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an Actor’s Book RAW novel - Chapter (136)
136.
레오파드 비트리오.
할리우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배우 중 한 명.
그가, 나와 똑같은 남우주연상을 노린다.
나는 최근까지 그와 같은 작품에서 연기했던 배우인 벤자민 찰리에게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들었다.
“들으셨어요? 레오파드가 이번에 직접 영화 제작을 제의했다는 걸?”
“그게, 무슨 말인가요?”
“말 그대로예요. 자신이 예전에 흥미롭게 보았던 책 한 권을 영화사에 넘기며, 이 책을 영화로 만들자고 제안했지요. 주인공은 자기 자신으로. 120% 이상 극한의 연기를 펼칠 수 있는 자기 자신을 위한 무대를 설계하는 중입니다.”
레오파드 비트리오는 차기작 하나에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칼을 가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제작에 참여하여, 가장 돋보일 수 있는 배역을 직접 디자인했고, 자신을 돋보이게 찍어줄 감독까지 스스로 섭외한다.
‘이래도 안 줄 거야?’
만천하에 올해야말로, 남우주연상을 반드시 가져오겠다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
뭐랄까.
벤자민 찰리에게서 레오파드의 소식을 들은 이날을 기점으로.
내 마음가짐이 조금 변했다.
할리우드에서의 내 모든 커리어가 오스카상을 향해 포커싱 되기 시작한 것이다.
뜬구름처럼 퍼져있던 목표가 단단하게 하나로 모였다.
오스카를 노리는 배우가 레오파드뿐 만은 아니겠지만, 이 자를 당장 넘어서야 한다는 것은 틀림없다.
목표는, 단번에 최정상을 넘보는 언더독.
재익이 형이 내게 물었다.
“어떻게 할 거야? 우리도 대비해야지.”
오스카를 향해 조준하기 전.
“해야죠. 먼저, 총알을 준비해야겠죠.”
싸울 준비를 해야지.
내년 아카데미를 향해 쏘아 올린 내 첫 번째 신호탄은, 오웬 감독이 만든 [패브리케이터>였다.
5월.
칸 영화제에 초청받아 개봉한 이 영화는 ‘역시 오웬!’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영화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비록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황금종려상 후보로 노미네이트 되었으며, 이는 유럽 시장에 내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프랑스 신문, 르 몽드(Le Monde)에서는 배우 도재희에 포커스를 맞춰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이야! 끝내주는데.”
칸이 주목한 배우가 되었다.
한국에서도 ‘칸 영화제’라 함은, 매년 심심찮게 방문하는 영화제기에, 그다지 큰 감흥은 없었지만.
“그 덕분에! 전미 개봉!”
이러한 이력을 가지고 영화 [패브리케이터>는 미국 극장가에 롤 아웃(흥행 여부에 따라 개봉관을 늘려나가는 방식) 방식으로 개봉되었다.
독립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첫 상영관이 300여 개가 넘었고, 지금 흥행 추이를 보아서는 곧, 네 자리 숫자로 확대될 예정이다.
‘역시, 오웬이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다음은?”
재익이 형의 질문에, 내가 시선을 창밖으로 던졌다.
연습 볼을 던졌으니 다음은.
“초구”
내가 할리우드에 던질 [당신의 추억을 삽니다.>
내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를 향해 날아갈 날카로운 직구.
배우상에 이어, 연출상까지 노린다.
재익이 형의 얼굴이 흥미롭다는 듯 변했다.
“오호, 그다음은?”
“강속구.”
[쓰나미 인 캘리포니아>개봉 날짜까지 정해져 있고 이제는 촬영만 남은 내 비장의 무기.
내 예상대로라면 이 영화가 불어오는 쓰나미는 캘리포니아뿐 만이 아니라, 전 세계를 상대로 침몰시킬 것이다.
예상이냐고?
아니, 확신해도 좋다.
“좋은데?”
오웬 감독의 [패브리케이터>
도재희 감독, 도재희 주연. [당신의 추억을 삽니다.>
앤소니 옐친 감독의 [쓰나미 인 캘리포니아>
이로써, 올해 할리우드를 정조준하고, 내년 아카데미 시상식을 향해 쏘아 올릴, 내 영화 라인업 세 개가 완성되었다.
“영화 세 작품이라, 든든한데. 상 하나는 가져오겠다.”
“세 개가 아니에요. 아직 75%밖에 완성되지 않았어요.”
“응? 75%? 나머지 25%는?”
“이제 찍어야죠.”
하나는, 찍어야 한다.
작년에 찍어 둔 작품이 두 작품을 포함하여 올해 두 작품을 찍어, 총 네 작품을 공개할 예정이다.
