가 싸움닭 기질이 있잖아.”
“아, 현장 피곤하겠는데. 앞으로 찬익이 형 어쩌냐? 문교 꼬장 엄청 부릴 텐데. 나는 아무리 사람 부족해도 [청춘열차>는 못 나간다. 알아서들 해.”
너도나도 의견을 내는 가운데, 다른 의견을 내는 이도 있었다.
“잠깐만. 그래도 문교가 사리분별을 아주 못하는 친구는 아닌데? 고작 그런 이유야? 감독한테 쿠사리 좀 먹었다고?”
송문교가 자존심 강하지만, 자신의 커리어를 망치면서 까지 자존심 부릴 ‘급’은 아니지 않은가.
확실히 이유가 빈약하긴 하다.
이런 매니저들의 의문에, 재익이 형이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실은, 문제가 하나 더 있어.”
“… 뭔데?”
재익이 형이 고갯짓으로 내 쪽을 가리킨다. 휙휙.
나 몰래 하는 듯 보였지만, 곁눈질로 다 보인다.
“재희 때문이지.”
형, 다 들려요.
속삭이듯 말하는 소리도 다 들린다. 하지만 나는 모르는 척 잠자코 가만히 있었다.
“재희? 재희가 왜?”
*
“컷! 오케이!”
“오케이 입니다!”
이래도 되는 걸까. 찍는 족족 원 롤에, 원 오케이다.
“이야 재희 씨! 방금 표정 좋았어. 지나간 과거를 아련하게 바라보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는데 맞죠?”
감독님은 내 촬영분이 끝날 때면, 연신 싱글벙글 이셨다.
조금 전 까지, 송문교에게 짜증이 잔뜩 섞인 목소리로 ‘컷! 다시!’ 를 외치던 모습과는 180도 다른 모습에, 내가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에.”
“대본에서 재희 씨 역할이, 남주랑 여주 사이를 이어주는 핵심 역할이라고. 방금 그 눈빛에서 지나간 찬란했던 과거와, 틀어져버린 현재의 우정. 그 사이의 괴리감을 아주 제대로 보여줬어요.”
그야 말로 극찬의 연속이다.
사실, 감독님의 눈에 내 연기가 만족스러운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지금의 ‘김도훈’ 캐릭터는 작가님이 아니라, 감독님이 내 오디션을 보시고 직접 디자인 하신 캐릭터라고 말해도 무방하니까.
“재희 씨가 우리 드라마 살린다! 살려!”
내게 시선이 집중된 이런 상황들이 송문교를 견딜 수 없게 만들었고, 현장에서 ‘주연배우’로서 갖춰야 할 그의 위치를 작아지게 만들었다.
심기가 잔뜩 뒤틀린 송문교는, 내게 이빨을 드러냈다.
“시발. 같은 B급들 끼리 쿵짝 잘 맞아서 좋겠다?”
지나가는 말로 나를 도발했지만, 나는 최대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숨겼다.
오히려 무덤덤하게.
“그러는 넌 B급도 만족 못시키잖아.”
“…..”
“유치하게 투정부리지 말고, 네 거 준비나 잘 해.”
뭐, 굳이 맞장구를 쳐서 송문교의 비틀어지는 얼굴을 보는 게 즐거운 나도 유치하긴 마찬가지지만.
나는 마지막으로 아주 유치한 도발 하나를 더 준비했다.
“또 NG내서 남들 피해주지 말고. 스텝들이 무슨 죄냐?”
송문교가 뚜껑이 완전 열린 듯, 바락 소리 질렀다.
“야 이, 씨발 새끼야!”
물론, 감독님도 스텝들도 모두 다 들었다.
*
“…. 욕을 했다고? 아! 이제 현장 분위기 어쩌냐?”
“문교야… 아! 문교…! 걔 왜 그러냐? 정말.”
“이거 이미지에 꽤 타격 있을 텐데… 카메라는 없었지?”
“대표님은 아시고?”
분위기가 갑자기 꽤나 진지해졌다.
뭐, 이번 일은 박찬익 팀장 선에서 잘 해결될 것 같은 분위기긴 했지만, 길게 봤을 때 그날 일은 송문교 커리어에 있어서 마이너스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수를 쓰지도 않았고, 아무것도 유도하지도 않았다. 내가 원하는 그림은 철저하게 연기만으로 주연의 품격을 갉아먹는 것이었을 뿐이었고, 그것만으로 송문교의 화를 돋구기에 자신 있었다.
하지만 의도하지 않았든, 어쨌든.
지금 송문교라는 돛단배는 난파되기 직전으로 보인다.
항해사도 갑판장도 죄다 등을 돌렸고, 선장은 외로이 이 싸움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
나는 씁쓸하게 미소지었다.
이 정도면 거의 자멸수준인데.
[ 책 먹는 배우님 – 13화. > 끝ⓒ 맛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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