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an Actor’s Book RAW novel - Chapter (131)
131.
“헬로우! 에브리원! 한 주 동안 잘 지내셨나요? 지상 최대의 토크쇼! [게라드 쇼>가 돌아왔습니다.”
게라드 윌리엄 주니어.
할리우드 동향에 누구보다 밝은 그가 이번 주 게라드 쇼에 초대한 남자는, 두 명이었다.
메인 초대석에 앉은 남자는, 할리우드 연예계 기자 존 터너.
게스트 석에 앉은 사람은 HAG(Hollywood Actor Guild) 소속 배우 벤자민 찰리.
기자와 배우.
얼핏 보기에 두 사람은 공통점이 전혀 없는 듯 보였지만, 게라드 윌리엄 주니어가 이 둘을 함께 토크쇼로 초대한 이유는 명확했다.
“어떤가요? 요즘 할리우드 분위기가?”
“똑같죠.”
기자를 향한 게라드의 질문에 기자가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오스카의 주인은 누구?”
그러자 방청객에 앉은 인원들이 빵! 터졌다.
할리우드에 이보다 뜨거운 주제가 있던가.
“그렇죠.”
하지만 게라드는 방청객들을 향해 당당히 말했다.
“오스카. 그보다 뜨거운 주제가 할리우드에 어디 있겠습니까? 물론, 그 이야기도 좋지만… 오스카 특별 방송은 다음 주에 진행됩니다. 오스카 2주 전에 상을 누가 받느냐, 뭐 이런 이야기로 바쁜 두 사람을 이 자리로 부르지는 않았겠죠. 안 그래요 벤자민?”
게라드의 질문에 벤자민 찰리.
할리우드에 떠오르는 라이징 스타가 웃어 보였다.
“네, 맞아요. 게라드. 저는 오스카 때문에 이곳을 찾은 것은 아닙니다. 물론, 그랬으면 좋겠지만.”
“하하! 하고 싶은 말이 뭔가요?”
“제 차기작에 관한 내용입니다.”
“차기작이요?”
“네. 그리고, 할리우드에 불고 있는 어떤 ‘듀오’에 관한 이야깁니다.”
그러자 기자 존 터너가 반응했다.
“맞아요. 그들은 매우 독특하죠. 아니, 특별하달까.”
게라드가 짐짓 모르는 얼굴로 물었다.
“할리우드의 특별한 듀오라… 떠오르는 사람이 많습니다만. 요즘 할리우드 사정을 들여다본다면, 저도 딱 하나의 ‘듀오’가 떠오르는군요. 일전에 저희 [게라드 쇼>에 출연한 적 있던 사람이 맞습니까?”
“네, 맞아요.”
“재희 군요?”
도재희.
이름에 벤자민 찰 리가 어깨를 으쓱이며 긍정을 표했다.
“맞아요, 게라드.”
“재희를 기억하십니까? 일전에 영화 [아다지오> 촬영 당시만 해도 할리우드에 적응하지 못한 ‘신인’ 배우였던 그 한국인 친구요.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불과 1년 사이에 할리우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동양인 배우가 되었어요. 올해에는 영화 [7년의 기억>으로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오스카에 참석합니다. 아, 동양인이라는 표현이 그와 내 사이를 구분 지으려는 것은 아닙니다.”
게라드의 열정적인 언변에 방청객들이 열띤 호응을 보내주었고, 게라드는 더욱 힘주며 다음 말을 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죠. ‘저 사람, 우리와 다르잖아.’ 인정하자고요. 그런 재희가, 지금 할리우드에서 ‘주연’으로 데뷔합니다. 앤소니 옐친이라는 러시아계 ‘천재’ 영화감독과 손을 잡았죠. 그들 뒤에는 이름만 대면 우리 모두 다 알고 있는 유명 배급사도 있습니다. 돈, 재미있는 시나리오, 그리고 훌륭한 배우가 한데 모여 할리우드를 전복시키려고 하고 있다고요!”
게라드의 일장연설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게라드는 멋쩍은 듯 웃었다.
“전복이라는 표현이 조금 어색하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만. 이들의 행보는 할리우드에서 쉽사리 찾기 어려울 만큼, 매우 이례적입니다. 터너. 설명해주시죠.”
게라드의 지목에, 기자인 존 터너가 말했다.
“감독인 앤소니 옐친의 캐스팅은 유럽, 아프리카계 흑인, 백인, 동양인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요. 인클루드 라이더. 재희가 ‘요구’했죠.”
