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an Actor’s Book RAW novel - Chapter (139)
139.
내가 [게라드 쇼>에 대해 가지는 감정은, 확실하다.
스타 한 명이 대중들에게 얼마나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방송.
자극적이지만, 그만큼 효과적이다.
전년도(올 3월에 열렸지만) 남우주연상 수상자인 지미 니콜라이와 레오파트 비트리오. 그리고 나까지.
이 모두를 한 자리에 불러모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늑대들을 한 우리에 몰아넣고 대놓고 설전(舌戰)을 벌이겠다는 것.
[게라드 쇼> 측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헐뜯고 물어뜯는 그런 그림을 원할지도 모르겠다.하지만, 아마도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검독수리 새끼들의 경연장에서 그러했듯, 웃음 뒤에 교모하게 비수를 숨길테니까.
“할 거야?”
“….”
잠시, 고민해보자.
대중들이 나를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로 거론되는 것을 인정할까? 한국인인 나를?
그 자리에 나가면, 내게 무슨 이득이 있을까?
꽤 그럴싸한 무대인 것은 사실이다.
서로에 대해 알아보기에 가장 적합한 무대인 것도 사실이고.
내게 따라오는 확실한 이득 두 가지는.
지금 치솟아 오른 내 이름값을 지상 최대의 라이브 쇼를 통해 공고히 다지겠다는 생산적인 측면. 그리고 미국에서 내로라하는 연기파 배우들과 안면을 트게 된다는 점.
특히, 레오파드 비트리오가 궁금하다.
“해볼까요?”
내 말에 재익이 형이 피식, 웃었다.
“너, 궁금하구나? 레오파드 비트리오. 어떤 사람인지.”
“….”
역시 벌써 나와 4년이 넘은 형은 내 얼굴만 봐도 감이 오는 모양이다.
“조금요.”
“알았어. 촬영비는 날, 사전인터뷰 잡아볼게.”
“네.”
먼발치에서 나 혼자 견제하던 대상을, 이제는 직접 마주하게 된다.
과연, 어떤 사람일까.
*
“오랜만이에요. 재희. 트레일러가 아주 근사한데요?”
영화 [쓰나미 인 캘리포니아>세트 인근에 있는 내 캠핑 트레일러에서 [게라드 쇼> 사전인터뷰를 위해 제작진들과 만났다.
일전에 ‘조셉 이든 캣맨’과 함께 [게라드 쇼>에 출연한 경험이 있기에, 내게도 익숙한 제작진들.
“어서 들어오세요. 좁지는 않으세요?”
“좁다니요? 세 개를 이어붙인 건가요? 이거, 우리 집보다 넓어 보이는군요. 하하! 오늘 컨디션은 어때요?”
“저야 항상 좋아요.”
“전보다 훨씬 보기 좋아 보이네요. 먼저, 몇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아시겠지만, 답하기 곤란한 질문은 삭제요청을 하시면 돼요.”
“네.”
1시간여가 넘는 라이브 쇼는 모두 이 ‘사전인터뷰’를 통해 만들어진 ‘대본’으로 이루어진다.
즉, 방송사고가 나지 않는 이상에야 일종의 ‘짜고 치는 고스톱’인 셈. 하지만 방송은 즉석에서 질문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꾸며진다.
“질문드릴게요. 먼저,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통상적인 질문 몇 가지가 오갔다.
요즘 들어가는 작품, 차기작은 무엇인지, 아카데미를 직접 눈으로 지켜본 심정이나. ‘외국어영화상’ 시상하며 느낀 기분은 어땠는지, 같은 평범한 인터뷰들.
하지만 질문이 진행될수록, 이들이 정말 원하는 질문은 따로 있다고 느꼈다.
왜냐고.
“좋아요. 잘 들었어요. 재희. 자! 이제부터가 본론이에요. 이번 쇼에서는 특별하게 아주 재미있는 게임을 하나 할까 해요.”
“… 게임이요?”
“네.”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때, 제작진들의 얼굴이 환해졌으니까.
“그게 뭔가요?”
“O/X 게임입니다.”
“O/X 게임?”
“네. 출연하는 배우들에게 공통질문을 드릴 겁니다. 거기에 맞는 답변에 대해 솔직하게 O/X 팻말을 들기만 하면 끝이죠. 일종의 진실 게임이랄까.”
진실 게임? O/X?
이는, 이제껏 [게라드 쇼>에서는 없었던 코너다.
“…..”
내가 대답을 머뭇거리자, 제작진이 안심하라는 투로 말했다.
“재희, 걱정 마요. 모든 질문은 사전에 공개될 겁니다. 답변을 골라낼 시간을 충분히 드릴 거예요.”
즉, 곤란한 질문은 하지 않겠다는 것.
내가 물었다.
“예를 들면, 어떤 질문인가요?”
“간단해요. 이 자리에 내년 오스카를 들어 올릴 배우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뭐, 이 정도.”
“….”
역시.