“응? 어떤 영화?”
“결정구.”
타자를 반드시 아웃시켜야 하는 결정적 카운트에서 투수가 던지는, 가장 자신 있는 공.
재익이 형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는 얼굴로 물었다.
“생각해둔 작품이라도 있어? 그런데, 지금 당장 작품에 안 들어가면 12월 개봉까지 시기가 조금 촉박할 텐데?”
“박진우 감독님 영화요.”
“아! 지금 작업 중이시지?”
“네.”
역시, 가장 자신 있는 조합은 도재희X박진우다.
박진우 감독이 시나리오를 빠르게 완성해 올 12월 안에 영화를 개봉할 수만 있다면.
미국의 어떤 극장이든, 1주일 동안만이라도 걸 수 있다면.
아카데미에 초청될 자격을 얻는다.
계획대로만 진행된다면, 내년 1월에 발표될 ‘오스카상 후보’로 나는 총 네 개의 무기를 손에 쥐게 되는 셈이다.
저마다 다양한 매력을 뽐낼 네 개의 영화들.
“총 네 작품이라…. 박 감독님, 어떤 작품 준비 중이신지 알아?”
“아뇨. 아직 몰라요. 저한테도 말씀 안 해주시던데.”
“흐음, 그래?”
확실한 것은.
“해외 로케이션을 준비 중이시라는 것 정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대규모 로케이션 장소를 물색한다는 소식만 들었다.
“대체 뭘 찍으시려는 거지?”
“곧 시나리오 보여주신다던데. 모르겠어요. 초대형 블록버스터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뭐가 되었던.
“기대되지 않아요?”
그를 믿는다.
*
어둑한 새벽.
하이마운트 픽쳐스의 작업실.
타박, 타박거리는 키보드 자판 두드리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이내, 그 소리가 멈추더니 정적이 찾아왔고.
그 정적을 깨뜨리는 박진우의 목소리.
“…. 다 썼다.”
박진우 앞에 있는 모니터에는 빼곡하게 적혀있는 영화 시나리오가 펼쳐져 있었다.
제목 [알카트라즈>
영화는, 판타지다.
시나리오의 시작은 이러했다.
[[ MJ는 좁은 침대에 늘어지게 누워 허공을 향해 9mm권총 탄피 하나를 던졌다, 잡았다를 반복했다.가죽시트가 죄다 벗겨진 침대 바로 옆 테이블. 그 테이블 위에 올려진 낡은 라디오에서는 똑같은 말이 반복적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 본 세계정부는 테러. 범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였으며, 이제껏 도래한 적 없던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개척하였습니다.
“개뿔”
신경질적으로 라디오를 걷어차는 MJ.
라디오가 바닥으로 떨어지며 점점 배경이 넓어지고, 조금씩 드러나는 실내 풍경.
전체적으로 어두컴컴한 배경의 좁은 방.
처음에는 방이라고 생각했지만, 스크린이 넓어지며 이를 가두고 있는 쇠창살이 카메라에 걸린다.
감옥.
감옥 내부의 조그만 창문 너머로는, 마치 폭격이라도 휩쓸고 지나간 듯한 황폐한 시가지가 드러난다.
낡은 라디오에서는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흘러나오고, 던진 탄피 하나를 놓치고 만다.
탄피는 바닥에 떨어져 침대 밑으로 들어가고.
MJ가 팔을 떨궈 더듬거리며 탄피를 주우려고 한다.
MJ의 흰 팔뚝에는 선명한 주삿바늘 자국이 난자되어 있고 그 팔뚝을 따라 위에서 아래로 앵글을 내리면, 침대 아래에 탄피가 떨어져있다.
제자리에서 빙그르르 회전하는 탄피. 탄피에 찍혀있는 오프닝 타이틀.>>
[알카트로즈>“으- 읏차!”
박진우는 정적을 깨트리며 쭈욱 기지개를 켜더니, 몸을 일으켰다.
시간을 확인하니, 새벽 3시 20분.
자리에서 일어나 이미 다 식은 커피를 훌훌 털어 넘기더니 구부정한 자세로 메일을 켜 작업한 시나리오를 어딘가로 전송했다.
메일 제목에는 [[‘알카트라즈’ 완고. 답변 요망>> 이라고 적혀있었다.
[알카트라즈>한번 들어가면 절대 나올 수 없다고 악명 높은 악마의 섬. 미 연방국의 ‘형무소’로 쓰이던 ‘알카트라즈’는 1963년 폐쇄되어 지금은 관광명소로 쓰이지만.
박진우 감독의 상상력으로 재탄생되었다.
새로운 세계관.