“아하! 우리는 알고 있죠. 그 친구, 그럴 만한 배짱이 있는 친구죠.”
“네, 맞아요. LA 전역에 걸쳐져 있는 영화사, 제작사, 엔터테인먼트에 이들이 만드는 영화, [쓰나미 인 캘리포니아>의 시놉시스와 도재희의 이름이 전해졌어요. 처음에는 다들 비슷한 반응이었죠.”
‘주연이 누구라고?’
‘도재희? 그 한국인?’
‘우리 배우가, 한국인보다 비중이 낮다고? 꺼져버려.’
존 터너의 열정적인 연기에 방청객들이 웃음을 터뜨렸지만, 존 터너는 진지한 얼굴로 HAG 소속 배우인 벤자민 찰리를 가리켰다.
“그런데 결과를 보세요.”
“네. 제가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벤자민의 말에 게라드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뭐라고요? 주가가 치솟을 대로 치솟은 벤자민이 주연이 아니라고요? 고지식한 할리우드 제작사들이 가만히 있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이유가 뭔가요?”
“맞아요. 처음에는 부정적이었죠. 그런데 결국, 참여할 수밖에 없는 영화였죠. 손에 땀을 쥘 만큼 재미있는 스크립트, 처음에는 갸우뚱했지만, 금세 탄성으로 바뀌었던 배우 캐스팅. 두 박자 모두가 완벽했어요.”
그 말에 게라드가 흥분한 듯 소리쳤다.
“여기 있는 배우는 우리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던 그 영화. [디트로이트 피플>에서 잔혹한 킬러로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배우 벤자민 찰리입니다. 그런데 벤자민. 지금 그 말은, 재희가 당신이 한 수 접을 수밖에 없었던 배우라는 건가요? 제가 이렇게 이해해도 좋습니까?”
게라드의 질문의 끝.
벤자민 찰리가 말했다.
“맞아요. 그가 출연하는 작품을 보세요. 그냥 배역 그 자체라고요.”
그는, 기대감에 잔뜩 부푼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쓰리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했다.
“재희, 보고 있어요? 나는 당신과 연기할 그 순간이 너무 기대됩니다.”
*
나는 내 이야기가 [게라드 쇼>에 방영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접하고 TV 앞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나를 향해 뜬금없이 말을 거는 벤자민 찰리에 흠칫 놀라며 눈을 끔뻑였다.
이는, 재익이 형 역시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게라드 저 사람. 정말 제대로 띄어주는구나.”
“…. 그러게요.”
그래.
벤자민 찰리와 나는 일면식도 없다.
그런데 방송을 통해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나를 밀어준다는 것은, 게라드 윌리엄 주니어의 입김이 들어가지 않았겠는가.
물론, 앤소니 옐친 감독의 입김일 수도 있고.
‘19세기 무비베어’의 입김일 수도 있다.
– 정말 기대가 됩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할리우드에 신선한 새바람이 계속 불었으면 하는 바램 입니다.
“….”
어쨌든 방송에서 조금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아주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은 아니다.
오스카가 시작되기 직전.
할리우드 최대어는 내 이름과 [쓰나미 인 캘리포니아>였다.
앤소니 옐친 감독이 어떻게 말을 하고 다니는지는 몰라도, 이번 영화에 참여하고 싶어 하는 배우들이 줄을 이었다.
이는 비단, 유색인종 배우들만이 아니었다.
요즘 가장 뜨거운 무비스타 중 한 사람인 벤자민 찰리까지 영입된 것.
‘거봐요! 내가 뭐랬어요!’
앤소니 옐친 감독은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을 것이다.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발신자는.
“빌 이네.”
내 에이전시 UAA.
아마 방송을 잘 봤냐는 둥, 비슷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재익이 형이 서툰 영어를 바탕으로 에이전시와 통화를 시작했고, 나는 TV로 시선을 고정 시켰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에에에엑?”
재익이 형이 뒤에서 기겁을 하기 시작한 것.
형은 적잖이 당황한 얼굴이었지만, 당황과 동시에 묘한 기대감을 함께 품고 있었다.
“무슨 일 있어요?”
내 질문과 동시에 재익이 형이 통화를 끊었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자, 잠시만.”
그리고는 영미 씨를 불렀다.
“영미 씨! 재희 아카데미 때 입고 갈 의상, 어떻게 됐어?”