한 자리에 불러놓고 서로를 의도적으로 견제시킬 예정이다.
O를 들면, 누구라고 생각하냐고 물을 테고.
X를 들면, 여기 있는 배우들 모두를 낮게 본다는 것을 뜻한다.
간단한 질문이지만, 선뜻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통하여 배우들의 성격이나 욕심, 서로를 얼마나 견제하는지 등등을 생방송이라는 점을 이용해 낱낱이 살펴볼 요량인 것.
꽤 영리한 ‘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꽤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한 가지 더 말씀드릴 점이 있어요.”
“말씀하세요.”
“재희가 O를 들지, X를 들지에 대해서 저희는 알지 못하니, O/X를 선택한 이유에 대한 ‘답변’을 미리 준비하시는 편이 좋을 거예요.”
아.
반쯤은 리얼버라이어티나 다름없다.
질문은 ‘짜고 치는 고스톱’ 이지만, 그 질문에 대한 토크는 철저하게 현장에서 진행된다는 것.
“…. 그렇군요.”
역시, 게라드 윌리엄 주니어.
이번 방송을 통해 제대로 불을 붙이겠다는 욕심이 눈에 보인다.
하지만 그만큼 ‘아카데미 시상식’에 대한 반응은 더 커질 테니, 부정적인 시각만으로 바라보지는 않는다.
판이 커지는 것은, 그만큼 높은 배당으로 이긴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이후에 치러진 질문들을 모두 마치고, 제작진과 악수했다.
“그럼, 곧 스튜디오에서 뵐게요. 재희.”
“조심히 들어가세요.”
사전인터뷰를 마치고 제작진들이 내 트레일러를 나섰고.
나는 트레일러에 멍하니 앉아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저녁 촬영까지는 아직 1시간가량 남아있는 상황.
“좀 쉬어.”
재익이 형이 트레일러에서 빠져나가고, 홀로 남은 나는 제작진에게서 받은 ‘O/X 질문 용지’를 찬찬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질문리스트를 받아 본 그 순간.
내 속에 있는 누군가가 묻는 것 같았다.
‘인간 도재희의 답변을 원해, 아니면 배우 도재희의 답변을 원해?’
아마, 다수의 사람들이 이런 고민을 할 것이다.
Q : 당신이 남우주연상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말이지.
인간 도재희가 가지고 있는 욕심과 배우 도재희가 보여주어야 할 겸손함.
둘 사이의 기로에 섰다.
“….”
내 속마음이 다시 물었다.
너는, 둘 중 무엇을 택할 거야?
*
[게라드 쇼> 생방송 녹화 당일.나는 [게라드 쇼> 촬영을 위해 스튜디오로 향했다.
스튜디오로 향하는 차량 안에는, 내 차기작 ‘환승’을 위한 준비가 끝나있었다.
재익이 형이 웃어 보이며 깔끔하게 프린팅된 대본 한 부를 내게 건네주었다.
“이거, 박진우 감독님 영화 차기작.”
“오. 완성하셨어요?”
“완성하신지는 좀 되었데. 그런데 캐스팅보다 급한 게 세트라서… 다른 쪽 작업 먼저 마치신 모양이더라.”
세트가 급하다고?
나는 궁금했지만, 이 대본이 주는 힘이 더 궁금했기에 묻지 않고 곧 바로 대본을 펼쳐 들었다.
지금 타고 있는 배는 [쓰나미 인 캘리포니아>.
하지만 촬영이 막바지에 달했고, 다른 배에 환승해야 할 타이밍이다.
그때 나타난 박진우 연출의 할리우드 데뷔작.
박진우 선장.
도재희 일등항해사.
영화 [알카트로즈>.
배경은 가까운 근 미래.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지옥의 섬’에 수감 된 죄수의 탈옥과 생존기.
시나리오를 읽으며, 왠지 모르게 일제강점기 혹은 미국독립전쟁 같은 이미지가 스쳐 지나간다.
이는,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주인공이 ‘동양인’이라는 설정은 거들뿐.
본질은, 한 명의 억울한 인간.
판타지라는 장르를 통해 식민지배를 겪었던 국가, 혹은 그 지배자 입장인 국가, 양국 모두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영화.
완벽할 정도로 미국시장 입맛을 저격한 영화.
내 눈에만 보이는 점수가 말해주고 있다.
[99/100](+@)지져스.
박진우 연출은, 그야말로 완벽에 가까운 시나리오를 집필하는 것에 성공했다.
재익이 형에게 물었다.
“이거, 읽어보셨어요?”
“응? 아직.”
“… 정말, 미친 영화에요.”
아마, 한국에서도 제대로 먹힐 것이다.
재익이 형이 대본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 호주에 세트 짓고 있다고 하더라. 듣기로는 하이마운트 픽쳐스 쪽에서 엄청 서두르고 있다고 하던데. 맞죠, 빌?”
운전대를 잡고 있던 에이전트 빌이 부연 설명했다.