핵전쟁 이후의 세계. 테러리스트로 몰려 알카트로즈에 억울하게 수감 된 한 죄수.
탈옥, 복수, 질주.
화약 냄새, 피 냄새, 죽음의 냄새.
현실과 판타지를 넘나들며,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삶을 다룬 이야기.
도재희가 ‘원톱’ 주연이 될 영화이자, 미국 입맛에 맞춘 전형적인 액션 블록버스터.
할리우드에 진정한 시험대에 올라설 영화.
“후우”
메일 전송을 마친 박진우는 시나리오를 완성했다는 해방감을 느끼며, 히죽 웃었다.
한시라도 빨리 MJ를 연기할 도재희의 얼굴을 보고 싶어 안달 난 얼굴이었다.
그는 빠르게 휴대전화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더니, 곧 유창한 영어로 말했다.
“메일 받으셨죠?”
발신자는 영화사 하이마운트.
“최대한 서둘러주시길 바랍니다. 개봉은 반드시 12월 중에 했으면 해서요.”
혹자들은 영화를 찍는 일 보다, 극장에 거는 일이 어렵다고도 한다. 대형 배급사를 껴야 하는 작업이 필연적으로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
하지만 이는, 생략하는 단계나 다름없다.
하이마운트 픽쳐스가 뒤에 떡하니 지켜주고 있고. ‘박진우’ 라는 감독의 이름값이 있으니까.
이제 준비해서, 찍기만 하면 된다.
-“12월이요? 이거, 스케일이 꽤 큰데. 가능하겠어요?”
가능하겠냐는 우려에 박진우가 말했다.
“반드시, 그렇게 만들겠습니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다시 아카데미 무대에 서려면.
도재희를 비롯해서,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으려면.
“꼭, 그렇게 해야 합니다.”
반드시, 올해 안에 개봉해야 한다.
*
[쓰나미 인 캘리포니아>의 촬영이 시작되었다.대다수의 재난 영화에는 이미 정형화된 ‘플롯’이 존재한다.
재난 영화를 통해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뚜렷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부성애, 가족의 소중함, 평화로웠던 일상의 파괴.
재앙을 예견하는 사람과, 이를 귓등으로 흘려듣는 무지한 관리들.
십만양병설을 주장했던 율곡 선생과 그 말을 듣지 않았던 선조. 임진왜란으로 이어진 역사가- 이러한 ‘플롯’을 증명해준다.
다수가 보고 싶어 하는, ‘먹히는’ 이야기.
[쓰나미 인 캘리포니아>도 예외는 아니다.대자연 재해 앞에 무기력한 인간.
캘리포니아를 감싸 안은 해발 4,421m의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뒤덮을 만큼 거대한 쓰나미가 밀려오고, 바닷물에 휩쓸려 내려가는 사람들.
물에 잠겨버린 수중 도시.
고층 빌딩 위에 살아남은 악인들 사이에서 생존해야 한다.
[쓰나미 인 캘리포니아>는 위에 언급했던, 이 모든 정형화된 이야기가 적당히 버무려진 클리셰의 집합체다.하지만.
누가 연기하고, 누가 연출하느냐에 따라 그 맛은 달라진다.아주 미세한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이 영화가 명품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
앤소니 옐친 감독이 크루들을 불러 모아놓고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명품이 선택한 작품이기 때문이죠.”
명품 배우가 출연하는 클리셰 범벅 재난 블록버스터.
자. 아무래도 올해, 내 커리어의 방점을 찍어야 할 것 같다.
한국에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고, 몇 년을 미국에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내게는 꼭 내년의 오스카가 필요하다.
오늘이, 그 첫 번째 시작.
“시원하게 물벼락 맞을 준비는 되셨습니까?”
앤소니 옐친 감독이 웃으며 물탱크를 가리켰다.
100명의 스탭이 달려들어 꼬박 한 달 반을 공들인 장면.
오렌지 카운티 세트 길거리에 1미터짜리 콘크리트 바리케이트를 엮어 누수 방지를 위해 방수 스프레이로 이음새마다 뿌렸다. 1백만 리터의 물을 탱크에 채워 놓았고, 10개의 분출기를 제작해 분당 1만 4천 리터의 물을 뿜어내도록 했다.
나는 표정을 장난스럽게 굳혔다.
“오, 이런.”
앤소니 옐친이 하루라도 빨리 영화를 찍고 싶어 안달 났다는, 그의 얼굴이 이해되는 순간.
나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한 번에 시원하게 갑시다.”
이제 곧, 수십만 리터의 물이 쏟아져 세트를 가득 메울 것이다.
[ 책 먹는 배우님 – 136화. > 끝ⓒ 맛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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