“그거, 지금 맞춤 제단 중인데 왜요?”
“색상은?”
“레드 와인이요. 오빠는 레드가 잘 받거든요. 저번에 같이 가서 맞췄으면서.”
재익이 형은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알지, 알지. 나도 아는데… 그거, 말해서 당장 블랙으로 바꿔야겠어.”
“네? 갑자기 왜요? 바꾸란다고 당장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이유가 뭔데요?”
재익이 형이 말했다.
“오스카에서 외국어영화상 ‘시상자’로 지목됐어.”
“… 네?”
시상자.
영화 [7년의 기억>은 한국에서 전례가 없는 미국 흥행으로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올랐다.
하지만, 후보와 시상자는 결국 별개.
“시상자는 블랙 슈트를 입어야 해. 영미 씨, 당장 준비해 줘.”
“아! 갑자기!”
“….”
시상자라니.
이렇게 갑자기?
*
원래 기존에 ‘외국어영화상’을 시상하기로 했던 남자 배우가 있었는데, 개인 사정으로 인해 참석이 불가능하게 되었고.
황급히 대체자를 물색하던 중, 최근 할리우드를 시끌시끌하게 한 외국인 배우인 내가 시상자로 물망에 오른 것.
그래.
여기까지는 이해했다.
원래, 급하게 시드가 돌아가는 일도 비일비재하고.
시상자는 APSA(아시아 태평양 스크린 어워즈)를 통해 경험해 본 바도 있다.
아무런 문제는 안 된다.
오히려 그 영광스러운 무대에 단독으로 설 수 있다는 점은 내게 플러스다.
하지만 주목할 점은, ‘외국인 영화상’ 후보작품인 [7년의 기억>의 주연 배우인 내가 시상자로 뽑혔다는 것이다.
“박진우 감독님, 상 받으시는 거 아냐?”
“…. 음.”
“맞네! 기왕이면 너한테 받는 게 더 기분 좋으니까 아카데미 측에서 배려한 것이 아닐까.”
시상자가 수상까지 한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본인 이름을 부르며 경악하는 배우, 그러한 전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 설레발은 금물이라고요.”
하지만 나는 기대감을 최대한으로 숨겼다.
올해는, 수상보다는 ‘경험’이 목적이다.
아카데미 시상식.
미국 최대의 영화상.
이름만으로 떨리는 오스카(Oscars)를 품에 안을 수 있는 곳.
철저하게 초대받은 자들을 위한 축제.
3월 6일.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날 아침이 되었다.
“오빠! 옷 입을게요!”
영미 씨는 요 며칠 사이 직접 발로 뛰어다니며 시상용 블랙 슈트를 준비하는 데 성공했다. 야심 차게 준비하려던 레드와인 슈트가 물 건너간 영미 씨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듯 보였고.
“보우 타이는 너무 촌스럽다고요.”
“깔끔하니 보기 좋은데 왜.”
“안돼요. 보우타이는 절대 금지!”
아침 댓바람부터 재익이 형과 함께 슈트와 함께 착용할 넥타이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우리 오빠가 제일 돋보여야 하는데, 나비 넥타이는 완전 아저씨 같잖아요 이건 스타일리스트의 마지막 자존심이라고요!”
“… 알았어. 알았다고.”
이 토론의 승자는 언제나 그렇듯 영미 씨였다.
전날 밤, 설강식 선배님과 박진우 연출이 미국에 LA에 도착했다.
지금쯤, 그쪽도 의상 입으랴 레드카펫 준비하랴 정신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나는 부푼 가슴을 진정시켰다.
시상식은 저녁 일곱 시에 시작하지만, 레드카펫 쇼가 예정되어있기에 넉넉하게 오후 두 시에는 도착해야 한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LA 돌비 극장으로 가는 길.
에이전시에서 준비한 고급 리무진안에서, 재익이 형도 말끔한 슈트를 차려입었다.
형은 자신의 취향대로 보우 타이를 깔끔하게 매고 있었고, 목에 매인 보우 타이를 정리하며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오스카라니. 십 년을 배우 매니저 하면서 여길 와 볼 일이 한 번이라도 있을까 싶었는데… 재희 네 덕분에 와보는구나.”
나는 가볍게 웃으며 시선을 정면으로 던졌다.
저 멀리.
LA 돌비 극장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 책 먹는 배우님 – 131화. > 끝ⓒ 맛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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