“맞아요. 박 감독님 요청이라는 것 같더라고요. 하이마운트 픽쳐스에서 박 감독님 모셔가려고 엄청 공들였잖아요. 지금 호주 어느 부지에서 ‘알카트로즈’ 세트가 올라가고 있을 거예요.”
“….”
서두르고 있다라.
그제야 캐스팅을 진행하기도 전에, 세트 먼저 짓기 시작했다는 재익이 형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
이 정도 스케일의 영화라면, 사실상 올해 개봉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세트에 공을 잔뜩 들일 것이고.
들어가는 특수효과가 어마어마할 테니까.
하지만, 그만큼 서두른다는 것은.
하이마운트 픽쳐스 쪽에서 박진우 연출에게 거는 기대가 상당하고, 올해 이 영화가 무사히 개봉되어 당장 내년 오스카라도 들어 올리길 원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위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
“좋네요.”
내게도 물론 좋은 상황이다.
“그렇게 재밌어? 어디 줘봐. 나도 읽어보게.”
“여기요.”
영화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힘이 절로 솟는다.
이 영화를 이길 수 있는 영화가 있을까?
이보다 흥미진진한 영화를 미국에서 찾을 수 있을까?
적어도 지금 들려오고 있는 영화 중에서는 없다.
며칠 전에 내가 했던 고민.
Q : 당신이 남우주연상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대답에 대한 답변을 어떻게 할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
적당히 분위기를 살피며 할 생각이었는데.
지금 기분으로는, 당당하게 O를 들어 올릴 수 있을 것 같다.
이 자신감은, [게라드 쇼> 녹화가 진행되는 스튜디오에 들어서서도 변함없었다.
“어서 와요!”
스튜디오에는 게라드 윌리엄 주니어를 포함하여, 지미 니콜라이, 레오파드 비트리오 같은 ‘거물급’ 배우들이 앉아 카메라 리허설을 진행하고 있었다.
나는 초면인 배우들을 향해 인사했다.
“… 안녕하세요.”
할리우드 최정상급 괴물들과의 첫 만남.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게라드와 친하다는 이유로 주제도 모르고 이들 사이에 끼어있다고 생각할까?
아무렴, 어때.
“도재희 라고 합니다.”
“…..”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던 배우들이 나를 힐끔 바라보더니, 고개를 까딱였다.
“난 레오입니다.”
레오.
레오파드 비트리오의 약칭.
초면에 스스로를 약칭으로 소개한다는 것은, 당연히 자신을 알고 있을 것이라는 전제를 깔아두고 시작한 것이다.
어마어마한 자신감이 숨어있다고 볼수 있다.
지미 니콜라이가 내게 악수를 청했다.
“지미 니콜라이입니다. 어디서 봤나 했더니… 지난 아카데미 무대에서 본 것 같은데. 맞죠?”
“네. ‘외국어영화상’ 섹션에서 시상을 했었습니다.”
“역시 그 친구가 맞았구먼. 반가워요. 그냥 편하게 지미라고 불러줘요.”
“반갑습니다.”
이렇게 [게라드 쇼>에 참가한 3인의 배우가 인사를 마쳤다.
레오와 지미는 서로 구면인 듯, 아주 자연스럽게 최근 근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대화의 주제는, 레오가 출연하는 영화 [리벤지 아메리카>에 대한 이야기 였고, 주로 말을 하는 사람은 레오였다.
“엄청난 걸작을 준비 중이죠. 기대하셔도 좋아요.”
“….”
스스로가 출연하는 영화를 걸작이라고 자찬하는 레오를 보며, 나는 스튜디오에 들어서며 팽배하게 유지한 이 자신감을 굳혔다.
이 싸움.
아마, 진흙탕 싸움이 되지 않을까.
그때, MC 석에 앉아 우리를 조용히 지켜보던 게라드 윌리엄 주니어가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걸작이라니! 레오! 지금 했던 말을 방송에서 다시 해주실 수 있나요?”
그러자 레오가 별 것 아니라는 듯 말했다.
“그럼요.”
“으햐!”
게라드는 신난다는듯 괴상한 탄성과 함께 배를 잡고 머쓱였다.
“한 자리에 모시기 힘든 분들임을 알기에… 이 늙은이가 주책맞게 흥분해버렸네요.”
그리고는 잔뜩 흥분한 얼굴로 마지막 당부도 잊지 않았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카메라 앞에서는 프로들이지만, 절대 잊지 말아요. 이 쇼는 라이브 쇼라는 사실을. 가끔 그 점을 까먹는 분들이 계시더라고. 편집을 요구해봐야 이미 늦었다고. 껄껄”
마지막 신신당부를 끝으로 게라드가 소리질렀다.
“자! 그럼 제대로 한 번 놀아봅시다!”
지상 최대의 라이브 쇼.
[게라드 쇼>가 다시 한번 시작되었다. [ 책 먹는 배우님 – 139화. > 끝ⓒ 맛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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